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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당태종의 실수?

monocrop 2007. 3. 2. 02:47
당나라때 토번, 즉 지금의 티베트.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는 않은데...
중국의 서남공정의 결과인지 당나라 최대의 적이었던 티베트는 왠만큼 자세한 중국사를 읽지않는한 그 존재감을 찾기도 힘이 듭니다. 그런가보다 넘어가지만, 사실 가장 당을 괴롭혔던 나라중의 하나입니다.

아무튼 전 당과 토번의 자세한 전쟁은 잘 모르고 대략 669년과 675년 당과 토번과의 대규모전투가 있었는데 결과는 두번 모두 당이 대패했다는 것, 고선지의 서역정벌의 주목적은 토번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 한때 장안이 토번에게 함락당하기도 했다는 놀라운 사실!!

이 정도만 봐도 토번의 힘을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토번은 원래 얄룽을 중심으로 하는 소국이었다가 점점 세력을 키워 그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토번의 왕들은 이름이 다 비슷비슷합니다. 치송데챈, 치데송챈, 치송챈포 요딴 식으로 비슷하게 지으니ㅡㅡ;;;) 토번판 광개토대왕인 쏭첸캄포의 아버지대에 라사로 천도하고(이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책에 반발한 귀족들에 의해 암살당하여 대략 고구려의 고국원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쏭첸캄포대에 이르러 비로소 서역을 통일하고 강대국이 되었지요.

개인적으로 당태종은 이때 외교적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온 국력을 다 기울여 고구려를 침공하였는데 이것은 상대적으로 배후의 토번을 별 견제없이 그대로 방치하는 원인이 되었고 게다가 쏭첸캄포라는 희대의 영웅을 군주로 둔 토번은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669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어느정도 군사적인 여유가 생긴 당은 그제서야 토번에 대한 공세로 나갔지만 결과는 설인귀가 이끄는 당군은 재상 가르친링이 이끄는 토번군에게 대패했습니다. 설인귀는 그동안의 전공이 인정되어 간신히 현상유지만을 했지요.

675년 당은 다시 토번을 공격했지만 이번에도 대패합니다. 전투의 자세한 정황은 잘 모르겠지만 대충 어렴풋이 듣기로는 당군이 토번군에게 포위당할 위기에 빠진 것을 흑치상지가 자기 휘하의 군대를 이끌고 끝까지 자기자리를 버텨 완전한 포위가 이뤄지지 않았고 그덕분에 당군은 전멸을 피했다고 하더군요.

그뒤 토번의 업적(?)은 치송데챈 치하에서의 최전성기, 실크로드 강탈(?), 돈황점령,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직통되는 새로운 루트의 개발 등이었습니다. 위에 적은대로 고선지의 서역정벌은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을 복속시키거나 정복하여 토번을 견제하겠다는 의도입니다. 고선지만한 인물이 직접 처들어가지 못하고 그렇듯 간접적인 공세를 취했다는건 당시 토번의 힘이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주지요.

한때 장안까지 함락시키며 위세를 떨치던 토번은 불교의 힘을 빌어 왕권을 강화하려는 왕과 이러한 왕에 반발하고 또한 불교의 도입으로 입지가 줄어들 것을 염려한 토종종교(뵌포교, 샤머니즘과 비슷하다고함)와의 내분으로 분열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만약 토번이 그 전성기를 당의 쇠퇴기까지 이어갔다면 당으로서는 정말 최대의 위기를 맞았을지도 모르지요. 보통 위험하게 자랄 수 있는 싹은 미리부터 자르는게 냉엄한 국제질서의 한 단면입니다. 그런데 당나라는 전혀 그렇게 하질 못했고 토번이 강대국이 되도록 그냥 방치해뒀습니다. 그 이유인 즉, 고구려에만 매달리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당나라군은 토번군앞에서는 말그대로 오합지졸이 되버렸습니다.

고구려와는 잘만 타협하면 서로 잘 끝낼수도 있었던 사이였고 고구려가 그리 중국에 군사적인 도발을 일삼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토번은 중국에 대해 필요하면 적극적인 공세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고구려와 토번 중 누가 더 쎘는지는 대결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전면전에 있어서는 토번이 더 강했을것이라 생각됩니다. 일단 당-고구려와 당-토번 전쟁을 보면 고구려의 싸움방식은 뭐 다들 아실테고 토번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전면전을 벌여서 당군을 패배시켰지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민족은 아마 전통적으로 전면적 회전에는 약한가 봅니다. 주로 수성전등을 통해서 성공을 거두거나, 게릴라식 지연전에 능숙했지요.

그렇다면 당이 고구려가 멸망하고 나서야 뒤늦게 토번에 대한 대책을 세웠느냐? 그건 아닙니다. 이미 당은 토번에 공주를 시집보낸적이 있지요. 비록 형식상으로는 토번왕이 요청하여 혼인이 성사되었지만 일단 "천하의 당이 공주를 시집보냈다" 바로 이게 중요합니다. 중국이 타국과 황실의 처자를 주면서 혼인을 성사시킨다는 것은 그나라가 그 만한 강대국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죠. 즉 일단 당은 토번을 타이르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지은 것입니다. 하기야 토번의 지형이 쳐들어 가기는 어렵고 지키기는 쉬운 지형이니까요..

그렇다면 태종은 잘만 타협하면 서로간의 평화와 이익을 지킬 수 있었던 고구려를 적으로 돌려 끝까지 온 국력을 동원하여 싸우고 호전적이던 토번에는 반대로 혼인관계를 맺는 잘못된 외교를 한것이 아닐까요? 태종이 비록 미래를 일일이 예측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외교정책은 실수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당태종이 국력을 기울여서 토번을 격파했다면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출처 : THIS IS TOTAL WAR
글쓴이 : Daum Bar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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