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 신라
新羅國,在高麗東南,居漢時樂浪之地,或稱斯羅.魏將毌丘儉討高麗,破之,奔沃沮.其後復歸故國,留者遂爲新羅焉.
위나라 장수 관구검이 고려를 토벌하여 깨뜨리니, (고구려인들이) 옥저로 달아났다가 그 후에 고국에 돌아왔는데, (돌아가지 않고) 남아있던 사람들은 마침내 신라인이 되었다.
<구당서 동이전 신라국편>
신라는 동서가 천리요, 남북은 2천리로 도시와 촌락이 있으며 왕은 금성에 살았고 성둘레는
7~8리에 해당하는데 보초병이 3천명이고 이름하여 사자부대다. 문관, 무관은 17등급이고 진평
왕이 상개부 낙랑군공의 작위를 받았다.』
魏와 고구려의 전쟁으로 고구려인들이 옥저로 달아났다가 후에 일부는 다시 고구려로 돌아왔으
며 돌아가지 않은 남은 고구려인들은 신라인이 되었다는 기록입니다.
옥저에 남은 고구려인들이 결국엔 신라인이 되었다는 말은 후에 옥저가 있는 그곳을 신라가
차지했다고 볼수있으며 그래서 신라인이 됐다고 볼수있습니다.
곧 魏와 고구려의 강역과 옥저와 신라의 강역이 대륙에서 서로 도망칠 수 있을 만큼 서로
가까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구당서에 기록된 신라의 동서가 천리요 남북이 2천리라는 기록은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신라가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참고로 신당서에는 신라 남북의 길이가 3천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후한서(後漢書) 東夷傳
한은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마한(馬韓), 둘째는 진한(辰韓), 셋째는 변진(弁辰)이다. 마한은 서
쪽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54개국이 있었다.그 북쪽으로는 낙랑(樂浪), 남쪽으로는 왜(倭)가 접해
있었다.
진한은 동쪽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12개국이 있었다. 그 북쪽으로는 예맥(濊貊)이 접해있다.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개국으로 되어있다.
그 남쪽으로 왜(倭)와 접해 있는데, 모두 합해 78개 나라라고 적고 있다.
三國志 辰韓篇에는, 진(秦)나라가 망하여 그 유민들이 마한(馬韓)인 한국(韓國)으로 피난왔으
며, 진나라 사람과 마한 사람이 같았다고 했다.
후한서의 삼한과 낙랑,왜,예맥에 관한 기록과 삼국지 진한편만 잘 읽어봐도 이 기록은 대륙에서
의상황을 설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나라 유민들이 마한으로 피난을 온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것은 한가지입니다.
진나라 부근에 마한이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데 진나라 유민이 망국의 혼란때 秦
나라 근처 마한으로 도망왔음을 알수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 한반도에 마한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게 실현 가능한 역사인지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진한이나 변한 낙랑 왜 예맥 모두 대륙에 있었던 것이 되겠지요.
또한 진나라 유민이 마한 동쪽으로 이주해 秦韓이되고 이가 후에 신라가 된다고 역사서는 기록
합니다.
특히나 신라가 망한 진나라 유민이 마한 동쪽으로 이동해와 진한(秦韓)이 되고 거기서 신라가 된
다는 기록은 신라가 진나라와 뗄래야 뗄수 없는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삼국사기는 또한 신라는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했으며 진나라 또한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
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진나라는 신라의 선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秦나라와 신라는 아주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으며 신라는 秦나라 동쪽에서 나라를 시작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조선의 지리서 택리지에도 신라에 관한 이상한 문구가 보입니다.(이글은 최두환님의 글
입니다.)
우리 조선의 지리서인 <택리지>에 보면 신라의 북쪽에 "大漠"이 있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무지
하게 넓은 큰 사막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大漠은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동쪽으로 흥안령에서 서쪽으로 천산산맥까지
이르는 사이에 뻗어져 있는 사막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 지리적 구분이 흥안령이 동쪽 끝이라고 했으므로, 지금의 만주벌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
러니 한반도 북쪽을 두고 신라의 북쪽이라고 한다면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큰 사막을 기록한 <택리지><중국고금지명대사전>의 내용은 같은 지역을 두고 말한 것임에 분명
합니다.
