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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천황 즉위식에 百濟神을 부르는 한국가요 뜻이..

monocrop 2010. 3. 7. 16:06

천황 즉위식에 백제혼령을 부르는 고대 가요ㅡ한국말로 해석해보니 그 뜻이..

 

(백제神靈)을 부르는 고대 가요 글돋선생해석

 

고대가요 원문을 살펴보자.

 

원문:見志萬由不加太仁止利加介和札可良加見波加良乎支世武也加良乎支加良好支世牟也

 

 

해석:

(삐주기나무 천조각을 든 神官에 내려앉은 혼령이) 보듯 만지나니, 간-사람도 그쳐 길(道)가게,

닷삶이 나을까, 어딜가 보렴, 가-어디로가지 떼 날라야,

가-어디로가지, 가-어디로가지(혼령을) 떼(분리해) 보리야(보랴)

 

일본의 해석

 

 이시마 목면(木綿)을 어깨에 둘러 걸치고

우리 한신(韓神)의 韓을 초대하는 도다,

한(韓)을 초대, 한(韓)을 초대하는 도다.

 

 

 위의 고대가요는 신악가(神樂歌)이다. 신악가는 9세기 중엽에는 이미 존재했다고 한다. 일본의 해석에 우선 문제가 되는 곳은良乎支世武也,

 加良好支世牟也를 둘다 <한(韓)을 초대하는 도다> 동일하게 해석을 하는데 있다. 분명 앞의 문장의 경우 무(武)자와 뒤의 모(牟)와는 다른 글자이다.  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자체가 문제가 된다. 

 

또한 <가량(可良)>을 일본식 발음으로 <가라>라하여 韓(아마 도 가라,가야를 의역한 것 같다)이라 해석하였다.

다음에 나오는 가량(加良)도 <가라>라 발음하여 韓(한)이라고 동일 해석이다. 그러난 분명 가량(可良)>과 가량(加良)은 한자가 다르다.

 

 동일문에서 그것을 구별하지 않고 기분나는 대로 작자는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자표기에서 작자가 어째서 하나는 옳을 가(可)로 또 하나는 <더할 가>로 다르게 표기했는 가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조차 하지 않고 있다. 

 

                                                                                 <역대 천황 즉위식이 행해진 京都御所>

 

결코 둘 다<가라>라 읽어서는 안된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앞에 지적한 두 문장도 <날나(武)>,<보리(牟)>로 구별해서 읽는 신라향찰식 표기법에 의존하여한다. 둘다 동일표기로 해석하고 있는 일본 식 해석방식은 그 자체가 이미 모순을 안고 있었다.

 

 엄밀히 살펴보면 일본학자들의 해석의 한계가 원문이 한국어인 것을 일본어로 해석하고 있다는 자체부터가 문제였다.

 차용된 한자는 어디까지 당시의 원음을 살리면서 동시에 노래의 내용에 어울리는 이미지의 효과를 위한 역활을 맡고 있다. <可>와 <加>도 음가는 <가>이지만, 역시 이미지의 효과는 다르다.  <가(可)>는 <나을까> 해석에 <옳을 가(可)>을 사용하여 표음 의미를 표의로서도 이미지 하였다.

 

가(加)는 반복해서 나온<加(가)>를 6번 반복해서 사용하여, <더해 加(가)>의 속뜻을 강조하였다. 즉 <더해 가(加)>를 사용하여 이미지 효과를 더 강조해 주고 있다. 可良加見波,可良加見波加良乎支世武也 의 해석에 있어서 可良加見(가라카미)라 일본식으로 읽어<가라(韓)라 하여 <韓神>이라 해석한 것은 이해하지만, 波(파)를 "하""바","나미"라 읽고 있는 일본어가 한국의 (의) 해당하는 해석에 의심이 간다.

 

 무리한 해석 (문맥이 통하지 않는 억지경우)

 

분명 見波(견파)와 可良(가량) 사이는 띄어 쓰여진 다른 문장이기 때문에 <한신의 韓(加良/가라)>이라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해석 또한 문맥이 통하지 않은 경우이다. "우리 한신((韓神)의 한(韓)을 초대하는 도다" 의 경우(韓神의 韓을 초대한다) 뜻이 무엇일까, 오리무중이다.

