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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쥬신을 찾아서-23.몽골-만주-한국-일본은 한 뿌리…`쥬신사` 복원해야

monocrop 2006. 12. 16. 16:38

몽골-만주-한국-일본은 한 뿌리…'쥬신사' 복원해야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 같이 태양 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함형수(咸亨洙 : 1914~1946)
  
  
  
  이제 '대쥬신을 찾아서' 연재를 마치려고 합니다. 이제는 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뿌리를 찾아서 떠나온 기나긴 여정을 일단 여기서 잠시 멈추어야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아시아 고대사, 특히 쥬신사를 홀로 연구한다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누구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안개 속에, 어둠 속에 감추어진 쥬신사를 붙들고 밤새워 씨름한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견디기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을 생각을 하기로 했습니다. '쥬신사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저는 이 일을 가장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그저 객기(客氣)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동북공정이라는 쥬신사 말살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저는 아마 이 일을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일이 많고 제 능력이 따라가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쥬신사의 구체적인 복구 작업은 한국과 일본, 몽골의 많은 연구자들이 여러 분야로 나누어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매달려야 할 사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과 일본의 사학계는 얼마나 국수적(國粹的)이고 묵수적(墨守的)입니까? 쥬신의 역사는 고대사(古代史)를 전공하는 분들이 맡아서 밝혀내어야 할 일인데 저 같은 '아웃사이더'가 하고 있으니 슬픈 현실이기도 합니다.
  
  '쥬신'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나온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쥬신'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것이 저를 가장 답답하게 했습니다. 주변을 돌아봐도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만한 단체는 물론이고 연구자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쥬신의 각 분야별로는 적지 않은 연구들이 있었습니다.
  
  조교도 없는 제게 유일한 조력자(助力者)라고는 생물학(生物學)을 전공하고 웹디자인(web design)을 연구하고 있는 아내 김현주(金賢珠)밖에는 없었습니다. 아내는 그 동안 저의 개인 비서 역할을 해 왔으며 저의 홈페이지(www.ebiz114.net)를 구축·관리해 왔고 제가 쓰는 글에 각종 그림 작업을 해줌으로써 시각적 효과를 높이고 시간을 절약해 주었습니다(그림들 중에 시원찮은 것은 제 작품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제가 처음 이 일에 관심을 두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아 이 일을 시작하는 것을 두 손을 들고 말렸습니다. 제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 좀 시끄러운 나라입니까?
  
  그렇지만 동북공정은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고 시간은 흐르는데다 북한(North Korea)에 언제 위기가 닥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차일피일 미루면 더 이상 하기도 어려울 듯하여 일단은 밀어붙이기로 작정했습니다.
  
  연재가 시작되고 시간이 갈수록 아내는 이 사안의 중대성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어떤 형식으로든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내는 역사(歷史 : history)를 가장 싫어하고, 학문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역사란 증명하기 힘든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이 아내의 지론(持論)이었습니다. 아내는 저와는 달리 자유로운 독서를 즐기고 추리소설 마니아이기도 하지만 동ㆍ서양의 철학에 밝아서 저는 아내로부터 여러 가지를 많이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이해도 부족한 상태에서 유일한 조교이자 개인 비서인 '역사의 문외한(門外漢)'을 데리고 외롭고 고단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하니 저 자신 한심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고대사(古代史)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꼼꼼하고 정치(精緻)한 작업을 요하는 일입니다. 사회과학을 하는 저에게는 역사적 고증작업을 한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하나의 기록을 찾기 위해 허다한 사서(史書)들을 뒤지는 일이 일상사가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저 자신 일천한 학문적 수준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때로 제가 모든 삶을 바쳐 역사학을 해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한문(漢文) 실력도 큰 문제 거리였습니다. 한문을 깊이 공부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한문 실력이 있는 분들이 번역을 한다 해도 그 분들이 보는 시각이 저와는 많이 달라 한문의 대가들도 놓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저 자신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제게 닥친 수많은 난관들을 돌파하게 해준 것은 엉뚱하게도 바로 "역사라고는 '사실상' 평생 처음 공부해 보는" 아내였습니다.
  
  처음에 아내는 "발해만(渤海灣)이 어디 있어?", "흑룡강(黑龍江)은 어디야?", 심지어 "마립간(麻立干)은 뭐지?", "몽골이 조선 시대 때 쳐들어 왔지?", "후금이 청나라야?" "요서(遼西)와 요동(遼東)을 나누는 강 이름이 뭐냐?" 등 이것저것 막 묻는 통에 연구 작업과 글쓰기에 상당히 방해가 되었습니다. 속으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꾹 참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저는 아내를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되었습니다. 철학에 밝고 추리소설 마니아인 아내 특유의 분석력이 점차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역시 '아웃사이더'의 눈이 상당히 정확하고 예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경제학(Economics)의 경우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 사람들은 경제학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도덕철학자인 아담 스미스(Adam Smith : 1723~1790)가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을 쓴 것은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죠. 잘 아시다시피 이 책은 고전 경제학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아담 스미스는 프랑스어를 못하는 상태에서 1764∼1766년 청년 공작 바클루의 개인교사로서 프랑스 여행에 동행하였는데 이것이 화근이었던 것이죠. 소위 '자본주의 경제학'을 처음으로 집대성한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 : 1842~1924)도 철학자였지요.
  
