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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역사스페셜이 다루지 않은 250개 주제

monocrop 2007. 2. 27. 01:30


- 대륙백제의 진실을 밝혀라!!!

한때 역스 제작진이 중국현지취재를 도모하다가 실패한 백제의 대륙진출사! 과연 백제는 한반도에서 처음 생긴 나라인가? 백제사에서 바다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중국 남경의 '백제탑'의 정체는? 대제국 백제의 참모습을 역스에서 보여달라!!!

- 윤관의 9성문제

한때 국사교과서에 함경도 일대라고 알려진 윤관의 9성!!! 그러나 최근에는 만주지방도 포함되는 것으로 밝혀져 고려의 만주진출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고려가 가장 영토확장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윤관의 시대는 과연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역사적 의의는 과연 무었이었는가?

- 수로왕비 허황옥 : 그녀는 과연 어디에서 왔는가?

고대사 최대 미스테리인 허황옥! 그녀의 출자문제는 그동안 가장 많은 추측의 대상이 되어왔다. 과연 그녀는 통설대로 인도에서 왔는가? 그녀를 받아들인 김수로왕의 배경은 또한 무엇이었는가? 부산아시아게임을 맞아 가야사에 대한 역스의 조명을 기대한다.

- 고구려와 돌궐

고구려 말기에 이르러 고구려는 돌궐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중국과 대립하는 양상을 띈다. 이러한 관계가 가능하게 된 요인은 무엇인가? 고구려는 과연 지금의 몽골초원에 진출했는가? 이러한 양국의 관계는 오늘날 한국과 터키의 관계로 이어지는데...

- 고구려 태조대왕, 그는 누구인가?

삼국사기에서 고구려의 건국자가 아님에도 그러한 뜻을 함축한 '태조'라는 시호를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 과연 고구려는 태조대왕 대에 이르러 무슨 변화가 있었는가? 태조대왕 대에 고구려사에 있어서의 대변혁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그는 또한 세계 역사상 유래가 드문 긴 재위기간을 남겼는데 과연 이에 얽힌 수수께끼는 무엇인가? 또한 태조대왕의 치세에 벌어진 활발한 대외 정복활동은 광개토대제의 그것을 연상하게 되는데...과연 그 화려한 면면은 무엇인가? 고구려의 역대 제왕중 가장 의문점을 많이 남겨놓은 태조대왕...역스에서 이제 다룰 차례다!

- 신라촌락문서

한국고대사에 있어서 그 사회상을 가장 생생히 알려주는 자료 중 하나인 신라촌락문서! 그러나 그것은 한국이 아닌 일본 정창원에서 발견되었다! 과연 이 문서를 통해 '통일신라'의 사회상의 어떠한 측면을 알 수 있을까? '통일'신라의 타임캡슐 '신라촌락문서'를 분석해본다!!!

- 고려 전기 일본과의 관계

일본과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살펴볼때 고려 전기에 일본과의 관계는 아직도 미개척 분야다. 이때 일본은 국내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후에 헤이안 시대를 거쳐가고 있었다. 기록을 따라가 보면 해상제국 고려는 줄곧 일본에 대해 진취적인 자세를 견지했는데...한일관계사에서 매우 특이한 시대였던 고려 전기때의 대일관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 연산군은 과연 악인이었나?

연산군은 분명 '폭군'이었다. 그러나 과연 그는 일방적인 사서의 기록대로 '악인'이었을까? 연산군 시대의 여러 사건들은 과연 다른 측면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까? 연산군은 과연 실정만의 달인이었나? 오늘날 연산군을 재해석해보자.

- 일제강점기 아나키스트들의 활약

영화 '아나키스트'에서도 나왔듯이 소위 '무정부주의자'들은 항상 민족해방운동에서의 이단아들이었다. 이들에 대한 재조명 또한 필요하다.

- 가야는 왜 일본에 진출했는가?

한반도 지금의 경상남도 지방에 자리잡았던 가야! 그러나 백제와 신라 사이에 끼여 제대로 한반도에서는 영토확장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가야의 건국기부터 일찌기 일본열도에 진출했는데...일본 구주 지방에 남아있는 가야의 유적들은 무엇을 시사해주는가? 과연 가야의 일본진출이 본국의 쇠퇴를 가져왔는가? 여러 기록에서 가야와 '왜'(倭)가 동일시되는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백제의 웅진시대 : 그 미스테리

고구려가 지금의 서울 지역의 백제 도읍을 서기 475년에 초토화시킨후 멸망 직전까지 몰렸던 백제는 문주왕의 웅진 천도로 기사회생하게 된다. 과연 문주왕과 개로왕은 혈육관계이었나? 왜 백제는 웅진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 짧은 기간이나마 혼란을 거듭하였는가? 웅진천도의 배경을 살펴보고 백제의 도읍이었던 웅진, 곰나루성을 복원해보자.

- 삼포왜란

조선의 중종시대, 난데없이 남해안에서 왜인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이름하여 '삼포왜란'! 왜 이 사건이 발생했고 그 여파는 무엇이었던가? 삼포왜란을 통해 조선초기 한일관계를 조명해보자.

- 신미양요

1871년, 미국의 군함은 서울을 목표로 진격하다가 강화도에서 조선군과 격돌해 격퇴되었다. 한미관계에 있어서 매우 의외로운 사건이었던 신미양요! 과연 이 사건의 발단은 무엇이었으며 조선은 어떻게 미군을 물리쳤는가? 신미양요를 통해 오늘날 한미관계 또한 생각해본다.

- 고구려 평지성(平地城)

현재 잘못된 고구려 영토비정으로 요하 일대에 걸쳐있는 평원지방은 고구려의 서쪽 국경으로 전락해 고구려는 마치 '산성의 나라'로 잘못 인식되어져 있다. 그러나 분명 한반도와 만주의 고구려 성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고구려 평지성의 진면목을 한번 역스에서 밝혀보고 그 후대의 영향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부여의 마지막 왕자 의라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약 30년전 한 재야사학자가 제기한 부여의 최후에 대한 의문. 선비족 모용씨의 침입으로 만주평야의 부여는 멸망하게 되는데...마지막 부여왕자 의라는 백제 고이왕의 도움으로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왜왕이 되었다는데...일본서기에 곳곳에 나타나는 부여의 혼적...그리고 고고학적 충격! 역스의 결단을 촉구한다!!!

- 황제의 나라 고려!

현재까지 고려가 황제국이었다는 평가는 강단학계에서는 애매모호하게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각지에 분포한 금석문이나 기록들의 편린에서 고려가 엄연히 황제국이었다는 것은 분명하게 드러나는데...고려의 최전성기 문종대에는 심지어 각국에서 조공사절이 끊이지 않아 이른바 '고려적 세계질서'를 창출하기에 이르렀는데...당시 고려와 주변국가들은 어떠한 '사대교린' 질서를 창출하였었나? 그리고 황제국 고려가 오늘날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 '충선왕' 이지부르카

원간섭기의 암울한 시대에 고려 황실의 혈통을 이어받아 고려의 중흥을 꾀한 군주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몽골 쿠빌라이의 외손자 이지부르카 '충선왕' 이었다. 그러나 그의 치세는 많은 격동으로 점철되어 충선왕은 고려왕이었으면서도 거의 고려에 있지 않은 희한한 군주였다. 그러나 그는 더 넓은 세상인 원제국으로 뛰어들어 최고의 실권자로 군림하여 '심양왕'이라는 칭호를 받고 사실상 만주의 지배자로 인정받아 이전 고려인들이 추구했던 '만주회복'을 피 한방울 안흘리고 이룬 뛰어난 인물이었다. 또한 그가 설립한 '만권당'도 중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한국사에서 베일에 싸인 인물 '충선왕'을 역스에서 한번 다루어주기를 기원한다.

- 나선정벌

조선시대 '북정일기'로 남은 조선군의 만주출병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나선정벌'! 효종의 북벌 실패 이후 나선정벌의 실제적 배경은 무엇이었던가? 당시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과 청나라의 조선군 파병요청은 어떠한 이유에서 감행되었는가? 조선시대 후기 유일한 해외출병이었던 '나선정벌'에 대한 역스의 화려한 복원을 기대해본다.

- 신라 석씨의 시조 석탈해

삼국사기 신라본기 초반부에 박혁거세에 이어 신라 초기의 역사를 장식하는 수수께끼의 인물 석탈해! 그의 전설적인 생애에서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의 역사적 진실을 추출할 수가 있는가? 그의 출신지인 용성국은 과연 어디었는가? 왜 그는 가야의 김수로왕과 자웅을 겨루었는가? 그리고 그가 세운 석씨왕조는 신라초기의 역사에 얼마만큼 기여하였는가? 고대사 최대의 베일에 쌓인 인물중의 하나인 석탈해를 역사속으로 복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 곤지대왕

최근에 역사소설로도 발간된 동명의 소설의 주인공인 곤지대왕! 고구려 장수제가 백제의 한성을 잿더미로 만들고 백제가 곰나루성(웅진)으로 천도할 즈음, 곤지는 일본열도로 건너가 그곳의 새로운 권력자로 등장하게 된다. 백제와 일본을 이어주는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곤지대왕! 그의 행적은 일본고대사에 과연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 고려도경

송나라 사신이었던 서긍이 고려를 방문했을때 그 과정을 남긴 고려에 대한 가장 생생한 기행문! 이 자료를 통해 우리는 고려인들의 실생활과 당시 모습을 가장 가깝게 느낄수 있다. 서긍이 김부식을 만났을때의 에피소드. 12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고려의 모습을 역스에서 추적해보기를 권한다.

- 신립은 왜 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쳤는가?

임진왜란으로 조선에 쳐들어온 왜군은 순식간에 경상도 일대를 휩쓸며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충주 지방으로 구름떼처럼 몰려왔다.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북방 여진족을 토벌한 당대의 명장 신립으로 하여금 이들을 막게 했는데 그는 마치 삼국지의 마속처럼 탄금대라는 최악의 무리수를 두게 된다. 과연 왜 신립은 이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임진왜란 최대의 미스테리 중의 하나인 이 사건으로 인해 왜군은 초기의 승기를 잡는데 성공하는데...이에 대한 역스의 조명을 기대한다.

- 매국노 이완용

한국사에서 최고의 악인으로 낙인찍힌 을사오적 이완용! 그러나 그도 초반에는 독립협회에서 활동했고 일설에 의하면 독립문의 휘호도 그가 쓴 것이라고 하는데...어떻게 그런 그가 천하의 매국노로 변질했을까? 이완용을 둘러싼 허구를 걷어내고 좀더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의 생애를 조명해 역사의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 의종을 위한 변명

고려제국 최고의 폭군으로 낙인찍힌 고려 의종! 그의 실정으로 일어난 일명 '무신의 난'은 고려시대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데...과연 그는 그동안의 통설처럼 어리석은 군주였는가? 무신들이 칼에 피를 묻히며 황제의 목숨을 위협하는 그 순간에도 의종은 태연히 술을 마시며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였다는데...과연 '무신의 난'이 일어난 근원적인 원인은 무엇이었으며 폐위된 의종의 그 뒷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kbs에서 내년 1월부터 방영되는 새 대하드라마 '무신의 난'에 맞추어 방영을 기획해봄이 어떨지...?

- 양녕대군

흔히 태종 이방원의 장남으로 세종대왕에게 왕위를 순리대로 넘겨주었다는 평을 받는 양녕대군! 그러나 과연 실제의 역사적 진실 또한 그러할까? 사실 세종 이후 보여주는 양녕대군의 행적은 세종의 가족에 대한 복수심에 다름아니었는데...양녕대군이 세자 시절 행해졌던 온갖 기행의 진실은 무엇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는 과연 어떠한 인물이었나?

- 임진왜란 때 조선에 외국인 용병이 있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을때 일본군을 따라 수많은 '남만인'들이 같이 참전했었다. 포르투갈 인들을 비롯하여 심지어 동남아시아인들과 흑인까지 있었다는데...이같은 양상은 조선을 구원하러 온 명나라 군대도 예외는 아니었다는데...이들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했으며 임진왜란은 과연 당시의 온갖 인종들의 경연장이었나? 그리고 이같은 외국인 용병은 후대의 조선의 국방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 단군을 찾아서

그동안 신화냐의 여부를 두고 수많은 논쟁이 있었던 고조선의 시조 단군! 단군 문제는 한국사의 시원을 따지는 문제였기 때문에 단순한 학문의 영역을 벗어나 종교적인 차원으로까지 마찰이 확대되는 실정이다. 이는 단군에 대한 역사적인 인식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인데...전국에 산재해 있는 단군유적에 대한 조명과 아울러 과연 고조선은 몇 번이나 천도했으며 그 도읍지는 어디였는가? 삼국유사의 단군기록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역스에서 담당하기를 바란다!

- 한국사의 족쇄 '한사군'!

마치 일부 사가들이 인도사가 알렉산더의 그리스 문화의 수혜를 받아 시작된것다는 타율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사 역시 잘못된 사관으로 인해 중국의 '한사군'에 의해 열린 것으로 자칫 잘못 이해되어왔다. 과연 '한사군'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진짜 위치는 어디인가? 최근에 요녕성에서 발견된 '임둔봉니'는 무엇을 시사해주는가? 북한 평양일대에 산재해 있는 일명 '낙랑유적'의 정체는 무엇이며 '한사군'의 한국사적 의의는 무엇인가?

- 온조의 마한정복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건국기사는 온조대왕의 영웅적인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무려 45년 간을 재위하면서 온조는 여러 곳을 정복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한반도의 마한이었다. 그러나 삼국지 한전에 보이는 기록을 두고서 마한의 정체에 대한 논란이 쉽게 가시지 않은데...우선 온조가 마한을 정복하는 기록은 마한 자체가 매우 큰 나라라는 인상을 주어 소국을 단계적으로 정복해 나간 초창기의 고구려나 신라와는 다른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과연 '마한'은 어떠한 나라였으며 그 건국과 멸망배경은 무엇이었나?

- 신라는 과연 만주에 진출하였나?

국사의 통설로는 일명 '통일'신라는 대동강-원산만 이남 지방만을 영토로 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역사의 진실 또한 그러한가? <신당서>나 <만주원류고>를 보면 신라의 전성기 영토는 한반도의 그것으로 생각하기에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데...그렇다면 과연 신라는 언제 만주에 진출한 것일까? 신라가 당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한 지점들은 어디인가? 사실 신라의 발상지도 만주일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고 한때 진흥대왕도 만주에 진출했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기록도 남아있는데...과연 만주는 신라와는 전혀 무관한 땅이었나? 신라와 당과의 7년 전쟁 기간 동안 과연 신라가 차지한 영토는 만주 일대를 포함하고 있었는가? 이에 따라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비판은 한국사 최대의 오해가 될 소지가 있을 것이다.

