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절. 북한산성과 개천 고사산산성(北漢山城, 价川 古射山山城)
서기 131년 개루왕(蓋婁王) 때에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쌓았는데 뒷날 비유왕 때에 내신좌평 우복(優福)이 북한성(北漢城)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한산성보다 북쪽의 북한산성은 개천군(价川郡)의 고사산산성(姑射山山城)으로 추정한다.
개천군에는 장환성(長桓城)과 조양진성(朝陽鎭城) 등 두 성이 고사산산성의 북쪽에 있었는데 두 성은 청천강을 끼고 있고 고사산산성만이 대동강 위에 있다.
고사산 산성은 석축이고 성둘레는 36761척이다. 다루왕의 횡악성에 비해 다시 두 배 규모이다.
개루왕의 개천에 개루왕의 북한산성이며, 동쪽에는 백탑산(白塔山;1136M)이 있다. 백탑이 있었을 것이다. 고사산산성의 남쪽에는 횡계산(橫溪山)이 있다. 백탑산과 이어진 갈인봉(葛仁峰)은 본래 개루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고왕 22년, 도성의 우물과 한수(漢水)가 모두 말랐다고 하였다. 이후에 고사산(枯死山), 고사산(姑射山)으로 이름이 바뀌어져 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188년에 초고왕(肖古王)은 신라 모산성(母山城)을 공격하였으나 이듬해 구양성(狗壤城)에서 패배하였다. 모산성은 충청북도 진천읍에 있던 대모산성으로 추정하는데 오늘날의 진천군(鎭川郡) 만근산의 만뢰산성에 해당한다.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태어났다고 한다. 구양성은 앞에서 문의면 양성산으로 추정하였다.
190년에 백제는 원산향(圓山鄕)을 습격하고 부곡성(缶谷城)을 공격하였으나 신라가 항거하여 퇴각하다가 와산(蛙山)에서 신라군을 물리쳤다. 앞에서 와산성은 보은으로 추정하였고 원산향은 앞에 나온 한산의 원산성과 구별하여 원산향이라고 기록된 것이다.
원산향은 보은에서 신라쪽으로 고려하며, 금산군 서쪽에 있던 원산향(猿山鄕)으로 추정한다. 지금은 대전시로 편입된 지역이다.
204년 백제가 신라 요거성(腰車城)을 함락시키니 신라는 6부의 정병을 거느리고 사현성(沙峴城)을 공격해 왔다. 요거성은 뒤에 거유성(車踰城)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되는데 거유령이 있던 함경남도 신흥군(新興郡)으로 추정된다.
신라가 총공격으로 나선 사현(沙峴)은 훗날의 사도성(沙道城)과 관련하여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으로 추정된다.
위의 기록을 종합하면 남쪽에서는 백제와 신라의 경계는 보은을 중심으로 노령산맥의 북서쪽은 백제 땅이고 동남쪽은 신라 영역이었다.
한편 백제와 말갈의 경계 지역은 사도성(沙道城), 적현성(赤峴城), 석문성(石門城), 고목성(古木城) 등이었다. 210년에 말갈은 사도성을 침범하였고, 214년에 말갈의 석문성을 빼앗았으나 같은 해에 말갈은 술천을 침범하였다.
사도성은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 서쪽 도성산(道成山, 到城山)으로 추정한다.
적현성은 함경남도 고원군(高原郡) 적봉(赤峰) 동쪽 성내리로 고려한다.
석문성은 함경남도 문천군(文川郡)으로 고려한다.
고목성은 고원군 읍성 부근으로 추정한다.
구수왕(仇首王) 때에 역시 적현성과 사도성, 우곡(牛谷) 등에서 말갈과 싸웠다.
우곡성은 법동군(法洞郡)으로 추정한다.
218년에 백제는 신라 장산성(獐山城)으로 쳐들어갔으니 실패하였다.
장산(獐山)은 경상북도 경산의 옛이름이기도 하지만 경상북도 문경도 옛이름이 장산이었다. 백제와 신라의 경계는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접경 지역으로 고려되므로 이 장산성은 문경으로 추정하고 조령(鳥嶺) 남쪽으로 추정한다.
222년에 백제군은 신라 우두진(牛頭鎭)에 쳐들어가서 웅곡(熊谷)에서 이겼는데 우두진은 오늘날의 강원도 춘천 우두동으로 고려한다.
224년에 신라는 백제의 봉산(蜂山, 烽山)을 함락시켰다. 춘천 서남 강촌의 봉화산으로 추정한다.
