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유물이 많은 까닭은?
보검·금관·유리·뿔잔 등
경주 대릉원지구 계림로 14호분에서 나온 장식 보검(왼쪽)과 키질 석굴에서 발견된 장식 보검. 두 개의 검이 많이 닮았다. |
경주 시내 중심지인 계림로 14호분에서는 특이한 형태의 장식 보검이 발굴됐습니다. 이 보검은 고구려ㆍ백제ㆍ왜국 등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닮은 장식 보검은 카자흐스탄의 보르보예에서도 출토된 바 있습니다.
특이한 건 신라에서 수천 km 떨어진 쿠차 왕국의 키질 석굴 69굴 입구 천장 벽화에 그려진 사람의 허리에도 이 같은 형태의 보검이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 보검은 5세기에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훈족의 아틸라왕 시대에 유행했으며, 그리스ㆍ로마ㆍ이집트ㆍ서아시아에서 장식 검으로도 쓰였습니다.
신라의 대표적 유물인 금관은 현재 세계적으로 10 개 정도만 알려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교동 출토 금관을 비롯해 금관총ㆍ서봉총ㆍ황남대총 북분ㆍ금령총ㆍ천마총에서 출토된 신라 금관이 6 점이나 됩니다. 그런데 신라 금관과 유사한 금관은 중앙아시아 아프카니스탄의 시바르간에서도 발견됐습니다.
4세기 중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신라 무덤들은 나무로 시신을 넣은 관을 넣어 두는 곽을 만들고, 다시 돌을 쌓아 그 위에 흙을 덮는 ‘적석 목곽분’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의 무덤들은 중앙아시아 알타이 산맥 주변의 파지리크 고분군에서 발견되는 무덤과 꽤 닮았습니다.
또 금관총ㆍ황남대총ㆍ천마총 등 신라의 대형 무덤에서는 20여 점의 유리 제품이 출토된 바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저 멀리 지중해 주변에서 제작돼 흑해와 남러시아를 거쳐 신라로 들여온 ‘로만-글라스’가 많습니다.
또 중동 지역인 페르시아의 ‘커트-글라스’와 같은 유리 제품도 보입니다.
미추왕릉 지구에서는 더 나아가 지중해ㆍ서아시아ㆍ북중국ㆍ가야ㆍ일본 등에서 출토된 뿔잔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뿔잔을 사용하는 풍습은 주로 스키타이ㆍ흉노 등 말을 타고 이동하는 유목민들에서 보여지는 것입니다.
●스키타이 문명과 훈족의 서방,동방이동의 흔적
아프카니스탄 시바르간에서 발굴된 금관. 신라 금관과 유사하다. |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봉황머리 모양의 유리병. |
신라는 분명히 토착 세력에다 외부 세력이 연합해서 건설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를 빼고 유독 신라만 유목민과 교류를 했던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가야 유적인 김해 대성동 고분에서도 유목민이 사용하는 야외 취사용 그릇인 ‘동복’, 뿔잔 모양의 토기가 여럿 나오기도 했습니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의 널방 북쪽 벽면에도 부하가 무덤의 주인공을 향해 잔을 올리는 장면이 보입니다. 동복도 고구려 지역에서 출토돼 현재 집안시 박물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안악3호분 부엌 그림에서도 유리 그릇이 보입니다.
이처럼 고구려ㆍ백제에서도 북방 유목민과 유물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신라에서 유목민 흔적이 월등히 더 많습니다.
이유는 고구려ㆍ백제와 달리 외적에 의해 멸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목민 흔적이 두 나라보다 더 많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신라의 기원을 북방 유목민과 연결시켜 보려는 주장을 많이 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풀어야 할 수수께끼들이 많습니다.
김해 許黃玉의 出自考(인도아유디오가 아니다)-북방 월씨국(대월씨국 동쪽 지방)
["가야 허황옥의 出自地를 인도 아유타라고 기록된 곳도 있고, 남해금산 삼층석탑 기록에는 月氏國(월씨국) 허황옥이라 기록되어있다.
가야 김수로왕의 김씨, 중국기록에는 흉노족의 김일제 후손으로 기록되어있다(문정창 가야사/문정창은 결코 인도인이아니라고 했다.
모든 계연성이 없다고 한다), 아유타는 어디에 있었나, 한단고기 기록에는 노자가 북경 서북쪽 지방- 아유타에 가서 백성들을 교화시켰다고 한 기록을 엿볼 수 있었다(이곳이 월씨국이다)
월씨국에서 정치적 변화가 있어 다시 이동한 것이 대월씨국이다. 흉노(훈족)이 전한 시대 아프카니스탄에 세운 나라가 "大月氏國"이다.
이 대월씨국이 있던 곳이 지금의 아프카니스탄 시바르간이다. 이곳 금관과 신라의 금관이 비슷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같은 훈족(흉노족)의 문화이다.
중앙아시아 파지리크 고분의 적석 목곽분과 신라의 적석목곽분의 묘제 동일함도 단순한 교류가 아니라 동일 민족의 동.서양 이동의 흔적이라 봄이 더 타당하다.
5세기 경 유럽을 떨게 만들었던 훈족(흉노) 아틸라 왕의 보검과 경주 계림로14호 분에서 발견된 보검 장식을 볼 때 원류는 동일문화민족이 만든 각 각의 솜씨들이다. (글돋선생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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