- 왕건과 한국사

한국사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인 왕건! 근래 <태조 왕건>의 방영으로 폭발적인 관심대상이 된데에 비해 실상 그가 남긴 한국사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성씨사여, 풍수지리, 북방정책, 지역감정, 혼인정책 등등 그가 한국사에 남긴 족적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즉, 한국사에서 많은 이슈가 되는 상당수가 그에 의해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왕건의 출생성분은 어디였을까? 왜 왕건은 궁예를 배반했나? 과연 그는 '성인군자'였는가? 이러한 물음들에 답할 수 있으면 우리는 왕건이라는 인물을 좀더 역사적으로 사실스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 가림토문은 실재했나?

환단고기 등에 기재된 한글의 모체 가림토문! 과연 이것은 조작인가? 아니면 실재로 존재했던 고조선의 문자인가? 북한에서는 가림토문을 인정하는 추세인데...과연 가림토문의 혼적을 한반도나 만주에서 찾을 수 있을까? 문명의 척도인 문자...과연 배달겨레 고유의 문자가 존재했는가?

- 열국시대

고조선의 멸망과 삼국의 성립 사이 한국사에는 '열국시대'가 존재했다! 고조선의 '거수국'들이 분립하여 마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처럼 여러 나라들로 쪼개어져 자웅을 겨루던 시대가 있었는데, 이는 원시상태의 국가가 결코 아니었다. 한사군만 부각되고 이들 옥저, 동예, 등은 마치 부족국가 취급을 받는 것은 과연 온당한가? 한국사 최초의 분열기 열국시대를 제대로 조명해보자!

- 진흥대왕과 그의 시대!

고대사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시대를 살다 간 군주 신라의 진흥대왕! 그가 남긴 역사적 영향은 삼국사기나 금석문에 풍부하게 나타나는데...그의 순수비에 남겨진 '짐'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신라는 어떻게 이때에 이르러 백제와 고구려, 가야 등을 차례로 격파하며 건국 이래 최대의 전성기를 구가했는가? 신라의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은 진흥대왕의 시대를 이제 역스에서 다룰때가 되었다!

- 강화도 도읍기 고려

몽골이 고려를 침략함에 따라 고려 조정은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끝까지 항쟁할 태세를 갖추었다. 과연 수십년간 강화도의 고려조정은 어떻게 유지가 되었는가? 왜 하필 강화도로 피신했는가? 당시 강화도 도읍의 면모는 어떠했으며 고려시대 유일하게 도읍을 옮긴 이 시대에 대한 관심 또한 필요하다!

- 탕평책 : 상생의 정치를 추구한 영조

현재 민주주의로 표방되는 극도의 흙탕정치에 대다수의 국민은 염증을 느끼는데...불과 250여년 전만 해도 조선에는 탕평으로 대표되는 선진적인 정치가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 과연 영조가 추진한 탕평책은 어떠한 철학적 기반을 갖추고 있었으며 실제 현실정치에는 어떻게 적용이 되었는가? 이론과 실제를 적절히 배합해 당시 분열적 정치형태를 일정하게 정화시킨 영조의 천재적 정치술의 묘미는 과연 어디에 있었는가?

- 홍산문명

지금의 내몽골, 요녕성, 열하성 일대에서 발견되는 거대한 유적과 유물들...이것들은 조사 결과 중국 본토와는 확연히 다른 성질의 문명이었던 것이라 드러났다. 더우기 놀라운 점은 이 일명 '홍산문명'은 '동이족'의 문명으로 중국의 황하문명에 버금가거나 능가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전설속의 '배달국' 문명이었던가? 한국사와 '동이'는 과연 어떻게 접목이 될 수 있는가?

- '나제동맹'은 과연 실제했는가?

국사교과서에도 나오는 백제와 신라 사이의 일명 '나제동맹'! 그러나 기록으로는 이 '나제동맹'이 실제했는지가 분명치 않은데...과연 고대사에서의 삼국관계는 어떠한 맥락으로 근대유럽의 'balance of power' 정세와 부합하는가? '나제동맹'의 검토를 통해 삼국간의 외교관계 실상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 '통일신라' 말기 왜 왕위쟁탈전이 판쳤는가?

9세기에 들어 신라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극심한 귀족들간의 골육상쟁을 겪게 된다. 김헌창의 난 경우는 연호를 칭하며 백제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장보고가 주도한 난은 10만이 넘는 쌍방간의 대군이 충돌한 말 그대로 '천하대란'이었다. 과연 무엇이 이 시기에 와서 귀족들과 호족들까지 가세한 골육상쟁을 야기시켰을까? 그리고 오늘날 이 과거의 역사가 상기시켜 주는 것은 무엇일까?

- 홍길동과 유구국

지금의 오끼나와인 '유구'는 한국사에서 생소한 소재이지만 뜻밖에도 고려와 조선시대에 적지않은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유구국의 수도 '슈리'는 한반도 문화를 중심으로 번성하고 있었으니...과연 유구는 백제 담로의 후예였나? 그리고 이곳에는 또한 '홍가와라'왕의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과연 '홍가와라'는 홍길동이었나? 유구국을 통해 고대와 중세 한국사의 해상활동을 복원해본다.

- 일본을 가르친다 : 조선통신사

임진왜란 직후 쌍방의 외교적 필요성에 의해 연례행사처럼 약 2백년간 지속된 '조선통신사'! 과연 조선과 일본은 각각 어떠한 입장에서 '통신사외교'를 이토록 장기간 존속시켰는가? 조선통신사의 화려한 일본행렬과 이들이 일본에 미친 영향은? 그리고 왜, 어떻게 이러한 외교가 19세기 초기 종식되었는가?

- 조한(朝漢)전쟁

북한에서는 소위 '위만조선'과 중국 한나라와의 전쟁을 '조한전쟁'이라 한다. 근 1년간이나 한제국에 맞서 치열한 격전을 벌인 위만조선의 활약은 사기와 한서 조선전에 엄청난 분량을 할애할 정도로 일대 대사건이었다. 과연 위만조선의 저력은 무엇이었으며 과연 위만조선 자체가 고조선이었나? 위만조선의 실제 위치는 어디었으며 흥미진진한 이 전쟁이 동북아시아 정세에 가져온 파장은 무엇이었던가?

- 신라 '화랑'의 정체는 과연?

흔히 '삼국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으로 평가한 '화랑'에 대해 최근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한 '화랑세기' 등의 근거로 기존의 '전투무사'가 아닌 확연히 다른 성질의 집단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과연 '화랑'의 정체는 무엇이었으며 이들의 연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 발해는 과연 어떻게 멸망했는가?

발해의 멸망과정은 고대사에서 커다란 미스테리 중의 하나였다. 더욱이 최근에 이르러 이른바 화산폭발설 등 다양한 설들이 제기되었는데...과연 발해는 왜, 그리고 어떻게 멸망한 것이었을까?

- 천추태후

누가 한국사에 여걸이 없다 했는가? 조선시대에 문정왕후, 명성황후가 있었다면 고려사에는 천추태후가 있었다. 흡사 중국의 측천무후를 방불케 하는 이 여인은 사실상 여황제로 군림하면서 거란을 위압하는 등 겨레의 자긍심을 지키는 데 숨겨진 역할을 하였는데...역사의 베일속에 가려진 여걸 천추태후에 대해 알아보자.

- 기득권에 도전한 이단아 보우!

승유억불을 국시로 삼은 조선왕조에 시대의 풍운을 따라 조선을 좌지우지한 승려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보우였다. 조선시대의 사료는 거의 일방적으로 그를 악인으로 평가했으나 과연 오늘날에 있어서 그에 대한 재평가는 가능할까? 과연 조선시대 때 불교는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었으며 불교측의 대응논리는 무엇이었는가? 보우를 통해 조선시대 불교의 시대적 고민을 엿보기로 하자.

- 신라태조 박혁거세

신라 초기 역사를 장식하는 박혁거세는 그동안 많은 의문의 대상이 되어왔다. 흡사 가야의 김수로왕과 허황옥을 연상시키는 그와 알영은 과연 어디에서 왔는가? 박혁거세가 세운 초기 신라의 정체와 '사로 6촌'의 정체는? 이는 곧 로마제국 태동기의 7언덕국가를 연상시켜 우리에게 고대국가의 전형을 일깨워주는데...과연 박혁거세는 환단고기 기록처럼 부여인이었나? 박혁거세는 과연 암살당했나? 박혁거세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다.

- 대조영은 말갈족이었나? 아니면 고구려인이었나?

발해태조 대조영의 출자 문제는 현재 한국과 중국의 만주영유권 문제와도 직결되는 고대사의 가장 민감한 사안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이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있어왔지만 이의 해명은 곧 발해라는 대제국의 정체성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과연 발해는 한국사의 영역에 들어올 수 있는가? 고대사에서의 '말갈'은 과연 무엇이었나?

- '통일신라'는 황제국이었다?

많은 금석문 자료와 '화랑세기'같은 자료들은 '통일신라'시대에도 칭제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나타나는 여러 '봉국' 현상은 이후 나말여초 시대 군웅의 출현의 밑바탕이 되었으며 김헌창의 난때도 자연스럽게 '신라의 천하'에 도전하는 연호 사용등의 여건을 조성했다. 과연 '통일신라'는 칭제했는가? 만약 그러했다면 그 의의는 무엇인가?

- 애국무장 최영

고려 말기 혼란한 내우외환 가운데 오직 꿋꿋한 소신 하나로 난세를 해쳐나간 애국무장의 표상 최영! 궁예의 근거지인 철원에서 태어나 뛰어난 장군으로 명성을 떨치며 중국으로까지 건너가 장사성의 난을 평정하는 등 중국천하에도 이름을 떨쳤다. 그의 주도 아래 행해진 '요동정벌'은 과연 정당했는가? 고려의 최후를 장식한 그를 통해 현대인들은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 우리의 서울, 그 옛모습을 반추하며...

오늘날 대한민국의 중심지 서울은 조선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적한 지방 중심지에 불과했다.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한 이후 과연 서울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조선시대에 이르렀으며 조선시대 도읍지로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는가? 서울의 과거 모습에 대한 진정한 조명이 필요하다.

- 기자조선은 허구인가?

고려시대 이래로 '기자조선'은 '단군조선'을 밀어내고 고조선의 대명사로 이어져왔고 사대사상의 뿌리가 되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는데...과연 '기자조선'의 한국사적 의미는 무엇이고 그 진실은 무엇인가?

- 사라진 왕국 부여를 복원한다!!!

고조선과 고구려 사이에 끼어 그 정체성을 상실한 채 한국사의 미아가 되어버린 부여! 과연 부여는 어떠한 나라였으며 그 역사적 기능은 무엇이었던가? 잃어버린 제국 부여에 대한 역스의 조명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다!

- 한국사에서의 서기 4세기, 그 수수께끼

삼국지와 삼국사기에 따라 고대사를 보는 눈이 달라지지만 실제로 백제와 신라의 경우 서기 4세기를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유물과 유적양상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과연 이때 한반도에는 무슨일이 일어났던가?

- 묘청의 난

단재 신채호 선생이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주목했던 일명 '묘청의 난'! 한국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인물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묘청도 시대에 따라 다양한 역사적 심판을 받아왔다. 그의 평가에 따라 그 맞상대였던 김부식과 그가 편찬한 삼국사기의 그것까지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서경파와 개경파의 숙명적 대결은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리고 이 사건이 이후 한국사에 미친 영향은?

- 태양인 이제마

kbs에서 드라마로 다음 주부터 방영하는 이제마의 일대기에 대한 다큐멘타리적 접근이 필요하다. 실로 한국사에서의 독창적인 문화사건이었던 '사상의학'! 이제마를 통해 조선말기 지식인의 동향을 살펴보자.

- 광해군의 특급 비밀외교 프로젝트: 왜국과의 관계를 복원하라!!

흔히 광해군의 외교업적을 논할때 청나라만을 언급하곤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끝난지 10년도 안되어 다시 일본과의 국교를 정상화시킨다. 과연 조선이 '철천지 원수'인 왜국과 국교를 재개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어떠한 우여곡절을 통해 조선과 일본은 국교를 회복할 수 있었을까? 1965년 한일복교와 오늘날 한일관계를 반추해볼때 역사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고려불화

외국인들에 의해 가장 많은 약탈의 대상이 되었던 고려불화! 그 아름다움은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으나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고려불화는 일본에 있다고 한다. 고려불화를 통해 보이는 고려인의 위대한 예술혼과 당시의 문화를 만끽해보자!

- 무인시대

현재 kbs 대하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는 고려 무신정권시대는 한국사에서 보기 드문 신분적으로 개방적인 때였다. 특히 이의민때는 주요 권력자들이 천민출신이었는데 특히 이 때는 전국적으로 하층계급의 민란이 빈번했다. 과연 당시 무엇이 이토록 신분적 갈등을 야기시켰는가?

- 최씨무신정권은 어떻게 70여년간 유지되었는가?

현재까지도 최충헌으로부터 시작된 최씨정권이 어떻게 그토록 장기간 유지되었는지에 대해 충분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과연 몽골과의 전쟁이 그 변수였을까? 최씨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었던 것이었을까? 흔히 일본의 막부시대와 비견되는 이 시대에 대한 풍부한 분석이 아쉽다.

- 안장왕과 한주의 러브스토리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상고사에서 언급한 고대 매우 특이한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야기! 고구려의 제왕 안장왕과 백제 귀족의 딸 한주의 사랑이야기는 단재가 이미 춘향전과 정몽주의 단심가의 원조가 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과연 이를 입증할 증거들이 지금까지 남아있을까? 당시 6세기 초 고구려와 백제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고구려 안장왕의 피살설의 진상은 무엇인가?

- '동이' 그 실체는 무엇인가?

흔히 고대사를 논할때 한국사의 영역에서 서성거리는 용어 '동이'! 과연 '동이'는 배달겨레와 얼마만큼의 연관성이 있을까? 그로인해 새롭게 나타나는 상고사의 거대한 혼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고려 원종 : 그를 역사의 심판대에 올린다!