245년 동천왕 때에, 고구려가 최초로 한반도로 남진하여 신라를 쳤다. 고구려는 말갈을 복속시키고 말갈족의 길을 따라서 동해안으로 남침하였다. 신라는 장수 우로(于老)가 고구려군을 마두책(馬頭柵)에서 막았는데 함흥시 오로고성(吾老古城)이 바로 우로의 고성이다.
이후 함흥시 성천강(城川江) 동북은 고구려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246년에 위나라 관구검(母丘儉)의 침입을 받아 도성 환도성이 함락당하는 비운을 맞아 모든 국력을 수도 회복과 위나라 경계에 쏟아야만 하였으며 한반도 남부 진출은 꿈꾸지 못했다.
255년에 고이왕 때는 백제가 신라를 침범하여 괴곡(槐谷)에서 백제가 이겼고, 봉산성(烽山城)에서 신라와 싸웠지만 이기지 못했다. 괴곡은 충청북도 괴산으로 추정하고 봉산성은 춘천으로 추정한다.
286년에 책계왕 때는 고구려를 방비하기 위하여 위례성(慰禮城)과 아차성(阿且城)과 사성(蛇城)을 수리하였다.
위례성은 하북위례성을 말하며 청룡산성이고, 이를 수호하는 아차성은 아단성(阿旦城)의 오기일 수도 있는데 아단성은 선천군(宣川郡) 검산성으로 추정된다. 사성(蛇城)은 강동군 고천면(高泉面)의 고성(古城)이다.
아차성은 경기도 하남(河南)에서 강하나를 건너 서울에 아차성(峨嵯城)이 지금도 있는데, 뒷날 장수왕 때에 고구려군이 백제 한성을 함락시켜서 개로왕을 끌고가 참살하였던 곳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전설이다. 온달 장군이 아차한 곳은 될 수 있다.
사성은 책계왕 때에 처음 등장한다. 개로왕(蓋鹵王)이 숭산(崇山; 慈山郡 殷山邑)까지 방죽을 쌓기 시작한 곳이 사성이며, 사성의 동쪽에 사수(蛇水)가 있었고 신라군이 한성으로부터 평양으로 가는 도중에 사수가 있었고,
문무왕의 국서(國書)에서 사수 위에 나당 연합군이 총집결하였다고 전하므로 사수는 대동강에 대한 별명이다. 사천(蛇川)은 대동강의 남강(南江)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백제 사성은 강동군 서하(西河)의 동안(東岸)에 있던 고천면의 고성(古城)으로 추정되는데 토성이며 5759척이다.
개로왕의 방죽은 이 강동군 고읍성에서 북으로 숭아산(崇娥山)을 감싼 것이 된다. 숭아산은 숭화산이라고도 했는데 백제의 숭산(崇山)이다. 숭산 부근에 비유왕릉이나 혹은 온조왕릉이 있을 것으로 추정케 한다.
백제 수도는 요동반도 만주와 대동강 평양, 황해도 평산 위례성에서 금강 공주로 넘어갔습니다.
공주의 [무녕왕릉]과 같은 중국식 [벽돌 고분]은 서울에 없고,
요동반도와 평양, 황해도에 수천 개가 있고 그 벽돌 고분 문화는 서울을 건너 금강 공주로 이어집니다.
서울에 백제 수도가 있었다는 국사책은 거짓입니다.
집안의 수만개, 경주의 수만개 고분과 비교하면 백제 고분이 없는 서울은 백제 도읍지가 아닙니다.
석촌동 고분은 고구려식입니다.
[삼국사기] 백제 건국지 한수가 오늘의 한강이 아니라 대동강이었던 것입니다.
백제 수도의 변천(百濟 首都 變遷)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소서노 어하라 ; 요동반도 득리사진 용담산성 ; 기원전 31년-19년
2) 온조왕 하북 위례성 ; 평안남도 평성시 청룡산성 ; 기원전 19년- 7년
3) 온조왕 한성(위례성); 십성동 낙랑토성 ; 기원전 7년-서기 32년
4) 다루왕 횡악성 ; 황해도 신평군 달보산성 ; 서기 32년-116년
5) 기루왕 한산성 ; 평양시 청암동토성 ; 서기 116년-131년
6) 개루왕 북한산성 ; 개천시 고사산산성 ; 서기 131년-234년
7) 구이왕의 석현성 ; 요동반도 개주시 청석령산성 ; 서기 234년-370년
8) 근초고왕의 한산성 ; 평양시 안학궁 ; 서기 370년-396년
9) 아신왕의 한성 ; 황해도 평산군 태백산성 ; 서기 396년-475년
10) 문주왕의 웅진성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성 ; 서기 475년-538년
11) 성왕의 사비성 ; 충청남도 부여시 사비성 ; 서기 538년-660년
서기 131년 개루왕(蓋婁王) 때에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쌓았는데 뒷날 비유왕 때에 내신좌평 우복(優福)이 북한성(北漢城)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한산성보다 북쪽의 북한산성은 개천군(价川郡)의 고사산산성(姑射山山城)으로 추정한다.