그렇다면 그 큰 사막의 남쪽은 산서성 남쪽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며 신라 또한 그곳에 있었다
고 할 수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라의 서쪽에 고구려, 신라의 서남쪽이 백제라는 <25사>속의 조선열전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배치도를 참고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태종무열왕 5년
三月 王以何瑟羅地連접靺鞨 人不能安 罷京爲州 置都督以鎭之 又以悉直爲北鎭
3월에 왕은 하슬라(강릉)의 땅이 말갈과 연접하여 인민이 편안치 못함을 이유로 경을
없애어 주를 삼고 도독을 두어 지키게 하였으며 또 실직(삼척)으로써 북진을 삼았다.
의자왕(義慈王)
十五年 八月. 王與高句麗靺鞨侵攻破新羅三十餘城.
15년 8월. 의자왕은 고구려 말갈과 함께 신라의 30여 성을 침공하여 깨뜨렸다.
당서 실위전
新羅,弁韓之遺種也。其國地、君世、物俗見於唐。其大族曰金氏、樸氏,自
唐高祖時封金真為樂浪郡王,其後世常為君長。同光元年,新羅國王金樸英遣使者
來朝貢。長興四年,權知國事金溥遣使來。樸英、溥世次、卒立,史皆失其紀。自
晉已後不復至。
黑水靺鞨,本號勿吉。當後魏時見中國。其國,東至海,南界高麗,西接突厥,北鄰室韋,蓋肅慎氏之地也。其眾分為數十部,而黑水靺鞨最處其北,尤勁悍,無
文字之記。其兵,角弓、楛矢。同光二年,黑水兀兒遣使者來,其後常來朝貢,自
登州泛海出青州。明年,黑水胡獨鹿亦遣使來。兀兒、胡獨鹿若其兩部酋長,各以
使來。而其部族、世次、立卒,史皆失其紀。至長興三年,胡獨鹿卒,子桃李花立,
嘗請命中國,後遂不復見雲。
黑水靺鞨(흑수말갈)의 기록을 보면, 강역을 說明(설명)하면서, 東(동)쪽으로는 바다(海)에 이
르고,南(남)쪽에는高麗(고려)가 있고, 西(서)쪽에는 突厥(돌궐)과 접하고 있으며,북쪽 가까이는
室韋(실위)가 있으며, 이 모두는 옛 肅愼氏(숙신씨)의 땅이라고 했다.
...............................................중략...............우리역사의 비밀 문무님의 글중 일부에서..
其西則焉耆之地,東則朝鮮之地,北則渡沙漠,窮瀚海,南則臨大磧。其常所會庭,敦煌、張掖之北。(북사)
♦ 윤윤(연연. 유연)의 疆域(강역)은 ;
1) 서쪽으로는 신강성 언기(焉耆)의 땅이요
2) 동쪽으로는 朝鮮(조선,고구려를 가리킴)의 땅이요
3) 북쪽을 건너면 사막이요, 瀚海(한해)에 끝나며,
4) 남쪽으로는 청해성 대적(大磧)이다.
말갈에 관한 당서의 기록을 보면 말갈이란 종족이 서쪽으로는 돌궐과 접하며 남쪽에 고구
려가 있다고 합니다. 당시 신강성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넓게 퍼져 있었던 종족이 돌궐인데 이런
종족과 땅을 맞대고 있었다는 말갈이 신라,백제를 침략하며 또한 고구려와도 땅이 접해있다면
이는 분명 대륙의 고구려 백제 신라를 말하고 있다고 봅니다.
또한 북사에 실린 기록만 봐도 당시의 고구려의 위치가 동북삼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감숙성과 내몽고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新羅國,在高麗東南,居漢時樂浪之地,或稱斯羅.魏將毌丘儉討高麗,破之,奔沃沮.其後復歸故國,留者遂爲新羅焉.