아버지 고종이 무인들에게 휘둘리는 것을 어릴 적부터 보아온 원종! 과연 그는 어떠한 인물이었나? 그리고 그는 과연 어떻게 100년간의 무인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 무인정권을 무너뜨렸지만 그 댓가는 이후 또다른 약 100년간의 원간섭기로 이어지는데...과연 오늘날 그의 선택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 발해 무황제는 왜 당나라 산동반도를 공격했는가?

국사책에도 나오는 발해의 일명 '등주공격'! 그러나 당시 '등주'는 지금의 등주가 아니었다! 산동반도가 동아시아에서 차지하는 지정학적 위치는 그야말로 막중했다! 발해의 당나라 선제공격과 그 배경, 여파에 대해 한번 심도있게 역스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

- 고구려와 위나라의 전쟁 : 그 미스테리

삼국지연의로 유명한 조조의 위나라. 그 위나라가 고구려와 동아시아의 맹주자리를 놓고 벌인 대전쟁이 3세기 전반에 있었다! 당시 관구검이 쳐들어온 환도성은 어디었는가? 왜 위나라는 고구려를 침략했으며 전쟁은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는가? 그리고 이 전쟁이 이후 미친 영향은 어떠한 것이었는가?

- 경기도 광주 : 새로운 백제 도읍지 후보?

최근 풍납토성의 발굴로 인해 이곳이 백제의 도읍지라는 설이 강력하게 대두되는 가운데 경기도 광주에서도 초기 백제의 도읍지일 가능성이 높은 여러 증거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경기도 광주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어쩌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 남한산성

병자호란의 상징 남한산성! 최근 남한산성이 복원되어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그 유래와 연원은 어떤 것이며 남한산성의 전체적 모습은 어떠했는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을 둘러싼 정세는 어떠하였는가?

- 새로운 한국사 : 금(金)나라

12세기 초 아골타가 세운 금나라는 아골타의 근본이 신라땅에서 왔다는 태생적 연관성이 한국사와 있었다. 금나라가 한국사가 아니라면 어떻게 고구려와 발해가 한국사라는 상식적 주장을 할 수 있겠는가? 이후 중국의 북부를 차지하고 대제국을 이룬 금나라의 성격은 마치 발해의 복사판을 보듯했는데...대부분의 금나라 황제는 발해인을 황후로 두고 발해인들을 요직에 앉히는 등 사실상 '발해인의 천하'였다. 역스에서 금나라가 한국사에 들어올 가능성에 대해 검토해주기 바란다.

- 세도정치

많은 이들은 조선멸망의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60여년간의 세도정치라 한다. 과연 이 시대는 무슨 잘못이 있었던가? 무능력한 지배층의 안일과 부패! 백성들의 피눈물! 어두운 국제정세 등은 마치 오늘날을 보는 듯 한데...이 어두운 시대를 통해 오늘날을 되새겨보자.

- 위대한 조선인 안용복!

일개 조선의 백성으로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17세기 일본에 건너가 왜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의인 안용복! 과연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같은 모험을 감행하게 하였을까? 당시 조선과 일본의 독도에 대한 지리관념은 어떠하였는가? 그리고 오늘날 독도분쟁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 간도문제

현재 거의 유일하게 대한민국에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잃어버린 영토 '간도'! '간도'의 유래는 어디에서 왔으며 그 역사는 어떠했는가? 특히 조선 현종-숙종 대에 청나라와 이러한 영토적 마찰이 심했는데...과연 백두산 정계비는 어디로 갔을까?

- 역사에서 지워진 여걸 소서노!

고구려와 백제의 공동 창업주로 고대사에 막대한 영향을 남긴 소서노! 과연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이런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게 하였는가? 그녀는 과연 어떻게 최후를 맞았을까? 소서노의 영웅적 생애를 따라가며 우리는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비화를 맞닥뜨리게 된다!

- 북한의 고구려 산성

역스가 일찌기 북한답사때 미처 취재를 못했다던 북한의 고구려 산성! 나중에라도 여건이 된다면 꼭 이에 대해 방영을 해주기 바란다.

- 최한기를 아십니까?

조선 말기 실학이 일정한 평가를 받던 시기에 혜성같이 나타나 서양 근대과학에 필적할만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천재철학자 최한기! 그를 통해 조선 말기 지식인의 동향을 살펴보자.

- 제주도에 몽골군이 있었다...이름하여 목호(牧胡)!

고려가 원간섭기에 들어가자 몽골에서는 엉뚱하게도 고려 맨 남쪽 끝의 외딴 섬에 불과했던 제주도에 몽골군을 주둔시키고 말을 기르게 한다. 왜 몽골은 이러한 조치를 취했을까? 목호들이 제주도에 남긴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다시 제주도에서 쫓겨났을까?

- 한일고대사의 타임켑슐 : 칠지도!

칠지도에 적혀있는 금석문들은 그동안 광개토대제비에 필적할만한 수많은 논쟁거리와 해석을 불러일으켰다. 과연 어떠한 것이 칠지도를 둘러싼 진실일까? 그리고 칠지도를 통해 한일교류사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을까? 칠지도는 과연 언제? 누가? 누구에게? 왜? 어떻게? 어디서? 만들어진 것일까? 칠지도 자체의 상징적 의미와 문화적 특징은 무엇이었으며 이를 통해 드러나는 놀라운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


- 9세기 일본은 신라의 속국이었다?

일본의 사료 곳곳에서 등장하는 일본에 대한 신라의 지대한 영향...과연 이 시기에 일본은 신라의 속국이었는가? '통일신라' 이후 신라와 일본은 어떠한 관계를 지속했었는가? 이렇게 된 요인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 조광조의 개혁은 왜 실패했는가?

개혁의 화신 조광조! 그러나 그의 개혁시도는 철저히 왕에게서 버림받고 비참한 종말을 맞는데...왜 그의 개혁은 실패했는가? 과연 기존의 통설대로 그의 개혁은 곧 '정의'였는가? 그의 개혁에 민족적 주체성은 있었는가? 기묘사화의 진정한 발단은 무엇이었는가?

- 일본이 왜곡한 역사교과서 : 속편

이전 방영분은 전근대만 조명했는데 그 이어 근현대사도 속편으로 제작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 을지문덕

사료의 부족으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을지문덕! 그럼에도 한국사에서의 그의 명성은 오직 '살수대첩'에 기인한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복원하는 것이 과연 불가능할까? 을지문덕을 제대로 조명함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뛰어난 영웅의 모습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 광개토대제는 어떻게 백제를 굴복시켰을까?

서기 400년을 전후한 백제는 당시 고구려를 능가하는 대제국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제국 백제는 겨우 18세의 젊은 고구려의 제왕 광개토에게 순식간에 굴복하고 만다. 과연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던 것일까? 이후 백제는 약 50여년간 고구려의 속국이 되었는데...고구려와 백제의 대전쟁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이 여파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 이의방과 정중부

현재 kbs 대하드라마에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무신정변 1대와 2대의 집권자 이의방과 정중부! 이들은 무신정변 초기부터 시종 양보할 수 없는 라이벌이었는데...이들의 출신은 무엇이었으며 무신정권 초반 이들의 역정은 어떠했나? 왜 각각 그들의 시대는 단명할수 밖에 없었나? 이들의 행적을 통해 우리는 귀중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오늘날의 역사와 비교할 기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사서분석 시리즈 4부작

1) 삼국사기와 김부식

한국고대사의 '공인된' 사료 삼국사기! 최근 그 정확성이 다시 높게 평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체적인 한계성을 벗어날 수가 없는데...과연 삼국사기는 어떠한 목적으로 편찬되었던 것일까? 이를 주도한 김부식은 과연 사대주의자였나? 과연 삼국사기의 대외관계 기록은 어떠한 문제점이 있을까? 삼국사기에 대한 대중적인 서지학적 고찰이 요구된다.

2) 일연과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주체적'인 평가를 받는 삼국유사! 그러나 책 제목에서도 보이듯이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의 일종의 '보조자료'에 불과한데...그럼에도 삼국유사의 특징은 무엇인가? 삼국사기가 여러명에 의해 편찬되어진 반면에 삼국유사는 일연 단독의 저술이었다. 일연은 과연 어떠한 인물이었나? 과연 삼국유사는 '관찬사서'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삼국유사의 역사적 의의는 무엇인가?

3) 고려사

고려를 멸망시킨 이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편찬된 고려사! 마치 조선이 멸망한 뒤 일본에 이어 편찬된 '조선사'만큼은 아니더라도 '고려사'는 이와 같은 비슷한 서지학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사'는 고대사의 '삼국사기'처럼 고려사의 자료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고려사의 특징은 무엇인가?

4) 일본서기

비록 일본의 고대사에 있어서 '삼국사기'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일본서기'는 놀랍게도 한국고대사, 특히 가야사와 관련하여 많은 언급을 하고 있다. 과연 일본서기는 어떠한 배경에서 이루어진 사서인가? 소위 '2주갑 인상설'의 실체는 무엇인가? 일본서기를 통해 고대사를 새로운 각도로 보게 될 것이다.


- 고이왕

국사교과서에 백제의 고대국가 형성을 이룬 왕으로 기록된 고이왕!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어디까지나 '설'인데...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서에 기록된 그의 시대는 분명 백제사에 있어서 여러모로 획기적인 시대였는데...고이왕을 통해 3세기 백제사를 이해해보자.

- 이순신은 과연 전사했는가?

세종대왕과 더불어 한국사에 연관되어 대내외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순신! 그러나 그의 최후는 이전의 전사설에 반기를 들고 최근에 여러 설들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검토해보자.

- '개화파'의 신화를 걷어낸다.

근대사를 논하면서 항상 그 중심에 서있는 '개화파'! 그러나 과연 '개화파' 중심의 한국근대사 서술은 문제가 없는 것일까? 과연 그들은 애국자였나, 매국노였나? 왜 갑신정변은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나? 개화파에 대한 객관적인 고찰을 시도해보자.

- 고구려 미천제는 어떻게 대외정복을 이루었는가?

기록에 보이는 미천제의 대외정벌은 화려하다. 그는 낙랑군과 대방군을 '멸망'시키고 사방으로 활발한 정복에 나섰던 '정복군주'였다. 과연 무엇이 서기 300년을 전후한 고구려를 이토록 '중흥'시켰던가? 미천제 개인의 인생역정도 실로 파란만장한데...고구려의 가장 뛰어난 제왕 중 하나였던 미천제의 시대를 복원해보자.

- 조선 세조때 왜 함경도에서 반란이 빈번했나?

조카를 밀어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 세조. 그런데 함경도에서만 그의 치세때 이징옥과 이시애의 반란이 연거푸 일어나 조선을 공포의 도가니에 넣었던 적이 있었다. 특히 이시애의 난은 조정에서 무려 10만의 대군을 동원해서야 겨우 진압할 정도였다. 과연 왜 함경도였나? 세조의 북방정책은 어떠했으며 이러한 사건들이 후세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나?

- 세계 최초의 종합대학이 고려에 있었다!

이름하여 '국자감'! 과연 고대이래로 배달겨레의 교육에 대한 전통은 어떠했으며 무엇이 이렇게 높은 수준의 교육제도를 설치하게 했는가? 국자감과 성균관은 고려 시대에 구체적으로 어떠했는가? 이를 통해 고려시대 교육제도, 나아가 문화수준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포상팔국

서기 3세기 가야와 신라의 투쟁기 속에 유달리 사서에 색다른 존재로 등장하는 이른바 '포상팔국'! 이들의 정체는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과연 변한소국의 후예들이었나? 이들이 한반도 남쪽에서 행한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고대사의 또다른 미스테리 포상팔국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 정인보

단재 신채호와 더불어 대표적인 민족사학자 위당 정인보! 그는 '조선사연구' 등을 통해 신채호가 못다이룬 민족사학의 꽃을 피운 대학자였다. 그의 또다른 업적인 '실학연구' 또한 빛나는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는데...과연 납북된 이후 그의 최후는 어떻게 된 것일까?

- 고대사의 대표적 충신 박제상!

한국사에서 대표적인 충신 중의 하나로 인식되는 박제상! 과연 그는 누구였으며 그가 구해낸 신라의 왕자들은 어떠한 배경으로 각각 고구려와 백제에 끌려갔는가? 특히 박제상이 미사흔을 구출해낸 구체적 루트는 어떻게 복원될 수 있을까? 과연 그가 간 '왜국'은 어디었나? 박제상을 둘러싼 '신화'를 하나씩 걷어내보자.

- 수수께끼 유적 : 김제 벽골제

한반도에서 가장 드넓은 지대에 자리잡은 벽골제! 그런데 3세기 유적인 이와 관련된 기록이 엉뚱하게도 백제가 아닌 신라쪽 기록에 남아있다! 과연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 왜 벽골제가 이곳에 남게 된 것일까? 벽골제를 통해 우리는 고대인들의 뛰어난 농업기술의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가야는 과연 연맹왕국이었나?

가야가 '삼국'의 반열에 들지 못하는 대표적인 구실이 바로 가야가 중앙집권제를 갖추지 못한 '연맹왕국'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했는가? 집권화가 과연 고대국가성립의 필수조건인가? 가야를 세운 김수로왕 초창기 기록에도 이와 관련하여 의문되는 조건이 여럿 있는데...가야의 정체성을 달리 볼 여지는 없는가? 가야는 과연 '황제국'-'제후국' 체제였는가? 가야는 과연 어떻게 성립된 나라였으며 그 지배계층은 어디에서 왔는가?

- 고구려판 '여인천하' : 우태후

서기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중반까지 고구려 정계를 뒤흔든 여걸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우태후'! 그녀는 여러 고구려의 제왕들을 손아귀에 넣고 실로 '우먼 파워'를 대내외에 과시했던 뛰어난 정치력의 소유자였다. 과연 그녀의 배경이었던 고구려의 '왕비족' 실태는 어떠하였는가? 그녀의 행적으로 보여지는 고구려 황실의 관습은 어떠했는가? 과연 '형사취수'의 의미는 무엇이며 고구려 중기 최대의 내란인 '발기의 난'은 어떠한 배경에서 일어나고 진행되었는가?

원사화

이전에 역스에서 방영되었던 '환단고기'에 이어 두번째 상고사의 근거자료를 분석하는 시간! 사실 '규원사화'는 '환단고기'보다도 훨씬 역사학계에서 그 신빙성에 관한한 폭넓은 인정을 받는 사서이지만 그래도 아직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 과연 '규원사화'의 올바른 규명은 요원한 일인가? 고조선사를 복원하는 첫걸음, 규원사화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 이성계에 대한 몇가지 의문

조선태조 이성계!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도 잘알고 있을 것 같은 그의 생애도 사실 온통 수수께끼로 점철되어 있는데...과연 그는 여진족이었나? 그가 만주정벌에 반대했던 '4불가론'은 과연 타당했는가? 왜 그는 '위화도 회군'을 단행했는가? 과연 '함흥차사'는 사실인가? 이에 대한 역스의 조명을 기대해본다.

