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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펌)海의 해석에 따른 백제의 전혀 다른 모습....

monocrop 2006. 12. 15. 23:17
대종언어연구소있는 글입니다. 海의 참뜻과 그에 따른 백제의 강역을 밝혀준 아주 좋은 자료라 봅니다.


海(해)와 sea



"글자 한 자의 풀이에 따라 동북아시아의 역사가 달라질 수 있다!"


과거의 역사서는 옛 사관이 과거의 문법과 과거의 글자지식에 입각하여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문

법 및 현재의 문자지식을 가지고 과거의 사서를 대하게 되면 필연코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예컨대, '河川

하천, 河口하구, 氷河빙하' 등의 용어에 쓰이고 있는 '河(하)'는 현대인들에겐 단지 '강'을 뜻하는 일반 명

사로 인식되고 있지만, 고대인들에겐 중국대륙의 '黃河황하'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고대의 사서에 나오는 '河하'를 무심코 '강'의 뜻으로 번역했다간 원전의 의미를 잘못 파악하

는 일이 생길 수 있게 된다.


실제로 고대사서의 문구에 대한 이와 같은 류의 오해는 일반인들이 모르는 가운데, 사학계에선 빈번히 발

생되고 있다. 그래서 본 편에서는 많은 오역 중에서 비교적 비중이 큰 것으로 판단되는 동방문자 '海

해'에 대해 집중 살펴봄으로써, 고대사의 진실을 파헤쳐 보고자 한다.


동방문자 '海해'는 ?(水; 물 수)와 每(늘/매양 매)로 이루어져, 차거나 줄거나 함이 없이 언제나[每] 변함

없는 물(?)인 바다(sea)의 뜻을 나타낸다.


한편, 동방문자 '海해'는 고대의 역사를 보여주는 하나의 고분으로 비유될 수도 있을 만큼 매우 중요한 글

자이다. 고대의 역사서나 비문을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글자 하나 가지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은데, 역사서에서 글자 하나가 차지하는 비중은, 때에 따라선 동양사 전체를 바꿔놓을 수 있을 만큼 상

당한 것이 된다.


'海'는 바다의 뜻 외에, 중국 대륙의 上海상해와 海主해주, 우리 나라의 金海김해와 海南해남 및 南海郡남

해군, 일본의 北海道북해도에서처럼 지명으로 쓰이기도 한다. '海'가 들어간 지역은 대개 바다에 인접해

있거나 또는 고대에 바다 및 바다만큼 큰 강이 있었던 지역이 대부분이다.


역사의 기록에서 '海해'자의 해석이 미묘한 부분은 백제관련 기록의 '大海대해'와 '小海소해' 그리고 '渡

海도해' 부분이다. 약간 복잡한 감이 없지 않으나 현존하는 중국의 역사서들과 고려의『삼국사기』에 나

오는 내용들을, 원문의 해석을 통해, '海'의 베일을 벗겨보도록 하자.


『百濟國本亦扶餘之別種嘗爲馬韓故地在京師東六千二百里, 處大海之北, 小海之南, 東北至新羅, 西海越州, 南渡海至倭國, 北渡海至高麗』

≪舊唐書구당서 199상≫


해석: 백제국은 본래 부여에서 분리된 종족의 나라로, 일찍이 마한의 옛 땅을 국토로 삼았으며, 京師로부

터 동쪽으로 육천이백리 떨어져있고, 大海대해의 북쪽 및 小海소해의 남쪽에 처해있다. 그 동북쪽으로 가

면 신라에 이르고, 서쪽으로 海를 건너면 월주에 이르며, 南쪽으로 海를 건너면 왜국에 이르고, 北쪽으로

海를 건너면 고려(고구려의 약칭)에 도달한다.


『百濟國其先出自夫餘其國北去高句麗千餘里處小海之南其民土著地多下濕率皆山居有五穀其衣服飮食與高句麗同』≪魏書위서 권100 백제전≫


해석: 백제국은 그 선조가 부여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나라는 북쪽으로 고구려와 천여 리 떨어져있으며,

小海의 남쪽에 위치한다. 그 백성들은 토착민들이며, 땅은 저지대가 습한 관계로 모두 고지대(山)에서 산

다. 오곡을 가꾸고 있으며, 그 의복과 음식은 고구려와 동일하다.


『百濟之先出自高麗......爲東夷强國初以百家濟海因號百濟』≪隨書수서 東夷傳≫


해석: 백제의 선조는 고구려에서 왔으며......東夷族의 강국이 되었다. 최초에 100에 이르는 가구를 데리

고 海를 건너 나라를 세웠던 일로 인하여 백제라 부르게 되었다.


『其國東極新羅句麗西南俱限大海處小海南東西四百五十里南北九百餘里其都曰居拔城亦曰固麻城』

≪北史북사 백제전≫


해석: 그 나라[백제]의 동쪽 국경선은 신라와 고구여에 맞닿아 있다. 서남쪽은 모두 大海를 경계로 하며

小海의 남쪽에 위치한다. 동서간[橫횡]의 길이는 450이이고, 남북[縱종]의 길이는 900여리가 된다. 그 도

읍은 居拔城 또는 固麻城으로 불리운다.



