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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점점 강해져서 작은 나라들을 병합시켰다. 백제는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 천여리에 있었는데, 진세(晉世)에 고구려는 대략 요동(遼東)에 있었으며 백제 역시 요서(遼西), 진평(晉平) 두 군에 웅거하고 있었다. 백제가 다스린 곳은 진평현(晉平縣)이다. 백제도 처음은 백제군(百濟郡)으로 출발하였다.{송서(宋書) 백제전(百濟傳)}"
요동(遼東)은 하북성(河北省)의 지명(地名)이며, 진평현(晉平縣)은 지금의 산서성(山西省)에 지금도 남아있는 지명이다.
"진평현(晉平縣)은 남조(南朝) 때 송나라가 두었던 곳이다. 이 곳은 섬서성(陝西省) 한성현(漢城縣) 남쪽 20리이다. 그후 진평군(晉平郡)과 진평현(晉平縣)을 송나라가 옮겼는데 그 곳은 하남성(河南省) 개봉현(開封縣)과 하남성 상구현(相構縣)이다.{고금지명대사전(古今地名大事典)}"
진평현(晉平縣)이 있던 자리는 현재의 행정구역상 산서성(山西省) 진성(晉城)과 고평(考平)이란 지명으로 남아 있다.
"고구려(高句麗)와 백제(百濟) 사람들은 하북 백성이다. 백성들이 부역으로 뽑혀가서 일하는 곳은 태산(泰山)이다.[高句麗百濟河北之民勞於征役基封泰山]{자치통감(資治通鑑)}"

중국의 사서(史書)는 백제가 하북성(河北省) 일대를 통치하고 있었음을 이렇게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개원(開源) 27년(서기 676년) 2월, 백제의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건안성(建安城)으로 옮겼다. 서주(徐州)와 연주(然州) 등의 백성들도 건안성으로 옮겼다.{자치통감(資治通鑑)}"
건안성(建安城)은 하북성(河北省) 당산시(唐山市)의 옛 지명이다. 제도권 사학계는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후, 지금의 충청도 공주(公州)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설치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중국의 사서(史書)는 백제 부흥운동 세력의 강력한 저항에 못이겨 웅진도독부가 하북성 당산시(唐山市)로 이동했다고 기록했다. 백제가 중원대륙 동편을 지배하고 있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능한 기록이다.
"흑치상지(黑齒常之)는 백제의 서부인(西府人)으로, 그는 7척이 넘는 신장과 용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그는 백제의 달솔(達率) 겸 군장(郡將)이었는데 나중에는 중국자사(中國刺史)가 되었다. 흑치상지는 10일만에 군사 3만명을 모으고 200성(城)을 회복하였다.{자치통감(資治通鑑)}"
1666년에 제작된 팔도고금총람지도(八道古今總覽地圖)에 나타나는 한반도 서남쪽 옛 백제지역의 성곽은 60여개에 불과하다. 백제가 중국 동해안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신라(新羅; 辰韓)는 백제의 동남쪽 5천리 되는 곳에 있다. 위나라 때는 신로(新路)라 하였고, 후위(後魏) 때에는 사라(飼羅)라 하였다.{양서(梁書)}"
현재 우리의 상식으로 신라는 백제의 동쪽에 있어야 하는데 중국의 사서(史書)는 백제의 남쪽에 신라가 있다고 전한다. 백제와 신라의 위도(緯度)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책계왕(責稽王) 2년, 한나라가 맥인(貊人)과 더불어 침범하였다. 왕이 친히 출정하여 이를 방어하다가 적병에게 해를 입고 죽었다.{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 제9대 국왕인 책계왕(責稽王)이 성한(成漢)과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한국의 사서(史書)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이다. 성한(成漢)은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를 근거지로 존재했던 나라였다. 백제가 한반도 서남부에 국한되어 있었다면 이 전쟁은 불가능하다.
“북위(北魏)가 병력을 보내어 백제(百濟)를 공격하였으나 백제에게 패배했다. 백제는 진나라 때부터 요서(遼西), 진평(晉平) 2군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치통감(資治通鑑)}
백제 제23대 국왕인 동성왕(東城王)은 북위(北魏)의 고조(高祖)와 488년에서 498년까지 10년 동안 다섯차례의 결전을 벌여 모두 승리, 하북성(河北省) 일대의 패권을 장악하고, 양자강(揚子江) 이남까지 세력을 넓혔다. 백제가 중원대륙에 광범위한 영토가 없었다면 어떻게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에 도읍을 둔 북위와 전쟁을 벌인단 말인가?
http://coreahistory.new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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