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 & ... Writing/아리나 커넥션

아리나 커넥션 05 -솔본 (아라니 tiger2020)

monocrop 2011. 5. 10. 20:28

글: 아라니 (tiger2020) / 출처 및 원문보기

 

뉴욕에서 나는 예정보다 며칠 더 머물러야 했다.
산타페연구소가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만만치 않은 학습이 기다리고 있기 때
문이었다.발락은 그러한 나를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주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몇 년전부터 버클리대학 산타페고등연구소는 모스크바 대학과 공동으로 노스트라틱
어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그것은 지금으로 부터 약 1만5천년~8천년전 인류문명의 태동기에 사용되었
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보편어를 비교언어학적으로 복원하는 것이었다.
노스트라틱어는 학계에서 인도-유러피언어와 관계가 없다고 믿었던 알타이어나 드라비다어, 시노 티벳
어와 같은 어군들이 예상을 깨고 인도유러피언어와 일정한 관계성을 드러내자 이 어군들을 통합할 수 있
는 한 단계 위의 공통조어를 찾는 과정에서 제시되었다.
하지만 노스트라틱어의 시기가 인류 문명의 여명기에 속하는 신석기 후기라는 점에서 노스트라틱어는
그 당시에 문명이 어떤 경로를 통해 세계로 확산되고 전파되었는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 언어학 이
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세계 4대문명간에 모종의 커넥션을 암시했다. 만일 이 4대문명에 모태(母胎)가 존재한다면 결국
노스트라틱어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그 정체와 인류 문명을 처음 열어간 집단도 드러날 수 있었다.
유태계의 월스트리트 황제 죠지 소로스가 즉각 이 연구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모스크바 대학의 비범한
언어학자 스타로스틴(S.starostin)이 이 기이한 고대언어의 재구법칙을 명백히 하자 거액을 후원했다.
연구는 구약의 창세기에서 그 이름을 빌려‘바벨프로젝트’라고 명명됐다.
노스트라틱어를 재구하는 작업은 바로 성경의 바벨탑 시대에 존재했다는 인류의 보편적 세계어를 찾는
의미였다. 발락과 그의 동료들은 그러한 바벨탑의 꼭대기에서 중국을 보려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부
딪친 문제는 바로 고대 상형문자와 한국어의 관계였던 것이다.그렇다면 위구르인들에게 그것이 갖는 의
미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초기에 알타이어의 특성을 띄던 고대 중국어가 동남아시아의 언어들처럼 꼬리자음이 소실되며
성조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했어요. 그것은 과거 중국대륙의 기층을 형성하던 알타이어족과 오스
트릭어군으로 분류되는 남방어족간의 접촉을 의미하는 것이었지요.”
발락의 설명에 나는 내가 이해하고 있는 정도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말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전 세계에는 대륙 북방의 공통어군과 남방의 공통어군이 큰 덩어리로 나뉘어 져
있었다는 이야기군요. 현재의 중국어는 남방어와 북방어가 접촉하며 형성되었고...”
내 해석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중요한 건 남방어의 속성을 가진 어떤 한 어족이 대륙으로 북상해 현재 유라시어군과 만나
서 지금의 시노-티벳어라는 별도의 어군을 형성했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그 시점이 언제냐 하는 것이
죠. 우리는 상형문자의 등장과 그 독음으로 판단해서 B.C 10세기를 전후로 상형문자 즉 한자를 둘러싼
세력교체가 있었다고 보는 겁니다. 다시말해 지금으로부터 3천년전 중국의 어촌 사람들은 바닷 바람 즉
海風을 지금같이‘하이 펑’이라 하지 않고 ‘메이프람’이라고 말하며 고기잡이 준비를 했다는 이야기
죠. 우리는 그러한 언어의 주인공이 누구였는 지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는 즉각 그 ‘메이프람’이라는 海風의 고대 한자의 음이 우리 갯마을 어부들이 일컫던‘마파람’에
해당한다고 직감했다. 하지만 나는 좀 더 신중해 질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담한 도전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이 프로젝트대로라면 중화주의를 천명하는 한(漢)족의 문화와 역사는 BC10세기 이전으로는 거슬러
올라 갈 수 없는 것이었고 한족의 역사는 고조선 역사의 상한선에도 못 미친다는 이야기가 됐다. 다시말
해 중국의 역사는 주(周)나라가 성립된 이후로만 논의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주이전의 하,은
시대와 그 이전의 문명들을 다른 제족에게 통째로 양보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삼황오제
중화주의는 뿌리를 상실한 체 그 근본으로부터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비로소 이들이 무엇을 하려 하는 지 알 수 있었다.
마리나를 비롯해 바벨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던 이들은 노스트라틱어의 복원과정에서 위구르 분리독
립운동의 타당성을 그들의 고대언어로부터 확보하려 했다. 그러면서 이 프로젝트를 한국의 언어학계가
아닌 저널리스트인 나와 공유하길 원했던 것이다.
그들과 나 사이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