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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백제의 하이테크 금속공예 기술 수촌리유적 환두대도(環頭大刀) 복원.

monocrop 2007. 10. 17. 04:40
백제의 하이테크 금속공예 기술_수촌리유적 환두대도(環頭大刀) 복원 [정광용]
 
 
 
 
백제의 하이테크 금속공예 기술

-수촌리유적 환두대도(環頭大刀) 복원-



얼마 전 종영된 “서동요”는 백제 30대 임금 무왕의 이야기로 어린 시절 서동[薯童, 본명 장(璋)]과 선화공주(신라 진평왕 셋째 딸)의 국경을 넘은 러브스토리와 백제 신라 양국의 궁중 이면사를 흥미있게 재현하였다. 특히 ‘서동’은 딱따구리가 나무를 두드려 구멍을 내는 모습에 착안하여 그 이전까지 단단하거나 무르기만 하던 칼날을 담금질을 통하여, 칼날은 강하고 칼등은 부드럽게 하는 백제의 최첨단 금속공예기술을 생각해 내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과연 가능한 이야기 일까?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이제부터 1500 여년 전 백제의 과학기술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인류문명은 철(鐵)의 이용과 더불어 발전해 왔으며, 오늘날에도 철은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철은 도구제작기술에 큰 발전을 가져와 철기문화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구리나 청동은 쇠가 발견되기 전까지 큰 역할을 하였지만, 쓰임새에 있어 철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철의 사용방법을 먼저 알고 있었던 히타이트나 앗시리아인이 위대한 이집트와 희랍문명을 붕괴시킨 것도 철로 만든 무기가 청동제 무기보다 단단했기 때문이다.
고대 철기의 제작공정은 단조와 주조의 두 가지 방법이 사용되었다. 단조는 철을 반용융 상태로 달구어 두드리는 과정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쇠를 강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리고 주조는 선철(銑鐵, 무쇠)을 주형틀에 부어 쇠도끼, 쇠솥 등을 생산하는 방법이다.
철은 동을 녹일 때 보다 더 많은 열량을 필요로 하였다. 일반적으로 불순물이 섞인 철은 자연에서 얻어지는 데, 이 철은 700~800℃가 되면 산소가 빠져나가는 환원현상이 시작되고, 1,000℃ 이상 온도가 올라가면 환원이 빨리 일어나게 되어 괴련철(槐鍊鐵, sponge iron)이 되고, 1,200℃에 도달하면 물엿처럼 된 쇠를 거푸집에 부어 주철(鑄鐵)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주철은 강한 반면 쉽게 부서지는 단점이 있어 무기나 도구를 만들 수 없었다. 반면에 강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1,500℃의 높은 온도를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강철을 직접 만들 수 없었다. 따라서 저온환원법(低溫還元法)으로 만들어진 괴련철에 탄소를 집어넣어 침탄강(浸炭鋼)을 만들거나, 고온용융상태에서 만들어진 주철을 脫炭處理(탈탄처리)하여 鋼(강)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다.
특히 철과 강은 탄소함유량 및 성형가공 방법이나 열처리 조건 등에 따라 기계적 성질이 크게 변화된다. 탄소함유량이 낮은 순철은 연성은 높으나 강도 및 경도가 낮은 단점이 있으며, 탄소함량이 높은 주철은 취성이 심해 충격에 의해 파손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순철을 침탄 시킴으로서 탄소함량을 높이거나, 주철의 탄소함량을 낮추는 방법으로 강을 생산할 수 있었다. 강은 가공이나 열처리 조건에 의해 그 기계적 성질의 조절이 가능한 매우 유용한 소재로서 고대에도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있었다.
고대에 강의 제작기법은 주철 용탕을 이용한 주철유화처리기술(鑄鐵柔化處理技術), 가단주철(可鍛鑄鐵), 주철탈탄강(鑄鐵脫炭鋼), 초강법(炒鋼法), 백련강기술(百鍊鋼技術)과 관강야련법(灌鋼冶煉法), 그리고 고체상태의 純鐵(괴련철) 및 주철을 열처리하여 탄소를 가감하는 침탄법(浸炭法)과 탈탄법(脫炭法), 단접법(鍛接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철기 제작과정에서 특별한 가공방법이나 열처리 방법을 적용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처리를 통하여 철소재의 미세조직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작기법과 미세조직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게 마련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철기유물의 미세조직을 관찰하게 되면 이에 남겨진 흔적을 통하여 제련과정에서부터 완제품 제작에 이르기까지 소재에 가해진 각종 처리의 특성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서동’이 ‘목라수’(木羅須)[백제 태학사의 기술박사(技術博士)와 함께 만들고자 하였던 쉽게 부러지지 않고 강한 날을 가진 환두대도는 백제의 여러 유적에서 발견 되고 있다. 환두대도는 둥근고리 모양의 손잡이를 가진 큰 칼을 말하는 것으로, 주로 삼국시대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다. 이 환두대도는 최고의 신분을 상징하는 위세품(威勢品)으로 보인다. 환두대도는 금속공예, 목공예, 가죽공예 등 총체적 종합기술을 이용한 최고의 장인만이 만들 수 있는 금속공예기술이다. 환두대도는 피장자의 머리방향이나 성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형태나 재질에 따른 신분이나 지위의 차이를 반영하고, 문양에 따라 사상적 의미를 달리한다. 또한 기법에 따른 제작기술의 발전 및 계통성 등을 함축하고 있어 당시의 정치, 기술,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1,500여년 ‘서동’이 백제 기술박사와 함께 만들고자 하였던 강하면서 충격 흡수가 좋은 칼을 과학적으로 추적하기 위하여, 천안 용원리유적에서 출토된 대도(大刀)를 대상으로 금속학적 분석을 실시하였다. 또한 그 당시의 방법을 재현하여 실제 환두대도를 복원하기 위해서 공주 수촌리유적 출토 은입사환두대도를 모델로 시제품을 복원하였다.
아래 [그림 1]은 천안 용원리유적의 대도(大刀)의 사진이며, [그림 2]와 [그림 3]은 천안 용원리유적 대도의 분석사진이다. [그림 2]는 칼날 부위 미세조직(微細組織)으로 밝고 어두운 부분이 층을 이루어 존재하고 있는데, 이는 탄소함량이 적은 괴련철을 여러 번 접고 두들겨 단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림 3]는 칼 날 부위의 미세조직으로 마르텐사이트(martensite) 조직이다. 이 조직은 탄소함유량 0.85%인 강을 높은 온도에서 물에 급랭시켜 얻어지는 조직으로, 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강도를 지니고 있다.