- 과연 효종의 북벌은 가능했나?

한국사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이른바 '효종의 북벌계획'! 과연 그가 이러한 '과대망상'을 구상한 배경은 무엇인가? 효종은 과연 '북벌'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준비를 하였나? 당시 그가 정벌하고자 한 청나라의 상황은 어떠했으며 '북벌'을 둘러싸고 조선과 청나라간의 갈등은 없었나? 그리고 효종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으며 왜 '북벌'은 백지화가 되었을까?

- 고려시대 새로운 신라를 꿈꾸던 세력들이 있었다!

태조 왕건의 고려에 의해 신라가 멸망한 후 고려의 허술한 지방통치체제를 이용해 신라를 부흥시키려던 움직임이 있었다. 특히 12세기 후반 이의민정권때 이러한 움직임은 절정에 달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는데...과연 이의민은 스스로 신라를 부흥시키려고 하였는가? 고려의 지방통치에는 어떠한 허점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고려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지 못한 원인은 무엇인가?

- 의지의 사나이 최무선

고려 말기 왜구의 극심한 침탈에 분개해 스스로 화약을 개발하여 1380년 진포해전 등에서 혁혁한 전과를 거둔 최무선! 그를 통해 왜 고려 말기 여러 혁신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동시에 어떻게 인간의 의지가 역사를 이루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 대마도

우리의 잃어버린 영토 시리즈 두번째 대마도! 과연 대마도는 고대에도 일본의 영토였을까? 일본열도보다도 한반도에 더 가까운 대마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그대로 역사에도 적용되었다. 과연 대마도에는 고대 한국인이 살았을까? 과연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대마도는 누구의 역사에 종속되었으며 어떻게 일본사로 편입이 되었을까? 대마도의 한국사적 의의에 대해 알아보자.

- 역사 미스테리 : 김춘추는 과연 암살당했는가?

김춘추의 최후는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에게도 난제에 속했었다. 삼국사기에 나타난 석연치 않은 그의 최후! 그리고 거기에 따른 여러 주장들! 과연 그는 어떠한 배경하에 최후를 맞았을까? 그의 생애는 과연 어떠한 공과를 담고 있었을까? 한국사의 대표적 논란의 대상인 김춘추와 그의 죽음을 역스에서 용기있게 다루어보기를 권한다.

- 비류백제 : 실체인가? 환상인가?

두개의 백제가 있었다? 20여년 전 한 학자가 처음 제기한 초창기 백제의 분단설, 비류백제! 백제 초기의 역사는 온조계가 아니고 비류계였다? 과연 비류계의 실체는 무엇이고 이와 연관된 수많은 논란의 타당성은 어떨까? 백제는 과연 초창기부터 웅진성에 도읍했을까? 일본서기 초창기 기록을 과연 백제사에 투영할수 있을까? 소위 '비류백제설'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자.

- 대한제국 건설비화

근대사의 쾌거중의 하나인 대한제국! 기존에는 그러나 대한제국은 일본의 한반도 정책의 산물이라는 부정적인 견해가 압도적이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연구경향에 맞서 좀더 긍정적인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데...대한제국 성립의 배경은 무엇이며 고종의 역할은 어떠했나? 대한제국의 정체성과 개혁은 또한 어떠했나?

- 1927년 광주학생운동

일본인 학생들과의 사소한 다툼에서 비화되었다는 광주학생운동! 그러나 그 실질적인 배경에는 순종의 죽음이라는 또다른 변수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 최대 반체제 학생운동이었던 광주학생운동! 왜 하필 광주였으며 현대사와의 접점은 어떠한가? 그 운동의 진전과 이후 민족운동에 미친 여파는 무엇이었나?

- 황사영 백서

천주교가 처음 조선에 들어온 이래 극심한 탄압을 받았는데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황사영 백서였다. 그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은 무엇이었나? 천주교를 탄압하는 조선측의 논리는 무엇이었으며 이에 대응하는 열강들의 입장은 또한 무엇이었나? 이 사건을 통해 혼란의 구한말 시대상을 엿보기로 하자.

- 선조는 과연 조선 최악의 임금이었나?

흔히 조선의 대표적 폭군으로 연산군이나 광해군을 지목하지만 최근의 연구는 뜻밖에도 임진왜란 등 수많은 고초를 겪은 선조에게로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과연 폭군의 기준은 무엇인가? 선조는 과연 어떠한 배경에서 임금에 오르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의 성격은 당쟁발발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왜란이 발발하자 중국까지 도망치려고 했던 그가 임진왜란의 의병영웅들을 제거한 행위는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리고 말년의 광해군에 대한 병적인 핍박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백성과 민중의 입장에서 오늘날 다시보는 선조! 그는 과연 군주로서의 자질이 있었는가?

- 무예도보통지

조선시대 대표적 무술교과서인 무예도보통지! 이 문헌이 영정조때에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나? 무예도보통지가 보여주는 배달겨레의 무예세계는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어떻게 차별화되는가?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들을 실연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그것들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 왜 고려 초기 귀화인이 많았는가?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한국인! 그러나 위로 올라갈수록 이같은 '진리'를 쉽게 믿을 수 없게 하는 사건들이 나오는데...그것은 바로 '귀화인'의 문제였다. 특히 고려 초기에는 집중적으로 중국에서 귀화인 러시를 이루는데...과연 이들은 중국인이었나? 이들은 도대체 왜 고려로 대규모의 이동을 하였는가? 그리고 이들이 이후 끼친 영향력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었는가?

- 발해열국시대

발해의 멸망 이후에도 계속 기록에 나오는 '발해국'! 태조 왕건에게 귀부한 발해왕자 대광현은 과연 누구였는가? 이 당시 고려에 귀부한 발해인들은 무엇을 의미했으며 이전 신라와는 어떻게 달랐나? 발해의 옛 땅을 놓고 만주대륙에서 격돌한 수많은 '발해열국'들! 그것은 차라리 발해판 '춘추전국시대'라 부르는 것이 옳을수도 있다. 이후 아골타의 금나라에게 통합될때까지 이 시대는 과연 '발해의 부흥운동'이었나? 아니면 당당한 또 하나의 한국사였나?

- 고구려 천리장성

서기 631년. 고구려 영류제의 명에 의해 연개소문이 쌓기 시작했다는 천리장성! 이는 한국고대사에서 드물게 보는 대규모의 공역기록인데...과연 고구려는 왜 이때와서 중국의 만리장성을 연상케하는 천리장성을 쌓았던 것일까? 과연 천리장성은 기존의 통설대로 요하선을 따라서 축조되었는가? 오늘날 천리장성의 흔적을 제대로 발굴할 수 있을까? 연개소문과 그 이후 천리장성은 어떻게 역사에 남게 되었을까? 천리장성에 얽힌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보자.

- 왕인

고대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문화전파의 대표적 표본인 왕인! 그러나 그의 출생지가 전라도 영암 일대로 밝혀지면서 그가 '왜인'이라는 설까지 나오고 그의 활동연대조차 일본서기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논란이 분분한데...과연 그는 백제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어떠한 역할을 구체적으로 수행하였는가? 고대 백제의 대학자 왕인의 행적을 역스에서 집요하게 추적해보기를 권한다.

- 고대 '왜'(倭)는 과연 무엇이었나?

동양 삼국의 고대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수수께끼의 존재, 왜! '왜'는 중국의 사서에도 일찌기 발해만 일대의 종족으로 나타나다가 삼국사기 신라본기 초창기부터 수백년동안 연례행사처럼 신라와 투쟁을 벌이는 존재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에는 '왜'가 한반도 남쪽에 있었다는 주장이 다시 재조명을 받고 있고 광개토대제의 '왜' 또한 수많은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는데...'왜'를 냉철하게 아시아적 견지에서 살펴보면 뜻밖의 수확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 신화복원 : 동명성제

고구려의 건국시조로 널리 알려진 '동명성제'! 그러나 삼국사기 등에는 그의 생애가 신화적으로 서술되어 있는데...이에 대한 학설도 분분하다. 과연 동명성제의 신화를 객관적인 역사의 세계로 이해할 수 있을까? 과연 '동명'은 주몽이었나? '동명'은 부여의 시조였는가? '동명'을 둘러싼 고구려와 백제의 정통성 경쟁의 실태는 무엇이었나?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명왕편, 광개토대제비, 그리고 환단고기를 종합해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생애를 복원해보자.

- 근초고와 근구수 : 백제의 태양

고이왕대를 거쳐 백제는 근초고와 근구수, 두 대왕대에 이르러 건국 이래 최전성기를 맞게 된다. 국사교과서에 백제의 전성기를 상징했던 근초고왕! 과연 그는 쿠데타로 집권했는가? 백제 초기 왕위계승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근초고왕이 황색 깃발을 사용했음은 무엇을 뜻하는가? 근초고와 근구수의 혼적이 왜 일본서기에 남았는가? 대를 이어 백제를 크게 일으킨 두 제왕의 일대기를 살펴보자.

- 경대승

무신정권시대에 특이한 한 시대로 자리잡은 '경대승정권'! 불과 26세의 나이로 무신정변의 대부 정중부를 제거하고 고려를 장악한 '고려판 나폴레옹' 경대승! 그는 과연 어떠한 배경에서 이같은 성공을 이룰수 있었는가? 과연 그는 집권욕의 화신이었나? 아니면 백성의 편에 서서 유토피아를 이루려고 했던 '홍길동 호민관'이었나? 그가 설치한 도방정권의 실체는 무엇이었나? 그리고 그는 과연 암살당했는가?

- 홍경래의 난

19세기 초반, 세도정치에 신음하던 조선에서 당대 최대의 반란이 터졌으니 이름하여 '홍경래의 난'! 과연 이 반란은 통설대로 평안도인에 대한 차별에서만 연유하였는가? 홍경래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는가? 홍경래의 난이 후세에 미친 여파는?

- 후삼국시대 진주에 가야가 있었다!

한반도가 후삼국으로 나뉘어 쟁패전을 치룰 동안 지금의 경상남도 진주에는 왕봉규라는 호족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정권을 세우고 장기간 통치하고 있었다. 한국사에서 진주 지방의 지정학적 위치는 어떠했는가? 왕봉규 정권은 어떻게 장기간 존속할 수 있었으며 어떻게 멸망했는가? 과연 왕봉규 왕국의 국호는 '가야'였을까? 한국사의 또다른 미스테리, 왕봉규의 '진주정권'을 탐색해보자.

- 발해의 '광개토대제' 선황제 대인수!

9세기 초반, 발해제국은 국사교과서에 나오듯이 최전성기를 구가했고 그 중심에는 선황제 대인수가 있었다. 선황제때 발해는 영토적으로도 가장 넓었으며 주위에서는 '해동성국'이라 칭했다 한다. 과연 이때 발해가 전성기를 구가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과연 환단고기의 기록대로 발해는 당나라로부터도 조공을 받았을까? 발해는 당시 중국을 휩쓸던 '이정기 왕국'과는 어떠한 관계였을까?

- 신라는 한때 대구로 천도하려고 했다!

현재 수도이전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을 연상시키는 신라의 '삼국통일' 직후 문무대왕과 신문왕도 도읍을 경주에서 지금의 대구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과연 왜 이때 이러한 천도계획이 있었을까? 왜 하필 대구가 천도 후보였나? '대구천도계획'의 의의는 무엇이며 또 왜 그 프로젝트는 백지화되었는가?

- 울릉도

동해의 한 조그만 섬에 불과한 울릉도지만 그 나름대로 역사가 있었다. 신라의 이사부가 울릉도를 점령하는 과정은 울릉도 전설을 통해서 더 풍부하게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울릉도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자.

- 일제강점기 민족종교운동 '보천교'!

지방을 중심으로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종교 '보천교'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한때 엄청난 교세를 자랑했었다. 그것은 보천교가 일개 종교운동을 넘어 일제에 대한 저항을 추구하던 단체였기 때문인데...과연 보천교는 누가 세웠으며 구체적으로 어떠한 활동을 전개했는가? 그리고 왜 일제는 보천교를 없애려고 광분했을까?

- 경국대전

조선 성종대에 이르러서야 완성된 조선의 헌법 '경국대전'! 과연 이 법전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편찬되었을까? 경국대전이 갖고 있는 특징은 무엇이며 과연 '이론'과 '실제'는 얼마만큼 괴리가 있었을까? 경국대전을 통해 당시 조선인들의 가치관을 알아보자.

- 이순신과 원균

최근에 원균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이순신에 대한 '선악'의 개념이 모호해졌다. 과연 '이순신 신화'는 존재하는가? 객관적으로 원균의 생애는 어떠했는가? 당시 임진왜란의 두 라이벌이었던 이순신과 원균을 통해 임진왜란 비사를 엿보기로 하자.

- 고려불교

한국사에서의 불교는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면 확연하게 지배종교로 자리잡게된다. 그러나 이어지는 것은 불교의 세속화였다. 과연 고려시대 불교는 얼마나 고려사회 전반에 침투해있었는가? 불교의 세속화는 곧 타락화로 이어져 불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닌 여러 방면으로 악용되기도 하였는데...과연 불교의 폐단이 고려멸망의 한 원인이었나? 조선이 불교를 '악'으로 규정한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까? 오늘날에도 많은 시사를 줄 고려불교의 실상에 대해 알아보자.

- 서기 49년 : 고구려의 중국 대원정

한국사에서 기록으로 나타나는 중국으로의 가장 깊숙한 정복전이 고구려시대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가지 의문점이 있다. 이 원정은 고구려의 대표적 폭군으로 묘사된 모본제의 시대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과연 모본제는 통설대로 폭군이었을까? 이때 중국정벌이 이루어진 배경은 무엇이었나? 과연 현재의 고구려에 대한 지리개념으로 이러한 원정이 가능했나? 모본제의 중국 대원정의 전말은 무엇이었으며 이 사건이 고구려사에 있어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서기 49년 고구려의 중국 대원정을 통해 우리는 고구려의 새로운 영광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팩스 코리아나 : 고구려 장수제와 문자제의 천하

아버지 광개토대제에 이어 대제국 고구려를 경영한 장수제! 광개토대제가 넓힌 영토를 수성하는 시대적 사명은 그에게 맡겨졌다. 과연 그는 80여년동안 재위하였는가? 즉위 초반 그는 왜 대대적인 숙청을 가하고 평양으로 천도하였는가? 그는 왜 백제를 다시 침공할 생각을 가졌으며 왜 백제를 완전히 멸망시키지 못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문자제때 고구려는 최대의 영토를 확보할수 있었는가?

