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무님께: 대륙 고려 중 학계에서 인정되는 정도
작성자 : 김 상 ....작성일 : 99-11-25 ....조회수 : 109
저도 한 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군요.
고려가 대륙에 있었다는 님의 주장 중, 기존 학계에서 인정되는 부분은 다음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시겠지요. 사실은 저도 잘 모릅니다. 되풀이하는 것을 대단히 싫어하지만, 제가 번호를 드려 봐야 안 읽으실 것 같아,
옛날에 올렸던 글 2개만 재탕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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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탕]370번
[2] 장보고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우연한 기회에 사람들과 장보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장보고와 그 시대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상고사의 대상은 아니나 발전적 차원에서 이를 정정하고자 한다.
1) 장보고 시대 이전에는 아시아의 바다에 항상 해적이 들끓었다.
-> 삼국시대에는 아시아의 바다에 해적이 없었다.
(해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바다에 대한 통제가 약해질 때 생긴다.)
2) 청해진은 신라정부에서 독자적으로 설치한 것이다.
-> 당나라 정부와 협의 하에 설치한 것이다.
(대사라는 직함은 신라에는 없으며 당나라의 지방 절도사가 받는 것임.)
3)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와 신라방 등 재당 신라인 사회가 형성되었다.
-> 삼국시대에 있었던 백제인 사회가 재당 신라인 사회의 전신이다.
(마치 오늘날의 연변 조선족 사회와 같다.)
4) 통일 신라 멸망 후 재당 신라인 사회도 없어졌다.
-> 재당 고려인 사회로 바뀐다.
5) 청해진을 완도에 설치한 이유는 장보고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 해상 무역의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6) 청해진은 바다 쪽을 향하여 진을 치고 군대를 배치하였다.
-> 육지 쪽을 향하여 진을 치고 군대를 배치하였다.
7) 장보고는 딸 문제만 아니었으면 장수했을 것이다.
-> 딸 문제는 핑계고 결국은 토벌되었을 것이다.
8) 중동지역 상인들이 드나들었던 신라 항구는 주로 한반도에 있었다.
-> 주로 중국 대륙 동.남해안에 있었다.
(이 신라를 해양 신라 또는 대륙 신라라 하여 한반도 신라와 구분함. 圓仁일기를 읽어보면
서로 사이가 안 좋음. 대륙 신라배가 한반도 신라를 통과할 때 적국을 통과하듯 경계함)
9) 장보고 시대에 아시아 무역을 주도한 것은 한반도의 신라인이다.
-> 재당(대륙) 신라인이다.
10) 고려초에 대거 들어온 중국 性씨는 모두 중국사람들이 들어온 것이다.
-> 재당(대륙) 고려인이 중국 性씨를 가지고 귀국한 것이다.
신라와 당나라의 정부가 재당 신라인에게 아시아 무역의 통제권을 맡긴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신라나 당나라의 해운력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아시아 최고의 항해술을 보유하고 있던 재당 신라인에게 맡긴 것이다.
청해진은 멸망한 백제의 그림자였다.
그러나 그 세력이 지나치게 커지자 또 하나의 정부가 되어 토벌 대상이 된 것이다.
그 후 재당 신라인들의 항해술은 고려 왕건에게 이어져 새로운 나라의 건국을 가져오고
아시아의 무역은 다시 고려가 주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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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담 wrote:
제언을 부탁 합니다.
제가 알기로 고려말 왜구에게 고려만 초토화 된 것이 아니고,
일본도 초토화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고등학교 국사책(아마 입시용 참고서?)을 보면 이들 왜구들이 일본이 아니라
중국해안지방에서 왔다고 틀림없이 명기되어 있는 것을 제가 20년 이상 지난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보았습니다.
김성호씨의 두번째 저작인 "중국진출 백제인의 ..."을 보면 고려말 왜구가 중국에서 왔다는
것을 처음 발표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이것은 아니지요.
학계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 정도의 상식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고려말 왜구들이 중국해안지역에서 밀려온 "보트 피플"인 것은 분명한데,
이들이 과연 중국백제의 후예냐 하는 것은 의문이 남습니다.
장보고(상고사학회 51번, 190번) 시절 당나라에 있던 신라방 등 신라인 사회는 장보고
이전부터 있었으며, 장보고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고 남습니다.
(오늘날 만주의 조선족 사회가, 최근 한.중 국교수립 후 형성된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고려때는 이들이 외부로부터 고려인으로 불립니다.
따라서 송나라 이후 사서에 "고려"라는 단어가 나오면 어디를 뜻하는 지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원나라 때까지 중국대륙에 대규모 남아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압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이들이 원나라 때까지 고려인으로 불리지만 백제의 후예로 행세를 했을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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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원나라 때 만주는 고려땅 이었습니다.
고려에는 우리가 아는 고려왕 외에 심양왕이라 부르는 고려왕이 한 명 더 있어서 만주를
다스렸지요. 이것은 교과서에도 나오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 지도는, 개성 고려왕이 다스리던 고려만 한국
영토로 표시하고, 심양 고려왕이 다스리던 만주는 원의 영토로 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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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입니다. 김용무님 수고하셨습니다.
모든 분들이 김용무님 뜻을 충분히 이해하십니다.
이제 잠시 쉬셔도 되겠습니다. 참고로, 고대부터 따지면,
평양이란 지명은 넓은 땅이라는 보통명사로, 중국에 수없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 472번의 금관에 대한 자세한 답변을 다시 기대해 봅니다
출처 : http://leeyunggi.com.ne.kr/Text3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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