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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삼국사기에 나타난 기후로 보는 대륙설근거

monocrop 2006. 12. 15. 22:34
삼국이 대륙을 근거지로 했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는 바로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홍수기록입니다

먼저 신라의 홍수기록을 살펴보면 2세기에서 4세기까지는 음력 4~5월에, 5세기 이후부터는 음력 6~7월에 큰물(홍수)이 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마와 같은 기상현상은 1백 ~ 2맥년 사이에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기록 역시 지구상에서 위치가 다른 두 곳에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서 음력 4~5월에 큰물이 나고 그 이전과 이후에는 강우량이 적은 곳이 어디입니까?

동아시아에 산재한 기상측후소가 최근 50년 ~ 1백년간 축적한 강수량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양자강 유역과 그 이남으로 드러났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음력 6~7월에는 산동반도와 한반도 지역에 강우량이 많았고 이 시기 양자강 유역과 그 이남 지역은 강우량이 많지 않음도 확인되었습니다

한편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와 고구려 본기에는 큰물 기록이 각각 7회와 6회만 나와 통계적 분석이 신라보다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백제의 경우 큰물이 발생한 달이 5월에 3회, 6월에 4회가 있었고, 고구려의 경우 5월에 3회, 6, 7, 8월에 각각 1회씩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백제는 신라보다 큰물이 한달정도 늦고, 고구려는 백제보다도 약간 늦은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홍수와 가뭄에 대한 삼국시대 기록을 살펴봅시다

삼국기에는 `신라 파사왕 29년에 홍수로 백성들이 굶주리므로 10도로 사신을 보내 정부의 양곡을 풀어 구제하였고'로 기록돼 있습니다

파사왕 29년은 서기로 108년.

바로 이 해는 백제 기루왕 32년인데 어떻게 기록돼 있을까요?

엉뚱하게도 백제에서는 `봄, 여름에 가뭄이 있어 흉년이 들고 백성들이 서로 잡아 먹었다'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같은 해 같은 계절에 둘다 백성들이 굶주림에 빠져있는 상황은 마찬가지인데 신라쪽은 홍수 때문이라고 하고 백제는 가뭄때문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한반도에 삼국이 있었다고 할 때, 신라지역인 경상도와 강원도는 홍수로 난리가 났고, 백제 지역인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는 약 6개월 동안 가뭄이 들어 민심이 흉흉했다는 뜻입니다

기상관측 전문가이면서 재야사학자인 정용석씨는 이 기록은 한반도의 기상원칙으로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지구의 자전원칙과 전향력을 볼때 북반구에서는 기류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상식이며 따라서 한반도에서 위와 같은 상황이 되려면 대륙에서 이동한 습기가 많고 규모가 큰 저기압이 황해를 건너오는 도중에 바다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받아 일단 백제 땅을 껑충 뒤어넘은 뒤 경상도와 강원도 땅에서 포화상태가 된 수분에너지를 뿌릴 때 신라지역에서는 홍수가 발생합니다

그럴경우 같은 시기 6개월 동안의 긴 가뭄을 일으킨 큰 고기압 덩어리는 한반도에 있을 자리가 없게 됩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지속적인 가뭄 현상을 일으키는 공기 덩어리는 그 규모가 최소한 수백㎞에서 수천㎞의 반경을 유지하며 요지부동이거나 이동속도가 아주 느린 특성이 있습니다

기상학 용어로는 블로킹 기단이라고 하는데 강수현상을 일으키는 공기 덩어리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범위가 크고 넓습니다

즉 백제뿐 아니라 홍수상황에 있는 신라와 고구려까지 가뭄의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기록은 기록 자체가 잘못 됐거나 아니면 삼국의 위치가 지금의 한반도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삼국의 기후현상이 현 한반도쪽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기상 증거는 더 많이 나타납니다

다음 기록을 봅시다

신라 벌휴왕 9년(서기 192년) 여름 4월에 눈이 3자나 내렸다. (삼국사기)

신라 눌지왕 41년(서기 457년) 여름 4월에 서리가 내려 보리를 해쳤다. (삼국사기)

백제 기루왕 23년(서기99년) 가을 8월에 서리가 내려 콩을 죽였다. (삼국사기)

먼저 여름 4월은 지금으로 말하면 양력 5월 6일 입하가 지난 때입니다

한반도의 신라지역은 대체로 12월 하순을 전후해 첫눈이 내리고 늦어도 3월 초순이면 눈이 그치는 곳입니다

또 지금의 경주는 3, 4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에만 눈이 내릴수 있는 따뜻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곳입니다

그런데 벌휴왕 9년 신라의 서울인 경주에 눈이 34자(76㎝ 추정)나 내려 극심한 피해를 주었다면 보통의 기상이변이 아닙니다

옛날 제왕들은 때아닌 계절에 눈이나 서리가 내려서 곡식을 해치는 일이 생기면 정사를 잘못 처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판결한 죄인을 다시 심사하거나 가벼운 죄인은 석방하는 등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 때문에 사서에서도 기상이변을 비중있게 다루는 것입니다