- 서기 1-3세기 백제는 어떠한 발전을 이룩하고 있었는가?

온조왕 이후 고이왕 전까지의 약 2백년 동안 백제사는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을까? 근래 풍납토성의 건축연대가 바로 이 시대에 해당되는데...과연 이 시기 백제의 왕계는 조작된 것인가? 이 시대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신라와의 투쟁기록은 또 무엇을 뜻하는가? 이 당시 백제의 영토는 어떠했으며 과연 삼국지 한전 기록대로 고구려를 꺾은 위나라의 대방태수를 죽일 수 있었을까? 이때 과연 고대국가성립의 단초가 보이는가? 완전 베일에 싸인 이 시기 백제사를 복원해본다.

- 신라의 불교공인 비화

신라는 삼국 중 유달리 늦게 불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바 있다. 고구려나 백제가 거의 동시에 불교를 공인한 반면에 신라는 무려 2백년이나 뒤에야 이차돈의 순교로 같은 길을 걷게 되는데...과연 역사적 진실 또한 그러한가? 이차돈은 과연 누구였으며 그의 죽음과 불교도입의 구체적인 내막은 어떠한가? 신라의 초기불교 양상은 어떠했는가?

- 여말선초 명나라와의 관계

조선하면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연상하는 우리로선 조선 초기만해도 명나라와의 관계가 실로 일촉즉발이었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오는데...사실 최근 영화 '무사'에서도 나왔듯이 고려말에서 조선초의 중국 명나라와의 관계는 험악하기 짝이 없었다. 왜 이러했으며 정도전이 추진한 '요동정벌계획'의 전말은 무엇이었는가?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도 조선의 20만 대군을 두려워했다는데...조선 초기 군사력은 어떠했는가? 이어 어떻게 조선의 처녀들이 연달아 명나라의 황후가 될 수 있었는가?

- 동학군은 왜 우금치 전투에서 패하였는가?

한국근대사의 대표적 사건 동학농민운동! 과연 당시 동학군의 전력은 어떠했으며 왜 이들은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봉기했는가? 과연 대원군이 여기에 개입했는가? 우금치 전투에서 동학군이 패배한 것은 단순히 무기의 열세때문이었는가? 농민군의 조직력은 어떠했는가? 동학농민전쟁의 공과를 논해보자.

- 서기 819년 : 왜 신라는 당나라에 3만 원군을 보냈는가?

최근 이라크 파병문제가 이슈가 되었듯이 약 1200년전에도 동아시아에서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었다. 신라로서는 당시 3만 대군은 실로 엄청난 대군이었는데...왜 신라는 이렇게 대규모의 병력을 보냈으며 실제로도 그러했는가? '통일신라'시기 당나라와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당시 신라가 보낸 3만 대군의 상대는 일찌기 이정기가 세운 제나라였다. 이정기 이후 그의 제국은 이러한 당나라와 신라의 협공에 어떻게 대처했으며 또한 멸망하였는가?

- 고려시대의 천민집단 : 일명 '부곡제' 논란

다른 시대와는 달리 고려시대의 천민집단은 유달리 특징이 많았다. 그 이유는 그들 나름대로의 구역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국사교과서에도 나오는 '향소부곡'이 그것이다. 특히 '부곡'제는 많은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왜 대부분의 '부곡'이 경상도에 자리잡고 있었는가? 구체적으로 고려시대의 천민집단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으며 과연 서울 일대가 거란인의 포로수용소였는가? 부곡제는 어떻게 운영되었으며 지방제도와 어떻게 융합이 되었는가? 고려시대를 들여다보는 스펙트럼 '부곡제'를 알아보자.

- 이자겸은 과연 역적이었는가?

국사교과서의 고려시대 중반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일명 '이자겸의 난'! 이자겸은 과연 누구였는가? 인주 李氏로 대표되는 고려문벌귀족은 과연 존재하였나? 이자겸은 과연 스스로 황제가 되려했는가? 그를 지지했던 세력들은 누구였으며 왜 그의 반란은 실패했는가? 이자겸을 통해 고려시대 사회상을 엿보도록 하자.

- 조선중화

명나라가 멸망한 이후 조선은 청나라에게 수모를 당하며 이제 진정한 '중화'는 조선에게 있다고 하는 일명 '조선중화'의식을 발전시켜 나간다. 과연 조선의 '중화'란 무엇을 뜻했으며 이러한 인식의 기반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조선중화'는 어떠한 방식으로 사회에 표출되었는가? 그 허구성이나 모순은 또한 무엇이었나?

- 나철과 대종교

한국의 대표적인 민족종교를 꼽으라면 '대종교'라 할수있다. 대종교는 한일합방 직전 나철에 의해 창건되었는데...과연 이때의 탄생배경은 무엇이었나? 나철은 과연 누구였으며 대종교가 민족해방운동에 끼친 막대한 영향은 무엇이었나?

- 연오랑 세오녀

삼국유사에 나오는 기이한 부부의 이야기! 바위를 타고 일본에 가 지배자가 되었다? 과연 이 이야기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이며 일본에서 실제로 이와 연관된 역사를 찾을수 있을까?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통해 신라의 대외진출 양상을 살펴보자.

- 비미호

일본사에서 커다란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여왕 비미호! 그러나 그녀는 단순히 일본사의 인물이 아니었다! 과연 그녀는 김수로왕의 딸이었나? 과연 '비미호'는 '신공황후'였나? 심지어는 그녀의 실존여부까지 의심받기도 하였는데...그녀가 다스렸다는 '야마대국'은 과연 어떠한 나라였으며 서기 2-3세기 당시 일본의 정세는 어떠했나? 풍운의 여왕 '비미호'의 생애를 복원해보자.

- 안승과 금마국의 비밀

고구려 멸망 이후 북쪽에서는 대조영의 발해가 들어섰지만 신라 쪽으로 귀순한 고구려인들은 나름대로 눈물나는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안승의 금마국(소고구려국)이었는데...이들은 어떻게 신라에게 이용당하고 버림받았는가? 안승과 그의 나라 금마국을 통해 신라의 포용정책의 실상이 어떠했으며 이는 이어 '삼국통일'에 어떠한 시사점을 주는지 살펴보자.

- 고려에 시집온 몽골왕후들

고려가 원간섭기 시대로 접어든 이후 몽골제국의 부마국이 되면서 '충'자 돌림 왕들에게는 항상 몽골의 왕후들이 자리잡게 되었다. 과연 몽골은 왜 이러한 정책을 표방했으며 이국의 여인을 국모로 받아들이는 고려의 입장은 또한 어떠했는가? 과연 이 몽골왕후들의 영향력은 어떠했으며 이들이 고려에 미친 공과는 무엇이었는가?

- 조선의 여진정책

조선왕조는 태조 이성계가 여진족을 배경으로 건국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대로 여진에 대한 불완전한 정책을 수행하는데...조선의 '4군6진'의 개척양상은 어떠했으며 왜 함경도에 경상도인을 이주시켰는가? 나아가 조선의 이러한 '북벌'은 압록강-두만강을 넘어 영토에 대한 새로운 논란을 촉발시켰는데...이러한 조선의 정책이 여진족과 후대에 미친 영향은 또한 무엇이었나?

- 고려의 정체성 논란 : 고구려계냐 신라계냐?

태조 왕건에 의해 고려가 창업된 이후 고려왕조가 과연 고구려의 후계냐 신라의 후계냐 하는 논란이 학계에서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토론되고 있다. 각각의 근거는 무엇이며 이는 나아가 고려왕조의 정체성과 한국사 전체의 맥락을 짚을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에 대한 역스의 대중화를 기대해본다.

- 우륵

흔히 가야금의 시조로 알려진 '우륵'! 그러나 그에 관해서는 그밖에도 많은 의문점이 남아있다. 과연 그의 가야에서의 행적은 어떠했으며 그는 왜 충주 탄금대로 갔는가? 12현금이 과연 12가야를 상징하는가? 우륵을 통해 후기가야와 신라의 문화교류를 살펴보도록 하자.

- 한국의 '마르코 폴로' 혜초

근대 이전 한국사에서 가장 먼 거리를 여행하고 돌아온 신라의 승려 혜초! 과연 그는 누구였으며 인도까지의 긴 여정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그가 쓴 불후의 기행문 '왕오천축국전'을 통해 동서문화교류의 일면을 알아보도록 하자.

- 비운의 고구려 제왕 고국원제

고구려 고국원제는 멸망의 군주 보장제 다음으로 고구려 역사상 가장 비운한 제왕이었다. 미천제의 아들로 고구려를 계승해 선비족과 백제라는 두번의 투쟁에서 모두 패배하고 끝내 평양성에서 백제군의 화살에 맞아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죽음은 이후 고구려와 백제의 사생결단의 도화선이 되는데...그는 어떻게 모용씨의 선비족에게 패배했고 그 휴유증은 무엇이었나? 그가 백제를 도모한 원인은 무엇이었나?

- 조선상업

흔히 조선왕조는 상업을 천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과연 실상도 그러했을까? 조선팔도의 유통체계는 어떠했으며 '개성상인'의 명성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었는가? 조선시대 상업으로 대표되는 경제활동에서 우리가 미쳐 몰랐던 점들을 역스에서 파헤쳐주기 바란다.


- 백제의 르네상스 성왕시대!

흔히 백제의 중흥을 일으킨 명군으로 국사교과서에도 실린 성왕! 그러나 사비로 천도하여 새로운 시대를 일으킨 그의 시대는 아직도 많은 의문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왜 그는 사비천도라는 결단을 내렸으며 왜 하필 사비(지금의 부여)였는가? 어떻게 불교가 그의 치세에 일본에 전해졌는가? 과연 그가 천도하면서 백제의 국호를 '남부여'라 바꿨으며 '남부여'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성왕의 새로운 백제는 어떠한 면에서 개혁되었는가?

- 정혜,정효공주 무덤

현재 중국 당국에 의해 철저하게 봉쇄되어 일반에게 금지된 발해시대의 대표적 무덤인 정혜와 정효공주 무덤! 그러나 그 무덤들의 명문들은 일반에게 공개되어 발해사 연구에 획기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하여 드러나는 대제국 발해의 놀라운 면모! 정혜와 정효는 모두 발해 문황제의 딸들이었다. 과연 발해사에서 문황제의 치세는 무엇을 시사하며 두 공주의 무덤을 통하여 드러나는 발해인들의 실상은 어떠했는가?

- 최초의 김씨왕 미추왕의 비밀

건국 초기부터 박씨와 석씨가 번갈아가며 왕위를 계승하던 연합왕국 신라는 3세기 미추왕대에 들어와 점차 김씨 단독의 왕위계승으로 이루어지는 계기를 마련한다. 과연 신라의 지배족 김씨는 어디에서 왔으며 과연 미추왕은 정변으로 왕위에 올랐는가? 그럼에도 내물왕대에야 김씨세습이 확립된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였는가? 과연 미추왕 시대에는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는가? 신라 상대 왕위다툼의 전형적 사례였던 미추왕을 통해 우리는 고대왕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얻을 것이다.

- 조선 당쟁의 부끄러운 자화상 : 개수실록

당쟁이 극심했던 서기 17세기 조선에는 역사기록에도 희한한 선례가 남겨졌으니 이른바 '개수실록'이었다. 특히 선조와 현종때 실록이 각 당파의 이해관계를 담은 두 버전으로 후대에 남게 되었는데 이들은 각각의 차이점이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조선시대 역사서술의 원칙은 어떻게 변형되었는가? 개수실록을 통해 역사에 임하는 자세를 시대를 초월하여 고찰하여 보자.

- 문익점 신화 : 그 실상과 허상

한국사에 최초로 목화를 들여야 이른바 '의복혁명'을 일으킨 이로 널리 칭송받는 문익점! 그러나 과연 이때가 최초의 목화도입이었나? 문익점은 과연 어떠한 인물이었으며 그가 목화씨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어떠한 과장이 있었는가? 좀더 객관적으로 '문익점 신화'를 들여다보자.

- 정조는 과연 암살당했는가?

조선시대 왕들의 죽음 중 가장 의문사의 논쟁이 치열했던 정조의 죽음! 과연 그는 병사했는가? 독살되었는가? 그가 독살되었다면 과연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러했는가? 역스만의 정밀한 추적으로 이 진실을 밝혀보도록 하자.

- 고구려와 서역의 교류

고구려 벽화에 선명하게 나타나는 서역인과의 교류! 게다가 돈황 동굴에도 고구려식 벽화의 혼적이 보이는 등 고구려의 제국화는 곧 서역과의 활발한 문화교류가 있었음을 시사해준다. 과연 고구려와 서역은 어떠한 영향들을 주고받았으며 그것이 후대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과연 고구려는 당시 세계를 향해 열린 '열린사회' '세계제국'이었을까? 고구려사회의 개방성에 대해 논해보자.

- 나말여초 대표적 명문호족 김순식 왕조!

후삼국시대가 정립되던 와중에도 주변의 대세력들에게 굴하지 않고 지금의 강원도 영동지방에서 사실상 왕조를 개창한 대호족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신라 진골출신 호족 '명주군왕' 김순식 일가였다. 과연 그들은 어떠한 기반으로 이 일대에 자리잡았고 어떻게 장기간 그들의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스스로 '황제'라 여겼고 후삼국과의 대등성을 추구했던 그 저력은 무엇이었으며 또 김순식은 왜 왕건에게 투항했는가? 이후 김순식 왕조의 영향은 어떻게 남았는가? 김순식 왕조를 통해 후삼국시대 호족들의 활동에 대해 알아보자.

- 고려판 수양대군 숙종

11세기 고려는 일명 '문벌귀족'의 안정기를 거쳐 11세기 말 강력한 군주 숙종의 시대를 맞이한다. 과연 숙종은 어떠한 인물이었고 그는 왜 당시 대표적 외척세력이었던 경원 李氏와 대립하였나? 숙종이 추구했던 강력한 개혁의 목표는 무엇이었으며 왜 이것이 당시에 필요했나? 또한 그가 추구했던 북벌의 목표는 무엇이었나? 고려판 수양대군인 숙종과 그의 시대를 통해 고려 중기 새로운 동향을 발견해보자.