  나아가 '지동설(地動說)'을 제창한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 1473 ~1543)도 신부(神父)였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이단자로 몰려 화형(火刑)에 처해지는 것을 피해 유언(遺言)처럼 발표한 것이 바로 '지동설'이었죠.
  
  코페르니쿠스는 프라우엔부르크성당의 신부로 취임(1512)하였고 엘름란드교구 회계감사역 겸 알렌슈타인교회 평의원이 되어 전임(1516)하였으며 프라우엔부르크 대교구장으로 귀임(1520)하여 그곳에서 일생을 마친 분입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地動說)을 착안하고 그것을 확신하게 된 시기가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그의 저서인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 전 4권)』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훨씬 전에 저술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저와 제 아내가 한 일이 이런 위대한 분들의 업적과 감히 비교할 수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아웃사이더들은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고 그 이전에 다른 공부들을 두루두루 많이 했기 때문에 테오리아[theoria : 열병(閱兵), 또는 관조(觀照), 주유(周遊)]하기가 쉽다는 말입니다. 사실 진리에 근접할 수 있는 이론(theory)이라는 것은 사심이 없는 상태에서 관조(觀照)함으로서 더 잘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철학한다(philosophein)'라는 말은 결국 주유(周遊)와 관조(觀照)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말입니다.
  
  제가 쓴 글 가운데 후반부인 쥬신의 개별사(個別史) 부분은 아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곧 출판될) 책의 저자에다가 아내의 이름을 같이 넣자고 하니 아내는 거절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자기가 중학교 국사책에 나오는 내용도 잘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결국 이 『대쥬신을 찾아서』의 내용이 의심받는다는 것이지요.
  
  아내는 지난 몇 달 간 역사를 공부하면서 "역사도 생각보다는 재미있다."고 이야기해서 저는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제가 이 일을 계속하려면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가 이 일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를 '비서(秘書)' 대신 연구사(硏究士)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어쨌든 아내가 극심하게 반대했던 이 일을 하면서 그 반대자를 주요한 연구자로 얻게 된 것은 앞으로 제게 큰 힘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중년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여행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어떤 아리따운 처녀가 다가오더니 갑자기 강도로 돌변하여 칼을 들이대고 돈을 요구합니다. 당황했지만 남자가 이를 거절하니 그 처녀가 사정없이 그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깜짝 놀라 눈을 뜨고 가슴 주머니를 만져보니 돈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남자, 가슴 쪽이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더랍니다. 이 후 갈비대도 수술하고 가슴에 생긴 고름도 짜야 했습니다. 이 남자는 그 처녀 귀신(鬼神) 때문에 병이 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그것은 미신(迷信)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저는 이 처녀의 이야기가 귀신도 미신도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보기엔 이 처녀는 우리의 몸에 침투하는 무서운 질병에 대하여 무의식이 만들어낸 질병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처녀의 칼에 찔리는 그 순간이 바로 몸에 그 병균이 강하게 번지기 시작한 시점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아름다운 여자는 그 만큼 돈이 들어가고 고민을 생기게 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고 귀신이라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 남자가 차안에서 꾼 꿈은 그의 존재를 위협하는 심각한 질병이 침투하여 치료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 각종 고민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그의 몸이 그에게 보내는 경고라는 이야기이죠.
  
  이 남자가 꾼 꿈과 같이 동북공정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아웃사이더'로서 능력도 없으면서 이 일에 굳이 뛰어든 이유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에 대한 갈등과 중국의 역사도발인 동북공정(쥬신사 말살 프로젝트) 때문이었습니다.
  
  반도쥬신(한국)과 열도쥬신(일본)의 역사 갈등은 지금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반도쥬신이나 열도쥬신은 쌍방이 자기 주장만 늘어놓는데다가 복잡한 정치적인 문제들이 있어 진실을 말해도 곡해(曲解)하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 최후로 남은 쥬신의 보루인 이 두 나라가 이렇게 한심한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제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중국은 없어져도 한족(漢族)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한족(漢族)의 위대성입니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실제로 한족(漢族) 스스로 통치한 적은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견고하게 한족(漢族)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합니다. 겉으로는 '하늘의 아들' 쥬신의 핍박에 묵묵히 순응(順應)하고 참고 견디지만 시간이 갈수록 중국을 지배하는 쥬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결국 한족(漢族)만이 남는 것이지요. 힘을 기른 한족(漢族)들은 남은 쥬신들을 철저히 응징합니다. 그래서 중국을 대부분 지배한 사람들은 쥬신이지만 결국 바람처럼 사라져 가고 끈질긴 '땅의 아들'들 즉 한족(漢族)들만 그 땅의 주인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점 쥬신은 분명히 배워야 합니다.
  
