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 & ... Writing/향가·만엽가·일본서기 해석

[스크랩] 일본 백제의 향가 額田王(누가타노 오호키미)의 노래

monocrop 2011. 9. 28. 18:17
 
 
<주몽 드라마에서>누가타노오호키미 도 이처럼 이마가 훤출한 아름다운 여인일걸...>

 

일본 백제의 향가 額田王(누가타노 오호키미)의 노래

 
정광산인 김문배 글

 

만엽집 권 1의 7에 수록된 이 노래에대해서 "야마노 우헤노 오꼬라"대부가 <<유취가림>>에서 밝혀 말하기를[일서에는 무신의 해 서기648년)에 히라노 미야(宮)에 행차했을때 황극여황이 부른 노래라고 하였다. 그런데 누가타노 오호키미가 이것을 대신 지었다고도 전한다.

 

 <<일본서기>>에는 제명여황5년 659년 춘정월 3일 천황이 기이의 온천에서 돌아왔다. 3월1일 천황은 길야에 가서 연회를 하였다. 3일, 천황은 근강의 平浦에 행차하였다. 이 때 불려진 노래였는지도 모른다.

 

 액전왕은 여자이다. 조선조에 황진희와 같이 노래와 미모를 견비한 귀족출신의 왕녀이다. 일본들의 가슴에 오랫동안 인테리적이며 지적여성으로 남아 있다. 일본역사상에 아니 전 세계 여성들중에 가장 지적이며 흠모하는 여성상 중에 일본인들이 제일 1위에 올려놓은 여인이 바로 이 "누가타노 오호키미"이다. 실제로 일본 권위있는 곳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 1위를 차지한 여인이다.

 

額田王 이름을 보면 남자와 같은 이름이지만 실제 이 이름도 향찰식표기법으로 해독하면 그 이름의 실체가 들어난다. 액전왕은 왕을 두번 모신사람이다.원래 천무천황의 여인이었다. 미모와 지적인 면이 뛰어나 천지천황이 아내를 삼는다. 천무는 먼곳으로 도망을 간다.  결국 천지가 두달만에 죽자(천지10년 겨울12월) 천무는 그 기회를 틈타 전격적으로 거병하여 近江朝廷을 격파한다. 이것이 소위 임신의 난이다.

 

근강조에서 망명 백제계를 제거하고 다시 세력의 중심권을 아스카지방으로 궁을 옮긴다. 그런 다음 천무는 드디어 천황을에 즉위한다. 그리고 額田王녀를 자기 아내로 되찾아 온다. 액전왕의 이름을 일본서기에는 額田姬王이라고도 한다. 그러면 [액전희왕]의 이름의 정체는 무엇인가.

 

 [액전희왕]을 향찰식 표기법으로 풀이하면 [額은 "니마"이는 이마의 고어이다. 田은 "밭"姬의고어는 "키"(독음)이며 王(왕)은 "갈(往가다)"이다.

 

 이것을 조합해보면 [니마밭키갈=님와 바뀌갈]즉 [님이 와서 바뀌어갈 ]

이제 그 정체가 바로 들어난다. 님(천무천황)이 와서 (다시 천지에서 천무로)바뀌어 갈]여인이라는 이름이다.

 

후대에 역사를 기술하는 자는 이렇게 생애에 걸 맞게 이름을 붙힌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보건대 천무는 원래 백제계가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함이 옳다. 

 

이곳에서는 액전왕에 대해 대략적으로 기술해 보면 . 만엽초기의 대표歌人이며 天武천황(일설에는 백제의자왕의 아들 부여 융이란 학설도 있음,그러나 일반적으로 신라계통의 천황설이 유력)에게 시집와 十市황녀를 낳았다.(만엽집의 역주) 천무천황의 처로서 미인임이 틀림이 없으며 만엽집에서 많은 노래를 담고 있어 지적인 놓은 수준의 여인임에 틀림이 없다.

 

기존해독:(어차피 일본인들의 정격한문식해독은 오류투성이므로 믿을 가치가 없다.)