- 1907년 의병운동

대한제국의 국운이 저물어가던 1907년! 당시 일제에 맞서 활발하게 전개되던 전국적인 의병운동은 마침내 서울진공작전으로 그 정점을 맞이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이는 좌절되는데...과연 이 사건의 전말은 무엇이었으며 이것이 미친 후대의 파장은 무엇이었는가?

- 소파 방정환

일제때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다방면의 사회활동을 편 소파 방정환 선생! '어린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고 '어린이날'을 제정한 선각자! 그러나 이외 그의 밝혀지지 않은 모습은 무엇인가? 그의 사회주의자 전력은 무엇인가? 어린이날을 맞아 소파 방정환을 탐구해보자.

- 세계를 바라보던 조선 전기의 눈 : 해동제국기

주자학이 교조화되었던 임진왜란 이후에 비해 조선 전기에는 놀랍도록 사대와 교린을 내세운 외교의 유연성이 돋보이던 때였다. 신숙주가 쓴 '해동제국기'에는 그러한 당대 정치인임과 동시에 지식인의 인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이 책의 특징은 무엇이며 해동제국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중대한 시사를 주는 까닭은 무엇인가?

- 백제부흥운동은 왜 실패했나?

백제 멸망 이후 불길처럼 타오른 백제부흥운동으로 나당연합군은 한때 대부분의 백제땅을 상실하고 패퇴할 위기에 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로 부흥운동은 내리막길을 걷는데...과연 그것은 단순히 백제부흥세력의 내분에 연유한 것이었을까? 과연 백제는 서기 660년에 멸망한 것이었을까? 부흥세력의 주도세력은 누구였으며 왜 풍왕은 고구려로 망명했을까? 왜 고구려는 백제를 돕지 않았을까? 부흥세력에 대응하는 나당연합군의 전략은 무엇이었나? 백제멸망을 전후한 각 세력의 숨막히는 외교전의 실상을 역스에서 조명해보자.

- 2인자의 고뇌 : 홍국영

정조의 외척이었던 홍씨 가문의 일족이었음에도 그들과는 다른 길을 간 희대의 풍운아 홍국영! 과연 그는 어떠한 경로로 정조의 최측근이 되어 2인자의 위치에 올랐을까? 과연 그의 시대는 세도정치의 전주곡이었나? 왜 정조는 그를 숙청할수밖에 없었을까? 홍국영을 통해 2인자의 정치적 위치를 살펴보고 오늘날의 타산지석으로 삼도록 하자.

- 외세에 굴복한 이들 : 부원세력

일제때 친일파가 있었듯이 원간섭기 고려에는 '친원파'가 있었다. 몽골의 침입때 향도 역할을 했던 홍복원으로부터 시작해 공민왕에 의해 살해된 기철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대대로 몽골에 아부하며 고려에 해악을 끼친 무리들로 역사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특히 악명을 떨쳤던 오잠과 유청신은 누구였는가? 이들을 통해 외세에 아부하는 자들이 어떻게 역사를 후퇴시키는지를 교훈으로 삼아보자.

- 역사논쟁 : '삼국통일'!

이 부분은 토론프로식으로 유인촌 선생이 사회자가 되어 진행해볼 필요가 있다. '삼국통일' 문제는 다방면의 고찰이 필요한 바 이를 찬성하는 학자와 반대하는 학자들을 초빙해 열린 토론을 벌이자는 것이다. 특히 '삼국통일' 논쟁은 '남북국시대론'과 맞물려있기 때문에 이에 촛점을 맞추어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일반 시청자들도 참여시켜 논의을 확대시키는 대중화에 대한 고려도 필요할 것이다. 한국사의 최대 논란거리 '삼국통일'에 대해 토론해보는 '역사스페셜'이 필요하다!

- 위기극복의 군주 소수림제

서기 4세기 말 고국원제의 평양성 전사로 고구려는 일대 위기에 직면했었다. 밖으로는 백제와 선비족의 압력이 거셌고 안으로는 왕권에 대한 도전에 직면했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소수림제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통해 고구려 광개토대제의 영광의 기초를 닦아놓는데 성공한다. 오늘날 위기관리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지도자상에 비추어보면 소수림제의 업적은 다분히 귀감이 될만할 것이다.

- 한국의 에디슨 장영실

한국문화의 황금기로 간주되는 조선 세종시대에 과학 측면에서 불세출의 업적을 남긴 인물 장영실! 과연 그는 어떻게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어 세종의 신뢰를 얻게 되었는가? 그가 발명한 것들은 과연 오늘날에 비추어보아 어떤 의의가 있는가? 세종대의 놀라운 '과학혁명'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가? 장영실을 둘러싼 낭설은 또한 무엇인가?

- 안향

국사교과서에 실린 초상화로도 유명한 성리학의 최초 도입자 안향! 그는 과연 어떠한 배경으로 대학자가 되었으며 당시 교유한 지식층들과는 서로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았을까? 당시 초창기 고려성리학은 조선의 그것과는 어떻게 차별화되었을까? 안향을 통해 고려성리학과 성리학의 초기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자.

- 고구려는 서기 전 3세기에 건국되었다?

삼국사기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기원전 37년 고구려 건국설에 반대하여 특히 북한에서는 고조선 멸망 직후 고구려가 건국되었다는 새로운 학설을 제기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무려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기록을 2-3백년 끌어올린 것인데...과연 이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는 무엇인가? 특히 '환단고기' 기록과 비교해보면 고구려와 고조선, 그리고 부여의 상관관계와 계통성, 계승성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고구려의 건국시기를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는 고대사의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사안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석가탄신일 특집 3부작>

- 의천은 어떻게 천태종을 이룩했나?

흔히 우리가 알고있는 천태종의 시조 '대각국사 의천'! 고려 문종의 아들로 태어나 일찌기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공부했던 인물! 과연 고려의 전성기라 일컬어지는 문종시대때 고려와 송나라와의 관계는 어떠했나? 의천의 중국에서의 행적은 어떠했나? 그리고 고려로 돌아와 일으킨 천태종의 의의는 무엇이었나? 의천의 생애를 통해 단순한 승려가 아닌 국제적인 문화사절로서의 그를 복원해보자.

- 조선시대 불교는 어떠했나?

'승유억불'로 표상되는 조선의 불교배척으로 인하여 한때 신라와 고려의 국교로서 최고의 권력을 누리던 불교는 비참한 몰락의 길을 걸어가는데...임진왜란 직전에는 아예 불교가 없어질뻔한 위기를 겪다가 임란 이후 다소나마 숨통이 트였던 바가 있었다. 그러나 고질적인 불교에 대한 푸대접은 이윽고 숙종대에 불교승려들의 반란을 초래하고...과연 조선시대 불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탄압을 받았는가? 그리고 일본은 이러한 조선의 불교세력을 어떻게 이용했는가?

-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의 미스테리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신비의 소리를 전해주는 에밀레종! 과연 그 소리의 비밀은 무엇인가? 과연 전설대로 여자 아기가 희생물로 되었었는가? 당시 성덕왕대에 이러한 걸작이 태동한 배경은 무엇이었으며 당시 불교문화는 어떻게 흐르고 있었는가? 에밀레종을 통해 신라의 불교문화를 다시 되돌아보자.

- 고려시대 대표적 국제전쟁 : 거란토벌

13세기 초, 일찌기 멸망한 거란의 잔당들이 수만의 대군으로 고려를 침략하였다. 이들은 황도 개경의 인근까지 침범하며 고려의 서북방을 한때 장악하는등 기세를 올렸었다. 이에 고려는 몽골, 동진, 금나라 등과 공동으로 연합군을 형성해 이들을 토벌하기에 나섰는데 이같은 다국적 연합군은 동양사에서 매우 유례가 드문 것이었다. 과연 이 전쟁의 전모는 무엇이었으며 이후 동아시아 정세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 갈문왕

신라사료에 심심치않게 등장하는 갈문왕! 과연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학계에서도 논의가 분분하지만 뚜렷한 결론은 나오고 있지 않다. 그러나 신라사에서 갈문왕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수 없는데...역스에서 갈문왕의 정체를 한번 추적해보기 바란다.

- 일제강점기 만주매입운동

독립항쟁의 근거지였던 만주! 그러나 당시 만주는 군벌들과 마적들, 그리고 일제가 마수가 뻗히기 시작한 혼돈의 땅이었다. 이 와중에 일부 독립세력들은 만주를 영구적으로 차지하기 위해 일명 '만주매입운동'을 벌이는데...과연 이 운동의 배경은 무엇이었나? 그리고 과연 '만주매입운동'은 성공 가능성이 있었을까? '만주매입운동'을 반추해보자.

- 사도세자는 과연 누구였는가?

정조의 아버지이자 뒤주에 갇혀 굶어죽은 조선시대 최대 궁중참극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사도세자'! 그러나 그는 북벌에 심취해있었으며 매우 진취적인 인물이었다는데...알려지지 않은 사도세자의 면모에 대해 역스에서 추적해보기 권한다.

- 철저복원 : 관산성 전투

서기 554년. 백제는 지금의 충청북도 옥천으로 비정되는 관산성에서 수만의 대군이 전멸하고 왕은 잡혀 치욕스럽게 죽고, 많은 신하들이 사로잡히는 백제사 최대의 참패를 당한다. 그러나 이 전투는 향후 백제와 신라의 운명을 뒤바꿔놓는 삼국시대 최고의 하이라이트였음에도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어지지 못했다. 그만큼 관산성 전투의 수수께끼는 한두가지가 아닌데...관산성 전투의 배경은 과연 무엇이었나? 왜 하필 관산성에서 전투가 벌어졌는가? 관산성의 지형은 어떠했나? 성왕은 왜 불과 50여기로 죽음을 맞았는가? 성왕의 구체적인 최후는 어떠했나? 과연 이때도 가야와 일본군이 참전했나?

- 신라의 팽창과정

경주 사로국에서 출발한 신라는 이후 주변의 소국들을 병합해나가며 점차 대세력으로 부상하기에 이르지만 이 과정에 적지않은 저항을 받기도 하였다. 신라의 이러한 팽창과정은 흡사 로마제국의 그것을 연상하는데...과연 신라는 초기에 가야의 속국이었나? 신라가 위기를 맞았던 적대세력들은 누구였나? 신라가 진한의 대표적 세력으로 부상할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신라의 성장과정을 통해 오늘날 부국강병의 길을 모색해본다.

- 고려 천리장성

고구려에도 천리장성이 있었듯이 고려에도 천리장성이 있었다. 그러나 고려에서 왜 천리장성이 필요했을까? 과연 천리장성은 그 기능을 다했을까? 천리장성의 구체적 위치는 어디였나? 북한에 있는 천리장성을 답사해 현장감을 살려보자.

- 조선 숙종때 일본정벌계획이 있었다?

최근 한 소설에서 제기된 이러한 의문...윤선도의 '일본여도'에 나와있는 일본에 대한 자세한 정보...과연 '선남후북' - 먼저 일본을 친 다음에 청나라를 도모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당시 조선에 있었는가? 이를 뒷받침해줄 사료가 있을까? 역스에서 이에 대해 다루어주기를 바란다.

- 제주도 삼별초 정권

진도의 삼별초 정권이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에게 무너진 이후에도 김통정을 중심으로 한 삼별초 세력은 제주도로 건너가 항쟁을 계속한다. 과연 삼별초가 제주도로 간 까닭은 무엇인가? 당시 일본과는 얼마만큼의 교섭이 있었는가? 당시 제주도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제주도에 있었던 최후의 무인세력 '삼별초'의 흔적을 되새겨보자.

- 진성여왕은 과연 폭군이었나?

역사왜곡에는 절대지존인 왕도 예외일수가 없었다. 역사를 기록한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왕들도 어떤때는 '폭군'의 누명을 뒤집어쓰는데...조선에는 광해군이 있었고, 고려에는 의종이 있었다면, 신라에서는 '진성여왕'이 있었다! 신라의 3대여왕에 속했으면서 왜 유독 그녀만 악평을 받았을까? 그녀는 어떻게 왕위를 승계했는가? 과연 그녀는 색녀였으며 악녀였나? 흔히 나말여초 후삼국시대의 출발을 그녀의 치세에서 잡는데...그러한 혼란상이 그녀의 실정때문이었나? 과연 그녀는 왜 왕위에서 물러났으며 최후는 어떠했는가? 일찌기 '태조 왕건'에서 조명되었고 조만간 나올 영화 '천년호'에서도 다시 부각될 진성여왕의 참모습에 대해 역스에서 파헤쳐보자!

- 대원군은 과연 개방을 거부했는가?

우리가 대원군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쇄국정책'! 그러나 대원군의 활동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선입견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는데...과연 쇄국정책은 역사의 후퇴였나? 대원군의 나름대로의 개방플랜은 무엇이었나? 과연 대원군은 역사의 죄인인가?

- 무인시대 지식층의 고뇌

백여년간의 무인시대를 거치는 동안 고려의 문신들의 처신은 다양했다. 혹자는 끝까지 무인들에 저항하였는가하면, 혹자는 적극적으로 무인정권에 참여해 실세로 부각되기도 하였다. 문인들이 남긴 글에서도 이러한 혼란한 시대에 직면한 그들의 선택에 대한 적지않은 고민이 남아있는데...문극겸, 이규보 등을 통해 현대사에서의 지식인의 역할과 사명감을 비교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 여제연합설

신라가 6세기 진흥왕때 한강 하류를 빼앗은 이후 고구려와 백제가 동맹을 맺어 공동으로 신라에 대처했다는 이른바 '여제연합설'! 그러나 과연 실제로 이들간에 연합이 이루어졌나? 이들이 연합해 신라를 압박한 구체적인 근거는 남아있나? 과연 연개소문과 성충과 김춘추의 3자외교는 이루어졌나? 고구려는 과연 백제멸망과 부흥운동때 백제를 지원했나? '여제연합설'을 통해 삼국시대 외교의 본질과 실상을 살펴보도록 하자.

- 황진이

조선, 나아가 한국사 최고의 기생으로 일컬어지는 황진이! 그러나 그 명성만큼 그동안 많은 왜곡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녀의 전 생애를 걸친 기이한 행적은 과연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과연 그녀의 출신성분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기생이 되었던 것일까? 또한 그녀의 최후는 과연 어떠했나? 조선시대 화류계의 여인들의 삶을 알아보자.

- 고려 현종은 왜 나주에서 죽을뻔 하였는가?

