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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솔본님께 답변] 삼천 '순'과 삼수 '묘'에 대하여

monocrop 2007. 3. 5. 06:53

글:  茶香                                                                              2005-01-16 00:36:39

 

솔본님/


먼저 이 글은 제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우선 솔본님이 보셨다는 문자는 이미지로 보여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만,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 중에서 찾아보았습니다.
파일로 첨부해서 올렸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이 글자가 아니라면 글자를 scan해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 고대 동이 복사문자에 삼천(三泉) 이라는 글자가 있는데요..
물줄기 泉자를 세개 합쳐 쓰고 읽기로는 '선'으로 읽는군요.

사기에 조선의 '鮮'이 세물줄기 三水가 합쳐서 鮮이 되었다 하는데
이것과 '三泉 선'간에 어떤 관계가 없을지요.

→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에는 복사문자 중에서는 ‘三泉‘이라는 글자는 없었습니다.
다만 설문해자에 실린 것이 유일한 것이기에 이를 토대로 말씀드립니다.
여기에서 인용하고 있는 泉자는 본래의 상형문자(정확히는 고조선문자)를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灥’로 정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글자는 고대 기록에도 등장한 사례가 현재까지는 없는 것 같으며, 낱개의 ‘泉’자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물’과 관련이 있다는 중론에도 불구하고 의문의 여지가 많은 글자입니다. 실제로는 고조선 문자기록을 대조해보면 그 반대로 ‘불’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아마도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오독하여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합니다.(그러나 灥를 기준으로 말씀드립니다.)

이미 어느 리플에선가 제가 설명 드린 것처럼 ‘朝鮮’이라는 글자는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한민족이라면 영원히 기념하고 기려야할 고조선을 이끌어 가신 조상님의 이름자(4대에 걸친 5분)를 후대에 조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朝鮮이라는 말은 영토의 개념보다는 이 분을 시조로 인식하는 후손들의 집단공동체를 가리킨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개념일 것입니다.


史記 - 朝鮮列傳

朝鮮列傳第五十五[集解:張晏曰朝鮮有濕水洌水汕水, 三水合爲洌水, 疑樂浪朝鮮取名於此也.] [索隱:案 朝音潮, 直驕反. 鮮首仙. 以有汕水, 故名也. 汕一音.]

조선열전 제오 십오[집해: 장안이 말하기를, 조선에는 습수, 열수, 선수, 가 있는데, 3水가 합하여 열수가 되니,'낙랑','조선'의 이름은, 그것을 취한 것이 아닌가 한다.]
[ 색은: 朝는 음이, 潮요, 鮮은, 仙이니,'선수'가 있음으로, 그 이름을 붙인 것이니, 선이 원래 음이다.]


조선의 후예들은 영향력의 강약에 따라 나라가 커지고 축소되는 경우가 생기는 등 유동적이어서 시대 상황에 따라 나라가 이동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마천이 사기에서 논한 ‘조선’은 한나라 시대의 조선을 말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기록을 고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지요. 따라서 사기에서 언급한 삼수의 위치를 규명하는 것은 논점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찾아본 ‘灥 ’은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灥 /《설문》“三泉也. 闕”
        xun  《廣韻》詳遵切 → 순(혹은 슌)
        quan《集韻》從緣切 → 전(혹은 젼/쳔)
        quan《集韻》取絹切 → 천(혹은 쳔)

              * 방법을 몰라 사성을 표시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灥 ’은 세가지의 음가(순/전/천)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한자가 모든 소리를 한글처럼 표기하지 못하는 한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도 볼 수 있겠지요.


■ 고대 복사문자에 물 水 세 개를 합쳐 쓰고 이를 '묘'라고
읽는다는데 정말 묘하군요...

→ 淼를 찾아본 결과 다음과 같이 되어있습니다.


             淼 /miao《廣韻》亡沼切 → 모
                         《集韻》弭沼切 → 모


이 글자 역시 설문해자에서 발견되는 것이며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갑골문 형태의 복사글자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글자는 아직까지 우리가 직접 접해볼 수 있는 글자는 아니며, 허신이 어디서에선가 본 것을 우리도 간접적으로 대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금문이나 갑골문에서는 기록을 대할 수 없으므로 짐작은 하나 단정적으로 이렇다고 결론을 지을 수는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솔본님이 질문하신 글자들은 사례가 드믄 희귀한 글자로서 고조선 시대의 원형에서 상당히 변화과정을 겪은 후대의 글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감스럽기는 하나 이 글자들로 기록된 것이 없으므로 훗날의 과제로 남길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