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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년 ~ 498년까지 총 10여년간 화북평원을 두고 일어난 <백제>와 <북위>사이의 전쟁.
서기 246년 위나라의 幽州 자사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략하여 수도 환도성에 쳐들어오자, 이 때 백제는 유주(幽州)가 비어있는 틈을 타 좌장 진충에게 그 곳을 치도록하여 지금의 북경과 천진 지역에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윤내현 교수의 '우리 고대사 상상에서 현실로에서')
기록을 보면,
- 宋 書 -
백제자 후점강대 겸제지국 今柳城北平之間 그 나라가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었는데 晉나라 때 (3세기 중엽)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점령하고 백제 역시 요서진평(산서성 사수일대)의 2군을 점령하니 지금의 유성과 북평 사이다"
이 진평 2군은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서 지은 저서 "조선상고사"에도 등장한다. 고구려에 대하여는 겨우 1차 평양의 침입만 있었으나 황하를 건너 경략하여, 선비 모용씨(鮮卑 慕容氏)의 연(燕)과 부씨(扶氏)의 진(秦)을 정벌, 요서.산동.강소.절강(今 遼西.山東.江蘇.浙江) 등지를 경략하여 광대한 토지를 장만하였다."
그런데, 남제서를 보면,
是歲, <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 入其界, <牟大>遣將<沙法名>··<解禮昆>·<木干那>率衆襲擊虜軍, 大破之. <建武>二年, <牟大>遣使上表曰: [臣自昔受封, 世被朝榮, 荷節鉞, 剋攘列酸. 往<姐瑾>等竝蒙光除, 臣庶咸泰. 去庚午年, <험윤>弗悛, 擧兵深逼. 臣遣<沙法名>等 領軍逆討, 宵襲霆擊, <匈>梨張惶,[梨]南監本作[ ].《漢書》[匈奴傳], 其國稱單于曰 ?孤塗單于. <匈奴>謂天爲 ?, 謂子爲孤塗, 單于者, 廣大之貌也. <匈>?猶言<匈奴>單于, ??通. 崩若海蕩. 乘奔追斬, 疆尸丹野. 由是 其銳氣, 鯨暴韜凶. 今邦宇謐靜, 實<名>等之略, 尋其功勳, 宜在 顯. 今假<沙法名>行征虜將軍·<邁羅王>, 爲行安國將軍·<酸中王>, <解禮昆>爲行武威將軍·<弗中侯>, <木干那>前有軍功, 又拔臺舫, 爲行廣威將軍·<面中侯>. 伏願天恩特愍聽除.] 又表曰: [臣所遣行龍 將軍·<樂浪>太守兼長史臣<慕遺>, 行建武將軍·<城陽>太守 兼司馬臣<王茂>, 兼參軍·行振武將軍·<朝鮮>太守臣<張塞>, 行揚武將軍<陳明>, 在官忘私, 唯公是務, 見危授命, 蹈難弗顧. 今任臣使, 冒涉波險, 盡其至誠. 實宜進爵, 各假行署. 伏願聖朝特賜除正.] 詔可, 竝賜軍號. '모대'가 장수 <사법명>··<해례곤>·<목간나>를 보내어 '노'군을 공격하여 크게 이를 깨뜨렸다. '건무'이년 '모대'가 사신을 보내어 표를 올려 말하길 신은 옛부터 봉함을 받아 대대로 조정의 영화를 입고, 절과 부인 분에 넘치는 것을 받아 오랑캐를 물리치었습니다. '저근'등이 가서 광택을 입고, 신은 두루 평안합니다. 경오년에 가서 '험윤(흉노)'이 깨닫지 못하고, 병사를 내어 깊이 쳐들어 오니, 신이 '사법명'등 군사로 토벌하고, 야간에 번개같이 엄습하니 '흉노'의 이장이 두려워 하고 무너저 바다로 쓸어버렸다. 달아나는 것을 베어 죽은 시체가 들을 붉게 물들였다. 이로말미암아 그 예기를 꺽으니, 흉폭함을 잡았다. 이제 나라가 조용해지니 실로 '명'등의 다스림이니, 그 공훈을 생각하여 칭찬함이 마땅하다.
이제 '사법명'을 행정로장군 매라왕으로 삼고, '찬수류'는 행안국장군 벽중왕으로 삼고, '해례곤'은 행무위장군 불중후, '목간나'는 전의 무공이 있고 또한 대방을 빼앗으니 행광위장군 면중왕으로 삼으소서.