개천군에는 장환성(長桓城)과 조양진성(朝陽鎭城) 등 두 성이 고사산산성의 북쪽에 있었는데 두 성은 청천강을 끼고 있고 고사산산성만이 대동강 위에 있다.
고사산 산성은 석축이고 성둘레는 36761척이다. 다루왕의 횡악성에 비해 다시 두 배 규모이다.
개루왕의 개천에 개루왕의 북한산성이며, 동쪽에는 백탑산(白塔山;1136M)이 있다. 백탑이 있었을 것이다. 고사산산성의 남쪽에는 횡계산(橫溪山)이 있다. 백탑산과 이어진 갈인봉(葛仁峰)은 본래 개루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고왕 22년, 도성의 우물과 한수(漢水)가 모두 말랐다고 하였다. 이후에 고사산(枯死山), 고사산(姑射山)으로 이름이 바뀌어져 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188년에 초고왕(肖古王)은 신라 모산성(母山城)을 공격하였으나 이듬해 구양성(狗壤城)에서 패배하였다. 모산성은 충청북도 진천읍에 있던 대모산성으로 추정하는데 오늘날의 진천군(鎭川郡) 만근산의 만뢰산성에 해당한다.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태어났다고 한다. 구양성은 앞에서 문의면 양성산으로 추정하였다.
190년에 백제는 원산향(圓山鄕)을 습격하고 부곡성(缶谷城)을 공격하였으나 신라가 항거하여 퇴각하다가 와산(蛙山)에서 신라군을 물리쳤다. 앞에서 와산성은 보은으로 추정하였고 원산향은 앞에 나온 한산의 원산성과 구별하여 원산향이라고 기록된 것이다.
원산향은 보은에서 신라쪽으로 고려하며, 금산군 서쪽에 있던 원산향(猿山鄕)으로 추정한다. 지금은 대전시로 편입된 지역이다.
204년 백제가 신라 요거성(腰車城)을 함락시키니 신라는 6부의 정병을 거느리고 사현성(沙峴城)을 공격해 왔다. 요거성은 뒤에 거유성(車踰城)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되는데 거유령이 있던 함경남도 신흥군(新興郡)으로 추정된다.
신라가 총공격으로 나선 사현(沙峴)은 훗날의 사도성(沙道城)과 관련하여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으로 추정된다.
위의 기록을 종합하면 남쪽에서는 백제와 신라의 경계는 보은을 중심으로 노령산맥의 북서쪽은 백제 땅이고 동남쪽은 신라 영역이었다.
한편 백제와 말갈의 경계 지역은 사도성(沙道城), 적현성(赤峴城), 석문성(石門城), 고목성(古木城) 등이었다. 210년에 말갈은 사도성을 침범하였고, 214년에 말갈의 석문성을 빼앗았으나 같은 해에 말갈은 술천을 침범하였다.
사도성은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 서쪽 도성산(道成山, 到城山)으로 추정한다.
적현성은 함경남도 고원군(高原郡) 적봉(赤峰) 동쪽 성내리로 고려한다.
석문성은 함경남도 문천군(文川郡)으로 고려한다.
고목성은 고원군 읍성 부근으로 추정한다.
구수왕(仇首王) 때에 역시 적현성과 사도성, 우곡(牛谷) 등에서 말갈과 싸웠다.
우곡성은 법동군(法洞郡)으로 추정한다.
218년에 백제는 신라 장산성(獐山城)으로 쳐들어갔으니 실패하였다.
장산(獐山)은 경상북도 경산의 옛이름이기도 하지만 경상북도 문경도 옛이름이 장산이었다. 백제와 신라의 경계는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접경 지역으로 고려되므로 이 장산성은 문경으로 추정하고 조령(鳥嶺) 남쪽으로 추정한다.
222년에 백제군은 신라 우두진(牛頭鎭)에 쳐들어가서 웅곡(熊谷)에서 이겼는데 우두진은 오늘날의 강원도 춘천 우두동으로 고려한다.
224년에 신라는 백제의 봉산(蜂山, 烽山)을 함락시켰다. 춘천 서남 강촌의 봉화산으로 추정한다.
245년 동천왕 때에, 고구려가 최초로 한반도로 남진하여 신라를 쳤다. 고구려는 말갈을 복속시키고 말갈족의 길을 따라서 동해안으로 남침하였다. 신라는 장수 우로(于老)가 고구려군을 마두책(馬頭柵)에서 막았는데 함흥시 오로고성(吾老古城)이 바로 우로의 고성이다.
