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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리 볍씨의 의미

monocrop 2007. 10. 20. 12:47

 

 

소로리 볍씨의 의미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볍씨는 중국 화북지방으로 10,500년 전으로 기록돼 왔는데, 그보다 3000여 년이나 앞선 소로리 볍씨가 발견됨으로써 전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벼에 대해 왜 이렇게 관심을 가질까?

 

농경(農耕)의 시작은 인류가 탄생된 이후 불(火)의 발견과 함께 가장 위대 한 발명이라고 할 수 있다.
농경 중의 으뜸인 쌀(벼)의 시작은 언제부터 시작하여 발전해 왔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전세계의 많은 학자들이 연구와 고증을 계속 하고 있다. 그것은 세계 인구의 60%이상이 쌀(벼)을 주식으로 하고 있기 때문 이다.

지금까지는 벼의 기원지에 관하여 여러 가지 주장이 있어왔지만, 주로 중국을 중심으로 발전된 것이라고 주장되어 왔다.


1970~80년대까지는 주로 황하 유역에 있는 유적에서 발굴된 볍씨들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주장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양자강 유역에 있는 유적에서 밝혀진 자료들이 그보다 오래된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 좋은 예가, 호남성 도현 옥섬 유적에서 출토된 볍씨가 11,000년으로 밝혀지면서, 이 주장은 더 굳어지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청원 소로리 볍씨가 출토되었다.

 

 

 

1994년 충북 청원군 소로리 일원에 오창 과학산업 단지의 조성 계획이 수립 되고,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사전 지표조사가 실시됐다.
지표조사로 구석기 유물들을 확인하여 1997
98년에 제 1차 발굴작업이 실시 되면서, 구석기 유물들과 함께 소로리 볍씨가 처음 찾아져,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졌다.


오창 산업단지 예정지 토탄 층에서 발견된 볍씨는 고대 볍씨임이 밝혀졌고, 청주 문화방송국에서 특집 다큐멘터리 프로제작이 확정되면서 2001년 2차 발굴 작업이 실시됐다.

1차 발굴은 구석기 문화층을 중심으로 조사가 이루어졌고, A지구 II 구역 토탄 층 일부에 대해 발굴작업이 이뤄졌지만, 2차 발굴작업은 볍씨를 찾는 작업이라 대나무칼로 토탄층을 얇게 쪼개고 쪼개 수거된 토탄들을 물체질 정밀작업을 실시하여 고대벼 6톨유사벼 30톨을 찾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출토된 볍씨는 바로 서울대학교 AMS(방사선탄소연대측정) 연구실과 미국의 지오크론(Geochron Lab)연구실로 보내져, 1만 3000년 ~ 1만 5000년 전의 절대연대값을 얻어 <소로리 볍씨> 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볍씨임이 판명됐다.

 

 

소로리 볍씨가 1만 5000년 전 것으로 판명되자 일부 학계에서 의문이 제기 됐다. 즉, 1만 5000년 전은 구석기말 빙기의 끝 무렵인데 한반도에서 아열 대 식물로 알려진 벼가 추운 기후에서 자랄 수 있었을까?  또 그 벼가 야생벼인지, 재배벼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 고증을 얻기 위해 청주MBC 취재팀이 국립 작물시험장 춘천출장소에서 냉해실험을 통해 벼가 자랄 수 있는 온도를 실험한 결과, 벼가 자연 상태 에서 최저 발아온도가 섭씨 20도로 알려졌지만, 실험결과 13도에서도 70% 이상이 발아되어 생성되는 연구 결과를 얻게 되었다.


 

냉해실험을 통해, 따뜻한 기후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벼가 기후 적응을 잘하는 식물로 1만 5000년 전의 학설이 긍정적으로 무게가 실려 졌다.

볍씨를 분석한 허문회(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서학수(영남대학교 교수), 박태식(작물시험장 박사), 조용구(충북대학교 교수) 등의 연구에 따라, 소로리 볍씨는 재배벼 특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여기에 따라 이융조(충북대학교 교수)는 재배벼 이전의 순화벼로 국내외 학계에 발표 하였다.

 

 

2003년 10월 22일, 세계적 권위를 갖고 있는 영국 BBC 방송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소로리 유적에서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라고 하는 타이틀로 보도하였으며, 인터넷판으로 다시 그 내용을 전 세계에 보도 하여, 이제는 소로리 볍씨가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인 것으로 공인 받은 셈이다.

 

 

소로리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구석기시대 야외유적과 토탄층이 함께 확인된 곳으로 고고학과 고생물학, 제4기 지질학 등 학문연구를 통 하여 벼의 기원과 진화, 전파경로를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며, 2004년 1월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문화유산 관계자들은 이 유적이 세계 문화 유산으로의 등재 가치가 충분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으며,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선사시대의 볍씨 출토 유적

 

 

소로리유적지 이외에도 벼와 관련된 유적지가 많다.