위의 내용들 중에서 大海대해와 小海소해속의 '海'는 '百家濟海백가제해'의 '濟건널 제'와 '西海越州, 南

渡海至倭國, 北渡海至高麗'의 '渡건널 도'가 물을 건너다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분명히 지명은 아니

다. 그렇다면 동방문자 '海'에는 현대의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하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

다.


동방문자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은 일반인들은 생소한 사항이지만, B.C.2세기∼A.D.9세기 사이의 중

국대륙 역사서에 나오는 '海해'는 우리가 잘 모르는 또하나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


중국 전한시대의 사마천이 장안 중심의 漢族的한족적 사관에 입각하여 저술한 중국 제1의 정사『사기』

는 세계사적인 통사로도 유명하다. 현재 비치되어있는『사기』는 건륭 4년(1739)에 교간된 것인데, 한무

제때 편찬을 하였으며, 송(420∼479) 때 배인이라는 전문 사학자가 집해하였고, 당(618∼907) 때 사마정

이 색은을 하고, 장수절이 정의를 한 것이다. 이 중에서 송나라 때 배인이 집해를 하면서 晋진(265∼302)

때의 徐廣서광의 말을 인용하여 사서에 나오는 여러 문자들에 대한 많은 정보(4자 성구)를 남겼는데, 그

중 '海해'에 대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海一作河해일작하 <사기 2편 4페이지>

위의 성구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海해'는 한편으론 '河하'의 뜻으로도 쓰인다』


그렇다면『사기』에 나와있는 '海一作河해일작하'라는 말 속의 '河하'는 무엇을 뜻하는가? 문제의 실마리

를 찾기 위해 고려 때 김부식이 편찬한『삼국사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원전에 실린 내용을 소개하면 다

음과 같다.

『백제의 시조는 온조왕으로 그의 아버지는 추모 혹은 북부여에서 난을 피하여 졸본부여까지 온 고구려

의 주몽이라고 한다.
...........................................(중략)......................................................................................

그들은 마침내 漢山한산에 이르러 負兒嶽부아악에 올라가 대대로 자리잡고 살 수 있을만한 땅을 살펴보

았는데, 비류는 海濱해빈에서 살고싶다고 하였다. 이에 10명의 신하가 그에게 다음과 같이 간하였다. "신

들의 생각으로는, 이 河南하남 지역은 북쪽은 漢水한수로 둘러싸여 있고 동쪽은 높은 산악지대여서 적으

로부터 편안할 뿐 아니라, 남으로는 기름진 택지를 바라보고, 서쪽은 大海대해로 막혀있어 험준하니, 그

천혜의 지리적 이점은 다시 얻기 어려운 형세입니다. 그러하오니 이곳에 도읍을 세우는 것이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비류는 이 말을 듣지 않고 백성을 나누어 귀미추로 가서 살았다.


온조는 하남의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처음엔 국호를 十濟십제라 하였다가..... 나중에 百濟백제로 개명하였다.』1)


위의 내용 후반부는 온조 일행이 이미 문제의 '海해'를 건넌 다음, 漢山한산의 負兒嶽부아악에 올라 도읍

지를 살펴보는 장면이다. 신하들은 '河南하남'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사기』에 나오는 '海一作河해일

작하(海는 한편 河의 뜻으로도 쓰인다)'에 의거하여 '河하'를 '海해'로 바꾸어 보면 '河南하남'은 '海의

南'이 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볼 때, 현재 온조 일행은 문제가 되는 '海'의 南쪽 지역에 위치하고 있

는 것이다.

신하들은 자신들이 서있는 위치에서 비류에게 "북쪽은 漢水한수로 둘러싸여 있고"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

다면 문제의 '海'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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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문은 다음과 같다.: 百濟始祖溫祚王其父鄒牟或云高句麗朱蒙自北夫餘逃難至卒本扶餘. 扶餘王無子只有三女見朱蒙知非常人以第二女妻之未幾扶餘王薨朱蒙嗣位生二子長曰沸流次曰溫祚. 及朱蒙在北扶餘在北扶餘所生子來爲太子沸流溫祚恐爲太予所不容. 遂與烏干馬黎等十臣南行百姓從之者多. 遂至漢山登負兒嶽望可居之地沸流欲居於海濱. 十臣諫曰惟此河南之地北帶漢水東據高岳南望沃澤西阻大海其天險地利難得之勢作都於斯不亦宣乎. 沸流不聽分其民歸彌鄒忽以居之. 溫祚都河南慰禮城...國號十濟...改號百濟.