  쥬신은 멀쩡하게 있어도 국체(國體)가 소멸되면 쥬신은 소멸합니다. 역사상 수많은 쥬신들이 그렇게 사라져갔습니다. 세상에 남은 쥬신이라고는 (몽골에 극소수가 있지만) 사실상 한국과 일본뿐인데, 이들도 스스로 쥬신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노골적으로 쥬신사를 말살하려는 동북공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쥬신사를 영원히 해체하려는 동북공정의 이상한 논리를 이기는 길은 고구려 역사만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 역사가 만주족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역사적 공통성이 존재했음을 밝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중국과 한국이 제기하는 문제는 크게 ① 고구려가 당나라의 지방정권인가 하는 점, ② 고구려는 지역적으로나 혈연적으로 현재 반도의 쥬신족들과는 일치하는가 하는 점 등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이 나오더라도 동북공정에 대한 아무런 대안이 되지 못합니다.
  
  고구려는 역사에서 사라진 지 이미 1천 4백년도 더 지난 나라입니다. 토지 대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설령 그 토지대장이 있다한들 그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요.
  
  정말 중요한 것은 ① 고구려에 대한 계승의식이 우리민족에게 강하게 유지되었는가 하는 점, ② 고구려가 끊임없이 몽골쥬신, 만주쥬신, 반도쥬신 까지 역사적 공동성이 연속되었는가 하는 점 입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이후 반도 쥬신(한국)은 만주 쥬신과 몽골쥬신을 항상 오랑캐 취급을 하여 우리와는 다른 종족으로 취급을 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반도쥬신의 사학계가 맹목적으로 고구려만 지키고 만주에 거주한 제 종족들을 우리와 무관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한족(漢族)들에게만 유리한 입장을 만들어 줍니다. 결국 혈연적으로나 지역적으로 고구려의 많은 부분을 계승하고 있는 만주 쥬신이나 몽골쥬신을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완전한 이민족으로 취급하게 되면 그것은 만주와 몽골(특히 내몽골)에 대한 역사적 지분을 우리 스스로 포기하고 중국에게 그 지분을 고스란히 넘겨주는 꼴이 됩니다.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논리에 맞서기 위한 기존의 반도쥬신(한국) 사학계가 개발하는 대응논리라는 것이 ① 고조선과 부여의 주민 구성 및 국가형성, ② 고구려와 발해의 계승성, ③ 한중 외교관계에 대한 연구(조공과 책봉을 중심으로), ④ 근대 동아시아 국경 획정과정 등을 중심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 이면에는 고구려는 부여를 계승한 국가이고 부여는 다시 고조선과 고구려를 연결하는 고리이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반도쥬신(한국) 사학계의 논리는 동북공정의 먹이사슬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한국의 사학계가 동북공정을 학술적으로 해결하려면 할수록 만주(滿洲)는 우리 민족의 역사 무대에서 제외됩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죠.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우리 스스로 소중화주의적 인식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사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중국 측에 유리한 증거들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우리 형제들인 만주쥬신과 몽골쥬신을 우리의 역사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에 발해 이후의 만주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라고 주장한들 누가 그것을 받아들입니까? 지금 사학계에서 추진하는 방식이 최고로 성공을 해도 고구려와 발해까지만 우리의 역사고 요, 금, 몽골, 후금(청)의 역사는 당연히 우리 역사에서 제외됩니다. 발해가 멸망한 것이 926년입니다. 이미 1천 년도 더 지난 이야기입니다. 1천 년 동안 만주는 이제 우리 역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죠. 결국 우리 사학계는 만주사는 중국사의 일부라는 중국의 논리를 열심히 도와주고 있는 셈이죠.
  
  지금 반도쥬신(한국)의 사학계는 지나친 소중화 의식이 가져온 뫼비우스의 띠 속에 갇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반도쥬신의 사학계는 마치 바다에 엄청난 태풍이 몰려오고 있는데 배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지는 않고 선실(船室) 속에만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같습니다. 이들은 고구려 역사만 방어하면 모든 일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고구려 역사의 방어는 물론이고 만주 전역의 역사의 영속성과 우리의 역사와의 연계성을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사실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연속성(連續性) 즉 현재까지 이어지는 과거가 중요한 것이지요. 저는 백제와 신라가 서로를 동족이라고 생각했다거나 고구려와 백제, 신라와 고구려가 서로를 역사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간주를 했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형제라는 인식이 있든 없든 형제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죠. 어릴 때 헤어져 서로 모른다 한들 그 핏줄이 변할 리가 있겠습니까? 역사상 돌이킬 수 없는 형제 간에 살육으로 점철된 한국전쟁(1950)이 있었지만 남한과 북한이 한 민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꼭 아셔야 할 것은 신라(新羅)는 실제로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을 완전히 통일하지도 못했고, 삼국 통일을 강조한 것은 당대나 또는 후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관련이 있을 뿐입니다. 신라는 단지 한반도 일부를 점령한 것이지 전체 쥬신사에서는 그저 발해와 남북국(南北國)을 이루고 있었을 뿐이지요.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남한 지역으로 국한시키려고 하는 축소지향(縮小指向)형의 반도사관(半島史觀)에 불과할 뿐입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반도쥬신(한국)의 보수적인 사학계가 멀리 떨어진 부여(夫餘) 지역이나 요서 지역(遼西 : 고조선의 영역의 일부)을 우리 민족 역사의 일부로 인정해온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저는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부여는 우리 민족의 일원으로 보면서도 바로 백두산 주변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바로 인근의 만주인(만주쥬신 : 청의 건국세력)조차도 우리 민족의 구성원에서 배제한다는 것이죠.
  