문제는 신라에 기상이변이 발생했다면 홍수 때의 공기 이동처럼 백제땅에도 더 많은 눈이 내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백제의 기상현상은 신라지역보다 대개 1개월 이상 빨리 내리고 또한 경주보다는 늦게 까지 내리게 됩니다

그런데 백제에는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서리현상은 더욱 그렇습니다

눈의 경우 간혹 한반도 백제에 많이 내리고 신라에 적게 내릴수는 있어도 서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대륙에서 찬 공기가 이동해 와 한반도에서 그 성질을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서리는 신라 따로, 백제 따로 구분해서 내리지는 않습니다

특히 곡식을 해칠 정도의 무서운 서리는 더욱 그렇다는겁니다


따라서 곡식을 망가뜨릴 정도의 서리가 백제 지역에 내렸다면 경상도와 강원도 산악지방에 서리가 내리지 않을 확률은 0%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백제에 피해를 준 서리가 신라에는 나타나지 않고 반대로 신에 피해를 준 서리는 백제 기록에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역시 삼국이 한반도에서 인접해 있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이번에는 화산활동 기록에 대해 살펴봅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1천4백여년 전에 신라국에서 화산 폭발과 화산 활동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제와 고구려에는 지진 기록만 있을 뿐이고 화산 기록만큼은 신라가 유일합니다

신라 진평왕 31년(서기 509년) 봄 3월에 모지악산의 땅이 탔다. 구덩이 너비가 4보, 길이가 8보, 깊이가 5척이나 되었고 10월 15일에 꺼졌다.

신라 무열왕 4년(서기 657년) 가을 7월에 동악 토함산의 땅이 타서 3년 만에 꺼졌다.

국내 사학자들은 모지악 산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고 했고, 토함산은 현재 그대로 경주에 있는 산으로 보았습니다

또 토함산의 화산활동에 대해 일부 사학자는 LNG나 LPG의 천연가스 폭발로 추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이들 화석연료가 생기는 층이 경주 일대에 있어야 하는데 세계지질학계 보고에 의아면 한반도는 석탄 이외에는 화석연료가 없는 지층이라고 판정하고 있습니다

또 만약에 경주 함산에서 천연가스가 3년 동안이나 뿜었다고 한다면 최소한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해발 7백 50m의 평범한 화강암석으로 이루어진 경주 토함산은 천연가스가 나올 수 있는 산도 아니고 더더욱 화산폭발에 의한 휴화산도 아닙니다

한반도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토질과 석질의 산인 것입니다

그러나 삼국사기 기록은 분명히 토함산이 화산활동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먼저 화산활동에는 바늘 가는데 실 가듯이 지진이 따라붙는다는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열왕때 토함산이 불기둥을 뿜기 2백41년전인 실성왕 15년(서기416년)에 토함산이 무너져 샘물이 솟았고 물기둥의 높이가 3장이나 되었다는 기록과 1백 86년전인 자비왕 14년(서기 471년)에는 신라의 서울 땅이 갈라져 동서남북 넓이가 20장이나 되는 대규모 강진이 있었다는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토함산은 화산활동을 하기 전에 전주곡으로 지진현상까지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토함산은 어디에 있을까요?

중국 안휘성 소호시 합비라는 곳에 있는 함산이 삼국사기에 기록된 토함산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화산으로 용암을 뿜어내는 활화산일 때는 토함산이 되지만 요즘 말하는 휴화산일 때는 토(吐)하지 않기 때문에 함산으로 이름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중원 대륙의 지형지리지인 중국지에 의하면 함산은 화산활동을 한 적이 있는 휴화산이고, 그 인근의 합비지역은 화산활동의 여파로 토질이 좋아 작물이 잘자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곳은 대륙 신라의 위치로 추정하는 양자강 유역 부근에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천문학고 박창범 교수는 「삼국시대 천문현상 기록의 독자 관측사실 검증」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삼국사기에 나타난 일식현상의 기록을 통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최적관측지가 한반도가 아닌 중국 대륙에서, 그것도 서로 지역을 달리해 나타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라의 경우 일식 기록이 있는 2세기 까지는 최적관측지가 중국 양자강 유역으로 표시된 반면, 7세기 이후즉 후기 신라(통일 신라)는 한반도로 나타났습니다

또 백제는 발해만 유역, 기록횟수가 가장 적은 고구려(11회)는 백제보다 더 북방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증거로 볼 때 고대 삼국의 무대는 중국대륙이라는 결론이 나오고 맙니다

다시 말하건데 신라는 신라(新羅)라는 국명을 처음부터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는 새라, 서라, 서라벌, 계림등으로 불리다가 국명을 한자화 하면서 신(新)과 라(羅)로 이름을 정하게 된 것입니다
출처 : 韓民族! 옛 제국을 찾아서...
글쓴이 : 박아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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