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NEWS/일본의 기원과 한국

[스크랩] 가라파(갓파/가야족)집단 도래의 흔적이 있는 은하사 삼두거북상과 신어

monocrop 2011. 9. 29. 16:14

가야불교의 김해'은하사' 탐방

 

 

 

<김해 은하사-가야불교의 요람>2011.2.22 글돋선생촬영

 

06년 7월 하순경 경북 역사연구회 교사들과 경남 김해시 삼방동 882번지 
소재 은하사를 둘러 보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4년이란 세월이 흘렸다.
초여름철의 화사한 여름철 꽃들이 경내에 피었던 시절이다. 눈부신 햇살이 기억 속에 아련거렸다. 
하지만  이번 겨울 오후 늦게 들린 탓으로 경내가 텅 비어있다. 날씨 탓이며 오후 느즉한 까닭도 있었다. 
사찰 입구 자연석 계단이 방문객을 압도한다. 06년에 올 적 강렬한 인상 때문에 너른 자연석 계단을 오르면서 불국의 세계의 높이를 가늠하길 느끼게 만들어 놓지않았나 생각케 한다.
몇해 전 달마야 놀자란 영화의 촬영지로서 우리에게 늘리 알려진 절이다. 
전설에 의하면 가락국 수로왕시절 허황옥의 오빠인 장유화상이 창건한
 사찰로 원래 이름은 서림사였다고 한다.

 

임진왜란의 전란에 불타 소실되었다가 1600년대에 중창되었다.
건물 형식은 다포계양식의 맞배집으로 용두와 봉두를 새겨놓아 
장식의 아름다움이 빛난다.  조각된 수법이나 구조양식들이 
조선후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대웅전의 수미단에 쌍어문양이 있다고 하여 대웅전 내부를 찾아보았으나 <사진:신어상의 형태도 일본 규슈의 '가랏파(河童/수신)"의 형태이다. 가야족의 대거 도래를 의미하고 있다/글돋선생>
찾을 길이 없어서 안타까움이 앞섰다. 처사님의 정보에 의하면 1980년대에 수미단 쌍어문양이 문화재 도굴범에게 사라졌어, 신중단에 모사품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또한 대웅전 대들보에 신어가 있었는데 이 또한 대웅전 해체 수리중에 작업 인부들의 부주의로 인해 빗물에 의한 겉칠의 손상과 훼손이 이뤄졌다한다.
상어문은 월지국(중국 북서쪽 흑수성,흉노족에 멸망/원래 아유타국)의 문양이라 전하고 있다. 
은하사 대웅전(도유형문화재 제238호)은 조선 중기이후의 건물 양식이다. 
종루각의 기둥이 자연목 그대로 사용한 것이 독특하며,종루의 목어 장식에 삼두 거북이 있다. 또한 설법 강당 난간에도 같은 조각이 몇개가 있다. 
용두형태로 비쭉 나온 엇이빨 등으로 보아 벽사의 의미와 거북형상은 가야족의 상징으로
일본 규슈지방의 '갓파'(일명 '가라파"/해신) 설화를 연상시킨다. 갓파의 모습도 거북의 등을 가진 '바닷사람' 형상이다. 그들이 바다로 통해서 일본 열도에 대거 이동하여 해신으로 숭상을 받았다. 
'가라파'의 '가라'가 가야 족이란 뜻이다. 고대 가야인들이 바다를 통해서 들어온 도래인들이다. 
神魚(신어),雙魚紋(쌍어문), 김수로 금관가야의 상징문양 '쌍어문'은 일본 규슈의 '가라파'(거북사람) 설화와 동일한 집단 이동을 의미할 것이다.
대웅전 계단 아래 가느다란 몸피의 오층석탑의 형식은 고려시대 양식이며 기단과 탑신과 옥개석이 불완전한 탑이다. 
여러가지 연유로 안내판 조차 없다. 대웅전 앞 화단에 안치되어있는 삼층석탑도 시대 불명이다. 여러 정황을 보아 폐 석탑 자재를 사용해 급조해 만들어 놓은 탑이다. 
무늬만 탑인 셈이다. 이런 경우 과연 문화적 가치성이 있을 지 의문이다.
가야불교(남방불교)설화를 가지고 있는 은하사, 허황옥(허황후)과 오빠 장유화상과 김수로왕의 아들에 관련된 남방불교의 사찰 중 
이 곳 신어산 아래 은하사, 창원 불모산, 하동 칠불암 등이 가야불교의  설화가 남아있다. 한반도불교역사 시작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라고 국사책엔 적혀 있지만, 
만약 장유화상과 허황옥에 의해 가야불교가 도입되었다면 한반도 불교 역사는 몇세기 앞으로 거슬러 올라야한다. 은하사 뒷편 평풍같은 암석바위가 펼쳐져 있는 산이 '신어산'이다. 
가야 왕실의 독특한 문양인 '쌍어문' 바로 神魚山과 관련 있는 '고기 魚이다. 기록보다 설화에 남아있는 가야불교의 흔적을 찾아 온 '은하사' 가야불교는
 다리 교각에 새겨진 '神魚橋'와 바위에 새겨진 '神魚洞天' 각자,와 수미단의 신어문 존재의 소문만이 남아있다. 
금관가야의 중심지 김해 속 은하사는 허황옥의 오빠 '장유화상'이 세웠다는 설화가 '장유'라는 지역 지명 때문에 역사적 믿음 갖게 만들고 있었다.
가야 삼두형 거북과 일본 규슈 가랏파(水神)와 관련성>

