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 &etc; ... 미분류

[스크랩] 삼국지, 수호지, 열국지는 한국사 말살 정책 소설이다.

monocrop 2007. 2. 24. 08:05

< 삼국지연의, 수호전, 열국지(三國志演義, 水滸傳, 烈國志)는

서화, 항성(西華, 項城) 동쪽의 東夷(동이 : 우리) 역사 말살정책 소설이다. >



요(遼)의 남쪽인 하남성(河南省)에 서화(西華)와 항성(項城)이 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14세기말에 나관중이 창작했다.

수호전(水滸傳)은 시내암(施耐唵)이 쓰고 나관중이 집성(集成)한 것이

다.

열국지(烈國志) 또한 명대(明代)의 작품으로 본다.

명(明)은 1368년-1662년까지 존재했는데 이 시대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
다.


魏(위), 吳(오), 蜀(촉) 삼국시대가 패망한 이후 약천백년 지났을때 쓰여

진 작품인데 9세기 이전 장안(長安) 중심의 한족(漢族)과 서화, 항성의

동쪽에 동이(東夷)((우리=高句麗, 遼東, 百濟, 江淮, 新羅, 倭(위))의 영

역이 나관중시대에는 명(明)의 영역이 되어 동이역사를 반도역사로 축소

시키는 시대에 창작된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기, 한서, 삼국지, 후한서, 위서, 송서, 남제서, 양서, 북

사, 남사, 구당서, 당서가 있는 한 한족과 동이의 경계는 요서(遼西)와

요동(遼東: 遼之東)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6-7세기의 경계를 보면 은산, 고대인성, 신성, 석문, 석성, 항성, 덕안으

로 이어지고 있는데 산서성 요(遼)중심의 동쪽에 남북으로 있는 지명이다.


서화, 항성 동쪽에 있었던 동이역사를 밀어내기 위하여 '삼국지연의'를

중국대륙 전체의 사건으로 볼 수 있게 소설화시켰던 것이다.

9세기 이전 BC11세기까지 한족 어느 국가도 중국 전체를 통일한 국가는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중국25사는 모두가 거짓이 되고 말 것이다.


중국25사를 인정하는 한 '삼국지연의'는 동이(東夷)(우리)역사를 대륙에

서 삭제시키려는 명(明) 조정의 의도에 의하여 지원되고 창작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는데

반도인들은 사서를 숨기면서까지 이 소설을 극구 칭찬하고만 있는 것이

다.


九黎(구리)시대 치우천자(蚩尤天子)의 활동 현상을 나타낸 동두철액(銅頭

鐵額), 즉 철가면(鐵假面)과 갑옷을 입고 구리(九黎)의 통일국가 건설에

매진하였는데

우리는 철면피를 나쁜뜻으로 사용하고 있으면서 본뜻을 모르고 있는데 그

와 같은 이치일까 ?


삼국지연의는 BC2-AD9세기 사이에 동이의 일부인 고구려, 백제, 사로신

라, 왜가 서화, 항성의 동쪽에 있었을때

220-265년 사이에 서화, 항성의 서쪽에 있었던 위오촉(魏吳蜀) 삼국을 토

대로 하여 만든 소설인데 마치 서화, 항성의 동서를 전부 즉 현 중국 전

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볼수 있게 쓰여졌다는 것이다.


광개토대왕비문도 서화, 항성에서 반도까지 우리민족 영역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삼국지연의'를 심취한 애독자들은 서화, 항성 동쪽의 동이(우리)

역사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구리(九黎)시대, 고조선시대, 고구려, 백제, 사로신라, 왜시대, 일본시대

를 이어온 서화 동쪽의 동이 기록을 구분하고

"삼국지연의"와 "삼국지"도 소설과 역사서를 분명히 하여 소설을 통해서

역사를 오도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중국25사 동이, 삼국유사, 삼국사기, 광개토대왕비 등에서 서화에서 반도

까지는 동이(우리)민족의 영역이었고 역사기록도 구리시대에서 9세기까지

로 되어 있는데 "수호전"에서 중심이 되어 있는 양산박 주위에 우리민족

의 중심부분 중의 하나 였다.


양산박 주위에는

구리시대 치우천자의 능이 있으며(동평군 수장현)

백제 의자왕시대의 황산, 동명, 대산, 백마하가 있었던 "웅진"이 있어야

하는데 파웅진(罷熊津)하고 말을 바꿔 비성( 城)으로 하여(?) 비성(肥

城)이 된 것으로 보여진다.


669년과 672년 자석(磁石)과 침(針)을 당에 보낸 신라의 석성, 항성도 양

산박의 서쪽에 있으며 기자때부터 양잠(養蠶)을 시작했는데

삼국시대 발달한 신라금(新羅錦 : 실크 : SILK = SILLA KEUM)의 생산지

雎(저, 襄邑 : 양읍)도 양산박의 서쪽에 있다.


최치원의 태수로 있던 태산(太山)은 양산박의 동쪽에 있다.

이렇게 동이(우리)민족의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의 양산박을 무대로 하여

소설을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守胡傳(수호전)와 같은 수호전(水滸傳)이




9세기 사로신라가 망하고 그유민들이 동이(동이)역사를 계승한 국가를 만

들려고 투쟁하던 기록을 소설화 한 것이 아닐까?

무대가 동이의 땅이고 고구려, 백제가 패망한 이후이고 사로신라가 패망

한 이후의 작품이며 서화, 항성 동쪽의 동이를 "호(胡)"라 기록하기도 하

였으니 수호(水滸)를 수호(守胡)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동이의 후예들이 살고 있기에 수호전의 내용을 의로운적으로 꾸며나간 것

이 아닐까 ?

9세기 이후에 창작되어진 수호전은 9세기 이후 서화, 항성 동쪽에서 잃어

버린 동이역사의 부분으로 보면서 새롭게 조명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열국지 또한 서화, 항성의 서쪽 장안중심의 한족과 서화 동쪽의 동이의

역사를 바르게 정립하지 않고 있는 구리에서 9세기 사이에서 기자이후 조

선말기의 현상을 소설화 한 것이 아닐까 ?

이 또한 서화 동쪽의 동이 역사가 배제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소설인 것이

라 할 수 있다.

출처 : ♤끄적끄적 이야기♤
글쓴이 : 승복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