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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나 커넥션-6 | 한 백 - 아리나 커넥션

monocrop 2011. 5. 15. 16:03

글: 아라니 (tiger2020) /출처 및 원문보기

 

 

6.
중화(中華)라는 거대한 파도앞에서 한 쪽은 자신의 역사를 되찾아야 하고 다른 한 쪽은 그것을 제대로 지
키기 위해 함께 투쟁할 수 밖에 없는 암묵의 연대가 침묵의 시간을 더 길게 만들었다.
“고대 중국의 상형문자 발음과 한국어간의 대응문제는 사실 바벨프로젝트의 가장 큰 수수께끼입니다.
바로 이 프로그램이 찾아낸 결과죠.”
침묵을 깨고 발락은 한장의 DVD를 꺼내 보여주었다. 바로 마리나와 그녀의 동료들이 개발한 에이미
(Eimi: Etymological Integration of Mother tongue Information)라는 이름의 비교언어 소프트웨어
였다. 거기에는 소로스가 투자한 바벨프로젝트를 비롯해 세계 25개 어족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그리
고 펜실베니아대학의 수메르,아카드어 데이터베이스(Epsd)가 탑재되어있었다.
하지만 에이미의 가장 큰 위력은 탑재된 인공지능 프로그램 TOWARD였다.
TOWARD는 에이미안에 주어진 언어 데이터베이스의 자료들을 패턴과 통계모델로 비교검색해서 각 어군들
간에 동원어(Etymology)들을 추출할 수 있었고 그 어휘와 관련된 논문 아카이브들과 브리타니카,그리
고 위키와 같은 백과사전들도 스스로 검색해 상호 연관 모델을 구성할 수 있었다.
마리나와 그녀의 동료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은 과거 유라시아의 문화공동체를 언어학,민속학,인류학등
을 통해 복원하고 그것이 오히려 중국문명의 성립과 발전에 모체였음을 에이미를 통해 확보하려 했다.
분명히 새로운 방식의 투쟁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이런 걸 제게 맡기려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저는 훈련된 언어학자도 아니고 역사학자도 아닙니
다.과연 제가 에이미를 성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요?”
내 자신없는 말에 발락은 테이블 위에 놓인 찻잔들에 천천히 차이를 리필하며 말했다.
“훈련된 전문가가 바로 에이미입니다. 에이미는 모든 편견과 학파로부터 독립적이죠. 우리는 저널리
스트인 당신이 에이미에게 무엇을 찾게 할 것인지 그리고 노스트라틱어와 한국어의 연관으로부터 어떤
비교문명적 연구 테마를 끌어낼 것인지 궁금할 뿐입니다.에이미를 다루는 것은 이렇게 차이를 리필하는
것 만큼이나 쉽다는 것을 내가 보장하죠”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건 좀...”
내 대답에 이번엔 마리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마르 동지의 당부가 있었습니다. 텡그리칸의 뜻이라며…”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6.1
뉴욕을 떠나기 하루 전 나와 마리나는 그 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가질 기회가 생겼다. 산타페연구소 프
로젝트에 우리 모두는 서로의 안부를 물을 사이도 없이 열중해 있었다. 그 날 오후 마리나와 함께 센트
럴 파크에서 산책을 했다. 마리나는 위구르의 삼싸라는 고기가 든 빵을 손수 만들어 도시락을 싸왔
다.

다섯살 되던 해 마리나는 부모를 중국 공안에 의해 잃었다.당시 신장에서 꽤 큰 식당을 경영했던 그녀
의 부모는 위구르 혁명정부의 중요한 자금책으로 지목받아 어느 날 공안에 의해 체포됐고 한 달후 행방
불명이 되어 버렸다. 그녀에게는 일가 친척이 없었다. 마리나의 아버지와 형제처럼 지내던 오마르가 그
녀를 수양딸로 삼아 카자흐스탄으로 함께 넘어왔다.
“중국인들에 대한 미움이 크겠군요. 마리나는.”
그녀의 과거에 대해 위로해야 할 지 아니면 격려해야 할 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 한때 중국인만한 증오의 대상이 없었죠.어떻게 그들에게 복수를 하면 세상이 알아줄까 그것이 늘 고
민이었어요. 당신이 취재했던 북경봉기는 바로 내가 생각한 것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희생시
키기 보다는 내 조국을 갖고 싶을 뿐이에요”
스물 일곱이 되었을 때 마리나는 미국에 거주하는 한 위구르인 변호사와 결혼했다.하지만 그녀의 남편
은 위구르족의 독립에 대해 시간이 흐를수록 부정적으로 변했고 현재의 아쉬울 것 없는 삶속에 안주하려
했다.그는 신혼 3년만에 마리나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위구르 여성은 남편과 결혼할 때 일곱번의 생을 그와 함께 살겠노라고 약속하죠. 남편이 아내를 어떻
게 생각하든 말이죠”
나는 잠자코 앉아 눈부시게 빛나는 공원의 신록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감
이 잡히지 않는 문화적 차이로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다만 그녀로부터 배어 나오는 우울함만이
느껴졌다.
“신(神)은 위구르 여성에게 공평하지 않군요”
마리나는 소리내어 웃었다. 그리고는 두 손을 얼굴에 가까이 모으며‘알라 아크바르!’하며 나직이 외
쳤다. 우리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나를 사랑했던 한 남자가 있었죠. 그는 오마르가 가장 아끼는 전사였어요. 그는 내게 전혀 내색을 안
했는데 내가 결혼상대를 정했을 때 그는 내가 기획한 북경봉기에 자원했죠.
북경봉기가 있던 날, 난 그 사람이 친구에게 맡겨둔 편지를 건네 받았죠. 편지에는 5개의 수류탄을 몸
에 두른 그의 사진과 함께 이렇게 써 있었어요. 자신이 할렘의 정원에 있더라도 내가 없다면 그건 지옥
이라고…. ”
또 한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마리나는 그런 침묵이 부담스러운 듯 말했다.
“자. 이제 그만 돌아가죠. 선글라스가 없으니 눈이 너무 아파요”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맨하탄의 활기찬 분위기는 우리 머리속에 있는 우울한 것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다음 만날 시간을 약속한 나는 호텔정문에서 그녀와 헤어졌다. 룸에 들어서자마자 걷잡을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와 침대위에 그대로 털썩 엎어졌다.
아무리 비즈니스라지만 한국인인 내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 위구르인들의 독립투쟁을 위해 일해야 하
는 게 옳은 지 자신하기 어려웠다. 다만 10년전 내가 카자흐스탄에서 그들에게 어렴풋이 느꼈던 모호한
동질감, 그리고 오마르의 말처럼 내가 그들과 한 때 위대한 박딸(Vaktar)과 같은 조상을 갖고서도 이미
잃어버렸을 지 모르는, 우리의 아득한 역사에 대해 그들의 프로젝트가 어쩌면 일말의 해답을 갖고 있
을 것 같다는 기대감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나보다 그들이 내게 거는 기대가 더욱 컸다. 그
것은 분명히 부담이었다.나는 그들에게 내가 감당할 만 한 일인지 시도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뉴욕을 떠나던 날 마리나는 공항까지 직접 나를 배웅했다. 작별인사를 나눌 때 그녀는 내게 ‘우리 아이
를 잘 부탁한다’는 농담같지 않은 농담을 건넸고 내 손엔 이미 난해한 설명이 가득한 한 권의 두꺼운
파일과 DVD 박스가 들려져 있었다. 에이미였다. 나와 에이미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