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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려의 주원장 정벌군 출병과 위화도회군

monocrop 2007. 2. 28. 03:37


 

고려의 중원회복의 출병과  위화도 회군의 전략적 평가

 

 

군사전략적 측면에서 고려군의 중국정벌과 위화도회군에 대해 살펴 봅니다.

 

이성계의 4불가론 중에

여름철에 화살의 아교가 녹아 출병반대한다고 한 4불가론이라는

사기극 연출의 내용이 있습니다..

또, 관련된 다른 이유가 더위와 장마때문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여름4월이라 하면 지금의 5월쯤이고

5월 23일 위화도에서 회군을 했으면 지금의 6월 23일경이 됩니다.

 

지금의 6월 23일(5월 23일)에

성개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했을 시기에

이미 요동지방과 위화도 지역에 장마가 계속되고 있었고

많은 비가 내려 강을 도강하는 도중에 병사들이 떠내려가 죽었다고 했는데

이때는 지금으로 말하면 6월 초순경이 됩니다.

 

이때 강물이 불어나 도강을 하지 못할 정도의 장마가 계속됐다는 것이며

그곳이 압록강지역과 요동지역 이라는 것입니다.


이 성개가 출병하여 회군한 지역을 한반도 압록강 지역으로 하든,

영하성의 중위(中衛)지역으로 하든,

4월과 5월 초순(지금의 5월과 6월 초순)에 장마가 진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죠...

 

다시 말해 앞뒤가 안맞을 뿐 아니라, 현실과도 관련없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요동에서는 최영의 명에 따라 이미 려진의 3만군이 작전을 개시하고 있었는데

무슨 개소리입니까?

 

오죽하면, 당시 려진군 대장(   )이 "성개군이 이상하다" 고 최영에게 보고한바

최영과 우황이 직접 개성까지 내려왔었다.

 

말도안되는 건 너무 도 뻔한데 아무 객관적생각없이 맹신하다보니

지금도 합리화하는 화교들의 세상이 이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또하나의 사후 증거

 

그당시 국제적 상황은 고려에게 아주 유리했고, 고려는 무패의 군대였습니다.
만약, 주력인 고려 군대와 만주의 별동대(여진군) 그리고 몽골의 기황후 군대가
계획대로 중원정벌을 실시했더라면 명나라는 멸망을 기다릴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성개가 위화도회군을 하여 고려를 장악한후에 명나라로 보고서를 보낸 사신을

접한 명왕(    )이, "읽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고, 얼굴이 종이처럼 하얗게 되었다" 는 

당시 기록이 연사에 있는바,
  
그당시 명나라 수도는 양자강 이남에 있었고, 주원장의 기반역시 양자강이남에 있었습니다
명은  아직 국가 체제도 제대로 갖추어지지도 않았고, 양자강 이북은 주인없는 땅이었죠.

 

반란을 일으킨 주원장의 입장에서 아직 제대로 정비되지않았던 상황이었는 바, 

최영으로 인해 안정된 고려에 비해 취약한 당시의 명나라 상황이었지요.

 

주원장은 당시 상황에서 제대로된 방어가 불가능했다는 군사전문가들의 전략적 평가 입니다.


전략적으로,

명나라가 고려의 대군을 방어하려면 

군을 모아 요동을 넘기 전에 요서지방에 방어선을 구축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대군을 집결시키고 또 공격하기 위한 대대적인 준비와 함께

대원정을 했어야하는데


이건 탁군에서 출발하는 수나라의 원정보다 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양자강 이남이 출발지이기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군의 전투는 사기가 중요한데 군의 사기적인 측면에서도 반란군의 상황에서

가장 취약한 것이 반란응징명분의 공격군입니다.

그럼에도 주원장의 반란군이 잘 훈련되고 정비된 고려의 원정대군(연합군) 상대로

군의 사기를 돋기 어려우며, 더구나 태원쪽으로 내려오기로한 북원군에게는

완전히 노출되어있어 주원장군이 설령 대응군을 보낸다 하더라도 소규모의 군대를

뺄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 패배는 예상하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패배자명한 것입니다.

 

고려의 건국이념인 중원회복의 대업이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출병한것임이 사실인데

화교란 사실을 모르고 총대장에 인끈을 준 실수...그리고 만약을 대비한 제2군 사령관

조민수 역시 묵시적으로 동의할수밖에 없었던 군지휘계통의 문제로 인해 위화도반역

은 성공하게 되었던 거죠...

 


아무튼, 성개의  4대불가론이란게 얼마나 허구인지 알수있는것이며

후일에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고 정도전과 함께 요동정벌을 계획했다고 적어놓은것은

화교임을 속이고 위장하기위해 하는 ~척 하는 제스쳐에 불과하는 사실....이조는 500년

동안 고종때까지 명나라 왕실을 어버이나라로 모시고 자식의 도리로 극진히 제사지냈다.

화교가 아니고는 있을 수없는 일이다.

 

" 어서 ~ "

가짜 국사를 하루빨리 바로잡기 바랍니다.

 


 참고: 이조실록, 연사

 

 작성자: 겨울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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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fe.khankorea

 

 

 

 

 아래 사진은 역대이조왕중에 그림이 아닌 사진으로 찍힌 고종의 모습입니다.

명왕실에 제사를 지내온 이조왕실의 고종이 화교의 신체적특징을 가지

고 있슴을 볼수있는 자료입니다.

 

 

 

출처 :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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