업드려 원하니 하늘의 은혜로 청을 들어 주옵소소 하였다. 또 표에 말하길,
신이 행용양장군 낙랑태수 겸 장사인 신 '모유', 행건무장군 성양태수 겸 사마인 신 '왕무', 겸 참군이고 행진무장군 조선태수 인 신 '장색', 행양무장군 '진명'은 관직에 있어 사사로움을 버리고, 오직 공무에만 힘쓰며,
위급함에 명을 받들어 어려움을 물리치고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 인신이 사신으로 보내어, 험한 물결을 무릅쓰고 나아가니 정성이 지극합니다. 실로 작위를 내림이 마땅하니 각각 베풀어 주십시오. 업드려 올바른 제수가 있기를 원하옵니다 하니 조서를 내려 옳다 하고 군호를 내리었다.
백제와 북위의 전쟁의 승자는 백제였고, 백제는 이 결과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당시 남제에 보낸 국서를 읽어보면, 다수의 왕과 장군의 직책을 설치하여 남제에 통고하였는데, 이들이 관할한 지역은 모두 양자강 근처에 존재하는 지역이다. 실제 <남제서>에서는 '據江左右'라는 네 자가 보이는데, 이는 '양자강 좌우에 근거지를 마련하였다'는 의미이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남제서>>는 "이로부터 백제가 다시 강국이 되었다"고 하였다.
북위와 백제의 전쟁은 488년 ~ 498년까지 10년간 5차례 이루어졌으며, 백제와 북위는 당시 최고의 옥토였던 "화북평원"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하나 모두 백제의 승리로 끝났다 이 내용으로 보아 백제는 대륙에서 더욱 성장하여 타국을 정복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제나라의 역사서 '남제서' 백제전에는 이상한 전쟁의 기록이 남아있다.
'魏나라는 기병 수십만을 동원해서 백제를 공격하여 그 국경안으로 쳐들어갔다. 동성왕은 사법령, 찬수류, 해려곤, 목간나 등을 보내 위나라 군을 습격하여 대파했다.' 백제의 영토가 한반도 남서부로 국한했을 경우, 위나라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선 바다와 고구려의 영토를 지나서 백제를 공격하는 것인데 이는 둘다 성립하기 어렵다.
첫째, 위나라 군사는 수군이 아닌 기병이었고, 둘째, 강성했던 고구려가 위나라 군사에게 길을 내줄리 만무했으며 그런 기록도 없다. 따라서 이 전쟁이 가능하려면 백제와 위나라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즉 중국 대륙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얘기다. 중국 북경 도서관. 삼국사기에서는 백제의 중국 대륙 진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중극 측의 백제 관련 기록은 송서, 남제서, 양서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이들 사서의 기록에는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했고, 백제 역시 진평, 요서 2개의 땅을 빼앗아 다스리면서 그곳에 백제군을 설치했다.'고 전한다.
<진가위 교수> 사서에는 '요서'는 '유성'과 '북평'의 사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유성과 북평은 1천년 전의 지명이다. 중국 사회과학원 역사지리학자에 의하면 유성은 현재의 요녕성 조양시이다. 북평군은 현재의 하북성 노령시이다. 기록에 의하여 추정한 요서의 위치. (요서는 지금과 달리 천진서쪽 산서성부근이다-운영자 주)
그곳은 현재 요녕성과 하북성 일대 발해만 서안 연안의 광활한 지역이다. 중국 역사서에는 중국 지명을 직명으로 가진 수많은 백제 태수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들은 중국 동부 해안지역의 태수들이다.
<윤내현 교수> '고대 중국 동부 해안지역에는 동이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조선이 건국되기 이전부터 동이족은 우리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민족이 이곳에 진출할 수 있었던 기반은 이미 마련돼 있었다. 그런데 백제가 중국에 진출할 시기에는 중국이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여러 왕조가 흥망을 거듭하는 시기였고, 북방의 민족이 중국에 왕조를 세우고 흥망이 반복되던 시기였다. 따라서 이런 혼란기에 백제가 중국 동부 지역에 진출한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중국 중앙민족대학.
이때 마침 송나라때 진평군을 설치했다는 기록은 지금의 요서지역이 아니라 지금의 남방에 있는 광서지역이다. 광서 남령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오면 그 지역이 진평군의 소재지였다.'
광서 장족 자치구의 모든 마을 이름이 모두 수록된 행정구역자료열람.
그 속에 선명한 하나의 이름이 있었다. 백제향이었다. 백제향의 중심지는 백제허. 허는 유적지. 그 말 뜻대로라면 이 지역은 백제의 유적지라는 얘기가 된다. 백제허를 중국어로 읽으면 '다이쯔쉬' 그런데 그 곳 주민들은 자신들의 마을 이릉을 '대백제' 또는 '대박제'라고 부른다. 남령에서는 백제허를 오가는 정기 시외버스가 있다.
