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 문무님의 글입니다.
6) 백제(百濟)
백제는 부여왕 “구태”의 후이다. 후위 때 백제왕이 말하기를 “백제는 고려에서 나왔으며, 고
려(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다”고 했다.(중략). 晉(진)나라 때 구려(句麗)는 요동을 차지했고,
백제 역시 요서의 진평2군을 차지했다. 이곳은(진평이군) 유성(柳城) 및 북평(北平) 간의 땅
이다. (중략). 그 나라의 서남 지역의 15개소의 섬에 사람이 살고 있으며, 모두 성(城)과 고을
(邑)이 있었다. 후위의 孝文帝(효문제)때 백제를 정복하려는 야욕에 騎兵 十餘萬(기병 십여
만)을 출병하였으나, 백제의 기습공격으로 격패 당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百濟(백제)
는 결코 반도 남부지방에 없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기록이다. 또한 唐(당)에 의해 백
제가 망하고 난 후, 그 옛 땅은 新羅(신라)에 의해 없어졌고, 그 餘衆(여중 : 남아 있던 백성)은
돌궐 또는 말갈로 투항했으며, 점점 쇠약해졌다. 그 땅은 新羅(신라)와 靺鞨(말갈)에 의해 없
어졌다. 반도 남쪽 모퉁이의 백제의 주민이 과연 섬서성 서북쪽에 있던 突闕族(돌궐족)에게
投降(투항)할 수 있을까, 반도에서는 불가능한 사건인 것이다. 또한 반도 남서쪽 모퉁이 땅을
말갈이 가졌다면 한반도 백제와 신라의 북쪽에는 말갈이 있었으며, 이 말갈의 북쪽에는 고구
려가 있어야 사서의 기록을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이라도 靺鞨(말갈)이라는 종
족들은 동북삼성 또는 반도지역에 있었던 적이 없다. 즉 백제는 중원 대륙의 고구려의 남쪽지
대에 있었으면서, 서쪽 강역은 한때는 녕하성 및 감숙 북변( 유성 및 북평간의 진평 2군지역)
지역도 차지한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성(柳城)은 현재의 하북성 지역에 있을수 없
다. 당서 지리지, 진서지리지등 대륙사서를 보면 알수 있으며, 당서 열전 “안록산전”을 보면
안록산이 “유성호인(柳城胡人)”이라 했으며, 그의 어머니는 돌궐족 지역에 있었으며, 안록산
은 6개의 번족(蕃族)언어에 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번족은 하북성에서 서쪽으로 5,7천리쯤
가야하는 청해성 및 신강성 동쪽, 감숙성 서북쪽에 있던 종족들이다. 안록산이 이러한 지역에
서 살다가 동쪽으로 이주 및 당 조정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안록산이 현 하
북성 유성에서 반대로 서쪽으로 이동하여 당 조정에 들어간다는 해설은 역사를 자신의 입맛
에 맞게 조작하는 것이다. 어디에도 이런 기록은 없다는 것이다. 유성은 녕하성과 감숙성 및
섬서성 변경에 있었다. 따라서 백제가 요서지역을 경략했다는 기록을 가지고 하북성 지역을
통치했다는 것은 주관적인 근거 없는 해설이다. 요서지역은 중원 서북변의 녕하성을 포함한
본시의 음산의 남쪽지대이다. 신라와 말갈이 백제의 땅을 갈랐다는 것은 바로 요서지역에서
말갈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지 강원도 강릉지역의 북쪽에 말갈이 있었다고 하는 식
또는 동북삼성 지역에 말갈이 있었다는 식의 해설은 당시의 종족사를 몰라도 너무 모른는 사
람들이 자신의 주장만을 앞세운 근거 없는, 역사 해설인 것이다. 또한 백제가 망하고 난후 남
아있던 백성들 일부가 돌궐에게로 갔다는 것은 백제는 한반도 및 동북삼성 지역과는 티끌만
큼의 관계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당의 안록산이 돌궐족이라는 것에 비추어 보면 바
로 말갈과 돌궐은 중원의 서북변에 있었던 것을 알수 있는 것이다.(백제 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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