 차라리 뜻이 되려면 <한신의 神을 초대한다>는 수긍할 수 있다.

 

 역시 고대 가요가 한국어의 향찰식 표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억지로 일본어로 읽으려 한데서 비롯된 오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시정되어야 할 과제이다.

 

 한자의 향찰식 발음부호로 본 표음 독법(일본 고대시가 연구가 金文培씨 해석) 참고:(   )은 발음부호이다

 

보듯, 만지나니  :見(보)志(듣)萬(만)由(지나)不(아니)

간-사람도 그쳐 길(道)가게 :加(가)太(한)仁(사람두)止(그츠)利(길)加(가)介(개)

닷삶이 나을까, 어딜가 보렴 :和(다사)札(미날)可(가)良(어딜)加(가)見(보)波(흐름)

-어디로가지 떼 날라야, :加(가)良(어딜)乎(호)支(가지)世(때)武(날라)也(야)

-어디로가지, 가-어디로가지 떼 보리야(보랴): 加(가)- 良(어딜)乎(호)支(가지), 加(가)-良(어딜)好(호)支(가지)世(때)牟(보리)也(야)

 

 현대어 직역

"(삐주기나무 천조각을 든 神官에 내려앉은 魂靈)보듯 만지나니, 간-사람(死者)도 그쳐 길(道/대상제의식)가게,

닷삶이(따로 삶이)나을까?  어딜가보렴,(이승아닌 저승 세계) 가(가거라),

어디로가지 (이승에서 혼을) 떼어 날라야, 가(갈거니)

어디로가지, 가(가야지), 어디로가지 (魂을) 떼어 보랴

 

<위 해석은 '일본어의 부활/2003년 刊/글돋선생 >에서 중에서.

 

 문자풀이 도우미, 札(미날)은 '갑옷 미늘'의 고어, *미늘달다(비늘 모양으로 위쪽의 아래 끝이 아래쪽의 끝을 덮어 느르다. 갑옷 미늘의 약어는 '미날'다.志(듣: 뜻(고어) , 由(지나/지나다/경유),太:한(크다),仁(사람두): 人+二의 會意文字로서 <사람두>의 소리차용. -향찰식 표기법의 독특한 표현중 하나이다.(글돋)

止(그츠다/그치다의 고어), 利(길/利子의 고어), *길: '믿과 길헤 여들ㅎ량은에: 本利八兩銀子(初朴通事上34)

波(파)<흐르다/고어/활용형 (흐름)의 소리차용)*分波而共源(後漢書),武(날나/날래다의 고어). 牟(모):보리(麥也)/옛날에는 麥대신 자주 사용)

 닷사다:따로살다(고어)의 명사형:닷삶이(따로 삶이) 世(때/時也)

 

 

 위의 고대가요는 궁정의 사당 앞 뜰에서 인장(人長)은 장작불(庭火)을 피운 가운데, 손에 삐주기 나무를 집어들고 높이 쳐들면서 神이 내리면 춤을 추게된다. 그러면서 죽은 영혼을 불려내는 노랫말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렇다.

 

인장(人長)이란 궁중의 제사인 신악을 통솔하는 神官을 말한다. 의상은 정장으로 관을 머리에 쓰고,제사를 지휘하면서, 신이 내리면서 오른손에 잎사귀들이 달린 삐주기나무 가지를 하늘로 쳐들면서 춤을 춘다. 이때 신이 내린 한신이 된 인장(신관)은 신을 궁정의 사당에서 원신(園神)과 분리하여 모시게 되는 것이다. 이 행위를 하면서 부르는 노랫말이 위의 가사이다.

 

 

그 가요가사는 우리나라 신라시대의 향찰 및 이두처럼, 한자어를 차용해서 말소리에 따라 한국어로 불렸다. 그러나 현재 향찰식 한자어에 한국음을 잃어버려 일본한자 독음으로 읽고 있는 형편이다.

 

<사진:왼쪽 일본 황세자,오른쪽:아키히토 125대 일본 천황/  

한때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시대가 있었다.

