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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모 히데오의 도전 (1)

monocrop 2011. 11. 10. 22:05

 

노모 히데오의 도전 (1)

 

 

2008/04/23 오 전 8:48 | 야구라 뽕 | [손윤]

MLB.japan에 갔다가, '노모의 히데오의 도전'이라는 시사통신사의 사진 특집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노모 히데오에 대해서 뭔가를 쓸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약간 개인적인 설명을 덧붙여서 편집을 해봤다.

시사통신사에서 설명한 것은 황토색으로 표시하였다.


흔히들 일본 국민의 70~80%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팬이라고 말해질 정도로,

일본 프로야구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만의 리그이다.

1980년대에 세이부 라이온즈가 황금시대를 구가하기도 했지만,

인기만큼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아성을 깨지는 못했다.

 

그런 가운데 일개 개인이 요미우리 자이언츠 팀 전체의 인기를 능가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노모 히데오와 스즈키 이치로였다.

바톤을 터치하듯이 등장한 두 선수의 당시 인기는 정말 날으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였다.

일례로 야구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던 지인이 노모 히데오와 악수를 나누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복권을 살지 말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고교시절에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약한 전력 탓으로 한번도 코시엔 대회를 밟지 못한 노모 히데오는

고교를 졸업한 후에 프로가 아닌 사회인 야구팀인 신닛테츠에 입단하였다.

여기에서 노모 히데오의 트레이드 마크인 '포크볼'을 연마한 그는

2년째인 1988년에는 사회인 야구의 넘버원 투수로 자리를 잡았고,

서울 올림픽에서는 미국에게 아깝게 패배했지만, 은메달을 목에 달았다.

 

아마야구의 최고 에이스로 군림한 노모 히데오는 1989년에 드래프트에 모습을 드러냈고,

게다가 어느 구단에 지명을 받더라도 입단하겠다고 밝히면서,

드래프트에서는 역대 유래가 없는 8개 구단으로부터 1위 지명을 받았다.

결국, 추첨으로 킨테츠 버펄로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 1990 -


 

 

데뷔 4번째 경기인 4월 29일 블루웨이스와의 경기에서

당시 일본 프로야구 타이 기록인 17탈삼진을 뺏어내는 완투승으로 첫승을 신고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0년 10월 10일 세이부구장에서 일본 프로야구 신기록인 21경기째 두자리 수 탈삼진을 달성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0년 10월 22일 사와무라상을 수상한 후에 오사카의 미야코 호텔에서 기자회견 중의 노모 히데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0년 10월 26일 토쿄의 타카나와 프린스 호텔에서
퍼시픽 리그 MVP를 수상한 버펄로스의 노모 히데오.


1990
G GS W L CG SHO IP ERA SO BB H/9
K/9
BB/9
WHIP
Buffaloes
29
27
18
8
21
2
235.0
2.91
287
109
6.40
10.99
4.17
1.174


투수부분 3관왕(다승, 방어율, 탈삼진)을 차지한 노모 히데오는

신인왕은 물론이고, 일본 프로야구의 사이영상격인 사와무라상, 리그 MVP를 수상하였다.

퍼시픽리그의 투수가 사와무라상의 대상이 된 것은 1989년부터로,

그 첫 수상자가 바로 노모 히데오였다.

 

또한, 지금까지 신인왕과 사와무라상을,

혹은 신인왕과 리그 MVP를 동시에 수상한 경우는 몇 번 있었지만,

그처럼 3개의 타이틀을 싹쓸이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로,

얼마나 당시의 일본 열도에 토네이도 열풍이 불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1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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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월 30일 수상관저에서 열린 일본 프로스포츠 대상 수상식에서

수상인 카이후 토시키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1991 G GS W L CG SHO IP ERA SO BB H/9
K/9
BB/9
WHIP
Buffaloes
31
29
17
11
22
4
242.3
3.05
287
128
6.80
10.66
4.75
1.284


4월 7일부터 5월 9일까지 일본 프로야구 기록인 6경기 연속 두자리 수 탈삼진을 기록한 그는

최다승과 최다 탈삼진 2관왕에 올랐다.


- 1992, 1993 -


1992
G GS W L CG SHO IP ERA SO BB H/9
K/9
BB/9
WHIP
Buffaloes
30
29
18
8
17
5
216.7
2.66
228
117
6.23
9.47
4.86
1.232

역시 최다승과 최다 탈삼진 2관왕을 차지하였다.


1993 G GS W L CG SHO IP ERA SO BB H/9
K/9
BB/9
WHIP
Buffaloes
32
32
17
12
14
2
243.3
3.70
276
148
7.44
10.21
5.47
1.434

최다승과 최다 탈삼진 2관왕을 4년 연속으로 제패하였다.