 

秋노野노미草刈리葦기宿레리시宇治노 宮處노假廬시思호유

 

일본의 해독:(가을 들판의 풀을 베어 지붕 이어 잠자리 삼은 宇治의 미야꼬의 假암자가 생각나네)

 

 대충 이와 같은 뜻으로 풀이 된다. 그러나 원문의 [金野]를 해독상의 일정한 원칙대로 읽지 않고 비유적인 뜻으로 파악,[황금색의 野]로 이것을 다시 [가을의 들판]으로 임의 해석하는 것은 진정한 해독이랄 수 없다.

 

 가령 정격 한문에서 [金]은 오행의 하나,방위로는 서방, 시절로 는 가을,오음으로는 商에 대당되므로 가을 절후를 말하고,[金雁]은 가을의 기러기,[金商]은 가을 또는 가을 하늘을 의미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金野]가 [가을의 들판]이라고 쓰인 용례는 문헌상에 없으므로 이런식의 풀이야말로 해독이 아니라 한문식 추정인 것이다.

 

(신해독)(金仁培,金文培형제 )

원문 및 소리값

 

원문:金(다믈)野(드르)乃(내)

美(아름다울)草(풀)刈(버히)葦(새닐)屋(집)楮(북)禮(례)

里(마을)之(가)兎(톳기)

道(길)乃(내)

宮(담)子(삿기)能(능)借(꿀)

五(닷)百(온)璣(기)所(바)念(스믈)

 

문자 풀이

金은 입을 다물다의 [다믈]이며 [드르]는 들판의 고어이며 刈는 [버히다>베다]의 고어이다. 葦는 훈독 [새닐/이엉이을]이며 兎[톳기/토끼 토]子는 삿기(새끼의 고어) 百을 순수 우리말로 [온]이며 念은 20을 가리키는 말로 [스믈/스물의 고어]이다. 이처럼 향찰식 표기법에서는 한자의 뜻이 중요하지 않고 오직 발음이 중요시 여겼다.

 

 

 직역

 다 믈드르내 아름 다발 플 버히 새닐 집 붉네

 마을 가득히 길내 담삿기 넝쿨 닷 옴기밧음을

 

 

현대어 통역을 하면 아래와 같다

 

다 물들었네. 아람드리 다발 풀 베 이엉 이을 집 붉네

마을 가득히 길을 내 담 쌓은 넝쿨 따로 옮겨 봤음을(염원하도다)

 

일본어로 번역

すべて染まったな一抱え束の草を切り取って 草で編む家赤いね村ぎっしりと
道は出して垣根を積む草の葉っぱ別に移して見たことを

 

 이 노래의 의미심장한 암시성에 대한 해설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효덕천황은 황극천황의 동모제라고 일본서기는 기술되어있다. 황극천황과 효덕천황의 어머니는 같다는 얘기다. 효덕은 그 친모의 각지의 대도(貸稻)를 폐지하고 그 둔전을 몰수하여 군신에게 나누어 주었다

 

 효덕천황은 황극과는 전혀 계통이 다른 신흥세력으로 부상하여,황극재위 당시 소가씨와 중대형을 주축으로 한 세력 다툼의 와중에 기회를 틈타 급기야 일어나서 이들을 진압해버리고 황위를 찬탈한 또 하나의 세력이었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케된다. 아무튼 대화4년(서기649년)에 누가타오호키미(액전왕)가 황극上皇의 어가를 대신 지었다고 전하는 앞서 소개한 그 노래는,위와 같은 사회적 배경을 배제하고서는 그 불려진 동기를 정확히 파악키는 어려울 것이다.

 

 요컨대 이 노래의 내용 속에는 히라노 이야에 행차했을 때의 황극천황의 당시의 심경,예컨데 천황으로서의 기득권을 앗긴 뒤에 심회나 정서를 일단이 반영되었을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전혀다른 만엽가/289페이지 참조)(정광산인)

2006년7월5일 포스팅

출처 : 전혀 다른 향가 및 만엽가
글쓴이 : 庭光散人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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