그에 대한 깊은 슬픔은 본인의 기억 속에 담겨있다"(1998년 10월),

"내 개인적으로는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하는

속일본기(續日本紀)의 기록에서 한국과의 관계를 느끼고 있다"(2001년 12월)는 등

아키히토천황은 평소 한일 관계를 중시하는 언행을 보여 왔다. >

 

 그러니까 본래의 뜻과 음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의미도 불명이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 올바른 뜻과 정독에 있다. 재미있는 말은 '다마구시(玉串)'란 일본 단어가 있다. 비쭈기나무가지(닥나무 섬유로 만든)에 베 또는 종이오리를 달아서 신전(神殿)에 바치는 것을 말한다.

 

(다마구시) 한국어에서 비롯된 말.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마구시)' 한국어에서 비롯된 말이란 것이다. '담아꽂이'에서 전와 되었다. 고대 한국어에서 유래된 말이 오늘날까지 남아 사용되고 있다. 그 신의 원류가 역시 한국계통임이 틀림없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와카(和歌) 등을 노래한 가요의 한자어를 차용하는 표음문자 기록을 고대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만엽가나(萬葉假名)로 부르고 있다. 현재 이들 표기법으로 음가나(音假名), 훈가나(訓假名), 진가나(眞假名)가 있다고 한다.

        <간무천황의 대 사당(헤이안 신궁/간무천황는 헤이안시대를 연 천황/그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501년~523년)의 왕자 순타(純陀)태자의 후손이다>

 

그러나 고대 가요는 전부 순수 한국어라는 필자의 주장으로 볼 때 위의 표기법은 후세 일본인들이 신라 향찰식 표기법에 의존해 일본식으로 잘못 만들낸 것들이다. 일본에서 향찰식으로 쓰여진 고대가요는 모두 신라 향찰 표기법으로 읽어야 된다. 만약 현대 일본식 독법 내지 일본식 향찰식 표기법으로 읽을 때는 역시 의미불명 내지 해독불능 상태가 되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앞에서 해석한 것은 전부 오류투성이며 잘못된 해석임이 드러났다. 아마 현대인으로서 필자의 해석은 처음이며 한국신의 영혼을 부르던 고대가요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 새로운 해독의 정체를 독자와 함께 향유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필자의 심정이다.

 

 나라 시대 당시에는 왕궁에서 제사를 지냈다. 왕궁의 내전(內殿)과 내정(內庭)에서 신악가(神樂歌)라고 하는 제례의 무악(舞樂)이 제례행사에 함께 공연되었다. 나라 궁정에서 거행된 신악은 대상제로부터 비롯되었다. 오늘날까지 천황 즉위식에서 대상제(大賞祭)를 거행하고 있다.

 

 헤이세이 천황(平成天皇/지금의 일본천황) 즉위식에서 불렸던 신악가 노랫말

 

 지난 90년 11월21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한 가운데 현 일본의 헤이세이천황 즉위식에서 전통의식 장면을 묘사한 <일본경제신문>기사의 구절을 인용해보자.

 "정적이 싸인 재장(齋場)에서는 유기(悠基지방/현 秋田縣으로 主基지방과 함께 신찬(神饌)을 마련하는 쌀 생산지로 지정된 곳)의 지명을 딴 풍속가가 울려 퍼지고 우네메(采女/왕의 식사 시중 드는 여자)들의 양손에는 신에게 바치는 밥과 술과 과일이 들려 나온다. 유기전(悠基殿/천신奉祭하는 곳) 내진(內陣/신사나 절에서 신주 또는 불상을 모시는 제일 안쪽)에는 신이 머무는 신좌(神座)가 안치되고 그 바로 곁에 임금이 앉아 떡갈나무 잎으로 된 쟁반에다 대나무 젓가락으로 제물을 담아 신좌에 바친다. 이 의식에 소요되는 시간은 약 1시간 20분" 이어서 이 기사는 "짧은 가을해가 저물어가는 오후 6시 반, 이 행사의 핵심이랄 수 있는 유기전공찬(供饌/제물을 갖추는 일) 의식이 시작되는 대상전 뜰에서는 화톳불이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왕이 오곡풍양(五穀豊穰)을 비는 어고문(御告文)을 낭독하고 신전에 바쳤던 제사음식을 덜어서 함께 든다. 이른바 <나오라이(直會/神事가 끝난 뒤 신주 신찬을 함께 드는 우리 제례의 음복절차와 같은 것)라는 것이다.