- 1994 -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4년 7월 1일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일본 프로야구 기록인 한 경기 최다인 16볼넷을 허용하고서도

완투승을 거둔 그를 축하하고 있는 퍼벌로스의 선수들.

 

3실점 완투를 하는 동안에 기록한 투구수는 189개였다.


1994 G GS W L CG SHO IP ERA SO BB H/9
K/9
BB/9
WHIP
Buffaloes
17
17
8
7
6
0
114.0
3.63
126
86
7.58
9.95
6.79
1.860


어깨 부상으로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펼치지 못한 노모 히데오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5시즌을 보내면서

통산 78승 46패 1세이브 80완투(13완봉) 방어율 3.15, 1,204탈삼진 등을 남기고,

다년 계약과 대리인 제도를 둘러싸고 버펄로스와 대립을 보인 끝에

임의 은퇴 형식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표명하였다.


-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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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 9일 오사카에서 기자회견을 통해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고 전격 선언하고 있다.

 

 

사실 이 당시에 노모 히데오가 메이저리그에서 통용될 것이라고 생각한 전문가는

일본에서도 매우 드물었다.

전해에 어깨 부상으로 부진한 그였기에, 무리한 도전으로 말해졌고,

몇 달 있다가 다시 일본으로 유턴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예상과는 달리

5월 2일 자이언츠와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5이닝 1피안타, 4사사구 7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한 그는

5월 17일 파이러츠와의 경기에서는

7이닝 2피안타 3사사구 14탈삼진을 기록하면서 미국 전역에 토네이도 경보를 울렸다.

그리고, 마침내 6월 2일 메츠를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두는 등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

13경기에 등판해서 6승 1패 방어율 1.99, 119탈삼진이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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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7월 11일 일본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그것도 선발 투수로 선정된 노모 히데오가

빅유닛 랜디 존슨과 함께 텍사스 알링턴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신인 - 일본 프로야구 출신을 신인으로 취급하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 으로서는

역대 2번째(첫번째는 1976년에 빅버드 마크 피드리치)로 올스타전 선발 투수로 등판한 그는

2이닝 동안 1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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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9월 30일 파드레스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해서 13승째를 올렸고,

이 승리로 다저스는 지구 수위를 결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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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9월 30일 다저스의 지구 수위 결정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샴페인 세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리그 디비젼 시리즈에서는 3차전에 등판해서 5이닝 5실점하는 난조 끝에 패전을 기록하였고,

다저스도 레즈에게 스윕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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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1월 10일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선정된 것에 대해서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에서 신인왕을 거머쥔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1995
G GS W L CG SHO IP ERA SO BB H/9
K/9
BB/9
WHIP
Dodgers
28
28
13
6
4
3
191.3
2.54
236
78
5.83
11.10
3.67
1.056


무라카미 마사노리 이후 31년만에 메이저리그에 선 노모 히데오는

13승 6패, 방어율 2.54 등과 함께 236탈삼진으로 리그 탈삼진왕을 차지하였다.


- 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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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2월 8일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에

다저스의 노모 히데오와 매리너스의 스즈키 마코토가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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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3월 8일 말린스와의 오픈경기에 등판한 노모 히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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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1월 2일 메이저리그 선발 팀의 일원으로서 승리를 축하하고 있는 노모 히데오.


1996
G GS W L CG SHO IP ERA SO BB H/9
K/9
BB/9
WHIP
Dodgers
33
33
16
11
3
2
228.3
3.19
234
85
7.09
9.22
3.35
1.161


9월 17일 로키스와의 경기에서 쿠어스필드에서는 첫 노히터 경기를 달성하였다.

9이닝 동안 허용한 것은 4사사구로, 8탈삼진을 기록하였다.

다저스가 와일드카드로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지만,

전년도에 이어서 3차전에 등판한 그는

3과 ⅔이닝 동안 5실점하는 난조를 보이면서 패전의 멍에를 썼고,

다저스도 브레이브스에게 스윕을 당하였다.


- 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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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4월 3일 필리스와의 시즌 첫 경기에 등판해서 메이저리그 통산 30승째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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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5월 18일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엑스포스와의 경기에서

완투를 거두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11탈삼진을 기록하면서 시즌 5승째를 챙겼다.


1997
G GS W L CG SHO IP ERA SO BB H/9
K/9
BB/9
WHIP
Dodgers
33
33
14
12
1
0
207.3
4.25
233
92
8.38
10.11
3.99
1.375


3년 연속 두자리 수 승리와 200탈삼진 이상을 기록하였다.

