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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령왕릉 안의 은어 흔적

monocrop 2011. 10. 7. 22:40

백제 무령왕은 은어를 즐겼을까

한겨레 | 입력 2011.10.07 17:00 | 수정 2011.10.07 22:30 / 출처 및 원문보기

 

 

[한겨레] 무령왕릉 발굴 당시 티끌· 흙 분석결과


은어 척추뼈와 다른 생선뼈 조각 확인

무덤주인의 먹을 음식으로 준비했거나

물고기가 지닌 상징성 등 이유로 넣었을 가능성

백제 중흥의 기틀을 놓은 백제 25대 무령왕(462~523)은 생전에 은어를 즐겨 먹었던 미식가였을까. 올해로 발굴 40돌을 맞는 충남 공주 송산리 백제 무령왕릉 무덤 속에 독특한 풍미를 지닌 은어가 함께 묻힌 사실이 최근 밝혀져 학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런 사실은 밝혀낸 이는 동물고고학자인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의 이준정 교수와 김은영 연구원이다. 이들은 1971년 무령왕릉 발굴 당시 묘의 석실 바닥에서 긁어 모은 티끌과 흙을 정밀 분석한 결과 은어의 척추뼈 141점과 종류를 알 수 없는 다른 생선 뼈 조각 136점을 확인했다고 7일 밝혔다.

이들이 국립공주박물관에 낸 분석결과를 보면, 발견된 은어의 척추뼈는 배부분 복추골(59점)과 꼬리 부분 미추골(82점)로 이뤄져 있다. 척추골 지름은 4㎜ 내외로 한가운데 구멍이 뚫려있고, 측면은 복잡한 형태를 한 것이 특징이다. 연구팀은 비교를 위해 현생 은어 표본을 직접 만들어 분석했다. 그 결과 25㎝짜리 현생 은어 한마리의 복추골 수는 31개, 미추골 수는 23개, 추골 지름은 3~3.5㎜였다. 이런 수치와 비교하면, 무령왕릉엔 최소한 세마리 이상 은어를 넣었고, 마리당 길이는 25㎝ 내외라는 추정이 나온다고 이 교수 팀은 설명했다.

은어는 독특한 수박 향기와 고급스런 맛으로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는 고급어종이다. 동아시아 온대 지방의 맑은 하천에 살며 바다에 갔다가 다시 강에 돌아오는 회귀성 어류로 9~10월 강 하구에서 알을 낳는다. 이 은어는 국내 다른 고대 고분에서는 나온 전례가 없다. 묻힌 배경을 놓고 더욱 각별한 호기심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은어는 언제 무령왕릉 안에 들어간 것일까? 이 교수는 525년 8월 무령왕을 무덤에 넣는 장례의식 때 들어간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그 근거로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갔다가 다시 강으로 돌아와 생애를 마치는 은어의 독특한 회귀 습성을 들었다.

 무령왕릉에서 나온 묘지석을 보면, 무령왕(사마왕)은 523년 5월7일 숨져 525년 8월12일 매장됐고, 함께 묻힌 왕비는 526년 12월 숨져, 529년 2월 매장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봄에 바다에서 강에 올라와 가을까지 강의 중상류에서 서식하는 은어의 생태를 감안할 때 겨울에 매장된 왕비의 장지 의례 때 은어를 강에서 잡아서 썼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또 발견된 뼈로 추정한 무령왕릉의 은어 길이가 살이 오른 성어 크기인 25㎝라는 점을 고려해도 왕이 사망한 5월 봄철에 잡혔다기보다 매장된 8월에 포획된 것이 사리에 맞다는 결론이다. 흥미로운 건 묘실에서 확인된 은어의 척추뼈들 가운데 푸른빛으로 변색된 것이 적지않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무령왕릉 내부에서 청동 그릇이 다수 확인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청동그릇 녹물이 은어의 척추뼈를 물들였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곧 은어가 왕의 장례 때 청동 그릇 자체에 담겨 들어갔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대 권력자들의 무덤에 어류를 함께 묻는 습속은 4~6세기 한반도 삼국과 가야, 마한 등의 주요 대형고분들에서 종종 보인다. 내륙의 4~5세기 백제 고분인 강원도 원주 법천리 4호분에서는 민어, 정어리, 조기, 상어 뼈가 나왔고, 마한계인 5~6세기 전남 나주 복암리 3호분에서 멸치, 가자미류가, 6세기께의 경북 고령 지산동 가야 고분에서는 대구와 누치가 확인된 바 있다. 4세기 경주지구 신라 고분 8호분에서는 고등어, 전갱이 뼈가 나오기도 했다. 정치적 유력자의 거대 고분에 한정적으로 어류를 부장하는 경향이 도드라진다는 게 고고학계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무령왕릉 안에 왜 은어를 넣은 것일까. 이준정 교수는 두가지의 가능성을 들고 있다. 먼저 내세에서 묻힌 무덤주인이 먹을 음식으로 준비됐을 가능성이다. 5~6세기 백제, 삼국시대 고분 안에는 토기, 긴고리 큰 칼 등의 생활, 전투용 유물들이 먹거리들과 함께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묻힌 사람이 현세와 같은 생활을 누리기를 바라며 일상 생활용품은 물론 먹고 마실 음식까지 모두 마련해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정대로라면, 무령왕릉에서 나온 은어 또한 생전 왕이 아껴 먹었던 먹거리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또하나는 물고기가 지닌 영적인 상징성 때문이라는 설이다. 고대 동아시아 사람들은 물고기를 신비스런 힘의 원천이나 발현이라고 믿었다. 선사시대 중국에서는 물고기를 무덤에 묻힌 주검의 주변 또는 몸 위에 올리고 묻는 출토 사례도 보인다. 물고기가 지닌 부활과 재생의 의미에 주목한 데 따른 것이다. 이 교수는 "중국 고대 신화에 물고기가 죽음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용과 같은 신령한 영물로 변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무덤에 물고기를 부장하는 것 역시 이런 관념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면서 "백제가 중국 남조 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제의적 상징성 또한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교수 팀의 연구 결과는 8일부터 내년 1월29일까지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열리는 무령왕릉 발굴 40돌 특별전의 전시도록에 실릴 예정이다. 전시장에서는 무덤에서 나온 은어뼈 실물과 현생 은어 표본을 비교 감상할 수 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 사진 국립공주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