  도대체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러고서 어떻게 학문적·국가적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것인 지를 도무지 알 수 없군요.
  
  제가 보기에 동북공정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쥬신의 관계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역사를 다시 보는 것입니다. 쥬신 관계사의 입장에서 보면 동북공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고 무식한 논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점들을 간단히 살펴봅시다.
  
  첫째, 중국의 주변민족들이 한족(漢族)과 함께 하기에는 한족(漢族)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이 너무 뚜렷하다는 것입니다. 한나라 이후에는 중화사상이 매우 견고히 형성되어 한족(漢族)은 한족 중심의 세계질서를 표방하면서 대부분 주변민족들을 그들의 통치 및 교화 대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중국의 주변민족의 이름들이 모두 개·돼지·승냥이와 같은 욕설로 지칭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한족이 주변민족들을 사람으로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명백히 한족(漢族)이 아니고 한족과 어울릴 수도 없는 민족이지요. 그런데 중국은 과거에는 개·돼지·승냥이 취급을 하다가 이제 와서는 왜 그들을 중화민족이라고 강변합니까? 필요하면 중화민족이고 이용가치가 없으면 오랑캐로 돌아갑니까?
  
  현재에도 중국인들은 중화(中華)를 입에 달고사는데 그 중화가 원래부터 오랑캐가 포함되던 개념이었던 적이 있나요? 한족(漢族)의 중화(中華)일 뿐이지요.
  
  한족(漢族 : 중국)은 동북공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전에는 한족부흥(漢族復興)식의 분위기를 만들다가 동북공정이 시작된 후로는 비한족(非漢族)들도 모두 중화민족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저 중국이 다민족 국가(多民族國家)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중국내의 다민족을 모두 결국은 한족과 같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명백히 잘못입니다.
  
  여러분들도 시간이 있으시면 이전에 만들어진 『원숭환(袁崇煥)』(한국에서는 '누루하치'로 소개됨)과 같은 대국민용 계몽 드라마나 영화를 보세요. 『삼국연의(三國演義)』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한인(漢人) 즉 한족(漢族)의 정체성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습니까?
  
  세째, 한족(漢族)들과 그 주변민족들의 문화적인 특성이 워낙 다르고 지역적인 경계 또한 분명히 나누어져 있습니다. 사실 한족(漢族)과 사이(四夷)를 나눈 것은 쥬신이 아니라 바로 한족(漢族) 자신입니다. 한족은 그들과 주변민족(사이 : 四夷)을 분명히 분리시켜 "결코 융합할 수 없는 물과 기름의 관계"임을 누누이 천명해 놓고서 이제와서는 그들이 결국인 중화민족(中華民族)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본대로 몽골 - 만주 - 한국 - 일본 등에 이르는 쥬신 벨트를 보면 중국과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특히 언어는 물론이고 각종 문화적인 요소들도 다르고 산업기반도 다릅니다. 동북공정은 궁극적으로 이들 주변민족의 영토를 되돌려 주지 않고 항구적으로 장악하려는 정치적 시도에 불과할 뿐입니다.
  
  네째, 지리적으로도 만주와 요동 등은 중국 고유의 영토와는 무관한 지역입니다. 산해관(山海關)을 정점으로 하여 만리장성(萬里長城)이 시작됩니다. 산해관이나 만리장성 등은 중국과 쥬신과의 경계를 명확히 설정해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조변(柳條邊)은 한족(漢族)과 쥬신을 나누는 중요한 경계선입니다. 만약 만주 쥬신(만주족)이 한족(漢族)과 차이가 없다면 청나라는 왜 지속적으로 봉금정책을 실시했겠습니까? 그리고 또 다시 유조변을 설치한 것은 도대체 어떤 연유입니까?
  