또한, 2년 연속으로 200이닝 이상을 소화하였다.


-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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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3월 4일 메츠에 진출한 요시이 마사토와 함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요시이 마사토도 일정 수준의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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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4월 18일 초반부터 제구에 난조를 보이면서 8실점한 끝에 1회 도중에 강판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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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6월 5일 레드삭스와의 인터리그를 앞도고 보도진에게 둘러싸인 메츠의 노모 히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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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6월 9일 데블레이스와의 경기에서 메츠로 이적한 후 첫 선발 등판한 노모 히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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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8월 21일 바비 발렌타인 감독이

노모 히데오의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격려하지만,

6회에 강판당하면서 시즌 11패째를 기록하였다.


1998
G GS W L CG SHO IP ERA SO BB H/9
K/9
BB/9
WHIP
Dodgers
12
12
2
7
2
0
67.7
5.05
73
38
7.58
9.71
5.05
1.439
Mets
17
16
4
5
1
0
89.7
4.82
94
56
7.33
9.43
5.62 1.404


오프시즌에 팔꿈치 수술을 받은 영향 등으로 부진한 성적을 거두던 노모 히데오는

시즌 도중에 메츠로 트레이드되었다.

4월 28일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는 동양계 메이저리거 최초로 홈런을 기록하였다.


-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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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 9일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등판해서,

메이저리그 통산 50승째인 동시에, 브루어스에서 시즌 첫 승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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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12일 천황 즉위 10년을 기념한 국민제전에 참석한 라모스 루이, 메이저리거인 노모 히데오,

쥬니치 드레곤즈의 열혈남아 호시노 센이치 감독, 육상 햄머 던지기 선수인 무로후시 코지 등이 보인다.


1999
G GS W L CG SHO IP ERA SO BB H/9
K/9
BB/9
WHIP
Brewers
28
28
12
8
0
0
176.3
4.54
161
78
8.83
8.22
3.98
1.423


시즌 개막 직전에 메츠로부터 충격적인 방출 조치를 당한 노모 히데오는

컵스의 마이너리그 팀을 거쳐서 브루어스의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나설 수 있었다.

이제는 한물갔다는 부정적인 평가 속에서 그는 12승을 거두면서 부활에 성공하였다.


-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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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월 22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계약을 맺은 후에 기자 회견을 하는 노모 히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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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3일 어슬레틱스의 홈구장인 네트워크 어소시에이츠 콜로세움에서

타이거스의 개막전 선발 투수로 등판해서 역투하고 있는 노모 히데오.

일본인 메이저리거로서는 최초로 개막전 선발 투수로 나서서,

7이닝동안 3피안타, 3사사구, 3실점, 8탈삼진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00
G GS W L CG SHO IP ERA SO BB H/9
K/9
BB/9
WHIP
Tigers
32
31
8
12
1
0
190.0
4.74
181
89
9.05
8.57
4.22
1.474


FA로 처음으로 AL로 이적한 그는 원할한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2년 연속 10승을 거두는 데는 실패하였다.


-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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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2월 18일 레드삭스의 배터리진이 캠프에 들어갔다.

버펄로스 시절의 백넘버인 '11'을 단 노모 히데오가

첫날부터 불펜에서 37구를 던지면서, 신천지인 레드삭스에서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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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5월 8일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 4회에 2루타를 친 후에 3루에 진루한 스즈키 이치로와 노모 히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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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5월 25일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서
완봉승을 거둔 후에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노모 히데오.


2001
G GS W L CG SHO IP ERA SO BB H/9
K/9
BB/9
WHIP
Red Sox
33
33
13
10
2
2
198.0
4.50
220
96
7.77
10.00
4.36
1.348


메이저리그는 물론이고,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단 한번도 우승을 맛보지 못한 노모 히데오는

우승에 대한 열망을 안고 레드삭스에 합류하였다.

4월 4일 오리올스와의 시즌 첫 경기에서

그가 9이닝 동안 11탈삼진을 뺏어내면서 허용한 것은 사사구 3개가 전부였다.

역대 4번째로 양대리그에서 노히터를 달성한 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위에 나오는 5월 25일에는 블루제이스를 상대로 1안타 완봉승을 거두었다.

한 시즌에 노히터와 1안타 완봉을 동시에 기록한 경우는

1997년에 말린스의 케빈 브라운 이후 역대 2번째였다.

또한, 220탈삼진으로 리그 탈삼진왕에 오르면서, 역시 양대리그에서 탈삼진왕에 오른 선수가 되었다.

출처 : 좋은세상
글쓴이 : leekej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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