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집 안으로… “나는 한옥에 산다”
세계일보 | 입력 2009.06.25 16:57 | 누가 봤을까? 40대 여성, 울산
전통 숨쉬는 한옥, 르네상스 맞다
전통이라는 이름 속에 박제돼 있던 한옥이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옥에 산다'는 사실만으로도 얘깃거리가 됐다면, 최근에는 사무실 등 다양한 생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한주택공사는 올 초 한옥 인테리어를 도입한 '한옥 아파트' 건설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한옥 르네상스'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1960년대 중반 목조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건축법이 개정되면서 사실상 한옥의 맥이 끊긴 지 40여년 만에 한옥이 비로소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 자연미와 실용성 살린 현대한옥
독일인 한국학 박사 1호인 베르너 삿세(69) 전 함부르크대학 교수는 몇 년 전 우연히 전남 담양을 지나던 길에 오래된 한옥에 한눈에 반해 아예 눌러살고 있다. 서양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구조에 불편할 법도 하지만 그는 "창문만 열면 바람이 들어오고 밖의 경치만 봐도 눈과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한다.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계절에 따라 사람도 같이 사는 게 건강에도 좋다며 그는 한옥 예찬론을 펼친다.
그와 같이 한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외부 환경에 열려있는 구조 덕분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옥 재료가 나무·흙·종이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새집증후군으로 인해 일어나는 각종 현대병이 파고들 여지가 없다.
겨울에 춥고 화장실이나 주방 등이 불편하다는 문제도 건축 기술의 발달과 함께 거의 사라졌다. 최근 짓거나 리모델링한 한옥들은 나무 기둥·대들보, 마당, 구들(온돌)방, 흙벽 등 한옥의 기본 요소를 갖추되 편리성을 높여 따뜻하고 실용적이다.
덕분에 지하 공간을 서재나 음악 감상실로 쓰거나, 서양의 입식 시설을 접목해 사무실·갤러리·식당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 한옥 느낌 살린 아파트도 있어
최근엔 한옥을 지어서 살 수 없는 사람을 위한 대안으로 아파트에 한옥을 들여놓은 한옥 인테리어가 각광받고 있다.
대한주택공사가 내놓은 한옥 아파트는 기본적으로 콘크리트로 지었다는 한계가 있지만 얼핏 보면 아파트라는 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한옥이 고스란히 들어온 모습이다. 벽, 문 천장에 한옥 창살과 고가구의 문양을 넣었고 베란다 대신 안마당을, 거실 대신 대청마루를 도입했다. 또 단지 입구에 마을 숲을 가꿔 외부 시선을 차단하고, 3개 동마다 마을 마당과 마을 사랑방을 둬 장터나 모임을 열 수 있도록 했다. 2010년 시흥시와 2011년 전주시에 각각 고층형과 저층형으로 착공하면서 이 디자인은 현실화될 예정이다.
한옥 인테리어를 할 때는 이미 지어진 집의 뼈대를 바꿀 수는 없지만, 창과 문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한옥 분위기를 내는 데 효과적이다. 기타 한옥을 연상할 만한 문양을 응용할 수 있다. 모두 나무와 흙, 창호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호소력이 높다. 한옥 연구단체인 한옥문화원을 통해 한옥 인테리어를 한 사례를 보면 서울 중계동의 한 아파트에서 벽을 황토벽으로 바꾸고 그 위에 한지를 발랐고, 바닥에는 육송으로 만든 우물마루를 짜 넣었다.
# 2층 한옥·DIY 한옥 나올까
한옥의 현대화 작업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현재 가장 큰 걸림돌은 한옥을 지을 때 들어가는 비싼 재료·시공 비용이다. 이미 지어진 한옥의 매매가격이 최근 2∼3년 사이 2배 가까이 뛰었을 정도로 수급 불균형도 심각하다.