 

                                                                        <제125대 아키히토(1933년~) 현재의 일본 천황 즉위식때 사진 모습> 

 

 유기전공찬의식은 밤 9시 넘어 끝나고 천황은 일단 회립전(廻立殿)/제물을 마련하는 제실)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다음, 13일 영시반부터는 주기전(地神奉祭)에서 똑같은 의식을 되풀이 한다, 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 기사 서두에서 이 행사를 일러 '어둠속의 제전'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이 날 행사에 참석했던 2천여명에 이르는 세계 각국 사절들에게도 이 행사만은 공개되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그 비공개의 이유는 '대상제는 천황 한 사람의 비의(秘儀)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내진(內陣)에서 천황이 어떠한 소작(所作)을 하는지에 알길이 없다고 '소화기(昭和期/히로히토천황시기)宮內省 출입기자였던 다카바시(高橋雄)는 그의 저서<상징천황(象徵天皇)에서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대상전에 들어가는 것으로 천황은 천조대신(신화상 일본의 시조(여인)과 동상공전(同床共殿)의 관계를 가지게 되는 상징성을 보이고 있다.

 

<마고도오후스마(眞床追衾/진상추금 의식)>의식을 치루는 천황 즉위식

 

신찬과 함께 들고 난뒤 천황은 알몸으로 이불에 싸여 '배를 깔고 눕는 행위'를 하였을 것임이 여러가지 면에서 거의 분명하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 의식의 역사적 근거는 <일본서기> 상권에 나오는 천손강림편을 보면 '때에 <다카미무스비노가미(高皇産靈神)>는 <마고도오후스마(眞床追衾/신성한 이불이란 뜻)>로 황손 <아마쓰히코니니기노미코도(天津彦彦火瓊瓊杵尊/필자 해석/하날 치면은 불(火)그슬그슬져 尊(이름도 향찰식 표기이다)>를 덮고 싸서 지상에 내려 보냈다.로 되어있다. '진상추금'은 대상제 제의에서 왕이 배를 깔고 누을때 덮는 이불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또 삼국유사에 인용된 가락국기의 수로왕 신화에서 강림한 신자(神子)의 육야(六耶)는 홍폭(紅幅)에 싸여서 추장 아도(我刀)의 집으로 들려와 평상 위에 올려 놓았다고 했는데 진상추금과 유사한데가 많다. '대상제 때 유기전과 주기전에 설치되는 욕금(이부자리)도 즉위식과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즉 진상복금에 싸여서 강림했다고 하는 것은 천황의 즉위식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신에게 바치는 제사의 구성은,첫째 제물을 바치면서 백제(한국)에서 온 혼령을 부르는 신악가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 최초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쓰지하시유다카(土橘寬)교수 <고대가요(일본문학사 49년6월>에서 발췌한 것을 인용한다.

 

 1.채물(採物,잡는것,신내리기)

  a. 삐주기나무(木神) 폐(弊:신에게 바치는 천조각) 지팡이 조릿대(대나무 일종)활, 검, 창(양쪽날 선 창) 국자(나무자루가 달린 나무로 만든 국자) 가발(葛:덩굴 풀을 둥글게 말아서 만든 것)

 

  b. 한신(韓神)

  본문은 일본식해석의 타당성은 자명하기 때문에 논외로 하겠다. 이미 틀렸다는 것은 필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인장(人長)이란 궁중의 제사인 신악을 통솔하는 神官을 말한다. 의상은 정장으로 관을 머리에 쓰고,제사를 지휘하면서, 신이 내리면서 오른손에 잎사귀들이 달린 삐주기나무 가지를 하늘로 쳐들면서 춤을 춘다. 이때 신이 내린 한신이 된 인장(신관)은 신을 궁정의 사당에서 원신(園神)과 분리하여 모시게 되는 것이다. 