남령으로부터 3시간, 백제墟가 거기 있었다. 그러나 옛성의 흔적은 없고 중국의 시골풍경만 남아 있다. 이들은 한족도 남방계 민족도 아닌 장족이다. 낯익은 나즈막한 부뚜막은 입식 구조의 중국인의 부엌과는 확연하게 다른 것이다. 한 옆에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았다는 멧돌이 있었다. 이것은 흔한 것이 아니며 한반도의 전라도 멧돌과 꼭 닮아있다.
다른 집에는 외다리 방아가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는 쌍다리 방아를 썼다. 외다리 방아는 오직 전라도 지방과 일본지역에서만 전승되어온 것이었다. 이들 지역은 바로 백제권이다. 백제허의 사람들은 백제권의 생활문화를 편륜으로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누구일까?
지방노인 <육태정 (81)> 언제인지는 모르나 아주 오래전에 <산동지방>에서 왔다고 한다. 산동 지역에서 왜 왔는가? 옛날에 장사하러 왔다는 이야기가 있고, 또 전쟁 때문에 왔다는 전설도 있다. 정월 대보름 불렀다는 노래. 사람들은 그 노래 뜻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는 1000년을 그들 속에 살아있었다. 그 노래의 주인이야말로 산동 지역에서 백제허로 온 주역이었는지도 모른다.
백제의 담로는 중국의 동부해안을 따라 베트남 접경지대인 진평군까지 남하하고 있는 것이다. 백제가 여기까지 올수 있었다면, 인접한 동남아 지역에서 담록의 지명이 발견되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닌 것이다. 동남아에도 담로가 있었을까? 그 가능성에 대한 증거가 남경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백제 달솔이었던 흑치상지의 묘지명이다.
묘지석엔 이렇게 전하고있다. '흑치상지는 원래 성씨가 왕의 성씨인 부여씨였으나, 선조가 흑치에 봉해짐으로써 그 성씨를 흑치로 삼았다'는 것. 흑치는 어디인가? 흑치는 이빨은 검은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이는 '띨랑'이라는 열대 과일을 씹는 습관 때문이다. 흑치의 선조가 봉해졌다는 땅은 무더운 남방의 땅이었다. 백제의 활동무대는 그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백제의 국호를 다시 한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수나라 역사서에는 백제를 일컬어 '동이강국'이라고 했으며, 건국초부터 백가가 제해했다고 하여 국호를 백제라했다고 한다. 백가제해(白家濟海)는 백가가 바다를 제패했다는 뜻이다. 백제는 결코 약한 나라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백제는 바다를 제패한 대제국이었다.
이렇게 거대한 해양제국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망했을까? 일본서기 천지전황기에 보면.
서기663년 '백제의 최후 거점인 주휴성마저 함락되자 일본 땅의 조신들이 이렇게 탄식했다. 주휴성이 함락됐으니 이를 어찌하랴. 백제의 이름이 오늘로서 끊겼으니 선조의 무덤을 어찌 오간단 말인가'라고 했다고 한다. 일본 땅에서 백제는 본국이었다. 서기 670년 왜 열도는 '일본'이란 국호로 새롭게 태어난다.
당나라 두우 통전에는 이렇게 전한다.
성과 본국 근처에 있던 나머지 무리들은 차츰 약해져서 돌궐과 말갈로 흩어졌다. 그 군주인 부여순도 고국에 돌아갈 수 없음으로 하여 마침내 부여씨는 소멸됐다. 백제 700년 역사, 그 장엄했던 백제는 그렇게 어둠의 저편으로 저물어 갔다. 난고촌과 기조정의 사람들은 해마다 12월 이 신성한 바다에서 맞지리를 시작한다. 기조정 사람들이 아버지 정가왕의 신주를 모시고 난고촌까지 걸어갔다. 두 왕에게 아흐레 밤동안 가장 아름다운 술과 노래를 바쳤다.
헤어지는 날 아침이면 으레 두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에 검정칠을 한다. 망국의 왕에게는 얼굴을 숨겨야하는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겁은 사라지고 검정칠은 즐거운 유희가 됐다. 헤어질때 그들의 인사는 '오 사라바'. 그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한국어로는 명백한 '살아버'라는 말.
그 속에 백제는 아직도 살아 있다. 역사는 어딘가에 그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백제왕의 이름이라고는 하지만 정통 백제왕계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이름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백제 담로를 다스리는 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통치했던 영토는 중국 동부해안과 일본 땅 어쩌면 동남아시아 땅에까지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한반도라는 좁은 틀 안에 우리 스스로 역사를 가두어 버리지 않는다면 모든 가능성을 스스로 봉쇄해 버리지 않는다면, 이제 우리는 백제사의 새로운 지평을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은 곧 우리 정신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위 그림을 바탕으로 표시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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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출처 - http://cafe.naver.com/koguryo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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