위나라 장수 관구검이 고려를 토벌하여 깨뜨리니, (고구려인들이) 옥저로 달아났다가 그 후에 고국에 돌아왔는데, (돌아가지 않고) 남아있던 사람들은 마침내 신라인이 되었다.
<구당서 동이전 신라국편>
신라는 동서가 천리요, 남북은 2천리로 도시와 촌락이 있으며 왕은 금성에 살았고 성둘레는
7~8리에 해당하는데 보초병이 3천명이고 이름하여 사자부대다. 문관, 무관은 17등급이고 진평
왕이 상개부 낙랑군공의 작위를 받았다.』
魏와 고구려의 전쟁으로 고구려인들이 옥저로 달아났다가 후에 일부는 다시 고구려로 돌아왔으
며 돌아가지 않은 남은 고구려인들은 신라인이 되었다는 기록입니다.
옥저에 남은 고구려인들이 결국엔 신라인이 되었다는 말은 후에 옥저가 있는 그곳을 신라가
차지했다고 볼수있으며 그래서 신라인이 됐다고 볼수있습니다.
곧 魏와 고구려의 강역과 옥저와 신라의 강역이 대륙에서 서로 도망칠 수 있을 만큼 서로
가까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구당서에 기록된 신라의 동서가 천리요 남북이 2천리라는 기록은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신라가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참고로 신당서에는 신라 남북의 길이가 3천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후한서(後漢書) 東夷傳
한은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마한(馬韓), 둘째는 진한(辰韓), 셋째는 변진(弁辰)이다. 마한은 서
쪽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54개국이 있었다.그 북쪽으로는 낙랑(樂浪), 남쪽으로는 왜(倭)가 접해
있었다.
진한은 동쪽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12개국이 있었다. 그 북쪽으로는 예맥(濊貊)이 접해있다.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개국으로 되어있다.
그 남쪽으로 왜(倭)와 접해 있는데, 모두 합해 78개 나라라고 적고 있다.
三國志 辰韓篇에는, 진(秦)나라가 망하여 그 유민들이 마한(馬韓)인 한국(韓國)으로 피난왔으
며, 진나라 사람과 마한 사람이 같았다고 했다.
후한서의 삼한과 낙랑,왜,예맥에 관한 기록과 삼국지 진한편만 잘 읽어봐도 이 기록은 대륙에서
의상황을 설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나라 유민들이 마한으로 피난을 온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것은 한가지입니다.
진나라 부근에 마한이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데 진나라 유민이 망국의 혼란때 秦
나라 근처 마한으로 도망왔음을 알수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 한반도에 마한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게 실현 가능한 역사인지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진한이나 변한 낙랑 왜 예맥 모두 대륙에 있었던 것이 되겠지요.
또한 진나라 유민이 마한 동쪽으로 이주해 秦韓이되고 이가 후에 신라가 된다고 역사서는 기록
합니다.
특히나 신라가 망한 진나라 유민이 마한 동쪽으로 이동해와 진한(秦韓)이 되고 거기서 신라가 된
다는 기록은 신라가 진나라와 뗄래야 뗄수 없는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삼국사기는 또한 신라는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했으며 진나라 또한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
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진나라는 신라의 선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秦나라와 신라는 아주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으며 신라는 秦나라 동쪽에서 나라를 시작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조선의 지리서 택리지에도 신라에 관한 이상한 문구가 보입니다.(이글은 최두환님의 글
입니다.)
우리 조선의 지리서인 <택리지>에 보면 신라의 북쪽에 "大漠"이 있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무지
하게 넓은 큰 사막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大漠은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동쪽으로 흥안령에서 서쪽으로 천산산맥까지
이르는 사이에 뻗어져 있는 사막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 지리적 구분이 흥안령이 동쪽 끝이라고 했으므로, 지금의 만주벌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
러니 한반도 북쪽을 두고 신라의 북쪽이라고 한다면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큰 사막을 기록한 <택리지><중국고금지명대사전>의 내용은 같은 지역을 두고 말한 것임에 분명
합니다.