 

 "韓神(백제의 조상신)은 원신(園神)과 나란히 조정의 궁내성에서 모시는 신으로서 우러렀으며, 宮廷鎭魂祭의 전날에 제사를 모시면서 거기서 신악을 연주하는 격식을 취하고 있었다.  진혼주법(鎭魂呪法)에 있어서도, 새로운 今來의 神(백제神)의 영위(靈威)는 중시된 것이다.

 

 필자의 해석과 동일한 일본 교수의 해설

 

 궁정에서 죽은 사람의 넋을 가라앉히는 제사, 즉 궁정진혼제를 치를 때 주법(呪法)의 노래가 바로 위의 가요이다. 닷삶이(따로 사는 삶)란 조정의 궁내성에 모셔진 백제신과 원신을 따로 떼어 한신(백제신)을 불러내는 신악가이다.

 

  필자의 해석을 통해 본 노래말의 의미를 살펴보자. 인장(신관)의 역활을 맡은 신관은 정장으로 冠을 머리에 쓰고, 제사를 지휘한다. 오른손에 잎사귀들이 달린 삐주기 나무가지를 하늘로 쳐들면서 춤을 춘다. 이때 백제신과 원신이 모셔진 사당에서 분리된 백제신은 인장의 삐주기나무 잎사귀에 내린다. 신령은 이 때를 통하여 영매(靈媒)인 신관을 통해 산자들과 통교를 시작한다.

 

 노랫말에서 보듯, 영혼을 보듯, 만지는 것 같이 신관은 영매가 되어 신의 육체가 된다. 죽은 영혼(간사람)도 궁정진혼제를 통해서 가고, 오고 따로 삶이(닷삶이) 나을까, 모셔진 사당에서 현생에 산자와 만남을 위해 나들이를 할까,하고 신령의 물음이있다. 그 물음에 신관은< 원신과 떼어 분리하여 놓아라, 어디로던지 갈 수 있도록 떼어 보리랴>라고 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본문의 노랫말은 신관이 신령에게 권유하며, 자문자답 형식을 통해 신과 신관이 일체가 된 노랫말이다. 일본황실에서도 제례 등 제사가 일년에 20여개에 이른다. 천황 자신이 직접 의례를 주관하는 제사를 대제라하고 천황대리의 신관이 지내는 제사를 소제라한다. 황실에서는 제사를 전담하는 장전직(掌典職)인 전문직을 두고 있다. 팀장인 장전장을 비롯하여 16명으로 구성되어있다.

 

일본에 '<아마테라스오키카미(天照大神)>를 제사지내는 세개의 신전이 있다'

 

 천황이 거처하는 황거내에는 천황가의 최대의 여신인 <아마테라스오키카미(天照大神)>를 제사지내는 세개의 신전이 있다. 

신대의 보물 3종의 신기 중, 거울이 보관된 가시코도코로(賢所), 전 천황과 황후를 모시는 사당격인 황령전(皇靈殿), 천지신명에게 춘분과 추분의 날에 제사지는 신전이 유지 관리되고 있다. 

 

 천황일가가 기거하는 궁정이 황거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지요다(千代田)구지요다 일번지이다.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1603년 에도(현 동경)바쿠후(幕府)를 설치한 역사 깊은 처소이다. 1867년 제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 바쿠후의 마지막 장군이 1868년 메이지(明治)천황에게 조정을 넘겨 주면서 천황이 거하는 곳이 되었다. 260여 년 간 바쿠후의 본거지로서 에도성으로 불려졌던 곳이며 천황이 천도한 후 도쿄(동경)로 천도한 역사적 분기점이 된 곳이다.

 

일본 천황 선조들의 제사를 모실 적 혼령을 불러 모으는 신악가 노랫말들이 ,한국어로 해석하여야만 된다는 사실은 오늘날 한.일 관계사에 중요한 열쇠로 작용할 것이다.  기록:96년10.2~96년 10.20일 배천제에서 (정광산인 글돋선생)

 

참고 문헌:  古代 日本語의 復活/2003년/아이라브/카키문(枾文培)

 

  

 

 

 

 

 

 

출처 : 전혀 다른 향가 및 만엽가
글쓴이 : 庭光散人글돋先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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