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문화경제

731 부대 극비서류 발견!

monocrop 2011. 10. 16. 22:27

해오던 행태가 수 천년전부터 똑같다.

그렇게 한반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건너가고 아예 글과 입을 것등 모든 것을 전수해주고 새로운 고대국가를 세워놔도

열도의 한반도에 대한 태도는 똑같다.

곧 드러날 거짓말을 뻔한 거짓말을 계속 해온다는 것이다.

이 731부대 관련 문서도 일부분일 뿐이다.

철로 터널에 한국인 밀어넣어 죽게 한 것도, 고향 보내준다하여 배에 태우고는 일부러 일본 앞바다에 일본 선원들은 탈출한 후

수장시킨 일도..... 한 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일본인들은 과거의 행태를 정확히 그리고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왕인이 천자문을 가져가 일본 최초의 글을 가르쳐줬다 기록에 남아있어도

'천자문은 6세기 양나라 주홍사가 쓴 것이다. 천자문을 가르쳐주었을 리가 없다. 이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다.'라고 

일본은 한 때 주장했었다.

대장간이 왜 가라카누치이고, 삽이 왜 카라사비이며, 도리깨를 왜 카라자오라고 했었는 지...그리고

천왕들의 모든 휘가,이름이 일본인들은 해석도 못하는 즉 천왕들의 이름이

고대한국 방언으로 전부 다 풀이된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말이다.

천자문은 2세기 종요가 쓴 사언고시 천자문이라 것이 있고 4세기 명필 왕희지가 '종요천자문'이라 하여

다시 그의 필체로 쓴 것이 있다. 6세기 주홍사의 천자문과는 내용이 다르다.

5세기 왕인은 그 '종요천자문'의 필사본을 가지고 일본에 가서 가르쳐준 것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가 다 한반도에서 건너가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하다못해 개 종자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코벨 박사가 삼한과 가야가 아니었다면 열도는 아직도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라고 하질 않았겠는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개의 종자를 밝힌 것도 일본서기가 고대 삼한어로 읽어야 하는데 후대인들이

이를 잊어 그 내용을 잘 모른다고 말한 것도  오진릉의 피장자가 반도인이라는 것도 일본이 자랑하는 국보불상(이것은 백제 위덕왕이 7세기 초에 일본에 보내준 것이다. 예전에는 백제불상이라 불렀는데 퀴즈까지 만들어가면서 왜 백제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는 모른다라는 것을 정답으로 하여 왜곡해 가르치고 있다.)이 녹나무인 것을 두고...

한국에는 녹나무가 없다라고 왜곡하는 일본인들에 대해 한국에는 녹나무가 지금도 자라고 있고 과거에도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한

이도 모두 일본인이거나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한국에 있다 일본으로 가서 개소리하고 있는 일본인 미즈노가 '왜 구다라나이라는 말에서 구다라가 붙어있는 지 과거 사례가 없다'라고 궤변을 늘어놓는 것과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문물 전반을 다 가야를 거쳐 나중에는 백제가 가져다 주었고 백제가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접해보지조차 못했을 열도인들이

오사카 일대 전반에 깔린 백제라는 지명을 임진왜란 직전 부터 없애기 시작한 사실을 굳이 외면하려는 비양심을 언제까지

일본인들은 가져가려는지...

'구다라나이에서 왜 구다라인지 모른다'는 손톱의 때로 하늘을 가리려는 파렴치함은 이제 벗어나야 하질 않겠는가.

천왕들의 묘를 발굴해 전부 다 부여계, 가야계, 백제계 유물이 쏟아져 눈 앞에 보여져야 깨닫겠는가.

전범들에 대한 개념, 그리고 정확한 과거 역사에 대한 개념 정립부터 일본은 시작해야 한다.

거짓말로 채워지는 것이 역사가 아닌 것이다.