 

”하동도래비 전설의 비밀

 


일본열도의 큐슈(九州) 구마모토현 야쯔시로(八代)市를 흐르는 구마천(球磨川) 센가와교(前川橋) 바로 근처에 가랏파(加羅輩)의 전설의 내용을 담고 있는 하동도래비(河童渡來碑)가 세워져 있다. 이 하동(河童)을 소개하는 관광안내지에는

 

<일본영화 :갓파쿠와 함께하는 여름방학-애들과 친구인 갓파-갓파(가랏파)의 형태와 신어상의 형태가 동일하다. 거북상도 동일한 이미지이다.>


 

“구마천의 하동도래비는 닌토쿠(仁德) 천황시절 중국 구천방(九千坊)의 하동집단(河童集團)이 양자강 하구로부터 황해(한국의 서해)로 나와 일본까지 대원영(大遠泳) 길에 올라 종착지가 구마모토현 야쯔시로(八代)에 상륙하였다. 현재 야쯔시로 지방에는 하동의 전설이 많이 남아있다“


이런 설명을 하고 하동의 모양과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그 하동의 이름은 ‘가랏파( 加羅輩)이다. 이 전설은 가고시마현을 비롯 미야자키현까지 그 지방의 전설인양 퍼져있다. 또한 하동에 관한 축제도 행해져 내려오고 있다.

신어산 '가야사찰 설화를 지닌 '은하사' 사진들
 

허황옥의 오빠 장유화상이 창건하였다는 설화를 지닌 은하사-신어산 아래에 세워졌다. 원래 西林寺로 불려졌었다

 

신어가 산다는 인공연못

자연석 돌계단이 인상적이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 그대로 계단은 육중한 멋과 참배객들의 발걸음을 엄숙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돋운다

은하사 일주문을 들으서면 자연목 누각 16개가 마음을 압도하게 만든다.색다른 느낌을 받는다.

 

대웅전으로 오르기 까진 몇 계단의 자연석 돌계단을 밟아야한다. 수미산에 주석하고 계시는 부처의 세계를 가기위한 수행의 길은 결코 수월하지 않으리..

 

범종각에 새겨지고 조각되어진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향해 포호하고있는듯한 龍頭와 물고기꼬리 斷尾를 보는 느낌은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로 다가왔다

두상은 용머리이고 꼬리는 고기형태는 일본 도래 수인 가야족의 '가랏파'와 같은 이미지이다. 가야족의 양자강에서 이동 설화가 남아있는 일본 남규슈의 가랏파의 전설이 이 곳 신어와 삼두거북이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 놀라운 발견이다. (글돋선생 설)

 

 

목각 귀부일까? 三頭龜首의 송곳니 이빨을 드러내고 악귀와 벽사의 이미지로 건물을 지키고 있다

구마천의 하동도래비는 닌토쿠(仁德) 천황시절 중국 구천방(九千坊)의 하동집단(河童集團)이 양자강 하구로부터 황해(한국의 서해)로 나와

일본까지 대원영(大遠泳) 길에 올라 종착지가 구마모토현 야쯔시로(八代)에 상륙하였다. 현재 야쯔시로 지방에는 하동의 전설이 많이 남아있다“


이런 설명을 하고 하동의 모양과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그 하동의 이름은 ‘가랏파( 加羅輩)이다. 이 전설은 가고시마현을 비롯 미야자키현까지

지방의 전설인양 퍼져있다

자연석이용한 기단부 위해 세워진 오층석탑의 정체성과 시대성을 알 수 없다. 상층기단부격으로 올린 것은 다른 탑신 옥계석을 이용한 것이며, 다른 옥계석의 형태로 봐서

고려시대 것으로 보인다. 옆에는 다른 탑 옥계석이 놓인 것들을 보아 이미 역사적 원형을 잃어 버린 정체성을 상실한 조립한 탑이다. 이런 경우 문화재로서 가치가 상실되었다

 

자연석 기단위에 작은 돌무지는 참배객의 염원의 집적물이다. 인간은 역시 불안전한 존재?

 

 

 

 

 

 

 

대웅전의 외.내 벽화는 도 유형문화재에 등록될 정도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2003년 보수공사때 수장고에 원본은 보관하고 있고 현재 원형의 모사품이다

 

대웅전 내부

은하사엔 대웅전 아래 뜰에 오층석탑(고려양식)과 위쪽 화단 뜰에 조립되어 세워진 삼층석탑은 조악한 형태이다. 마치 장식품 정도로 전락된 느낌을 받는다

이 삼층석탑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원형 자체가 원래 없었다고 생각되어진다. 돌아다니던 탑신부와 옥계석을 활용한 조립된 탑이다. 원래 탑을 세울 때 탑신공에

사리나 불교 장신구와 불경등을 넣어 그 자체를 공경하는 구조물이다. 무늬만 탑형태는 돌 조각에 불과한 셈이다. 앙꼬없는 진빵?

대웅전 옆에 화강암 돌 비석같은 것이 줄지어 서 있다. 이름과 호와 같은 것이 새겨져 있어 무슨 용도 일까 의문이 가면서 촬영해 놓았다.<자침원담>이란 이름일까

호일까,법명일까? 용도는 또한 무엇?

 

 

부처의 미소가 아름답다

 

 

서림사란 사액이 걸린 건물-은하사의 원래 이름이 <서림사>였다

 

 

 

 

출처 : 전혀 다른 향가 및 만엽가
글쓴이 : 庭光散人글돋先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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