  그리고 중국공산당 이전에는 요동과 만주를 한족(漢族)이 직접 지배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요동과 만주의 역사가 현대 중국의 역사에 포함되어야 합니까? 그러면 과거 몽골(원나라)이 중국 전토를 지배했으니 그 이전의 한족의 역사가 모두 몽골의 역사가 되어야지요. 그러면 청나라 때에는 춘추전국은 물론이고 한(漢)나라의 역사도 모두 청나라의 역사가 되겠군요. 중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가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야 하겠군요(요즘 TV 광고에 유행하는 말로 "사랑은 움직이는거야"라고 하더니 역사도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이런 황당한 논리가 중국이 동북공정에 임하는 논리입니다. 중국의 수준 미달의 엉터리 논리에는 반박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그들의 논리에 말려들게 됩니다. 그러니 아예 상대하지 않고 쥬신사를 바로 세울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중국의 엉터리 논리를 상대하지 않는다고 세계가 중국편을 든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보들입니까? 우리는 그 엉터리 논리에 대응할 다른 합리적인 논리를 세계에 알리면 됩니다. 쥬신의 역사를 국제적인 언어로 번역해서 세계에 알리고 홍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입니다.
  
  다섯째, 발해는 분명히 고구려를 계승했으며 금과 후금은 발해 또는 신라를 계승한 나라입니다. 그들의 실록이 그렇게 밝히고 있는데 왜 그것이 중국의 역사에 편입되어야 합니까? 그리고 인종적으로 한족과는 명확히 차이가 납니다. 금의 건국자들은 흑룡강 유역을 근거지로 했습니다. 이들은 고구려와 발해의 유민들이죠. 그리고 청나라의 건국자들이 흥왕(興王)의 땅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장백산(백두산)으로 명백히 한국인들과 그 신성(神聖)함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산해관이 중국의 땅이듯이 백두산을 비롯한 요동 만주도 쥬신의 땅이지요.
  
  여섯째, 중국은 조공(朝貢)을 가지고 정권의 종속성의 근거로 삼고 있는데 이것은 지금까지 본대로 황당한 논리에 불과합니다. 즉 중국은 각 주변 나라들이 행했던 과거의 외교적 레짐(regime)을 그 국가들에 대한 현대의 새로운 지배권 확립의 근거로 삼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제 중국에게 공식적으로 물어봅시다. 고구려가 번성하던 남북조 시대에 일본(日本)도 성실하게 조공을 했는데 현재 중국은 일본에 대한 과거 지배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특히 일본은 중국(한족)의 본류인 남조(南朝)에 대하여 성실히 조공을 했지 않습니까?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중국은 일본처럼 건드리기 신경쓰이는 나라는 그대로 두고 눈치만 보면서, 한국처럼 호락호락해 보이는 나라는 끊임없이 그 지배권을 주장하는 건가요?(물론 이것은 한국의 지배층에도 책임이 큽니다). 모르죠. 중국은 아마 일본이 약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지도. 한족(漢族)은 『삼국연의』의 유비(劉備)처럼 기다리는 것 하나는 세계 최고가 아닙니까?
  
  그리고 조공을 받은 국가들이 한족(漢族)의 나라인 경우가 도대체 몇번 있었습니까? 제가 보기엔 중국을 통치한 대부분 정권이 오히려 쥬신입니다. 그런 논리로 치자면 현재 대부분의 중국 땅은 몽골이나 만주족들에게 다시 돌려줘야합니다.
  
  지금 중국의 논리는 고대 로마 영토는 모두 현재의 이탈리아 영토이니 돌려줘야한다는 식입니다. 세상사람들이 바보입니까? 국제사법재판소가 이런 논리 하나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식의 중국의 논리는 아예 무시해야지 여기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은 오히려 우둔합니다.
  
  지금까지 본대로 동북공정에 대한 대안은 쥬신의 관계사를 중심으로 보면 너무 간단합니다. 국사해체론이나 요동사 개념은 학문적인 지평을 넓히는 중요한 시도이기는 하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실에서는 제 구실을 하기 어렵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한 시도일 수도 있습니다. 국사해체론이나 요동사적 관점이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국가간의 불균등성이나 비대칭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의 뿌리를 찾아서 먼 여행을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우리 민족의 원류인 예맥(濊貊), 숙신(肅愼), 동호(東胡) 등을 검토하고 이들과 몽골, 왜, 말갈(靺鞨)의 관계는 물론 알타이 신화, 쥬신의 호수 고구려, 몽골, 백제, 일본, 신라 등의 국가간의 관계를 쥬신의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쥬신의 고향을 찾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 깊이 내재한 삶의 뿌리에 관해서 그리고 그 정신의 '고향(故鄕)'을 찾아간다는 것이 멀게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림 ①] 한국의 이미지 - 아름다운 자연. ⓒ김운회

  쥬신에게 심각한 위기가 오고 있지만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라고 슬퍼만 하기에는 우리 갈 길이 멉니다. 다행스럽게 쥬신에게는 새로운 무기가 있습니다.
  
  과거 쥬신이 역사의 주인공이 된 것은 바로 말[馬]을 이용한 기동성입니다. 그리고 정교한 활쏘기 기술이었습니다. 이 점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서에서 지적된 말입니다.
  
