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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뇌와 우뇌의 통합과 깨달음

monocrop 2007. 10. 15. 00:32

 

 

우뇌와 좌뇌는 각 각 서로 다른 두가지 정보처리 방식을 나타내고 있음은 수많은 관련 연구들을 통해 

증명되어 왔다.

 

아직 그 뇌의 메카니즘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현재의 모순된 교육이 존재하고 있는 배경이 되고 있으며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전교조...등등 작금의, 정확한 표현은 아니나 조직 형식과 관련된 논리에 힘쓰고 있는 시기라고 한다면 아울러 우리 내부 인간 본연의 특성에 맞는 교육방법에 대한 논리 개발에도 그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쪽으로 치우친 논리는 향후 설자리를 잃을 것이라 확신하지만 오른쪽 뇌의 활성화를 위한 교육을 바라기에는 아직은 교육계 전체의 모습이 요원하다고 보여진다.

교육의 최소 기본 기능이라 할 수 있는 평균적 다수의 생성이란 아주 초보적인 문제서부터 사회 각 집단들의 충돌이 발생하고 갈등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우리나라의 지금 당장의 모습이라 보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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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뇌는 오른손과 신체의 오른쪽 신경계를 관장하며,

분석적, 추리적, 언어적, 상징적, 순서적,직선적이며 시간개념이 강하다고 한다.

 

우뇌는 반대로 왼쪽 신경계 전반을 담당하며,

직관적, 주관적, 연상적, 총체적이며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제리 레비라는 학자는 단적으로 이렇게 함축해 말했다.

 

"왼쪽 두뇌는 시간을 분석하고 , 오른쪽 두뇌는 공간을 통합시킨다."

 

몽상적이고 직관적이며 예술가적이고 보다 더 창조의 영역에 근접해 있는 오른쪽 두뇌는 기본적으로는 학교라는 조직적 틀에 적응을 잘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특성이 있는 것이다.

교육자들은 이러한 상상력, 지각력, 직관력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언어적이고 분석적인 훈련을 통해

그러한 능력이 자극받기를 기대하는, 어찌보면 싹을 자르는 교육을 시행하면서도 그 싹이 자라나기를 바라는 치우쳐진 제도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평균적 교육의 필요성이 늘 발목을 잡고 있을 것이며, 이것이  전혀 무시될 것은 아니기 때문이긴 하지만 이러한 우뇌교육을 등한시한 결과는 그 심각성이 상당히 크다. 수많은 창조적인 천재들이 나타날 기회들을 싹부터 없애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창조적인 인재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더욱 더 국가의 경쟁력이나 더 나아가 생존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구수나 연구비 수준으로는 도저히 인접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나가기 어려운 향후의 전망들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문제는 더더욱 절실하게 다가올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논리적인 교육과 직관적인 교육 양쪽이 모두 필요하고 보다 통합된 방식으로 좌우측 뇌의 특성을 발전시켜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논리와 고정화된 상징체계를 뛰어 넘나들 때 비로소 새로운 창조의 활동이 시작되기 때문이며, 인류 문명의 발전은 모두 그 순간들의 누적된 집합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지적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른쪽 두뇌로 그림을 그려라'라는 베티 에드워즈교수의 학생들이 짧은 시간내에 놀라운 성과를 보인 것은 사물을 보는 눈을 바꿨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복잡한 선들의 집합인 소묘 한 폭을 거꾸로 놓고 보기 시작했을 때 학생들의 왼쪽뇌들은 논리와 상징체계에 맞지 않는 형태들을 분석해나가다가 도무지 맞지 않은 대상임에 그 분석의 임무를 중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로소 족쇄에서 풀려난 우뇌는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느끼면서 추론의 과정없이 음영을 통찰해가면서 , 한편으로 그 과정을 즐기면서 형태를 지각하게 되니 잘 그려질 수밖에 없다는 베티 교수는 분석은 관련 연구자들 뿐만 아니라 많은 수학자나 과학자들에게까지 상당한 파장과 충격과 자극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우리들이 왜 가끔 알코올의 힘을 빌어 뇌의 호르몬상태를 흐뜨려 놓고 왼쪽 뇌를 누르려 하는 그런 일들에 유혹을 느끼는 것인지 설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좌뇌의 분석적인 잔소리의 구속에서 우뇌가 벗어나고 자 하는 욕구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우리 사회가 언어적이고 논리적인 사회에 너무 치우쳐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겠다.