정확한 역사 개념없이는 일본의 미래는 결코 시작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Mimesis

 

 

 

 

마루타 극비문서 발견 2만여명 생체실험..‘담당 군의관’ 대형제약회사 근무
  2011-10-16 17:49:20 / 출처 및 원문보기

 

마루타 극비문서가 발견됐다. 이번에 발견 된 극비문서는 중일 전쟁 당시 생체실험의 본거지 였던 일본군 세균부대인 731부대의 세균전 피해자가 2만여명이 훨씬 넘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10월 16일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중일전쟁에서 세균 무기를 6차례 작전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무차별 사용해 1차 감염자와 2차 감염자가 2만5,946명에 달했다는 내용을 정리한 극비문서가 일본 시민단체에 의해 공개됐다고 보도했다

 

 

                                 ▲ 사진= 영화 마루타 731 Man Behind the Sun 홍보 포스터

일본의 시민단체인 '731부대의 실체를 밝히는 모임'은 지난 10월 15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교토의 국립국회도서관 간사이관에 보관돼 있는 731부대 관련 자료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모임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한 자료는 육군 군의학교 방역연구실에 근무하던 군의관의 극비보고서로 731부대가 1940년부터 1942년에 걸쳐 중국 지린성, 저장성, 장시성 등에서 페스트균에 감염된 벼룩을 살포했을 때의 기록이 남아 있으며 벼룩을 살포한 날과 양, 1차 감염자와 2차 감염자 수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극비문서를 작성한 군의관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어떠한 처벌도 없이 대형 제약회사에 근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로써 세균전과 인체를 대상으로 한 반인륜적 실험을 인정하지 않던 일본 정부의 주장이 이 문서로 인해 변화를 맞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자료 발견으로 다시금 거론되고 있는 731부대는 일본
관동군 소속으로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인간을 통나무라는 뜻의 '마루타'라고 부르며 생체를 이용해 해부실험과 냉동실험 등을 자행한 세균전 부대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 시절 당시 만주 하얼빈 일대에 주둔하면서 중국인과 한국인,
러시아인 등 전쟁 포로에게 발진티푸스와 콜레라등 기타 세균등을 주입하거나 전쟁 장비 성능에 목표물로 사용되는 실험, 일반 생체 실험 등의 도구로 사용했다.

하지만 세계 여러 학자들과 당시 부대 관련자들이 이 부대의 실체에 대해 증언을 거듭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731부대의 반인륜적 실험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상태다.

 

[뉴스엔 박영웅 기자]

 

 

일 731부대 ‘세균전 극비문서’ 발견

[한겨레] 정남구 기자 기자블로그 기자메일

 

등록 : 20111016 21:11 / 출처 및 원문보기 

 

군의관 작성…중국에 페스트균 풀어 2만6천명 감염

 

이른바 ‘731부대’로 불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세균전 부대가 중국과의 전쟁에서 세균무기를 사용해 감염자가 2만6000명에 이르렀다는 내용을 담은 당시의 극비문서가 발견됐다.

<도쿄신문>은 16일 ‘731 세균전 부대의 실태를 밝히는 모임’이란 일본 시민단체가 교토에 있는 국립국회도서관 간사이관에서 당시 육군 군의학교 방역연구실에 근무하던 군의관이 작성한 이런 내용의 극비문서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이 문서는 731부대가 1940년부터 1942년에 걸쳐 중국 지린성과 저장성, 장시성에서 페스트균에 감염된 벼룩을 풀어놓아, 이로 인한 1차 감염자와 2차 감염자가 2만5946명에 이르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민단체 회원인 마쓰무라 다카오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15일 기자회견에서 “옛 일본군이 세균 무기를 사용하고, 데이터를 수집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문서를 작성한 군의관은 전쟁이 끝난 뒤 일본의 한 제약회사에서 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균무기의 사용은 1925년 제네바 의정서에 의해 국제적으로 금지됐다. 그러나 일본 관동군에 소속돼 있던 731부대는 만주 하얼빈 일대에 주둔하면서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중국인과 한국인, 러시아인 전쟁포로 등을 ‘마루타’(통나무)로 부르며, 이들의 몸에 세균을 주입하는 등 생체실험을 했다고 당시 부대 근무자들은 증언해왔다. 중국은 이 부대가 헤이룽장성 등지에서 실제 세균전도 벌여 30여만명의 양민이 희생됐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옛 일본군이 세균무기를 사용한 사실을 일관되게 부인해왔다. 다만 도쿄지방법원이 당시 세균전에 희생된 중국인 유족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세균무기 사용 사실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 옛 일본군 군의관이 직접 작성한 극비문서가 새롭게 발견됨에 따라, 731부대의 반인륜적 인체실험과 세균무기 활용을 인정하지 않아온 일본 정부의 입장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