  예를 들면 청나라의 옹정제(擁正帝)는 "우리가 중국을 지배하게 된 것은 내실(內實)이 없는 헛된 문예(文藝)가 우수했던 것이 아니라 뛰어난 무술실력과 실천하는 능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몽골의 라마교 경전(經典)이나 한족들의 문예(文藝)보다도 무략(武略)이 우수했기 때문이다.(『東華續錄』48)" 즉 몽골을 포함하는 만주인들은 말을 타고 활을 쏘는데 있어서는 탁월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이 당시 세계를 제패(制覇)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말이나 활은 과거에는 매우 훌륭한 무기였지만 이제는 사라진 무기입니다. 말타기나 활쏘기는 올림픽 경기에서나 빛을 발할 뿐입니다. 그것이 다시 무기가 되는 시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쥬신은 다시 그 같은 무기를 가지지 못할까요?  자, 이제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말타기(기동성)와 활쏘기(정교함)를 대신하는 강력한 무기를 쥬신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터넷(Internet)과 정보통신 기술(IT)입니다. 이 분야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반도쥬신(한국)이요 열도쥬신(일본)입니다. 열도쥬신은 아날로그와 IT 기반 기술에 강하고 반도쥬신은 디지털과 인터넷이나 이동통신 기술에 특히 강합니다.
  
  특히 멀티미디어(multimedia) 기술이 아날로그(신호)에서 디지털(데이타)로 바뀜으로써 반도쥬신(한국)은 디지털 소자(素子 : 칩) 부분을 제외하고서는 미국(USA)과 열도쥬신(일본)을 능가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물론 반도쥬신은 메모리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입니다). 그 동안 열도쥬신은 아날로그 부분에서 막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전자부문을 이끌어 왔고 전자부문에서 그 역량은 앞으로도 상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반도쥬신과 열도쥬신이 디지털 부문에서 선의의 경쟁과 협력을 한다면 이 기술을 웬만한 나라가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Digital Age)의 개막은 반도쥬신(한국)에게는 매우 큰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반 기술들의 기본 구조는 "사실상" 표준에 가깝기 때문에 그것을 얼마나 사용·운영하고 컨텐츠(contents)를 개발하는가에 따라서 그 승패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물론 소자의 개발이라는 문제들이 있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그것은 경제성의 문제이지 딱히 기술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반도쥬신(한국)은 기마민족(騎馬民族)답게 남들이 하면 무엇이든지 빨리 써봐야 적성이 풀리는 특성이 있습니다(이에 관한 많은 속담들도 있습니다). 한집에서 TV를 바꾸면 온동네 전체가 TV를 바꾸기도 합니다. 어느 아파트에 초고속 인터넷이 설치되면 몇 달이 되지 않아 그 지역 전체가 같은 초고속 인터넷이 설치됩니다. 이런 민족성은 산업시대에서는 부정적일 수도 있었겠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오히려 기술 개발을 크게 앞당기는 효과가 있습니다. 열도쥬신(일본)은 반도쥬신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신중한 면이 있는데 이것이 아날로그 시대에는 매우 효과적이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은 이제 시작된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한번 써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많이 해보고 실험하고 그 결과를 빨리 볼 수 있는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를 구성하고 있는 나라가 미래 기술을 개척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반도쥬신(한국)은 매우 모범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4년 2월 현재 반도쥬신(한국)은 이미 인구의 75%인 3천만 명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고 10대·20대 이용률은 94%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에 유례(類例)가 없는 일입니다. 인터넷 이용 용도에서는 자료 및 정보 검색이 72.8%로 가장 많았고 게임(52.5%)과 전자우편(51.3%) 등이 뒤를 이었고 85.3%는 e메일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사람들이 영어(English) 연수를 한답시고 오스트레일리아(호주)로 캐나다로 미국, 영국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서 저는 "앞으로 그런 나라에 살려면 좀 답답할테니 잘 견뎌라.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한국의 산골보다 못하니 감안을 하도록."하고 말해주곤 합니다.
  
  반도쥬신(한국)과 같이 이렇게 국민 절대 다수가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반도쥬신의 인터넷은 IT의 대표적인 실험장의 하나이기도 하고 미래 이동통신의 방향에도 매우 큰역할을 하였습니다. IMT 2000이 바로 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미래 IT는 반도쥬신을 떠나서 생각하기는 어렵지요.
  
  2004년 9월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9월20일자)은 "한국, 디지털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은 앞으로 펼쳐질 디지털의 세계에서 미국을 제치고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포천』지가 제시하는 바는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한국은 브로드밴드(broadband : 주파수 분할 다중화 기법을 이용하여 한 개의 전송매체에 여러 개의 데이터 채널을 제공할 수 있는 정보통신 체계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그저 초고속인터넷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급률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것입니다. 유무선 고속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으로 한국인들의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이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미래 인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 가정의 브로드밴드 보급률은 20%를 조금 넘는 수준인데 한국은 이미 75%에 달하고 있어서 미국은 한국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포천』은 지적합니다. 미국인들은 2003년 비로소 시작된 음악파일 다운로드 서비스를 자화자찬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미 몇 초 만에 한편의 영화나 TV쇼를 다운받는 서비스가 시행되고 있다고 『포천』은 부러워합니다.
  