있는 그대로 느끼고 지각하며 순간적으로 깨닫는 작용 역시 인간이 갖고 있는 정신 영역의 일부라는 분명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 무시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오른쪽 두뇌로 그림 그리기'라는 이 책을 읽은 것은 이미 20년 전의 일이다.

그간 나는, 우리의 교육은 어떻게 흘러 왔던가....

 

외형이 없는 컵의 내부란 없듯이 우리는 이러한 좌우뇌의 상반된 작용들의 자연스럽고 배분 안배된 활동들을 인정하고 또 그 통합을 지향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닐까.

 

우뇌만으론 또 부족 할 수 있겠으나 우리는 너무나 좌뇌에 치우쳐 강요를 받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 왔었기에 의식적으로 우뇌의 활동을 진작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여지며,

 

일상의 탈출을 동경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우리는 출생한 후 성장하면서 형태적으로도 분화되는 뇌의 특성을 이해하고 균형잡힌 지각력을 높일 필요가 아직도 절실하다고 보여진다.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하는 '자기로부터의 혁명'도 사실 이러한 맥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사고의 중지와 더불어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는 일의 적임자는 바로 우뇌이기 때문이다.

 

천재들이 정신병자와의 경계를 넘나들고 위대한 작가들이 다양하게 시간을 소비하는 행위들에 심취하게 되는 공통적인 모습들은 우연히 나온 공통점들이 아닌 것이다. 

 

모든 것들이 직관적으로 통합되는 시각을 느끼는 순간 의문이나 고통이나 많은 가치들로부터 새롭게

열린 세계로 접어든다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언급들은 다방면의 많은 선각자들의 언급과도 일치하는 일맥이 있으며, 그래서 공감이 가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감이 간다고 해도 요약해  놓은 정리된 글을 이렇게 왼쪽 뇌로 보면서 판단해보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은 답들이 나와 있고 따라서 나는 괴로워 할 필요가 없다'라고 추론될 수도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어찌 세상살이가 그러한가.

결론을 읽고 공감되는 부분이 일부 있더라도 곧바로 모든 것이 본인 마음 깊숙히 와닿거나 느끼게 되지는 않지 않은가.

  

많은 지침서를 읽어도 자신에게 진실로 와닿을 때까지는, 어느 순간 아~하고 깨닫게 될 때까지는

무엇인가 오른쪽 뇌가 계기를 만들어줘야 하는 순간들이 게제되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인체의 신비가 하나씩 알려질 때마다 그 오묘함은 항상 신의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게는 하지만 그래도 조직적인 공동체 생활은 왠지 끌리지 않은 것을 보면 나는 그래도 우뇌가 좀 더 활성화되어 인격이 형성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아울러 항상 말을 잘못한다는 핸디캡을 떠올리며 사는 나로서는 더더욱.....

 

음양이 만나야 지속성을 획득하 듯, 상반된 좌우뇌 또한 어떠한 일정 영역에서 넘나들며 조화를 이루며 결합된다면, 훨씬 풍요롭고 균형잡힌 , 창조적인 삶과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다음의 선각자들(화가,과학자,학자 ...)의 언급들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전달하는 공통의 무엇이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교육 현실이나 혹은 각 개인에게 시사하는 바는 의미깊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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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그림을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그린다.

무엇을 보든지 간에 그것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면

역시 그릴수도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관심과 노력이 요구되나 그 이후는

자기 이름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손놀림만으로도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명확하게 관찰하는 일이다.

