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멸망때 많은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는
신라로 망명하였는데 당시 그 수가 약 10만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러한 대량이동사실은 후일 당나라의 신라공격대 연정토의 기병이
앞서 싸워 물리쳤다는 연사의 기록으로도 입증됩니다.
신라역시, 상당수의 왕족과 백성들이 만주로 이동하였는데 이들이 후일
금나라를 세우고 중국을 정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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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태자의 속명은 김일입니다. 그의 아버지 경순왕도 외자 이름으로 김부입니다.
경순왕 김부가 고려 태조 왕건에게 신라천년의 사직을 바치자 아들 마의태자 김일은
도적의 괴수에게 나라를 바쳤다고 반발하며 경주를 떠납니다. 이때 같이 떠난 군속들의
행렬이 30여리를 이어졌다고 하니 적어도 10만명 이상의 군중이 따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쩃든 마의태자는 혼자서 경주를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마의태자를 지지하는 세력이 오
히려 아버지 경순왕을 지지하는 세력보다 많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마의태자 가계를 보면 마의태자의 조부 효종랑은 1000명이나 되는 화
랑도의 우두머리였다고 합니다.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의 서울(경주)를 점령하여 경애왕을
폐위하고 경순왕을 새 임금으로 옹립한 것도 경순왕이 바로 효종랑의 아들이었기 때문이
라는 것입니다. 즉 견훤은 신라의 민심을 바로잡기 위해 당시 가장 존경을 받고 왕족 혈통
이 있는 효종랑의 아들을 새 왕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렇듯 마의태자는 훌륭한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버지가 비굴하게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고 결연히 금강산으로 떠
낫고, 그런 태자를 따르는 신라의 충신과 의사가 많았던 것입니다. 금나라 시조가 김준이
란 인물 또한 외자입니다. 과연 경순왕과 어떤 관계일까요. 아들인지 손자인지 분명치 않
으나 그가 마의태자와 같은 외자 이름이라는 사실, 그리고 중 행세를 하며 피해 다녔다는
사실은 바로 망국의 한을 달래며 신라천년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마의태자 본인이거나 혹
은 그 일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며 역사가인 순암 안정복은 동사강목
에서 김준의 형제가 삼형제였다고 하면서, 김준이 여진으로 망명할 떄 두 형제를 두고
혼자서 갔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마의태자 후손은 부안 김씨입니다.
부안 김씨는 경주 김씨를 조상으로 하고 고려 때 갈라져 나온 성씨입니다, 현재 마의태자
의 후손이라 주장하고 있는 부안 김씨 족보에 따르면 금나라 시조 김행 즉 김준이 마의태
자 김일의 아들이고, 김행은 여진으로 갔지만 나머지 두 형제는 고려에 남아 부안 씨의 조
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의태자 후손이 여진에 들어가 금나라를 일으켰다는 사실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에도 산견 됩니다.
'고려사'세가 권 13 예종10년(1115) 3월조에 보면 이런 기사가 나옵니다.
"이달에 생여진 완안부의 아골타가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김씨나라라는 명칭으로 금이라
했다. 중략, 아골타는 김행방의 후손이다."
"여진 사신이 고려에 와서 '옛날 우리 태사 영가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조종이 대
방(고려)에서 나왔으니 자손에이르러소도 의리상 귀부함이 마땅하다'고 했고 지금 태사 오
아속도 역시 대방을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라고 햇습니다.
금나라의 시조가 김일인지, 김준인지 아직도 논란거리이지만 금나라는 우리의 민족사 인
것은 확실합니다 .
참고 서적 : 마지막 왕자
지은이 : 강숙인.한병호
출판사 : 푸른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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