  한국은 2012년까지 초당 100 메가비트의 초고속 케이블을 설치하고 2007년까지는 1천만 명이 인터넷으로 가전제품을 자동 조절하는 '스마트 홈' 네트워크에 편입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디지털의 장래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포천』은 결론지었습니다.
  
  이것을 공연한 허언(虛言)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라의 힘이 국토의 넓음으로 말하는 시기는 이미 지났습니다.
  
  2002년 OECD가 만든 『IT분야 국제화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IT 제조업분야 경쟁력은 세계 최고라는 것입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평균(1점)의 2배가 넘는 점수(2.43점)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이 세계 최고가 된 것은 전체 수출에서 IT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OECD 국가 중 제일 높기 때문입니다(『조선일보 』2004.5.16).
  
 

  위의 경우를 보면 아일랜드나 헝가리 멕시코는 주로 해외 기업을 좋은 조건으로 국내에 유치해서 생긴 결과입니다. 좀 어려운 말로 하면 IT 부문의 국내총생산(GDP)이 높은 것이므로 실제 IT 경쟁력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핀란드는 매우 작은 나라입니다. 결국 미래의 IT 산업과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나라는 결국은 한국·일본 그리고 미국이라는 것이지요. 이들 나라들 중 두 나라가 바로 쥬신입니다.
  
  한국은 온라인 게임의 세계 최고 강국입니다. 온라인 게임 즉 인터넷 게임은 인터넷 기술의 총화(總和)입니다. 마치 항공기가 기계공학의 총화이듯이 말입니다. 인터넷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게임을 할 경우 서버(server)를 관리하고 그에 맞는 프로그래밍을 하는 작업은 고난도의 기술입니다. 그리고 게임상의 아름다운 성(castle)이나 건물, 캐릭터, 불꽃, 광선, 전투 장면 등은 3차원 그래픽의 최고 수준의 기술이 동원되어야 합니다(데이터 용량이 적으면서도 가장 실감나게 표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채팅 기술이 동시에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 우수한 기술과 상품들이 현재는 다른 나라에서 초고속통신망이 구축되지 않아서 빛을 발휘하고 있지 못할 뿐입니다. 이것은 밀레니엄 시대에 전세계적인 가공할 한류(韓流)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IT는 현재 반도쥬신(한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돌파구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 반도쥬신과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인터넷과 IT는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지나치게 고평가되어 국민경제 전체의 발목을 잡고 있는 망국적인 부동산 가격으로 큰 그늘이 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높아진 임금으로 (고용 능력이 큰) 제조업 기반이 와해되어 해외(중국, 동남아)로 빠져나가 실업이 증대하고 물가는 뛰면서도 불경기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불경기가 지속되니 기업이나 가계가 상환능력이 떨어져 은행이 또 부실화됩니다. 은행이 부실화되어 제 기능을 못하니 외국자본들 가운데서도 악성 투기자본이 활개를 치고 다닙니다. 이 문제는 비단 반도쥬신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다만 그 시기가 문제지요. 어제의 일본 문제가 오늘의 한국 문제가 되고 오늘의 한국 문제가 내일의 중국 문제가 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나 IT 기술의 발달과 함께 경영정보시스템(MIS)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개방형(open network)으로 고도화되고 인터넷 비즈니스가 확산되면서 재택근무(在宅勤務 : home office)가 활성화되면 대기업의 본사가 굳이 서울의 도심에 있을 필요도 없고 매일 출근에 따르는 사회적 비효용(고통)을 부담할 필요가 없어지지요. 물류(物流 : logistics) 전체가 IT를 이용하여 하나의 공급 사슬(supply chain) 아래에 놓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물 좋고 공기 좋은 아름다운 전원(田園)에 살지만 인터넷을 이용하여 서울에 사는 만큼이나 "싸면서도 빨리" 제가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환경 오염도 그 만큼 줄게되고 굳이 서울에 있지 않아도 되니 부동산 가격이 오를 이유도 없지요. 또 현재의 망국적인 수도권 집중 사태도 사라지게 될 것이고요. 제 생각에는 한 20~30년 후에는 서울의 부동산 가격도 지금과는 달리 많이 떨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현재 반도쥬신(한국)의 상황을 감안해 보건대 해외로 이탈해 나간 제조업을 대신하여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부가가치 생산성을 가지며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는 거의 유일한 원동력이 IT요 인터넷비즈니스입니다. 제조업의 "사실상" 붕괴 이후 그래도 반도쥬신이 굳건한 것도 바로 IT와 인터넷 때문이라고 봐야합니다.
  
  이와 같이 이제 말과 활을 대신하여 IT와 인터넷이 쥬신의 새로운 브랜드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데이터베이스(DB)에서 지식베이스(KB)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지식사회의 지평을 열고 있습니다. 정보통신의 수준을 넘어 한층 고양된 지식기반 사회가 지금 다가오고 있는 것이지요.
  