그렇다면 그 큰 사막의 남쪽은 산서성 남쪽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며 신라 또한 그곳에 있었다
고 할 수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라의 서쪽에 고구려, 신라의 서남쪽이 백제라는 <25사>속의 조선열전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배치도를 참고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태종무열왕 5년
三月 王以何瑟羅地連접靺鞨 人不能安 罷京爲州 置都督以鎭之 又以悉直爲北鎭
3월에 왕은 하슬라(강릉)의 땅이 말갈과 연접하여 인민이 편안치 못함을 이유로 경을
없애어 주를 삼고 도독을 두어 지키게 하였으며 또 실직(삼척)으로써 북진을 삼았다.
의자왕(義慈王)
十五年 八月. 王與高句麗靺鞨侵攻破新羅三十餘城.
15년 8월. 의자왕은 고구려 말갈과 함께 신라의 30여 성을 침공하여 깨뜨렸다.
당서 실위전
新羅,弁韓之遺種也。其國地、君世、物俗見於唐。其大族曰金氏、樸氏,自
唐高祖時封金真為樂浪郡王,其後世常為君長。同光元年,新羅國王金樸英遣使者
來朝貢。長興四年,權知國事金溥遣使來。樸英、溥世次、卒立,史皆失其紀。自
晉已後不復至。
黑水靺鞨,本號勿吉。當後魏時見中國。其國,東至海,南界高麗,西接突厥,北鄰室韋,蓋肅慎氏之地也。其眾分為數十部,而黑水靺鞨最處其北,尤勁悍,無
文字之記。其兵,角弓、楛矢。同光二年,黑水兀兒遣使者來,其後常來朝貢,自
登州泛海出青州。明年,黑水胡獨鹿亦遣使來。兀兒、胡獨鹿若其兩部酋長,各以
使來。而其部族、世次、立卒,史皆失其紀。至長興三年,胡獨鹿卒,子桃李花立,
嘗請命中國,後遂不復見雲。
黑水靺鞨(흑수말갈)의 기록을 보면, 강역을 說明(설명)하면서, 東(동)쪽으로는 바다(海)에 이
르고,南(남)쪽에는高麗(고려)가 있고, 西(서)쪽에는 突厥(돌궐)과 접하고 있으며,북쪽 가까이는
室韋(실위)가 있으며, 이 모두는 옛 肅愼氏(숙신씨)의 땅이라고 했다.
...............................................중략...............우리역사의 비밀 문무님의 글중 일부에서..
其西則焉耆之地,東則朝鮮之地,北則渡沙漠,窮瀚海,南則臨大磧。其常所會庭,敦煌、張掖之北。(북사)
♦ 윤윤(연연. 유연)의 疆域(강역)은 ;
1) 서쪽으로는 신강성 언기(焉耆)의 땅이요
2) 동쪽으로는 朝鮮(조선,고구려를 가리킴)의 땅이요
3) 북쪽을 건너면 사막이요, 瀚海(한해)에 끝나며,
4) 남쪽으로는 청해성 대적(大磧)이다.
말갈에 관한 당서의 기록을 보면 말갈이란 종족이 서쪽으로는 돌궐과 접하며 남쪽에 고구
려가 있다고 합니다. 당시 신강성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넓게 퍼져 있었던 종족이 돌궐인데 이런
종족과 땅을 맞대고 있었다는 말갈이 신라,백제를 침략하며 또한 고구려와도 땅이 접해있다면
이는 분명 대륙의 고구려 백제 신라를 말하고 있다고 봅니다.
또한 북사에 실린 기록만 봐도 당시의 고구려의 위치가 동북삼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감숙성과 내몽고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처 : 韓民族! 옛 제국을 찾아서...
글쓴이 : 서우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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