소위 거란의 제 2차 고려침공 때 고려는 황도인 개경을 내어주고 황제 자신은 남쪽인 나주 지방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그러나 현종의 이 몽진길은 임진왜란때 선조의 그것에 못지않게 실로 비참하기 짝이 없었는데...특히 한때는 고을의 수령과 백성들이 담합하여 현종을 죽이려는 민중봉기까지 일어난 바가 있다. 과연 이러한 사태는 어떻게 이해할수 있을까? 당시 고려의 후백제 지역에 대한 정책은 어떠했는가? 과연 고려시대에도 '신라부흥운동'처럼 '백제부흥운동'이 있었을까? 현종정권의 성격은 어떠했는가?

- '통일신라' 최고의 개혁군주 : 원성왕

8세기 말 등장한 원성왕은 여러모로 주목할만한 업적을 이룬 왕으로 평가된다. 과연 그는 어떠한 배경으로 왕위에 올랐는가? 그가 제정한 '독서삼품과'의 의의는 무엇인가? 그의 시대에 당나라와의 외교불화의 전말은 무엇이었나? 원성왕을 통해 일반인들이 '통일신라'에 대해 갖고있는 선입견을 교정해보자.

- '신라방' 미스테리

국사교과서에 '통일신라'의 대표적 해외활동으로 그려져 있는 소위 '신라방'! 그러나 엔닌 등의 일기에 의하면 당시 신라방 사람들은 신라의 풍속도 제대로 몰랐다는데...과연 '신라방'은 언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그 규모는 어떠했을까? 그 운용원리는 무엇이었으며 당시 중국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까? 그리고 '신라방'은 언제 소멸되었으며 그 여파는 무엇이었는가? 세계화를 부르짖는 오늘, 천년전 '교포사회'였던 신라방에 대한 체계적인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 고구려 개국공신 협보는 왜 일본으로 갔는가?

고구려의 시조 주몽과 함께 고구려를 세운 세 영웅중의 하나였던 협보! 그러나 그런 그는 유리제때 간언을 잘못한 죄로 관직을 박탈당하고 이에 앙심을 품은 그는 고구려를 떠나 '남한'으로 갔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과연 유리제때 공신숙청의 배경은 무엇이었는가? 과연 협보는 어떻게 '남한'으로 간 것이며 당시 '남한'의 상태는 어떠했는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환단고기에는 협보가 남한을 거쳐 일본의 '다파라국'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다파라국'은 과연 어디였는가? 협보의 이동루트를 통해 한국고대사의 '열국시대'의 역동성을 확인해보도록 하자.

- 홍건적의 난

중국사의 삼국지에 나오는 '황건적의 난'과 너무나도 유사한 '홍건적의 난'이 서기 14세기 말 발발했다. 홍건적은 과연 무엇이었으며 그들은 왜 고려로 침범했나? 당시 공민왕은 남쪽의 왜구와 더불어 이 '홍건적의 난'으로 남쪽으로 피난가는 곤경을 겪었는데 당시 고려 최고의 명장들이 총동원되어서야 겨우 격파한 홍건적의 난의 전말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과연 명태조 주원장도 홍건적으로 고려에 온 적이 있는가? 만약 그러했다면 그가 취한 고려의 여인 사이에 난 아들이 명나라 영락제였다는 것도 사실인가?

- 조선시대 지방풍속의 집대성 택리지

이중환이 쓴 택리지는 단순한 지리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지방종합백과사전이라 할 만 했는데...더우기 각 지방에 대해 전체적인 저자의 총평이 들어간 것도 흥미로우나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과연 택리지는 어떠한 목적으로 쓰여진 책인가? 그 책의 특성은 무엇이며 저자 이중환은 어떠한 인물이었나?

- 단기고사

현재 일명 '도가사서' 중 가장 '위서'로 인정받는 '단기고사'! 그 위작설의 근거는 무엇이며 단재 신채호 선생의 서문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과연 '단기고사'의 모든 내용이 거짓일까? 단기고사의 기록의 특징은 무엇인가? 상고사연구의 또 하나의 열쇠 단기고사를 분석해보자!

- 인물비교 : 이황과 이이

조선시대 주자학의 두 거두 이황과 이이! 이들은 또한 장차 붕당의 양대 시조가 되기도 하는데...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대가들의 면모를 중심으로 두 학자를 서로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이이의 '10만 양병설'은 사실인가? 이이는 과연 한때 승려생활을 한 적이 있는가? 이황은 과연 어떠한 인물이었나? 과연 이들은 서로와 교유한 적이 있었는가? 역사의 라이벌 이황과 이이를 만들어보자.

- 신라지방통치의 거울 : 소경(小京)

고구려 등도 나름대로 부수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특히 신라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한반도 동남쪽에 치우친 경주는 도읍지로서 한계가 있었다. 이에 나온 것이 '소경'제도! 그러나 '소경'은 단순히 '작은 수도'가 아닌 명실상부한 지방의 중심지였으며 나아가 나중에 나말여초의 호족들의 강력한 중심지로 변모하게 되는데...'소경' 출신 인물들의 활약상은 어떠했으며 '소경'의 전체적인 의의는 무엇이었나? '소경'을 통해 지방자치문제와 수도의 기능에 대해 오늘날을 생각해보도록 하자.

- 불굴의 용장 양규

거란이 두번째로 고려를 침공한 전쟁은 3차에 걸친 고려-거란 전쟁중 가장 치열한 것이었다. 특히 거란의 황제가 친히 4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와 황도 개경이 잿더미가 되는 등 피해도 막심했다. 이 와중에 이른바 '원조' 무신정변이 터지는 등 혼란한 고려의 정국속에 신출귀몰한 활약으로 결국 거란군의 전력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하고 국난을 극복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양규였다. 고려사의 또다른 영웅, 양규를 소개한다!

- 임시정부 : 과연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나?

종래의 국사교과서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국사의 정통을 계승한 구심체로 서술했으나 실질적인 독립운동의 구심점에 대해서는 최근에 임정의 역할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임정의 신화화가 과연 이루어졌나?

- 신문고

조선 태종때 민의를 살피기 위해 설치했다는 신문고! 과연 이 제도는 실제로 어떠한 양상으로 정착되었으며 사례는 어떠한 것들이 있었나? 여론수렴의 과정에서 신문고의 의의는 무엇이었으며 오늘날에 시사주는 것은 무엇인가?

- 후백제 건국의 몇가지 미스테리

후삼국시대의 첫 스타트를 끊은 견훤의 후백제 건국! 과연 견훤의 출신은 무엇이었으며 그는 왜 전주에 도읍했는가? 과연 견훤은 어떻게 전라도 일대의 민심을 얻었으며 후백제 건국연도는 과연 정확하게 어떻게 잡을수 있을까? 후백제 건국의 의미를 살펴본다.

- 금관가야는 어떻게 멸망했는가?

수로왕의 금관가야는 시종 황산강을 경계로 신라와 투쟁하였으나 서기 6세기 초반에 들어서면 신라의 다양한 전략으로 점차 멸망의 길에 접어드는데...신라의 '혼인전술'의 전모는 무엇이었나? 과연 금관가야 최후의 왕인 구형왕은 순순히 신라에 항복하였나? 금관가야 멸망의 파장은 무엇이었나?

- 김시습

세종때 천재신동으로 장래가 촉망되었던 매월당 김시습! 그러나 세조의 왕위찬탈로 속세를 등지고 떠도는 비승비속의 기인이 되어버린 인물! 그러나 최근에 김시습을 둘러싼 새로운 학설이 제기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과연 김시습이 속세를 등진 이유는 무엇이며 그의 이후 구체적인 행적은 무엇이었나? 그의 저작인 '금오신화'는 어떠한 의의가 있으며 또 하나의 비밀저술인 박제상의 '부도지'를 그가 왜 썼는가? 생육신의 하나로 일세를 풍미한 조선시대 최고의 기인 김시습을 조명해보자!

- 조위총의 난

무인시대 초반, 무신정변세력에 대대적으로 반발하여 일어난 반무신 역쿠데타였던 조위총의 난! 이것은 무인시대 최대의 반란사건으로 당시 최고의 무인들이 동원되어서야 겨우 진압되었을 정도였으나 그 이후에도 잔당들이 수년동안 고려의 북방을 어지럽히는 대사건이었다. 과연 조위총은 누구였으며 그는 어떻게 묘청의 난 이후 서경의 인심을 다시 얻어 이와같은 대반란을 일으켰을까? 당시 서경세력의 동향은 어떠했으며 그는 왜 금나라에 투항하려는 시도를 하였을까?

- 태극기는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우리나라의 상징 태극기. 그러나 그 기원에 대해서는 대체로 박영효가 만들었다는 설이 유력한데...최근에는 고종이 주도했다는 설이 부상하고 있다. 과연 태극기는 어떠한 원리로 만들었으며 그 상징성은 무엇이었나? 당시 태극기는 어떠한 배경 하에서 만들어졌는가? 태극기의 탄생비화를 통해 근대사의 단면을 엿보도록 하자.

- 백제와 가야의 교섭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의외로 한국고대사에서 백제와 가야의 교류에 대해서는 별로 연구된 바가 없다. 과연 백제와 가야는 언제부터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했을까? 서기 400년을 전후하여 광개토대제의 남방정벌때 백제와 가야가 연합한 바가 있었을까? 그리고 이어 나타나는 백제의 전폭적인 가야(임나)부흥정책의 양상은 어떠했나? 과연 가야가 임나였을까? 가야사에서 공백인 시대는 과연 어떻게 해석할수 있을까? 가야 멸망후 백제로 망명한 가야인들의 흔적은 찾을 수 있을까? 새로운 미개척분야인 백제-가야관계사를 들여다보자.

- 광해군 : 그 못다한 이야기

지난번 역스의 광해군편은 한시간 소재로는 너무나도 부족한 감이 있었다. 과연 광해군정권의 성격은 어떠했으며 인조반정의 명분은 과연 있었을까? 역스에서 광해군에 대해 한번 더 조명할 필요가 있다.

- 몽골과의 전쟁 때 고려 본토는 어떠한 상황에 있었는가?

총 7차에 걸친 몽골제국의 고려침공으로 고려는 미증유의 환란을 겪었는데...몽골에 의해 고려는 과연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입었는가? 그 흔적이 오늘날 남아 있는가? 몽골에 항쟁하던 민중들은 과연 강화도 정권의 도움없이 어떻게 이를 극복하였는가? 강화도의 고려정권은 본토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었는가? 몽골전쟁의 내막을 알아보자.

- 청주세력은 왜 고려에 반항했는가?

일찌기 백제와 신라의 경계에서 독특한 지방적 성격을 소유했던 청주세력은 특히 나말여초 후삼국의 혼란기에 고려로서는 항상 반골의 땅이었다. 왜 유독 청주세력이 고려에 저항했을까? 그리고 삼한을 통합한 이후 고려는 청주세력에 어떠한 조치를 취했을까? 과연 '차령' 이남 땅은 청주지역을 가리키는 것일까? 반고려세력 청주지역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다.

- 백제 동성왕의 일대기

웅진시대 대혼란은 동성왕대에 와 어느정도 안정기에 접어든다. 과연 동성왕은 누구였으며 어떻게 혼란을 수습할 수 있었을까? 동성왕의 시대에 백제는 중국에 사상 최대의 식민지를 구축한 것 이외에도 국내외적으로 괄목할만한 팽창을 이루었는데...과연 동성왕때의 탐라정복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과연 이때 백제가 남해안에 도달하고 있었는가? 그가 신임했던 '백가'는 과연 어떠한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었는가? 동성왕대에 고구려와 신라와의 관계는 어떠했으며 왜 말년에 동성왕은 신하들의 반발을 초래하였는가? 그리고 그는 어떻게 최후를 맞았을까?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한국사의 대표적 러브스토리로 전해지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의 역사성을 진단해본다! 과연 고구려는 대무신왕 당시 한반도로 어떻게 진출하고 있었나? 해묵은 논란, '낙랑군'인가? '낙랑국'인가? 낙랑왕 최리는 과연 누구였는가? '낙랑국'은 과연 어떻게 멸망한 것인가? 그리고 호동왕자의 비극적 최후는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까? 고구려 초기 대외관계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


- 고구려 국내성 천도 2000년 기념특집 : 국내성은 어디였나?

서기 3년, 삼국사기의 기년에 따라 나라를 세운 지 꼭 40년만에 고구려는 두번째 도읍을 국내성으로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는다. 통설은 지금의 환인 일대라 하는데...과연 그러한가? 현재 고구려 도읍지의 지리비정은 과연 올바른가? 기록에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고구려는 왜 이때와서 국내성으로 천도했는가? 현재 엉망인 고구려 지리비정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동시에 새로운 고구려사의 설계도를 그려본다.

- 연변 자치주 설립의 숨은 공신 : 주덕해

과연 연변 자치주는 어떻게 생성되었는가? 그 이면에는 주덕해라는 조선족이 있었다. 그를 통해 민족정신의 숨겨진 이야기를 밝혀보자.

- 의병운동의 정신적 대부 : 이항로

구한말, 의병운동을 정신적으로 이끌며 많은 독립운동가를 양성한 유학자 이항로! 그의 영향으로 왠만한 유수의 독립운동가들이 배출되었다. 안중근, 김구, 안창호 등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의 영향력은 흡사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의병의 정신적 지주였던 조식의 그것을 연상시키는데...과연 이항로는 어떠한 인물이었나?

- 팔관회

고려시대 대표적 국가행사였던 팔관회! 그 유래는 무엇이었으며 특징은 무엇이었는가? 팔관회는 당시 고려사회에서 어떠한 위상을 확보하고 있었는가? 팔관회를 오늘날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고려시대 자주적 주체성의 상징이었던 팔관회를 복원해보자.

- 암행어사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암행어사! 그러나 우리가 더 모르는 것이 많은데...과연 암행어사의 유래는 무엇이었나? 실제로 암행어사의 활약은 어떠한 것이었으며 어떻게 운영되었나? 암행어사 제도의 문제점은 없었나? 우리가 막연히 알고있는 암행어사의 신화를 벗겨내본다.

- 신라는 어떻게 한강 하류를 차지했는가?

신라의 한강유역 차지는 이후 삼국쟁패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실제로 이 사건으로 신라는 어떠한 모습으로 변모했나? 신라는 어떻게 당시 삼국 제일의 요충지인 이곳을 차지할 수 있었나? 당시 한강유역의 지정학적 위치는 어떠했나?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세나라가 동시에 서로와 전쟁을 했던 격전지 한강 하류! 그 복잡미묘한 사건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 화폐의 역사

인류문명의 중요한 척도였던 화폐! 그러나 과연 한국사에서 화폐의 존재는 최근대의 일이었나? 이미 고려때도 화폐사용의 혼적이 보이는데...과연 한국사에서 화폐사용은 얼마나 오래 거슬러올라갈 수 있는가? 그 의미는 무엇이었으며 그럼에도 화폐경제가 한국사에서 번성하지 못한 원인은 무엇이었나?