 

-Maurice Grosser 화가의 눈 에서

 

 

일상적인 지각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게 되면,

잠깐 동안일지라도 시간을 초월한 가운데

언어나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아무런 조건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더없이 귀중한 경험이다.

 

-Aldous Huxley 지각의 문에서

 

 

창조란 진지한 작업임에 틀림이 없다.

거기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말없이 조용한 순간들,

진지하고 오묘한 순간들이 바로 창조가

일어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 Jerome Bruner 깨달음: 왼손을 위한 에세이에서

 

 

모든 생각에서 벗어나

마음을 텅 비워 놓고

그 빈 공간을

보다 더 위대한 정신으로 채운다는 것은 ,

인습에 젖은 이성이 접근 할 수 없는 영역속으로

 마음을 확대시키는 작업이다.

 

-  Edward Hill 소묘의 언어에서

 

 

모든 창조적인 작업을 하려면,

자신 내부에 쌓여있는 산더미처럼 신념들로부터 벗어나

새롭고 순수한 지각을 받아들여야 한다

 

-Arthur Koestler 몽유병 환자들에서

 

 

소련의 과학자 포노마레프는 인식의 커다란 두 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감명깊게 표현했다.

 

우리들 주변의 것들을 탐구할 때 과학은  단지 여러 방법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음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을 보완하는 다른 방법이란

바로 예술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깨닫게 되었다.

과학과 예술의 공존은 상호보완적 원칙의 좋은 실례이다.

 

여러분들은 과학과 예술의 각 각의 세계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이 두가지는 동등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지만

각 기 별개로 취급된다면 불완전하게 되고 만다.

 

흔히들 과학의 기초는 논리와 실험에 있고 예술의 기초는

직관과 통찰력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발레 무용에는 수학적인 정확성이 요구되어지고,

푸시킨의 언급처럼 기하학에 쓰이는 영감이란 시를 쓰기 위한 것과 똑같다라고 공감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된 의미의 과학이란 진정한 의미의 예술이 언제나 과학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듯이, 예술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단지 인간의 체험이 다르게 반영되는 영역일 뿐이며,

 

우리는 불행히도 상호 간 개념의 결합을 위한

과학과 예술간의 관계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고 있을 뿐이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지각은 완전한 인식이 되기 힘들며,

치우친 지각으로 인한 손실은 감히 측정할 수가 없다.

 

-Leonid Ponomarev 양자의 탐구에서

 

 

 

산문체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는

말의 포로가 되어버릴 수 있다는 부분이다.

 

확실한 이미지의 대상이 있을 경우에는

단어에 의존하지 않고도 떠올릴  수 있으나,

단지 머리속에 그려지고 있는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낼 수 있는 단어나 문구를

찾아내기 위해 고심하게 된다.

 

특히 추상적인 것에 대해 생각할 때에는

처음부터 단어를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경우 부정확한 단어나 표현이 뛰어나와

그 자리를 점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때는 전달코저 한 참된 뜻이 흐려지거나

아예 바뀌어 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나는 이럴 경우 글이 아닌 그림 또는 다른 감각의 전달 수단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유용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지 오웰 정치와 영어에서

 

 

 

당신이 우주 안에 놓여 있을 때,

그것을 보고 배우는 방법을 알 수만 있다면

문도 거기에 있고 그 문의 열쇠도

이미 당신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다.

당신 자신 이외의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열쇠를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문을 열어 줄 수도 없다.

 

-J. Krishnamurti 당신은 세계에서

 

 

시를 이해하려면 색다른 마음의 상태로 빠져들어야만 한다.

이러한 상태로 접어드는 것은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능력(negative capability)이며,

어떠한 추론이나 사실에도 기울어지지 않는 이 상태를

표현하자면, 단지

 

막연하고 신비스러우며 불확실한 채로 머물 수 있는 상태 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시인 John Keats 시의 이해에서

 

.......................................................................... mimesis

 

 

관련 글 : http://blog.daum.net/innomy/127726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