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구 묘지문/ 고구려 동명왕 대 신하
고추대가 문단구 묘지문의 의의;
고구려의 가장 오래된 비문. 기원전 25년 건립.
당시 고구려의 한자 수준을 알수 있고,
고구려의 관직 이름과 당시 사회의 음양오행, 천문지리 관찰, 장례의식을 알 수 있다.
제4면의 모습/ 묘석은 서울에 있음. 흙을 구워 글을 새기고 염료를 바르고 다시 구운 것으로서
글씨는 도공의 수준으로서 조금 유치하나 판독하기는 쉬움.
비문은 모두 4면에 걸쳐있다.
1면.
古鄒大加 太大兄 文旦勾
고추대가 태대형 문단구는
舊是 東明王之屬民 永隨 王之下恩 不絶
본래 동명왕의 속민으로서 영원히 왕을 따랐으며 왕의 은혜를 입었는데,
以太歲在丙申年昇天 迴王招去垂靑爲歸
병신년(-bc25)에 승천하여 동명왕에게 돌아오니, 동명왕이 청사에 이름을 남기도록 하였다.
2면.
哀君 動地 立碑 銘記
동명왕이 슬퍼하며 묘소에 가서 비를 세우고 기록하였다.
以昏建柯旦 平魁 臨制四夷 定諸邊(湯) 혼건구단으로 괴수들을 평정하고, 사이四夷를 다스리고, 제변을 평정하고
扶木[라] 其五寧吉絡
목라(목책)을 세워 왕실을 영길하게 하였다.
自玄西白 單雷大音 配挹馬 卯
북서에서 뇌성벽력처럼 와서 묘공주의 부마가 되고 은부殷富를 얻었다.
3면.
殷富 念其勳績 惟聖王之德 余不可(儢?擄)也
그 훈적을 기념하면, 오로지 성왕의 덕을 생각하니 게으를 수 없었다.
今祭 於左其辭
오늘 제사하며 그 비문에 새긴 말로 다 드러낼 수 없다.
究不表 棄國 天招恩亏
세상을 떠나니 하늘(왕)이 부르시는 은혜를 입었다.
奴稗降日 於 喒度灰我 律通則天地.
동명왕에 항복하여 자신을 받쳤고
천지의 중성에 통하였으니
4면.
之中聲 而 東宮面廣 見惑星 國興豊
동궁에서 널리 백성을 대하였고, 천문을 알아서 혹성을 살피고 나라가 흥했다.
古鄒大加 太太兄 永爲奴客 以王之天恩
고추대가 태대형은 영원히 노객으로서 왕의 천은을 입고
守天道地寧 四時不逆 小兄拜上 辭焉
천도의 지리, 사시의 안녕을 감시하고 따랐다. 소형 배상 ...
-끝-
(名垂青史는 숙어)
(駙馬=把馬; 사기 열전, 따라서 挹馬도 같은 것으로 추정.)
殷富(삼국지연의)
(조조; 灰軀盡命,報塞厚恩)
(廣; 眾多, 熒惑星; 火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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