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ient Culture &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이 말하는 '주스'는 고조선.

monocrop 2012. 8. 13. 22:07

[기고] ‘주스(조선)’는 중국에서 왔다?종교와 정치 결합한 카자흐스탄 주스의 원류인 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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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2.10  21:06:29
김정민 박사  |  sunlove10@ikoreanspirit.com

지금 내가 있는 카자흐스탄은 한국의 상고시대 역사와 매우 깊은 역사적 관련이 있다. 지난 2011년 1월 14일자 젤라바이 카자흐스탄 (Деловой Казахстан)이라는 신문에서는 카자흐스탄 통치제도인 '주스'의 기원에 관한 기사가 났다.  

   
술탄 아킴베코바 (Султан Акимбекова)

이 기사에 의하면 現 카자흐스탄의 주스 (Жүз)제도가 중국으로부터 왔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물론 말로는 몽골에서 왔다고 하지만, 몽골인들이 중국의 정치제도를 도입해서 카자흐인에게 전달했다는 식으로 말을 하고 있어 문제이다. 신문의 기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이후,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역사관은 구시대적 유물로 남게 되었으며, 독립국가인 카자흐스탄은 새로운 역사적 해석과 정체성을 수립해야 할 때가 왔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은 아직 이러한 정체성을 수립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특히 일부 재야사학계에서 말하는 주스의 기원이 고대로부터 왔다는 주장은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취급하려는 아마추어적 성향이 있어 적합하지 않다.

카자흐스탄의 주스의 기원은 BC 3세기, 중국 춘추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때 중국인들이 처음으로 종교와 정치를 결합한 통치제도를 확립했다. 이 제도가 후일 몽골제국에 도입되었으며 중앙아시아에 전래된 것이다. 카자흐스탄에 주스제도가 성립된 것은 AD 17세기 때로 당시 중가르족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카자흐, 몽골, 노가이족이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의 주스제도가 중국으로부터 왔다는 술탄 아킴베코바 (Султан Акимбекова)의 주장은 옳지 않다고 본다. 특히 그는 그가 주장하는 근거를 정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럼 내가 본 주스의 개념과 상기 기사를 비교해보고 주스의 기원이 중국인지 한국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주스 (Жүз)란 카자흐스탄의 전통정치제도이다. 주스는 한국의 고조선과 같은 정치제도와 풍습을 지니고 있었는데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표) 주스와 고조선의 비교

 

   

 

 

 

위의 표를 보면 고조선과 카자흐스탄의 주스가 같은 시스템에서 왔음을 알 수 있으며 심지어 단군 (탱그리), 주잔 (조선), 아사달 (아스타나)라는 명칭의 유사성으로 보아 이들이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고조선 (BC 2,333)의 성립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보다 더 빠른데 그렇다면 중국이 고조선의 제도를 도입했고 이후, 카자흐스탄으로 갔다는 것이 더 논리적이지 않을까? 왜 이 카자흐 역사학자는 주스의 원류를 말하면서 고조선의 존재를 제외시켰을까?

둘째 카자흐 민족의 기원이 되는 사람들은 동쪽에서 온 사람들인데 이들이 동쪽에 살 때 불렸던 국가 명은 오늘날 주스의 고대어인 주잔 (Жужан)이다.

사진2) 주잔 (AD 402 ~ 555)과 주잔을 표기한 한자들  

   

 주잔의 명칭 중에 茹茹 (韓: 여여, 中: 루루, 羅: 주주)가 있는데 발음의 유사성으로 보아 이 '주주' 발음에서 오늘날 카자흐스탄의 '주스' (Жүз: 원래 발음은 '주즈'이나 통상적으로 주스라고 함.)가 왔다고 볼 수 있다.

'주잔'이라는 나라도 고조선과 같이 동일하게 삼국으로 분할 통치했으며, 지도자를 신성시 여기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현現 카자흐스탄의 주스, 고대 카자흐스탄의 주스, 고조선의 제도와 운영방식은 같았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종교와 정치가 결합된 형태의 '주스'라는 통치제도는 북방민족의 전통적인 통치방식으로 통상적으로 모든 북방민족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전통이었다.

그림3) 태양의 아들로 보이기 위한 각종 장식들 카자흐스탄 암각화, 인디언 , 쿨트근 , 가야왕관  

   

 고대 북방민족들에게 신은 하늘에 있고 그 신은 곧 태양이라는 태양숭배사상이 있었다. 이 태양숭배사상이 인간사회의 발전과 함께 지도자를 신으로부터 선택된 또는 신의 아들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종교와 정치가 혼합된 형태의 통치구조가 발생했으며, 통치자들은 자신이 하느님 (태양)으로부터 선택 받은 지도자라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깃털, 새, 황금, 금줄, 월계관 등등 태양을 상징하는 각종 물건들을 머리에 쓰거나 장식했었다.

이러한 전통은 유물 상으로만 봐도 상당히 오래된 풍습으로 그 기원이 무려 BC 10,000년까지 올라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되었다. 따라서 종교와 정치가 결합된 형태의 통치제도의 기원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북방민족의 풍습부터 먼저 언급해야 순서가 맞는다.