- 조선건국비사와 정도전

많은 이들은 조선건국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조선건국은 시대적 요청에 의한 역사적 발전의 결과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은데...과연 조선이란 나라는 어떠한 명제를 안고 탄생한 것이었나? '조선왕조의 설계자'였던 정도전을 통해 조선건국의 의미를 살펴보자.

- 고종과 3.1 운동

삼일운동은 과연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고무되어 스스로 일어났던 민중봉기운동이었나? 그러나 놀랍게도 삼일운동은 고종의 죽음과 너무나도 맞물려 일어난 감이 없지 않은데...과연 고종독살설의 진실은 무엇이며 삼일운동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 대왕의 길 : 고국천제와 을파소

마치 조선의 세종대왕과 황희 정승을 연상시키는 고대 고구려의 황금콤비 고국천제와 을파소! 왜 고구려 귀족들은 을파소의 등용을 그토록 반대했을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국천제는 왜 을파소를 기를 쓰고 등용하려고 했을까? 고국천제는 과연 어떠한 지도자였나? 군주와 명재상이 뜻을 같이하면 어떻게 역사를 진보시킬 수 있는지를 이들의 예를 통해 오늘날을 반추해보자.

- 과연 왕규는 역적이었나?

이전 역스에서 '제국의 아침' 스페셜로 한번 간단히 넘어간 적이 있지만 일명 고려사의 '왕규의 난'은 여러모로 수수께끼가 많다. 과연 왕규는 어떤 인물이었으며 어떻게 고려 초반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을까? 과연 혜종은 어떻게 누가 죽었을까? 과연 진짜로 역모를 일으킨 이는 누구였을까? 역사의 악인으로 남은 왕규를 통해 고려 초기 피튀기는 황제다툼쟁탈전의 면모를 살펴보자.

- 윤선도와 귀양문화

17세기 시조시인으로 유명했던 윤선도는 정치판의 당쟁으로 인해 인생의 대부분을 귀양으로 보내는 파란의 주인공이 되었는데...그를 통해 조선시대 귀양문화의 면면을 들여다보자.

- 한국고대사 제정분리의 미스테리

고조선때부터 절대 지배자는 정치와 제사를 동시에 주관하는 전지전능한 존재였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서서히 제정이 분리되는 국면을 한국고대사는 맞게된다. 과연 고대에서 제사의 의미는 무엇이었나? 그리고 무엇이 제정분리를 야기시켰으며 그 역사적 의의는 무엇이었을까?

- 한일고대사의 또다른 쟁점 : '質'

삼국사기와 일본서기를 통틀어볼때 일본과의 관계에서 유달리 백제와 신라가 일본에 '質'을 보낸 기록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과연 이것은 인질의 의미였나? 그렇다면 한일고대사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에 대해 규명해보자.

- 임진왜란때 승병은 어떻게 활약했는가?

임진왜란 직전까지 조선에서의 불교는 거의 멸종 직전에 처해 있었다. 그럼에도 서산대사와 사명당으로 대표되는 불교세력은 왜 승병을 일으켰을까? 그들의 활약상은 또한 어떠했는가? 임진왜란때 불교세력이 이바지한 바를 밝히고 전쟁의 또다른 모습을 발견해보도록 하자.

- 광종의 개혁, 그 의미는 무엇이었나?

이 아이템도 역시 이전 '제국의 아침' 홍보편에서 다루었으나 너무나도 피상적으로 접근한 감이 있다. 그러나 광종의 개혁은 비단 고려사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사적으로 보더라도 실로 핵폭탄적인 의미가 있다. '위로부터의 개혁'이 성공한 거의 유일한 케이스인 광종의 개혁! 과연 어떻게 이것이 성공할 수 있었으며 그 공과는 무엇이었나?

- 고구려의 신라진출

광개토대제때에 이르러 고구려는 신라에 본격적으로 진출해 '왜' 세력을 물리쳐준다. 과연 고구려와 신라는 언제 처음으로 접촉했을까? 이후 신라는 고구려의 속국에 다름아니었는데...이를 증명해주는 유물이나 유적으로는 무엇이 있었을까? 신라사에서의 고구려적 영향은 무엇이 있었으며 그 의의는 무엇인가? 또한 신라는 어떻게 고구려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 임꺽정은 과연 의적이었나?

벽초 홍명희 선생의 소설로 '민중영웅'으로 부각된 임꺽정!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도 그러했을까? 임꺽정의 참모습을 복원해 당시 16세기 조선의 사회상을 파헤쳐보자.

- 삼국사기 열전의 대부분은 왜 서기 6-7세기 인물들인가?

삼국사기에서 특이한 점 중에 하나는 열전의 대부분 인물들이 신라 진평왕에서 선덕왕에 이르는 시기의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과연 이것은 전적으로 사료 때문이었을까? 삼국사기의 열전편찬원칙은 무엇이었나? 그리고 이들 열전인물들의 행적을 통해 드러나는 당시의 시대상은 무엇인가?

- 정약용은 과연 천주교신자였나?

한국사에서 대표적 석학으로 꼽히는 정약용! 그러나 최근에 그가 천주교신자가 아니었다는 주장이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과연 그의 성장배경은 무엇이었으며 정조때 서학에 대한 조정의 방침은 무엇이었나? 정약용과 천주교는 과연 어떠한 관련이 있었고 그의 가치관과 학문세계에는 어떠한 영향을 끼쳤을까?

< 불교 시리즈 4부작 >

- 고구려 불교는 어떤 모습이었나?

소수림제때 전래되었다는 고구려의 불교...그렇다면 과연 불교는 고구려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소수림제 이전에도 불교의 혼적을 고구려에서 찾을 수 있을까? 고구려 불교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나? 그리고 고구려 출신 고승들의 행적은 어떠했나?

- 백제의 미륵신앙

이상하게도 백제와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거의 같다. 이는 단순히 우연의 일치였는가? 또한 고구려의 불교는 북방불교, 백제의 그것은 남방불교라는데...이 또한 사실인가? 백제불교의 정수는 역시 미륵신앙이었다는데...화려한 백제불교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그리고 미륵신앙은 어떻게 백제문화에 융합되었는가?

- 과연 가야가 불교의 최초 도래지였는가?

정설은 아니지만 허황옥이 가야에 올때 불교도 같이 들여왔다는 설이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바로 허황옥의 남동생이 출가해 승려가 된 것이 그 시초라는데...과연 한국사에서 가야에 불교가 최초로 들어왔을까? 또한 가야불교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 발해와 불교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 역시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웠었다. 그 유적이나 유물의 특징은 무엇이었으며 과연 발해는 고구려의 불교를 계승했는가? 불교로 표상되는 발해와 중국의 문화교류는 어떠했을까? 그리고 발해불교가 이후 북방제국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 동학농민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이에 대한 해석은 이미 많이 나와있다. 그러나 과연 어떤 것이 진실일까? 일설에는 전봉준 개인의 원한관계로 봉기가 일어났다고 하고 일설에는 대원군의 배후조정으로 일어났다고도 하는데...당시 삼남지방의 민심은 어떠했으며 조선의 실정은 어떠했는가? 동학조직의 특성은 무엇이었으며 한국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동학전쟁의 의의는 무엇이었을까?

- 강상묘

고조선시대의 대표적 무덤유적인 강상묘! 그것은 고조선시대의 타임캡슐에 다름이 아니었다!!! 강상묘에 나타난 고조선인의 삶과 죽음은 무엇이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고조선 시대의 무엇을 캐낼 수 있을까?

- 지정조격

최근에 발견된 고려 말기의 법전인 '지정조격'! 이를 통해 14세기 고려의 법령체계를 복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의미는 대단한데...원나라의 법전을 그대로 이용한 고려의 속사정은 어떠했으며 지정조격을 통해 나타나는 당시의 사회상은 무엇이었나?

- 왜 청나라는 두번씩이나 조선을 침략했나?

임진왜란으로 초토화가 된 조선...그러나 조선은 나라를 '재조'한 지 얼마안되어 또 호란이라는 국난을 겪는다. 당시 광해군을 몰아내고 집권한 서인정권은 외교적으로 어떠한 문제가 있었는가? 그리고 청(후금)은 왜 조선을 침략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잘못된 지도자의 판단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호란'의 예로 살펴보자.

- 인물탐구 1 : 김부식

한국사에서 아마도 가장 논란이 되는 인물 김부식! 무엇보다도 그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데에는 묘청의 난을 진압했다는 사실과 '삼국사기'를 편찬했다는 점인데...그런 점에서 그는 전형적인 '사대주의자'로 특히 단재 신채호 선생으로부터 악인시되어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로는 점차 이러한 김부식의 대한 평가가 점차 호의적으로 변하고 있는데...김부식의 생애를 객관적으로 복원하여 그를 제대로 역사의 심판대로 올릴 필요가 있다.

- 인물탐구 2 : 김유신

김유신은 오랫동안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영웅시되어왔다. 그러나 '삼국통일' 자체가 의문시되면서 그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고 있다. 과연 그는 어떻게 가야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신라정계의 중심에 설 수 있었을까? 그가 백전백승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신빙성이 있을까? 김유신, 과연 그는 역사의 영웅인가? 죄인인가?

- 고려인 이언년의 백제부흥운동

무인이 집권한 시대의 고려. 그런데 그 시대에 유달리 엄청나게 일어난 민란과 반란 속에 백제를 부흥하겠다는 운동이 일어났다. 과연 이 사건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이언년은 누구였으며 당시 무인정권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 고구려의 후국제

고구려는 초기에 고조선의 전통을 이어 정복한 여러 세력들을 '제후국'으로 봉한 일종의 '봉건체제'를 유지한 국가였다. '王中王' 기록이 그것이다. 이러한 고구려의 제도가 시사해주는 당시 고구려의 국력은 무엇일까? 또한 고구려가 이러한 제도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후국제'를 통해 고구려의 위상을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 고려 정종시대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이내 '삼한통일'을 이룬 뒤 초기의 혼란을 어느정도 수습한 세력은 정종을 위시한 '서경세력'이었다. 과연 혜종을 죽인 이는 정종이었는가? 정종은 과연 당시 권력을 차지했던 절대군주였는가? 아니면 왕식렴의 꼭두각시였는가? 4년이라는 짧은 치세 동안 서경으로 천도하려고 시도하고 광군 30만을 양성한 배경은 무엇이었는가? 과연 정종은 살해당하였는가? 그렇다면 누구에게?

- 가야는 변한을 계승하였는가?

가야의 건국설화는 우리에게 가야가 신라처럼 여러 집단의 결정체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혹자는 가야와 신라의 뿌리가 같다는 점을 들고 '김씨'가 양쪽의 지배층이라는데 무게를 두고 있는데...그러나 삼국지에는 가야가 있었던 지방에 '변한'이라는 정치체가 있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과연 변한은 가야였는가? 아니면 가야는 변한을 정복하고 세운 나라였나? 그것도 아니면 가야는 신라처럼 변한의 한 구성원이었다가 차츰 변한 전체를 정복한 것이었나? 또한 일본서기의 '임나'와는 어떻게 또 연결이 되는가?

- 과연 익산은 백제 말기의 도읍이었나?

역스에서 이미 두번이나 다루었지만 그것은 미륵사에 촛점을 맞춘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익산 지역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 점차로 익산에 백제가 도읍했던 적이 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 설의 가장 치명적인 맹점은 삼국사기에 기록이 없다는 것인데...이미 도읍지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춘 익산...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별도' 즉, 사비의 부수도였나? 이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 일진회는 과연 처음부터 매국단체였나?

대한제국이 일본에 멸망하기 직전 생긴 일진회는 전형적인 매국단체로 한국사에 낙인찍힌 바 있다. 그러나 그 형성과 활동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둘 의문점이 드는 것이 아닌데...과연 무엇이 일진회로 하여금 매국단체의 오명을 쓰게 한 것일까? 이완용과 송병준의 대립은 무엇을 시사하고 또한 일제와 일진회의 대립은 또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일진회를 통해 구한말 애국계몽운동의 단면과 그 초라한 몰락을 살펴보자.

- 임진왜란 최고의 의병대장 곽재우!

임진왜란때 수많은 의병들이 활약했고 의병장들의 활약 또한 대단했지만 그중에 으뜸은 단연 곽재우였다. 왜병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의 활약상은 어떠했으며 임진왜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또한 곽재우라는 인물 자체는 어떠했으며 전쟁 후 그의 삶은 어떠했는가? 신출귀몰한 의병장 곽재우, 그를 다시 재조명해본다.

- 비담의 난

7세기 중반, 김춘추와 김유신의 양대체제가 성립되어 고구려와 백제와의 투쟁이 격화되고 있었을때 난데없이 신라 보수층의 쿠데타가 일어나니 이름하여 '비담의 난'이었다. 과연 비담은 어느 세력을 대표하고 있었으며 왜 김춘추-김유신 세력에 반대해 일어났는가? 비담은 한때 선덕여왕을 볼모로 잡고 반대세력을 궁지에 몰아넣었으나 결국 진압당하고 만다. 선덕여왕은 과연 비담에게 살해당했는가? 비담의 난이 신라사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

- 강홍립과 임경업

여진족과의 숨가쁜 외교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서로 상반되는 대응을 한 두 인물이 있었으니 강홍립과 임경업이었다. 강홍립은 광해군의 명을 받고 조선의 입장에서 충성을 다하였고 임경업은 끝까지 여진족에 맞서 저항했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 모두 청나라로 끌려가 치열한 삶을 살았는데...극과 극을 달린 이들의 생애를 대비해보아 당시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고민과 선택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 고조선인들은 과연 삼한에 정착했는가?

통설로는 위만조선의 멸망 이후 고조선인들이 남하해 이른바 한국고대사에서의 '삼한'의 지배세력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이동 전에 삼한은 과연 존재했는가? 최근에 발굴된 경기도 가평의 '낙랑유적'은 무엇을 시사해주는가? 삼한에서의 청동기문화에서 철기문화로의 급격한 발전은 오늘날 무엇을 우리에게 알려주는가? 과연 고대사에서 '삼한'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출처 : 역사는 그 나라의 정신이다.신시개천5903년
글쓴이 : sadk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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