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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숙 - Forever21 공동 창업자

monocrop 2011. 10. 3. 01:24

 

[The 100 Most Powerful Women] 장진숙 Forever21 공동 창업자

[중앙일보] 입력 2011.10.02 13:26 / 수정 2011.10.02 14:32 / 출처 및 원문보기 

‘빨리빨리’ 정신으로 미국 패션계 흔들다

포브스코리아낯선 땅에서 맨주먹으로 시작해 억만장자가 된 포에버21의 장도원 회장.
그 옆에는 사업 동지이자 아내 장진숙이 있었다. 베일 속에 가려졌던 그녀가 포브스 선정 파워우먼 39위에 오르며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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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장진숙이 누구지?’
포브스의 파워 우먼 리스트가 발표된 후 한국사회는 잠시 술렁였다. 그녀는 100명의 여성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베일 속의 여인이었다.

매년 발표되는 파워 우먼 리스트에는 이름 석자만 대면 알 만한 인물들이 랭크됐다. 2006년 한명숙 총리(68위), 2008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73위), 2008년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80위), 2009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79위)이 그들이다. 역대 순위 가운데 가장 높은 39위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도, 자료도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회사, 포에버21(Forever 21)은 젊은 여성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세계적인 패스트 패션 브랜드다. 패스트 패션이란 제조업자가 제조·유통·판매를 모두 맡아 저가 상품을 2~3주에 한 번씩 빠르게 공급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포에버21은 전 세계 주요 지점에 500여 개 매장을 가지고 있다. 직원 3만4000명에 올해 매출은 4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진숙(48)씨는 남편인 장도원(56) 회장과 함께 이 회사를 1984년 창업했다. 그녀는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여성 6명 중 한 사람이며, 장씨 부부의 재산은 24억5000만 달러로 추산된다.

무일푼 도미, 처음엔 막노동
부산에서 태어난 장진숙(본명 김진숙)씨는 원래 미용사였다. 커피와 주스 배달을 하던 장도원씨를 만나 결혼하고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무일푼이던 장씨 부부가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막노동에 가까운 단순 업무뿐이었다. 접시 닦기와 사무실 청소, 미용실 보조 등 궂은일부터 시작했다. 남편은 커피숍 서빙, 주유소 주유원, 수위 등 하루 3개 직업을 소화하기도 했다. 부부는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자기 사업을 일구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주유소에서 일하던 남편은 패션업체 상인들이 좋은 자동차를 갖고 있다는 걸 알고 무릎을 쳤다. 두 사람은 그 길로 의류업에 뛰어들었다. 1984년 그동안 모은 돈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 하이랜드파크에 39㎡ 규모의 작은 매장을 싼값에 임차했다. 가게 이름은 ‘Fashion21’이라고 지었다. 남편은 봉제업체를 돌며 원단을 구해 오고, 아내는 가게를 지키며 재봉틀로 셔츠를 만들었다.

유행에 목말라하면서도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야 하는 여성들을 타깃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의욕과는 달리 장사는 신통치 않았다. 고민을 거듭하던 부부는 손님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손님들은 항상 가격표를 먼저 확인했는데, 지갑을 열지 않는 고객에게는 어떤 상품을 원하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물건을 언제까지 안겨줄 것을 약속했다.

그들의 장사 원칙은 ‘좋은 물건을 싸게 사서 싸게 판다’는 것이다. 입소문이 나면서 점포는 계속 늘어났다. 부부는 6개월마다 새 매장을 개설한다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썼다. 그 결과 창업 첫해 3만5000달러에 불과하던 매출은 이듬해 70만 달러로 급성장했다. 2001년 연매출 3억 달러를 돌파했고, 현재는 연매출 37억 달러에 이르는 초대형 다국적 기업으로 우뚝 섰다. 무엇보다 속도가 중요한 패스트 패션 업계에서 성공하는 데 한국의 ‘빨리빨리 정신’이 큰 바탕이 됐다.

장진숙씨는 포에버21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의류 디자인에 남다른 감각을 지녔다. 소비자들의 욕구를 재빨리 파악해 상품에 반영하는 감각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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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숙씨의 남편 장도원 회장(가운데)과 두 딸.