  현대는 지적(知的) 유목민(遊牧民)의 시대입니다. 무한한 사이버의 세계를 이제 한국과 일본은 질주하고 있습니다. 미래는 물리적인 땅의 공간이 아니라 무한히 펼쳐진 사이버 공간의 시대입니다. 쥬신의 부활은 칼이나 철갑기병으로서가 아니라 인터넷과 IT로부터 시작되어갈 것입니다.
  
  
  
  지난 30여 년 간 저의 화두(話頭)는 '한국(Korea)'입니다. 한국과 관련된 것은 정치 경제는 물론 사회 심리 역사, 자연과학, 공학까지도 다 저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인터넷비즈니스와 디지털 경제를 깊이 연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현대 쥬신의 대표적 브랜드가 아닙니까?) 그리고 나머지는 '죽음'에 대한 연구(Thanatology)였습니다.
  
[그림 ②] 한국의 이미지 - 산과 구름. ⓒ김운회

  제 공부의 시작은 경제학(Economics)이었습니다. 저는 젊은 날 마르크스 경제학, 근대 경제학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시작은 마르크스(Marx)였지요. 그런데 거의 6~7년을 마르크스에 침잠을 했는데도 경제(Economy)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근대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니 경제 현상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진리는 전체적으로 봐야만 보인다는 생각을 그 때 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경제현상은 바로 정치와도 깊이 연관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경제정책이라도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정치적 여건도 맞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정치라는 것은 결국 역사의 산물입니다.
  
  정치가 뭡니까? 바로 현대의 역사(present history)지요. 역사는 바로 과거의 정치(past politics)입니다.
  
  이와 같이 학문이라는 것은 요즘과 같이 파편화되어서는 진실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제 학문이 파편화되어서는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
  
  저는 현재 우리가 알고 의지하고 있는 패러다임(paradigm)이 산산 조각나고 있는 것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수백 년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온 자본주의 패러다임의 구조는 아마 수 십 년을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술은 웬만한 것은 모두 파괴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이끌어 가는 시장(market)의 하드코어(hard core)인 수요(demand)-공급(supply)-가격(price)의 체계도 디지털 재화(digital goods)의 등장으로 붕괴되고 있습니다. 아마 머지않아 기존의 경제학 이론들도 버티어 내기는 역부족일 것입니다. 기존의 경제이론들은 2백년 이상 지나는 동안 사실 너덜너덜해지기도 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화두는 '퓨전(fusion)'과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퓨전은 단순한 패러다임의 현상이 아니라 진리를 보다 실존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학문적 태도로 전환되어야할 중요한 인식론적 토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학도 단순히 역사학적인 시각만으로 봐서는 그 실존적인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의 뿌리를 밝히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every resource available)을 동원해야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사라져간 수많은 쥬신의 역사와 전통을 복원하여 내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전쟁을 종결시키고 밖으로는 한족(漢族 : 중국)의 집요한 쥬신사 말살 프로젝트를 막아야 합니다. 사실 동북공정은 작은 한 예에 불과합니다. 동북공정(東北工程) 이후에는 백제공정(百濟工程)이 나올 것이고 그 다음에는 신라공정(新羅工程)이 나올 것입니다.
  
 
[그림 ③] 한국의 이미지 - 한국인의 삶. ⓒ김운회  

  제가 여러 국가기관이나 기업 등의 여러 관계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불필요한 데 돈을 탕진하지 말고, 중국과는 다른 쥬신의 역사를 국제어로 번역하여 세계에 알리고,『북사(北史)』『요사(遼史)』『금사(金史)』『원사(元史)』『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등을 번역하여 일반에 공개함으로써 쥬신에 대한 이해를 높혀 "우리 세대 안에" 우리의 뿌리를 찾는 작업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통일한국(unified Korea)'을 위한 새로운 비전(new vision)이 될 수도 있으며 쥬신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계기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보다 더 많은 분들이 우리의 뿌리를 찾는 작업에 동참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단순히 영락대제의 영광이니 고구려 지키기니 하는 식으로 잠시 온 누리에 활짝 피었다가 이내 지는 벚꽃 같은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족(漢族)들은 대개 정책들을 수십 년 또는 1백년을 각오하고 시작합니다. 우리는 그런 점이 없습니다. 우리는 정치 권력이 바뀌면 대부분 정책들이 난관에 부딪힙니다. 그러나 '우리의 뿌리'에 대한 연구만은 정치권력과 무관하게 연구되어야할 사안임을 우리 모두는 인식하여야 합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그 동안 『대쥬신을 찾아서』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 동안 제게 용기를 북돋워주신 많은 분들께 고마운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제 글에 대하여 매서운 질정을 해주신 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제 능력의 부족으로 그 분들의 생각들을 제대로 반영해드리지 못한 것이 송구스럽습니다. 그 동안 수고해 주신 프레시안에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에 다시 어떤 주제를 두고 여러분을 뵙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성공하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리고 쥬신의 앞날에 영광이 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2005년 9월 7일
  
  한국연구가 淸鏡 金 雲 會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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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학성산의 행복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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