이후 함흥시 성천강(城川江) 동북은 고구려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246년에 위나라 관구검(母丘儉)의 침입을 받아 도성 환도성이 함락당하는 비운을 맞아 모든 국력을 수도 회복과 위나라 경계에 쏟아야만 하였으며 한반도 남부 진출은 꿈꾸지 못했다.
255년에 고이왕 때는 백제가 신라를 침범하여 괴곡(槐谷)에서 백제가 이겼고, 봉산성(烽山城)에서 신라와 싸웠지만 이기지 못했다. 괴곡은 충청북도 괴산으로 추정하고 봉산성은 춘천으로 추정한다.
286년에 책계왕 때는 고구려를 방비하기 위하여 위례성(慰禮城)과 아차성(阿且城)과 사성(蛇城)을 수리하였다.
위례성은 하북위례성을 말하며 청룡산성이고, 이를 수호하는 아차성은 아단성(阿旦城)의 오기일 수도 있는데 아단성은 선천군(宣川郡) 검산성으로 추정된다. 사성(蛇城)은 강동군 고천면(高泉面)의 고성(古城)이다.
아차성은 경기도 하남(河南)에서 강하나를 건너 서울에 아차성(峨嵯城)이 지금도 있는데, 뒷날 장수왕 때에 고구려군이 백제 한성을 함락시켜서 개로왕을 끌고가 참살하였던 곳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전설이다. 온달 장군이 아차한 곳은 될 수 있다.
사성은 책계왕 때에 처음 등장한다. 개로왕(蓋鹵王)이 숭산(崇山; 慈山郡 殷山邑)까지 방죽을 쌓기 시작한 곳이 사성이며, 사성의 동쪽에 사수(蛇水)가 있었고 신라군이 한성으로부터 평양으로 가는 도중에 사수가 있었고,
문무왕의 국서(國書)에서 사수 위에 나당 연합군이 총집결하였다고 전하므로 사수는 대동강에 대한 별명이다. 사천(蛇川)은 대동강의 남강(南江)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백제 사성은 강동군 서하(西河)의 동안(東岸)에 있던 고천면의 고성(古城)으로 추정되는데 토성이며 5759척이다.
개로왕의 방죽은 이 강동군 고읍성에서 북으로 숭아산(崇娥山)을 감싼 것이 된다. 숭아산은 숭화산이라고도 했는데 백제의 숭산(崇山)이다. 숭산 부근에 비유왕릉이나 혹은 온조왕릉이 있을 것으로 추정케 한다.
백제 수도는 요동반도 만주와 대동강 평양, 황해도 평산 위례성에서 금강 공주로 넘어갔습니다.
공주의 [무녕왕릉]과 같은 중국식 [벽돌 고분]은 서울에 없고,
요동반도와 평양, 황해도에 수천 개가 있고 그 벽돌 고분 문화는 서울을 건너 금강 공주로 이어집니다.
서울에 백제 수도가 있었다는 국사책은 거짓입니다.
집안의 수만개, 경주의 수만개 고분과 비교하면 백제 고분이 없는 서울은 백제 도읍지가 아닙니다.
석촌동 고분은 고구려식입니다.
[삼국사기] 백제 건국지 한수가 오늘의 한강이 아니라 대동강이었던 것입니다.
백제 수도의 변천(百濟 首都 變遷)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소서노 어하라 ; 요동반도 득리사진 용담산성 ; 기원전 31년-19년
2) 온조왕 하북 위례성 ; 평안남도 평성시 청룡산성 ; 기원전 19년- 7년
3) 온조왕 한성(위례성); 십성동 낙랑토성 ; 기원전 7년-서기 32년
4) 다루왕 횡악성 ; 황해도 신평군 달보산성 ; 서기 32년-116년
5) 기루왕 한산성 ; 평양시 청암동토성 ; 서기 116년-131년
6) 개루왕 북한산성 ; 개천시 고사산산성 ; 서기 131년-234년
7) 구이왕의 석현성 ; 요동반도 개주시 청석령산성 ; 서기 234년-370년
8) 근초고왕의 한산성 ; 평양시 안학궁 ; 서기 370년-396년
9) 아신왕의 한성 ; 황해도 평산군 태백산성 ; 서기 396년-475년
10) 문주왕의 웅진성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성 ; 서기 475년-538년
11) 성왕의 사비성 ; 충청남도 부여시 사비성 ; 서기 538년-660년
출처 : 韓民族! 옛 제국을 찾아서...
글쓴이 : 가우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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