지명은 다른 명칭에 비해 비교적 그 수명이 매우 긴 것이 특징이다. 지명은 보수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

에, 함부로 지명을 바꾸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국가의 정책적인 경우 또는 군국주의자들의 역사조

작행위에 의한 것 외에는, 한 번 일컬어졌던 지명은 거의 영구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

서 볼 때, 지명은 그 자체로 수천 년 후의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고분으로 비유될 수 있는 강력한 증거물이

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온조가 도읍을 세웠다는 지역의 명칭인 '河南하남'은 현재에도 분명히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이

다.

백제는 한반도 내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또 그렇게 교육되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먼저 현

한반도 내의 지명들을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조사해보니 서울시의 강동·송파구와 인접하고 한강

을 경계로 구리시와 남양주시, 남한산성을 경계로 성남시와 광주군과 접한 河南하남시를 찾을 수 있었

다. 그런데, 그 명칭이 뭔가 석연치 않다. 왜냐하면, 그곳이 옛날부터 하남이라고 쭉 불리워 왔던 것이 아

니라 1989년도라는 아주 최근에 경기도 광주군 동부읍의 서부면, 중부면 일부를 합쳐 하남시라는 이름으

로 새로이 작명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와 인접한 중국대륙에는 고래로 '河南하남'이라는 지명이 계속 존재해왔다. 중국대륙

의 '河南省하남성'의 북부에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북부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중국 제2의 강인 유명

한 黃河황하가 있다.


'黃河'의 원명은 그것의 줄임형인 '河하'이다. 다시 말해 '黃河'와 '河'는 동일한 명칭이다. 그 명칭에 '黃

(누루 황)'자가 덧붙게 된 이유는, '물 1말에 진흙 6되'라고 할 정도로 그 유수 중에 누런[黃] 빛깔의 진흙

이 다량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데, 黃河황하를 '黃帝황제가 다스리던 河水하수'의 줄임형으로 보는 견해

도 있다.

후한 시대의 문자학자로 그 명성이 자자한 허신의 저서『설문해자』에는 '河'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河하 : 河水. 出敦煌塞外昆侖山發原注海.


허신은 '河하'를 河水하수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여기서의 '河水'는 물론 지금의 '黃河황하'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여러 고서에 나오는 백제관련 부분의 '海'를 탐구한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온조 일행이 백가를 거느리고 남행하여 '海해'를 건넜다.

≪隨書수서 東夷傳≫

▲'海'를 건넌 후 도읍지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신하들은, 자신들이 서있는 지역을 '河南하남(河의 南

쪽)'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이 건너온 북쪽의 강을 '漢水한수'라 칭하고 있다. ≪삼국사기≫

▲양수에서 출발하여 농서 및 ?저 그리고 번몽산을 지나 동쪽으로 한무제의 도읍지와 저현에 이르는 물

을 '漢水한수'라 한다.

≪사기 권2≫2)

▲'海해'는 한편으론 '河하'의 뜻도 나타낸다. ≪사기 2-4≫

▲'河하'는 河水하수(=황하)이다. ≪설문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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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문은 다음과 같다.: 瀁水出?西?道縣山番蒙山東至武都沮縣爲漢水, 沮 水卽漢水也.<사기 2-15>

위의 여러 자료를 놓고 볼 때, 백제관련 기록의 '海'는 '河', 즉 '황하'를 가리키는 말임에 틀림없는 것 같

다. '河水하수'는 황하의 옛이름이며 '江水강수'는 양자강의 옛이름이다. 그리고 '河南하남'은 황하 이남

의 땅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백제 관련의 하남이 현 중국대륙의 황하 이남 지역이 틀림없다면, 백

제의 위치 또한 중국대륙에 있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결론은 백제가 현 경기·충청·전라지역에 있었다

는 교육을 받은 우리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든다.

아무튼 1989년도에 개명한 서울 밑의 '하남시'는 중국대륙의 하남과 혼동된다. 문제는 앞으로 100년 정도

지나면 우리의 후손들은 하남시를 백제의 하남으로 인식하여, 백제가 현 경기·충청·전라지역이라는 고정

관념은 더욱 굳어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대륙에서 제1의 강은 揚子江양자강[江水강수]이며, 제2의 강은 黃河황하[河水하수]이다. 황하가 고

서에서 '海해'로 불리워졌다면, 당연히 양자강(현재 칭하이성 내에서는 '通天河통천하'로 부르고 있음)

도 '海해'로 불리워졌을 수 있다.


즉, 서지학·문자학·역사언어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고서에 나오는 '大海대해'는 현재의 양자강[강수]이

며, '小海소해'는 현재의 황하[하수]라는 결론이 도출되게 된다.

즉....

『백제국의 위치는 京師로부터 동쪽에 위치하며, 大海[양자강]의 북쪽 및 小海[황하]의 남쪽에 처해있다. 그 동북쪽으로 가면 신라에 이르고, 서쪽으로 海를 건너면 월주에 이르며, 남쪽으로 海[양자강]를 건너면 倭왜국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천여 리 떨어져있는데, 북쪽으로 海[황하]를 건너면 고구려에 도달한다.』



출처 : 韓民族! 옛 제국을 찾아서...
글쓴이 : 박아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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