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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위성으로 찾은 치우천황의 고향 구려와 현도성

monocrop 2007. 3. 6. 03:25
위성으로 찾은 치우천황의 고향 구려와 현도성

현도군은 요동국성으로부터 북으로 200리였다.
현도군(玄兎郡)은 본래 낙랑군 옥저현에 처음 두었다가 구려 서북으로 옮겼다. 따라서 <한서(漢書)>의 현도군은 구려 서북의 현도군이다.
<삼국지위지/공손탁전> 기록에는 요동국성으로부터 북으로 200리였고, 원도군(元兎郡)이라는 이름으로도 나오는데, 그 이유는 여기서도 현도군이 쫓겨나서 유성-노룡지간(柳城盧龍之間)인 산해관 부근에 현도군이 따로 생겨났었기 때문에 이와 구별하여 원도군이라고 부른 것이다.
또한 <거란지리도>에서 보면 원주(元州)가 있어 원도주 위치를 가리켜주는데 그 위치는 홍모자향(紅帽子鄕)에 있던 성주(城州)와 가깝다.
▲ 거란지리도(부분)
<한서>에서 현도군의 고구려현에 요산(遼山), 요수(遼水)가 있다. <신당서>에서 대요수는 말갈(靺鞨) 서남산에서 나온다.
말갈은 고구려 영양왕 무렵에 길림성에서 국내성 부근으로 이주해 들어온 말갈이며, 후에 불열국(拂涅國)을 세웠는데 불열말갈 이름에서 비롯되고, 이들이 훗날 발해 건국을 도운 허국공 걸사비우의 무리다.

 


고구려 강물 지도로 보면 대요수의 발원이 되는 말갈 서남산은 지금의 낙타산(駱駝山,624m)이다.
▲ 현도군상세지도. ()는 요나라지명
이 서북에 바로 중국식 성터가 있는데 하달호초(哈達戶稍)이다.
▲ 현도군 현도성
하달호초 성터가 바로 후한시대 현도군 성터이며 부신시 청하문에 있던 요동국성으로부터 200리 북쪽 성으로 정확하다.(후한시대 200리는 60km 정도다. 당나라와 고구려는 80km, 원나라와 명나라는 100km에 해당한다.)
현도성은 완전한 장방형으로서 동남벽이 1500m이고 동북벽이 1200m이다.

현도군에는 서개마현이 있어서, 마자수 압록강이 발원하였는데 <신당서>에서는 말갈 백산이라고 하였다.
이는 우란모도산(烏蘭木頭山,831m)를 가리키며 그 동남에 구력판성(歐力板城)이 평지성으로서 현도군 서개마현에 해당한다. 900m x 600m의 토성이다.
▲ 백산과 마자수,서개마성
이 말갈백산 꼭대기에도 어느새 고구려 산성이 들어서 있다.
현도군에서는 남소수(南蘇水)도 발원하는데 서북방에서 색외로 나간다고 하였다. 이 남소수는 통료시(通遼市)로 나가는 교래하(敎來河)를 의미한다.

말갈백산이 백두산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청나라 강희제때 대요하(遼河) 설명을 보면 알 수 있는데, <호종동순일록(扈從東巡日錄)>에 나온다.
"강희제가 요하(遼河)에 머물렀는데, 요하는 구려하라고도 부르고..원래 말갈 북쪽의 여러 산에서 나오고..."
駐蹕...又名 句麗河...句麗河 源出 靺鞨 北諸山中...
여기서의 구려하는 이제까지 고구려강역에서 마자수압록강이라고 부른 바로 그 강이 현대의 대요하로 그 이름이 확장된 것이다.

현도군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그 동남쪽의 말갈 서남산(대요수 발원지)을 넘으면 신석기시대 최고(最古) 유적지인 사해향(査海鄕)이라는 사실이다. 사해향에서는 중국 최초로 용이 새겨진 질그릇이 나왔고 20m에 달하는 용(龍)을 조각한 대형 암벽이 나왔다. 20여건의 옥기가 발굴되었고 옥비(玉匕), 옥부(玉斧), 옥분(玉锛), 옥관(玉管), 옥주(玉珠) 등이다. 중국에서는 화하제일촌(華夏第一村)으로 신격화하고 박물관을 세웠다. 또한 중국 전설의 황제헌원의 고향이라고 우겨대고 선전한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 사해 유물-최초 용무늬 질그릇
▲ 사해 용조각..길이 20m
▲ 사해 유물 옥기
그런데 현도군의 동남쪽은 바로 구려(句麗)다. <사기>에 의하면 bc 28세기에 동북아시아에 최초로 청동기를 도입하여 구리 투구를 쓰고 철편으로 이마를 가려서 출전하여 도극대노(刀戟大弩)의 청동무기로서 황제 헌원을 치고 산동반도에 이주하여 용산문화를 일으킨 치우천황이 본래 구려(九黎)의 왕이었다. (九黎君 號 蚩尤...)
산동반도의 용산문화는 용호(龍虎), 수면문(獸面文)이 특징이다.
▲ 치우시대 산동 용산문화 청동기물
이제 위성으로 찾은 현도군의 올바른 비정으로 치우의 고향 구려가 밝혀진 것이다.
말갈 서남산 동남쪽, 사해향 북쪽에 차하얼산(察哈爾山, 592m)이 있다. 치우산이 원말일 것으로 고려된다.
치우의 치(蚩)는 검을 치(淄)와 통하여서 산동반도의 치천(淄川)에 도읍하였다. 현도군도 검을 현(玄)을 쓴다.
<용어하도>에서 말하기를“ 황제는 (중략) 하늘이 보낸 현녀에게서 황제병신신부를 받아 치우를 제압하였다...(중략) 치우가 죽고 천하가 다시 소란하니 황제는 [치우형상]을 그려서 천하에 위세를 드러내니 천하가 치우를 칭송하고 죽지 않았다고 하였으며 팔방만방이 모두 복종하였다.” 고 하였다.
<正義龍魚河圖云> 黃帝..중략,,,天遣玄女下授黃帝兵信神符,制伏蚩尤...중략...蚩尤沒後,天下復擾亂,黃帝遂畫蚩尤形像以威天下,天下咸謂蚩尤,不死,八方萬邦皆為弭服.
윗글을 읽으면 황제 헌원이 오히려 치우에게 패전하여 치우의 영정을 직접 그려서 황제 헌원의 등 뒤에 걸어두고 치우의 위엄을 빌어서 일개 제후 자격으로 고작 산서성을 통치한 것을 알 수 있다.
후한(後漢) 사람 응소는 치우를 옛 천자(古天子)라고 하였다. 황제에 대응하여 천자(天子)라는 극존칭의 호칭이 치우천황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고 그가 천하를 다스렸음을 알 수 있다.
(단, 치우천황이 철과 구리를 캐서 제련한 곳은 갈로산이며 이는 금주시 서쪽으로 추정되고 치우천황이 산동성으로 남천하였으므로 사해유적지에서 청동기 유물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알림. 현도군의 "도"에 해당하는 한자가 없어서 비슷한 자로 대치하였음.)
출처 : 일본사 X-file /일본천황은 백제왕자였다
글쓴이 : 천사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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