최근 몇 년간 중국에서 새로이 발견되었던 선사시대의 볍씨 출토유적이다.

 

1. 선인동 유적

 

선인동유적은 강서성 만년현에서 동북으로 15km 떨어진 작은 산의 석회 용암동굴유적이다. 1960년대와 1990년대에 이 유적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 졌다. 유적은 상, 하 2개의 문화층으로 나뉘는데, 불에 탄 소토(燒土), 구덩이, 다량의 동물뼈, 인골, 석기, 골각기, 조개껍질들이 출토되었다.  이 시기 선인동 주민의 음식에는 이미 벼가 포함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조통환유적

 

조통환유적은 선인동에서 6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화남지역 구석기 시대 말기에서 신석기시대 조기의 문화양상을 연구하고 당시의 자연환경 특히 조작농경의 기원과 토기제작기술의 기원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3. 옥섬암 유적

 

소로리 볍씨가 발견되기 이전, 국제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 받아 왔던 옥섬암유적은 BP10,000년의 동굴유적으로 4립의 볍씨가 발견되었는데, 감정결과 야생도의 특징이 남아있고 산류(인디카)와 갱류(자포니카)의 분화 가 완성되지 않은 초기 재배도임이 확인되었다.

 

 

4. 팔십당 유적

 

이 유적은 고두산 유적 가운데 문화내용이 가장 풍부한 유적으로 중국 남부 지역에서 발견된 문화내용이 명확한 최초의 유적이다.

연대는 BP8,000 ~ 7,000년에 해당한다.

 

 

5. 용사장 유적

 

이 유적의 문화층에서는 4,000여립의 탄화미가 발견되었다. 연대가 이른 것 은 BC 5,000~4,000년까지 올라가고, 늦은 것은 BC 4,300~3,500년에 해당 한다. 특히 다량으로 출토된 탄화미는 이 지역에서 적어도 BC 5,000년경에 이미 벼를 재배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설명한다.

 

 

6. 초여산 수전유적

 

수전의 퇴적층에는 재배도의 식물 규소체가 다량 함유되어 있고 부유법으로 검출한 결과 많은 탄화미가 발견되었다. 세계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이른 수전유적으로 장강하류의 도작농경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였 음을 알려준다..

 

 

7. 하모도유적

 

하모도유적은 절강성 여도현에 위치한 것으로 이미 학계에 널리 알려진 도작유적이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하모도 제4문화층에서 큰 범위로 발견된 벼의 흔적이다. 도곡. 벼껍질, 경옆이 혼합된 상태로 두꺼운 문화층을 형성한다. 이처럼 벼의 양이 많고 보존이 양호한 유적은 중국 신석기시대 고고학 사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다. 당시 도작농경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였 음을 알려준다. 벼는 재배도의 늦은 유형으로 확인되었다.

 

 

8. 가호유적

 

가호유적은 하남성 중남부에 위치한 것으로 추하상류의 황회하·대평원에 분포하고 있다. 이 유적의 탄화된 재배도는 BP.8,000년에 추하상류에 이미 벼를 재배하기 시작하였음을 알려준다.

 

 

9. 양가권유적

 

양가권유적은 유동반도 동북부에 위치한 것으로 이 유적에서는 불에 탄 주거지가 노출되었는데 벽쪽에서는 탄화미가 발견되었다.

 

 

 

 

벼농사의 고고학적 관점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쌀(벼)과 관련된 자료는 1920년대 김해 패총에서 발견된 탄화미가 전부였기 때문에 우리나라 쌀은 기원 전후에 일본을 통해 유입되어 재배되었던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여주 흔암리 주거지에서 기원전 10세기 경의 탄화미가 다량 출토되어 우리나라 벼농사의 시작이 일본보다 앞선다는 것이 밝혀 졌다.

 

이후 평양 남경과 부여 송국리 유적 등에서도 탄화미가 출토되었다.

 

하남 미사리· 서산 휴암리· 안면도 고남리· 승주 대곡리·합천 봉계리· 거창 대야리· 울주 검단리 등등의 여러 유적에서 토기바닥에 볍씨 자국이 찍힌 민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논산 마전리에서 청동기 시대의 논이 확인되어 청동기 시대에 이미 벼농사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

 

한편 출토된 볍씨나 볍씨 자국은 그 형태가 단립형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는 쌀과 같은 형태이다.

 

 

그러나 최근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구석기시대의 토탄층 (연대:12,500BP ~ 14,800BP)에서 볍씨(japonica형과 indica형)가 발굴되고 그 이전의 층에서는 유사벼가 발굴되어 크게 주목 받고 있다.

 

소로리 유적에서 출토된 볍씨는 지금까지 밝혀진 자료로 보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볍씨인 것으로 밝혀져, 벼의 기원. 진화. 전파 등에 관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