명품업체들과 수십 차례 소송
그녀는 수석 바이어로 활동하며 늘 패션의 흐름에 주목한다. 포에버21 본사가 있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유행에 민감한 젊은 여성들이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지 관찰하고, 이따금 해외로 나가 패션 동향을 살핀다. 새로운 스타일이 포착되면 스케치나 샘플을 재빨리 로스앤젤레스 제조공장으로 보낸다. 이런 방식 덕에 특정 패션이 시들해지기 전에 돈을 벌고 새로운 아이템을 찾는다. 포에버21의 상품 중 상당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들어진다. 신상품이 매장에 진열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비결은 LA의 질 좋은 노동력이다. 인기 상품의 경우 일주일 만에 선보이기도 한다. 놀라운 속도다.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회사는 수많은 소송과 보이콧 시위에 시달렸다. 공장 근로자들은 보너스나 초과근무 수당 없이 최저 수준도 안 되는 임금으로 일했다며 포에버21을 제소했다. 이 과정은 2007년 ‘Made in LA’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방송됐고, 이 다큐가 2008년 에미(Emmy)상을 탈 정도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다른 업체 디자인을 베낀 혐의로 50여 차례 고소당하기도 했다. 안나수이, 마크제이컵스,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등 유명 명품 브랜드들은 그들의 최신 디자인을 카피한 포에버21을 법정에 세웠다. 그때마다 디자인 책임자였던 장씨는 판사의 질문에 “I don’t know”를 연발하며 위기를 모면했다. 이 밖에도 여러 건의 저작권 및 상표권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대부분 합의가 이뤄진 상태다.

포에버21에는 디자인팀이 없다. 대신 6~7명으로 구성된 바잉팀이 벤더로부터 추린 아이템을 장씨에게 매일 400개씩 보여준다. 그러면 장씨가 하나하나 직접 따져 아이템을 고른다. 그녀가 하루 12시간 일한다고 가정할 때 한 아이템마다 90초의 시간을 할애하는 셈이다. 디자인 카피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공식적으로 카피했다고 판결이 나온 적은 없다. 디자인의 애매한 속성 때문에 매번 잘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문제들 때문인지 장씨는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은둔자처럼 살아간다. 언론에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고 남편과 딸들이 모두 가는 스토어 오프닝 때도 참석하지 않는다. 본사에서는 장씨가 지나가도 사원들이 그녀를 못 알아볼 정도다.

신세대 두 딸이 사업 도와
그녀의 곁은 두 딸이 지키고 있다. 2007년 회사에 합류한 자매는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으로 유행을 보는 눈과 마케팅에 대한 판단력을 겸비하고 있다고 한다.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매니지먼트를 전공한 큰딸 린다(29)는 메릴린치 포터리 반 등에서 근무할 때 쌓은 노하우로 포에버21 마케팅 부서를 이끌고 있다. 휘하에 직원 20명을 두고 있다.

린다는 페이스북에 홈페이지를 열어 74만7000명의 회원을 확보했고 트위터를 통해 7만3000명을 추가했다. 신세대다운 마케팅 전략이다. 대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린다는 “엄마는 오로지 상품 관련 일만 한다”며 “날카로운 눈과 노련한 협상 기술을 가진 분”이라고 평가했다.

코넬대에서 패션을 전공한 작은딸 에스더(24)는 디스플레이 그래픽 디자인 판촉을 총괄하고 있다. 최근 문을 연 세리토스 매장의 꽃 벽화와 마네킹, 인조잔디 등 인테리어는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포에버21에서 장진숙씨는 제품, 남편 장도원 회장은 총괄 경영, 큰딸은 마케팅, 작은딸은 비주얼 디스플레이를 담당하며 가족경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기독교 신자인 장씨 가족은 매일 새벽 5시 예배에 꼭 참석한다. 노란 포에버21 쇼핑백에 요한복음 3장 16절을 새겨 넣을 정도로 독실한 장로교인이다. 그동안 전도를 위해 수백만 달러를 기부했으며 아프가니스탄, 인도, 파키스탄 등에 학교를 세우는 등 전도 활동에 열심이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 기부한 사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은퇴 후에는 오로지 교회생활만 할 것이라고 한다.

김지연 기자 jy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