이에 재료를 표준화하는 작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나무를 조립할 때 적용 기준이 되는 치수, 강도와 안정성 등의 성능을 표준화해 생산 단가를 낮추고 쉽게 집을 지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일부 부재는 업체에서 공장 생산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만간 일반인도 약간의 도움을 받아 DIY(Do It Yourself) 한옥을 지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지난 17일 대한건축학회 역사위원회가 개최한 '한옥과 도시 포럼 제1차 심포지엄'에서는 2층 이상의 '21세기형 한옥'도 제시됐다. 도시에서 한옥이 실질적인 거주공간으로 살아남으려면 공간의 효율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4층까지 지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역사위원회장 한재수 교수(한라대 건축학과)는 "조선시대 선비들은 방 한 칸이 사람 한 명 발뻗고 누워 잘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다는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추구했지만, 모든 가구를 내놓고 사는 복잡한 생활방식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는 좁게 느껴지기 때문에 한옥도 현대에 맞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며 "다층화 등 한옥의 실용적인 변화를 통해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목조건축물로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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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라는 이름 속에 박제돼 있던 한옥이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옥에 산다'는 사실만으로도 얘깃거리가 됐다면, 최근에는 사무실 등 다양한 생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한주택공사는 올 초 한옥 인테리어를 도입한 '한옥 아파트' 건설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한옥 르네상스'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1960년대 중반 목조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건축법이 개정되면서 사실상 한옥의 맥이 끊긴 지 40여년 만에 한옥이 비로소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아름지기'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서울 안국동 한옥. |
독일인 한국학 박사 1호인 베르너 삿세(69) 전 함부르크대학 교수는 몇 년 전 우연히 전남 담양을 지나던 길에 오래된 한옥에 한눈에 반해 아예 눌러살고 있다. 서양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구조에 불편할 법도 하지만 그는 "창문만 열면 바람이 들어오고 밖의 경치만 봐도 눈과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한다.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계절에 따라 사람도 같이 사는 게 건강에도 좋다며 그는 한옥 예찬론을 펼친다.
그와 같이 한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외부 환경에 열려있는 구조 덕분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옥 재료가 나무·흙·종이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새집증후군으로 인해 일어나는 각종 현대병이 파고들 여지가 없다.
겨울에 춥고 화장실이나 주방 등이 불편하다는 문제도 건축 기술의 발달과 함께 거의 사라졌다. 최근 짓거나 리모델링한 한옥들은 나무 기둥·대들보, 마당, 구들(온돌)방, 흙벽 등 한옥의 기본 요소를 갖추되 편리성을 높여 따뜻하고 실용적이다.
덕분에 지하 공간을 서재나 음악 감상실로 쓰거나, 서양의 입식 시설을 접목해 사무실·갤러리·식당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대한주택공사의 한옥아파트. |
최근엔 한옥을 지어서 살 수 없는 사람을 위한 대안으로 아파트에 한옥을 들여놓은 한옥 인테리어가 각광받고 있다.
대한주택공사가 내놓은 한옥 아파트는 기본적으로 콘크리트로 지었다는 한계가 있지만 얼핏 보면 아파트라는 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한옥이 고스란히 들어온 모습이다. 벽, 문 천장에 한옥 창살과 고가구의 문양을 넣었고 베란다 대신 안마당을, 거실 대신 대청마루를 도입했다. 또 단지 입구에 마을 숲을 가꿔 외부 시선을 차단하고, 3개 동마다 마을 마당과 마을 사랑방을 둬 장터나 모임을 열 수 있도록 했다. 2010년 시흥시와 2011년 전주시에 각각 고층형과 저층형으로 착공하면서 이 디자인은 현실화될 예정이다.
한옥 인테리어를 할 때는 이미 지어진 집의 뼈대를 바꿀 수는 없지만, 창과 문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한옥 분위기를 내는 데 효과적이다. 기타 한옥을 연상할 만한 문양을 응용할 수 있다. 모두 나무와 흙, 창호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호소력이 높다. 한옥 연구단체인 한옥문화원을 통해 한옥 인테리어를 한 사례를 보면 서울 중계동의 한 아파트에서 벽을 황토벽으로 바꾸고 그 위에 한지를 발랐고, 바닥에는 육송으로 만든 우물마루를 짜 넣었다.
◇'아름지기' 사무실의 화장실과 주방. |
한옥의 현대화 작업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현재 가장 큰 걸림돌은 한옥을 지을 때 들어가는 비싼 재료·시공 비용이다. 이미 지어진 한옥의 매매가격이 최근 2∼3년 사이 2배 가까이 뛰었을 정도로 수급 불균형도 심각하다.
이에 재료를 표준화하는 작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나무를 조립할 때 적용 기준이 되는 치수, 강도와 안정성 등의 성능을 표준화해 생산 단가를 낮추고 쉽게 집을 지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일부 부재는 업체에서 공장 생산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만간 일반인도 약간의 도움을 받아 DIY(Do It Yourself) 한옥을 지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지난 17일 대한건축학회 역사위원회가 개최한 '한옥과 도시 포럼 제1차 심포지엄'에서는 2층 이상의 '21세기형 한옥'도 제시됐다. 도시에서 한옥이 실질적인 거주공간으로 살아남으려면 공간의 효율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4층까지 지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역사위원회장 한재수 교수(한라대 건축학과)는 "조선시대 선비들은 방 한 칸이 사람 한 명 발뻗고 누워 잘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다는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추구했지만, 모든 가구를 내놓고 사는 복잡한 생활방식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는 좁게 느껴지기 때문에 한옥도 현대에 맞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며 "다층화 등 한옥의 실용적인 변화를 통해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목조건축물로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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