그렇다면 왜 카자흐스탄에서 이러한 역사적 해석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러시아로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독립하고자 하는 카자흐인들의 마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러시아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가 빈약하다 보니 중국인들이 써 놓은 기록을 보고 자신들의 기원을 중국으로 설정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즉 역사적 정체성을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옮겼을 뿐,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특히 자신들의 고대 역사인 '주잔'과 실질적으로 유물이 발견되는 스키타이족의 역사도 신화로 치부해 버리고 자신들의 역사가 서기 후 17세기로부터 시작한 것으로 설정하고자 하는 행동은 카자흐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기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카자흐스탄 내에 살고 있는 러시아, 우즈벡, 위구르, 고려인 등등이 카자흐인들을 역사와 문화가 짧은 저개발민족으로 인식해 120여개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고 카자흐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장애만 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이러한 중앙아시아 민족들의 최근의 역사관을 이용해 중앙아시아에 최초로 거주했던 사람은 중국인이라는 논리를 펼치며 실질적으로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중국문헌 (史記)에 근거해 국경협약 때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타지키스탄으로부터 광대한 영토를 가져갔으며 중국의 중앙아시아 영토잠식에 대한 야욕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주스'가 한국의 '조선'과 같은 제도이며 그 근원이 같다는 것은 한국사학계에 있어서도 대단히 긍정적이고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해 그 동안 강단사학계와 재야사학계가 갑론을박하던 조선의 위치와 개념정립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기회인 만큼, 한국에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중앙아시아의 고대사연구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카자흐스탄의 역사학자들이 자신들의 기원을 중국에서 찾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현재 카자흐스탄에서는 소련의 붕괴 이후, 자국의 역사를 자국의 시각에서 다시 쓰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며, 이 나라 대통령이 직접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진두지휘하고 있다. '술탄 아킴베코프'라는 교수도 우리나라의 동북아역사재단과 같은 카자흐스탄 정치-문화 연구센터에서 근무하며 카자흐 역사의 정체성을 수립하고자 연구하는 교수 중의 한 명이다.

터키 중앙아시아 한국 일본에 이르는 광활한 알타이-투르크 공동 역사서 출판해야

이들은 스스로도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료부족으로 시달리는 중앙아시아 역사학자들에게 러시아어로 번역된 한국의 많은 역사서를 보급하고 이들과 함께 공동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 각종 컨퍼런스와 세미나를 개최해 의견조율의 단계를 거친 다음, 터키서부터 일본에 이르는 광활한 알타이-투르크 공동 역사서를 각국의 언어로 출판하는 일일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터키와 일본이 긴밀하게 오래 전부터 진행을 해왔으나, 문제는 일본이 한국의 고조선 역사 자체를 부정해오다 보니 투르크계 민족과 알타이계 민족을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인, 고조선이란 존재를 표면으로 부상시키기가 어려워 난항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고조선의 계보를 이어받은 대한민국이 참여해야만 이 부분을 해결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한국과 일본간에 오랫동안 해묵은 논쟁이 되었던 고조선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기간 동안 일본제국은 만주와 한반도의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고조선의 역사를 지우고자 했으나, 오늘날의 일본은 오히려 중국의 경제, 군사적 맹추격으로 인해 주변국가들과 친선을 도모할 필요성이 생겼으므로 이런 시기에 한국이 일본, 터키, 중앙아시아국가들과 함께 고조선의 연구를 공동으로 한다 해도,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서 고조선을 의도적으로 삭제하고자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란 추운 겨울날 따뜻한 방에서 고구마를 까먹으면서 할아버지에게 듣는 옛날얘기와는 다르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한 민족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해줌과 동시에 현재 삶을 살아가는 후손들의 정치, 경제, 외교적 발전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중국은 천연자원과 광활한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없는 역사도 억지로 만들고 있다. 일본도 2차 세계대전의 시기에 동일한 만행을 저질렀었다. 그런데 왜 정작 우리는 있는 역사조차 제대로 간수 못하고 주변민족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있단 말인가?

역사학자는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 자국의 현재적 이익과 취득 가능한 잠재적 이익을 합법적으로 가질 수 있게 해주기 위한 명분을 잘 만들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나를 학자적 소양이 없는 모략가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그렇다면 정작 기존의 강단사학자들은 학자적 양심적 소양을 가지고 문헌적 유물적 과학적 근거에 따라 지금의 역사서를 썼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고조선이 중국에 있었는지 한반도에 있었는지를 차치하고서라도 왜 그들은 중국학자들이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강탈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가? 그러한 태도를 학자적 양심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

지금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의 국가들은 독립 이후로 러시아의 영향을 벗어나 자신들만의 역사관을 수립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이들은 강대한 러시아에 아직 힘이 부족한 관계로 서로 연대해서 공동의 역사책을 쓰고자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아직 공식적인 역사관을 수립하지 않았을 때, 한국이 함께 고대사를 써 나간다면, 일본이 동해표기를 세계지도에서 지워버렸을 때와 같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될 것이다.

2011년 2월 8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김정민 카자흐스탄 카즈구대학 국제관계학과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