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 & ... Writing/아리나 커넥션

아리나 커넥션 04 -솔본 (아라니 tiger2020)

monocrop 2011. 5. 8. 01:44

글: 아라니 (tiger2020) / 출처 및 원문보기

 

 

카자흐스탄에서 위구르 반군의 지도자 오마르를 만났던 일은 내 인생에 중요한 전기를 만들었다. 인터
뷰를 위해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가 가졌던 선입견을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사납고 매서울 것 같
았던 반군의 지도자는 자그마한 체구의 시골 촌로처럼 보였다. 그는 매우 온화했으며 깊은 성찰을 해 온
철학자의 면모를 지녔다.그는 코카시안이 아닌 나와 같은 몽골계였으며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몽골-투르
크계였다.
“당신이 나를 만나고 싶어한 솔롱고스인가?”
마리나는 영어로 오마르의 말을 번역해 주었다. 오마르는 한국인을 솔롱고스라고 불렀다. 내가 인사를
건네며 영어로 된 명함을 내밀자 그는 미소를 띠고 그것을 천천히 들여다 보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명함을 뒤집어 보면서였다.갑자기 그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지더니 무어라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내 명
함을 그 자리에서 발기발기 찢어 내던졌다. 오마르의 외침에 주변에서 AK소총의 요란한 장전음들이 들
려왔다. 마리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더듬거리며 오마르의 속사포같은 말을 번역했다.
“우리는 당신이 한국의 미디어라고 해서 인터뷰를 허락했다.그런데 왜 명함에 중국어로 꽁쉬(公社)라
고 적혀있는 건가?”
나는 순간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지고 있던 다른 명함을 꺼내 들여다 보았다. 거기에
는 한글과 한자가 섞여 있었다. 문제가 된 것은 방송사의 이름이 한자로 적혀있는 것이었다. 오마르는
방송사의 이름에 韓國과公社라는 두 개의 글자가 서로 모순된다고 순간적으로 파악했고 나를 중국의 스
파이로 인식한 것이었다. 무어라 변명을 해야 했지만 어떤 설명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나를 둘
러싼 총구들이 더 생각을 어렵게 했다.
“중국에서 公社는 기업을 뜻해요.한국에서도 그런가요?”
마리나가 내게 겁에 질린 체 물어왔다. 나는 그제야 상황이 파악됐다.한국의 공기업인 공사와 일반 회
사가 다르다는 설명과 함께 나는 갖고 있던 명함을 모두 바닥에 쏟아 놓고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참을 뒤지던 내가 株式會社라고 쓰여진 명함을 찾아 공사(公社)와의 차이점을 힘겹게 설명한 뒤에야 오
마르의 오해가 조금 풀렸다. 하지만 그는 의심과 경계심을 내게 풀지 않았다.
오마르는 주변의 총부리를 거두게 하고 나를 소파로 앉히더니 차이를 권했다.그리고는 내 앞에 마주 앉
아 내가 알고있는 한국의 역사를 설명해 달라고 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오마르
는 손짓으로 옆에 있던 한 남자를 불러 옆에 앉혔다. 무어라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은 그는 내게 영어로
고구려라는 국가이름의 뜻을 아느냐고 물었다.다행히도 그 부분은 설명할 수 있었다.
“ 고(高)씨가 세운 나라라는 뜻이죠. 한편으로는 높은 나라라는 뜻도 있습니다. 과거 고구려에서는
성(城)을 구루라고도 했지요”
그 남자가 위구르어로 오마르에게 전달하자 오마르의 눈이 순간적으로 빛났다.오마르는 내게 무어라 길
게 설명을 했다.
“우리 위구르는 '날랜(hui) 사람들(gur)‘이라는 뜻입니다. ’구르‘라는 말은 몽골어와 투르크어에
서 ’집단‘을 뜻하지요. 다구르(Daghur)는 친척들,큰 집단이란 뜻이고 ’곡구르‘(Gok gur)는 ’높은
집단‘ 즉 영웅적 사람들을 말합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들은 고구려를 ‘곡-구르’(Gok gur)로 읽고 그들의 조상 티무르의 ‘곡-투
르크’(Gok turk)과 일련의 쌍둥이관계로 파악하고 있었다. 하기는 고구려와 투르크,

즉 옛 돌궐은 6세기경 수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련의 동맹관계에 있기도 했었다 .

국내 학자들에 따라서는 아예 투르크의 성립 배후에 고구려가 있었다고 주장할 정도니...
내가 흥미를 보이자 오마르는 탁자위에 제작시기를 알 수 없는 오래된 지도를 한 장 꺼내 펼쳐 보였다.
누렇게 색이 바랜 지도에는 서쪽으로 아라비아 반도에서 동쪽으로 한반도에 이르는 거대한 영역이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는 이 제국의 이름이 위구르어로 ‘훈나’(Huna)라고 설명했다. 이 제국을 건
설한 자는 위대한 박딸(Vaktar)이었고 그들은 때를 알 수 없는 시기로부터 ‘텡그리 칸’(Tengri khan)
의 뜻에 따라 이땅을 통치했다고 했다.
나는 오마르의 설명으로부터 훈나(Huna)가 바로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흉노’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박딸’과 같은 이름은 생소한 것이었다. 내가 박딸의 의미를 물었을 때 오마르는 나
를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고구려의 후손들이 어떻게 ‘박딸’을 모른단 말인가?”
나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
“ 박딸은 투르크,몽골 古語에서 영웅이란 뜻입니다.바타르(Batar)라고도 하고 바투르(Batur)라고도
하죠. 몽골의 울란 바타르는 그래서 붉은 영웅이란 뜻입니다.우리에게는 전설적인 왕들,‘박딸칸’
(Vaktar khan)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그제서야 이 위구르 반군 지도자가 왜 BBC나 독일의 짜이퉁과 같은 유수한 미디어를 거부하고 굳이
한국과 인터뷰하려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들은 한국도 자신들과 같은 투라니안의 후예로서 중국에
맞설 의지가 있다고 본 것이었다.다시말해 오마르는 서쪽과 동쪽에서 중국에 맞설 판 투라니안 연대를
꿈꾸고 있었던거다. 그들은 심지어 내 이름의 성‘한’을 자신들의 로얄클래스로서 존중해 주기에 이르
렀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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