[그림 1] 천안 용원리유적 대도(大刀)


[그림 2] 大刀 등, 여러 겹의 단접선이 보이는 미세조직


[그림 3] 大刀 칼날, 마르텐사이트 미세조직

백제의 기술자들은 탄소 함유량에 따른 철 소재의 성질변화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탄소량을 조절하여 강 소재를 생산하는 방법과 열처리(熱處理)방법을 응용하여 강도와 인성이 매우 우수한 철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수촌리유적에서 출토된 은입사환두대도는 탄소함량이 적은 괴련철을 여러 번 접어 성형가공한 다음, 탄소함량을 조절하여 강도와 인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담금질처리 하였다. 특히 고리부분에는 은(銀)으로 물결무늬 모양인 파상문(波狀紋)을 입사(入絲)하였다. ‘입사’란 철이나 청동과 같은 금속에 빛깔이 다른 금속을 끼워 넣어 색조의 대비를 이루고, 문자나 문양을 내어 꾸미는 기법을 말한다. 현존하는 삼국시대 최초의 입사기술은 백제 칠지도(七支刀)에 나타난다. 백제에서 만들어 일본에 하사(下賜)한 칠지도는 현재 일본 나라현(奈良縣) 텐리시(天理市) 이소가노미신궁(石上神宮)에 보관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입사유물은 백제의 유물인 천안 화성리 유적의 은입사당초문환두대도(銀入絲唐草文環頭大刀)로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의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천안 용원리, 공주 수촌리, 청주 신봉동, 서산 부장리유적 등에서 확인되고 있다. 입사기술은 중국의 입사기법을 영향을 받아 처음 도입된 시점은 낙랑으로 보이며, 가장 먼저 백제에서는 4~5세기에서 나타나고, 가야에서는 5~6세기, 신라는 6세기에 나타난다. 즉, 금속에 금, 은, 동을 상감하는 기술이 상당히 발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백제시대 최고의 하이테크 기술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림 4] 공주 수촌리유적 은입사환두대도


[그림 5] 공주 수촌리유적 은입사환두대도 복원모습


환두대도는 사회 서열을 나타내는 위의구로서 왕·귀족·수장 또는 군사지휘자 등을 상징하는 유물이다. 특히 당대 최고의 장인만이 할 수 있는 금속공예기술(주조, 단조, 열처리, 입사, 목공 등)을 집대성한 종합예술작품 이다.
백제시대 수촌리유적 환두대도([그림 4])를 모델로 최고의 장인만이 할 수 있다는 은입사환두대도를 복원([그림 5])하였다. 그 당시의 소재와 전통적인 제작방법을 그대로 복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하였지만, 충분한 사전조사와 과학적인 연구를 통하여 가능한 전통적인 방법과 가깝게 복원하였다.
“서동”이 만들고자 하였던 칼을 복원하면서 축적된 기술은, 현재의 전통문화산업 발전을 도모하게 될 것이며, 문화재의 복원기술과 과학기술을 적용한 문화재의 보존·복원연구 개발을 통해 우리나라의 민족 정체성 확립 및 우리민족의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재조명하게 될 것이다.

▶ 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학교 보존과학과 정광용 교수

 

 

출처. 문화재청 전통문화의 창.

출처 : 창대의 문화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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