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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흐리고 뼈 부수는 주범이 밀가루

monocrop 2012. 7. 15. 21:15

 

 

 

 

세계 리포트

피 흐리고 뼈 부수는 주범이 밀가루?!

[프레시안 books] 윌리엄 데이비스의 <밀가루 똥배>

기사입력 2012-07-13 오후 5:47:10 / 출처 및 원문보기

 

과거 비만은 잘 먹고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의 지표로, 부와 특권층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비만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자가면역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받는데다가, 비만한 사람은 절제력이 부족하고 자기 관리를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과거 많지 않았던 비만 또는 과체중이 지역·성별·연령·직업·계층에 관계없이 늘고 있다. 심지어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과다한 지방 섭취를 줄이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 중에도 과체중이거나 비만한 이들이 많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밀가루 똥배>(인윤희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의 저자 윌리엄 데이비스는 문제의 원인으로 미국인들의 주식(主食)인 밀을 지목한다. 흰 밀가루든, 통밀이든, 유기농으로 재배되었건, 어쨌든 문제는 밀에 있다고 한다. 누구나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는, 아니 백번 양보해서 해롭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유기농 통밀에도 문제가 있다고?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갑자기 늘어난 체중, 높은 혈당수치와 콜레스테롤 수치. 치료를 위해 저자는 거의 매일 5~10킬로미터를 달리고, 고기나 지방은 과도하게 먹지 않고, 정크 푸드와 스낵은 피하는 대신 의학계에서 권장하는 건강에 좋은 곡물을 집중적으로 섭취했다. 하지만 몇 개월 후 오히려 체중은 늘고,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아진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그는 주식인 밀에 의심을 품고, 식단에서 밀을 제거하면서 급속한 속도로 건강을 되찾는다. 이후 심장병 예방학 의사인 저자는 과체중이거나 당뇨병 유형의 환자들에게 밀로 만든 음식을 다른 저혈당 식품으로 대체해 처방하면서 놀라운 치료 효과를 얻는다.

이러한 경험을 일반화하면서, 수많은 논문을 찾아보며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된다. 밀은 모든 병의 원인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건강을 해치는', '자기만의 장기(long-term) 사망률을 가진 유일한 주식(主食)'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밀은 건강을 위해 꼭 먹어야 하는 식품으로 인식할 뿐 누구도 독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내가 체득한 많은 교훈들이 과학적 연구로도 입증되었지만, 대중의 의식과 의학계에는 표면상으로도 다가가지 못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다만 당신이 깜짝 놀랄 만한 그간의 근거들을 종합하고 추론해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밀은 왜 건강에 해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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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가루 똥배>(윌리엄 데이비스 지음, 인윤희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에코리브르
우선 밀에는 다른 곡물들과 달리 글루텐이라는 단백질의 함량이 높다. 글루텐은 점성을 높여서 밀을 가공하기 쉽게 만드는데, 뇌에 엑소르핀 작용을 하여 중독성을 일으키고, 소장에서 면역체계를 교란하여 셀리악병 등 자가면역 질환을 일으킨다. 또한 밀은 혈당량을 순식간에 높였다 낮춘다. 통밀 빵 두 조각은 순수한 설탕 두 숟가락보다 혈당을 더 높인다. 혈당을 낮추기 위해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여 췌장을 피로하게 하고, 내장 지방을 축적하게 한다. 내장 지방은 다른 부위의 지방과 달리 염증 신호, 레지스틴(신체가 인슐린에 반응하지 못하도록 하는 작용을 함), 종양 괴사 입자 같은 세포 간 호르몬 신호분자들을 생산하여 혈류로 내보내는 비정상 신호의 양을 늘려 건강에 해를 끼친다. 또 밀 음식은 체내의 산성도를 높여 뼈에서 칼슘을 고갈시켜 골격을 약하게 만든다. 그래서 밀이 유발하는 질병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인간에게 나타나는 밀의 기이한 작용에는 식욕 자극, 뇌 활성 엑소르핀에 대한 노출, 극단적 허기와 포만의 주기를 촉발하는 과도한 혈당 상승, 질병과 노화의 바탕을 이루는 당화 현상, 연골을 약화시키고 뼈에 손상을 입히는 염증 및 pH에 미치는 영향, 왜곡된 면역반응 활성화 등이 있다. 밀 섭취가 유발하는 질환도 셀리악병(밀의 단백질인 글루텐 노출이 초래하는 파괴적인 내장질환)부터 신경장애, 당뇨병, 심장병, 관절염, 갖가지 발진, 정신분열증 환자의 무기력한 망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밀은 원래부터 건강에 해로운 곡물이었나? 그렇지 않다. 밀은 대략 1만 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재배되기 시작하여 세계 곳곳에서 인간과 함께 번영해왔다. 식물들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진화하듯, 원시 밀도 수천 년간 환경의 변화에 맞춰 서서히 진화해왔다. 이러한 진화는 인류 건강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런데 1950년대 언저리, 밀은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알곡의 양은 늘리고, 비료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잎은 작아진다. 수확과 탈곡을 쉽게 하기 위해 키는 작고 껍질은 낱알에서 쉽게 떨어지게 하고, 다양한 형태로 가공할 수 있게 점성을 높인다. 생산성 향상과 이익 증대를 위한 이러한 유전자 조작을 통한 품종 개량의 결과 원래의 밀, 아니 반세기 전의 밀과도 전혀 다른 곡물, 현대의 밀이 탄생했다.

자연스럽지 못한 변화에 대한 우려나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믿을 수 없을 만큼 급증한 밀 수확량은 기아가 만연했던 인도, 파키스탄, 중국, 콜롬비아 등에서 반대론자들을 잠재우며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밀 시장을 점령한다. 하지만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면 반대급부가 있는 법. 현대의 밀은 예상치 못한 건강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 된다.

인간의 욕심에 따라 불과 반세기라는 짧은 기간에 수천 년 인간과 함께 번영해온 식물을 마구 변형시켰고, 그러한 근시안적인 행동으로 고통스러운 결과를 맛보고 있다. 현대의 밀이 일으킨 건강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 있는 해결책은 식단에서 유전자 변형 밀을 제거하고 진짜 음식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또 원래의 밀 품종을 부활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고대 곡물을 부활시키는 것이 향후 상당 기간에 걸쳐 중요하게 인식될 자그마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방사형 달걀이 결국 경제적으로 자생력을 획득한 사례처럼 말이다. 수요가 궁극적으로 공급을 창출하는 경제에서 유전자 변형 밀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냉담해진다면 변화하는 입맛에 맞추어 농업 생산도 점차 변화할 것이다."

현대인의 건강을 해치는 유전자 조작 '밀'은 지속가능한 성장보다는 생산성 향상, 이익 증대만을 추구하는 시대의 산물이다. 식단에서 유전자 변형 밀을 제거하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값싼 밀을 생산하여 주식으로 소비하게 하는 사회 체제를 변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소비 중심 체제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지속가능한 사회로 바꿔나가는 중요한 첫걸음은 지금껏 '밀'이라는 작물로 대표되는 자연에 우리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인식하는 것부터가 아닐까 싶다.

 

/김재홍 한의사 메일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