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자료는 <우리역사의 비밀 coo2.net>에 올려진 자료입니다. 현재 한반도 경기 광주에 '하남'이라는 지명이 있고 하남시로 불려지고 있지요. 그리고 이렇게 해서 백제의 하남 위례성을 한반도로 기정 사실화하고 있습니다. 날조국사책이 그렇게 정하고 있고, 우리는 어렸을 때 부터 이것을 최초로 접하고 요지부동의 진실로 각인시키고 이를 뒤집는 주장을 '민족주의'니 '국수주의'라고 무시해 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입력된 지식이 진실이라고 우긴다는 것은 너무나 불합리하고 모순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데는 인간은, 먼저 입력된 지식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 심리적 경향이 있고 이게 자신의 모습으로 아는 게 인간사회의 현실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뒤집는 사실이 나오면 지금까지 쌓아온 인격과 자존심이 무너지는 죽음과 같은 고통을 느끼기에 진실을 거부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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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라 하는 자들이 이제 역사단절을 목적으로 '동이한겨레'가 우리와 상관없다고 주장을 한다고 합니다. 동북공정을 자행하는 중국공산당 보다 더 무서운 놈들이 이땅에 있습니다.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공O당국은 저들의 활동을 샅샅이 감시하여야....나라를 팔아먹고도 남을 넘들입니다.
간덩이 크게도 민족을 팔아먹는 넘들이니....
(백제의 시국처는 발해만 연안) (2) 하남 위례성은 하북성 천진북쪽
- 출처 : (나동현 저) 중국북방이족과 이맥고구려 중 일부
→ 상기책은 출판이 되지 않아 일부만 인용소개합니다
(본문 소개)
(중략)
중국의 사서중에 백제의 기록은 [송서(宋書)]에 처음 기록되고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진서(晋書)]에는 기록이 없다.([진서(晋書)]의 마한전(馬韓傳)을 백제의 내용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백제에 관한 편찬은
남북조조시대(南北朝時代) 편찬된 것으로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위서(魏書)]가 있고
당(唐)나라 태종(太宗)부터 고종(高宗)초기에 편찬된
[양서(梁書)] [주서(周書)] [수서(隋書)] [남사(南史)] [북사(北史)]등이 있으나
백제의 시국처(始國處)에 관한 기록은 [수서]와 [북사]에 기록하고 있다.
[隋書] 百濟傳 `始立其國帶方故地'
[수서] 백제전 `시입기국대방고지'
[北史] 百濟傳 `始立國于帶方故地'
[북사] 백제전 `시입국우대방고지'
라 하고
[삼국사기]에는 여러 설을 기록하고 있데
[수서] [북사]를 인용하여
‘동명(東明)의 후예(後裔) 구태(仇台)가 있었는데
그는 인신(仁信)이 독실(篤實)하여 처음에 나라를 대방고지에 세우므로
요동태수 공손도(遼東太守 公孫度)는 그 딸을 그의 아내로 삼았는데
드디어 동이(東夷)가 강성하게 되었다'
라고 말하는 `대방고지(帶方故地)'는
대방이 옮겨지기 이전의 땅을 `대방고지'라 했음은
한나라시대 락랑군의 현인 대방현을 말하는 것이고
이 락랑군은 발해만 연안을 따라 난하(?河)를 중심으로 동서(東西)로 있었고
그 북(北)쪽에 옥저(沃沮)가 있어 현도군(玄?郡)을 설치하였다.
이때 대방현(帶方縣)은
이맥(夷貊)의 활동으로 요동군(遼東郡)에도 속하기도 하고,
락랑군(樂浪郡)에 속하기도 하였는데
대방현(帶方縣)의 위치는
신하(新河 : 삼국시대三國時代 새로 만들어진 구거?渠에서 난하?河로 이어지는 강)가
시작되는 구거(?渠)부근인 풍윤현(豊潤縣) 동쪽 80리에 요대산(腰帶山)이 있고
이곳에 대수(帶水) 즉 환향수(還鄕水)가 흐르고
이 유역이 대방현(帶方縣)이었던 것을
AD 215년 공손강(公孫康)이 둔유현(屯有縣) 남쪽지역을 대방군으로 만들었던 지역이다.
그런데
이 지역으로 포구수(백하)鮑丘水(白河)
즉 옛날의 패수(浿水)가 흐르고 있음은
[삼국사기]에서 일설(一說)을 이용하여
`패수(浿水)와 대수(帶水)를 건너 미추홀에 도착했다'라고 말함은
대방고지(帶方故地)의 위치를 확실하게 말하고 있다.
[자치통감(資治統鑑)]에
`대방고지(帶方故地)'를 `유성(柳城)과 노룡(盧龍) 사이에 있다'라고 말함도
노룡(盧龍)은 난하(?河), 비여(肥如) 부근을 말하고
유성(柳城)은 [명일통지(明一統志)]에서
`柳城在河間府鹽山縣東七十里一名柳亭城'
`유성재하간부염산현동칠십리일명유정성'
이라 하므로
이 곳은
노황하(老黃河) 어구의 공손강(公孫康) 때 요서지역(遼西地域)이므로
유성(柳城) 또한 `유성고지(柳城故地)'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치통감]에서 말하는 `대방고지(帶方故地)'는 옳은 기록이 된다.
`대방고지(帶方故地)' `유성고지(柳城故地)'는
삼국시대(三國時代)를 통일한 진(晋)나라 이후 5호16국시대를 거치면서
다시 말하자면 동천왕(東川王)이 모구검(?丘儉)에게 패한 이후
고구려(高句麗) 땅을 선비(鮮卑)의 후예(後裔)들이 차지함에 따라
대방(帶方)과 유성(柳城)이 대능하(大凌河) 유역으로 옮겨가게 되어서
(북위시대北魏時代 지도참고)
옛 대방(帶方)을 가르켜 `대방고지(帶方故地)'라 말하고 있다.
결국
백제(百濟)의 건국(建國)은
한반도(韓半島)의 광주(廣州)인 `하남 위례성(河南 慰禮城)'이 아니라
지금의 중국 천진시 북쪽지역이었고
이곳을 `하남 위례성'이라고 부르지 않았나 생각되어지며
[三國史記] 列傳第六 崔致遠에
‘勅蘇定方統十道强兵樓船萬隻大破百濟乃於其地置扶餘都督部招緝遣민입以
漢官以臭味不同樓聞離叛遂徙其人於河南
‘칙소정방통십도강병루선만척대파백제내어기지치부여도독부초집견민입이
한관이취미부동누문이반수사기인어하남’
(‘소정방에게 명령하여 10도의 강병과 전선 만 척을 거느리고 와서
백제를 크게 깨뜨리고 그 땅에 부여 도독부를 설치하고
유민들을 불러들여 중국의 관리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였는데
서로간에 취미가 맞지 아니하여 자주 반(叛)하므로 그 사람들을 하남(河南)으로 옮기 었다‘).
[수경주(水經注)] 성수(聖水)편에 기록된
`한후성(韓侯城)'과 [금사(金史)] 지리(地理)의 한성(韓城)
(신하新河와 환향수還鄕水가 만나는 곳)이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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