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치경제사회

[스크랩] 위구르족(웨이우얼족)

monocrop 2009. 7. 17. 01:40

[주간조선] 중국의 소수민족 ①

 

위구르족(웨이우얼족)

신장 위구르자치구 카스의 한 모스크에서 사각모자 ‘돕바’를 쓴 위구르족 남자들이 기도를 올린 후 나오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사막의 이리와 흉노 공주의 후예들'
위구르자치구 2095만명 가운데 45%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64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에서 일어난 유혈 사태로 인해 국제 사회의 관심이 중국 소수민족에 집중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 한족을 제외한 공인된 소수민족은 모두 55개족이다. 비공인 소수민족까지 포함할 경우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이번 소요사태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위구르족은 인구 순으로 △장족(1600만명) △만주족(1000만명) △회족(980만명) △묘족(900만명)에 이어 다섯 번째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다른 소수민족의 독립움직임을 자극할 경우 중국이 사분오열되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이번 사태의 파급효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실제 이번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소요사태는 지난해 3월 발생한 시짱(西藏) 티베트자치구의 소요사태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장 위구르자치구
서유기 무대, 중국 면적의 6분의 1
1943년 마오쩌둥 동생 처형 빌미 군대 진격

‘신장(新疆·새로운 강역)’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이번 사태가 일어난 신장 위구르자치구를 중국이 다스리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과거 서역(西域)이라고 불리면서 서유기(西遊記)의 무대가 된 이 지역은 청나라 초기만 해도 줄곧 독립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1759년 만주족 황제인 청의 건륭제에 의해 정복당했고 이후 청에 맞서 간헐적인 독립 상태를 유지하다 1884년 청 말 정치가 좌종당(左宗棠)이 이 지역을 재정벌한 다음 청의 직할령으로 완전히 복속되었다. ‘신장성(新疆省)’이란 말도 이때 나왔다.

하지만 새로운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신장 지역은 중국 전체 국토면적의 6분의 1이나 된다. 중국의 성급 행정구역 가운데서 가장 큰 지역이다. 만약 신장이 독립을 선언하고 중국에서 떨어져 나갈 경우 중국은 6분의 1에 해당하는 영토를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청의 정복 이후 중국 지배에 대한 반발도 줄곧 이어져왔다.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국이 사분오열되자 이 지역에서도 자생적 군벌이 발호해 혼란상태에 빠졌다. 특히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44년에는 ‘동투르키스탄’이란 이름으로 한때 독립을 선포하기도 했다. 파미르 고원을 기준으로 동쪽은 동투르키스탄, 서쪽은 서투르키스탄으로 구분한다. 당시에는 신해혁명 이후 고조된 민족주의 움직임을 타고 이 지역에서 이민족을 배척하는 풍토가 지배적이어서 그 누구도 위구르의 독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1949년에서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중국인민해방군이 신장지역으로 밀고 들어가 이 지역을 다시 중국 영토로 복속시켰다. 장제스의 국민당을 지지하는 신장 지역 군벌세력이 마오쩌둥의 동생 마오쩌민을 처형한 것이 인민해방군 진격의 빌미가 됐다. 그 후 1955년에 위구르인들은 자치권을 인정받아 자치구가 됐다. 


자치구와 위구르족
자치구 내 34개 소수 민족 중 최대 세력
한때 전체 인구의 75%였지만 점차 위축

‘위구르’자치구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자치구 주민의 거의 절반가량은 위구르족이다. 전체 주민 2095만명(2007년 기준) 가운데 위구르족이 897만명가량으로 전체의 약 45%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에서 자치구의 이름은 자치구 주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현지어(위구르)로 지명을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위구르란 ‘연맹’ ‘군집’을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위구르인들은 단결이 잘 되지 않아 최근까지도 내부분열을 거듭해왔다. 중국인들은 위구르족이 과거 흉노족의 공주가 사막의 이리와 교합해서 태어난 민족으로 믿고 있다. 한족은 과거 이들을 위흘, 회흘, 회골 등으로 불렀다.

자치구에서 위구르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드는 추세다. 소수민족 자치구에는 ‘독생자 정책(1자녀 갖기 산아제한정책)’이 적용되지 않아 한때 조출생률(인구 1000명당 출생률)이 무려 16.79‰에 달했지만 한족은 거듭 유입되는 데 반해 위구르인은 일자리를 찾아 자치구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동투르키스탄’을 선포한 1944년에는 이 지역 위구르인의 비율이 75%에 달했다.

위구르자치구로 들어오는 한족의 집단 이주 움직임은 위구르족에게 위협적이다.1949년 중국 인민해방군의 진주 이후 군인과 그 가족들이 대량으로 이주했고 지난 1990년까지 위구르 지역 사막화를 막기 위한 타림강 댐 건설 공사를 벌이면서 또 한번 한족들이 대량 이주했다. 현재 위구르자치구에서 한족은 전체의 40%에 달하는 780만명에 달한다. 위구르족과 한족 외에도 △카자흐족(138만명·전체의 7%) △타지크족 △몽골족 △만주족이 살고 있고 러시아에서 넘어온 러시아인까지 무려 34개 민족이 모여 살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자치구 내에 자치주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 지린성 조선족 ‘자치주’의 개념과 비슷하다. 이들 민족은 대개 생김새로 구분이 가능하지만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신분증에도 ‘한족’ ‘위구르족’ 식으로 종족 표시가 돼 있다.


권력구조
행정 수반엔 위구르족 앉혀놓고
실질 권력자는 한족 공산당 서기

누얼 바이커리 신장 위구르자치구 주석(왼쪽)과 왕러취안 당 서기. photo 바이두

자치권이 주어지는 ‘자치구’답게 현재 이 지역을 행정적으로 다스리는 사람은 위구르족 누얼 바이커리(努爾 白克力·48) 자치구 주석이다. 짙은 갈색 피부에 뚜렷한 눈매와 오뚝한 코를 가진 그는 전형적인 중앙아시아계 위구르족의 생김새를 갖고 있다. 1961년 8월 신장에서 태어난 그는 21세 되던 해인 1982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다. 소수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중앙당교에서 정치이론을 전공해 대학원 학위까지 취득한 정치 엘리트이기도 하다. 특히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정치적 기반이기도 한 공청단(공산주의 청년단) 출신으로 정치적 실세인 ‘단파(團派·공청단파의 약자)’로 분류된다. 때문에 위구르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줄곧 신장지역에서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위구르자치구의 수도인 우루무치의 부시장과 시장을 차례로 역임했고 자치구 전체의 부주석을 거쳐 주석직에 올랐다.

위구르족이 행정권을 갖고 있다 해도 최고 권력은 위구르족이 아닌 한족이 장악하고 있다. 최고 권력자는 자치구 공산당 서기 왕러취안(王樂泉·65)으로 산둥성에서 태어난 한족 정치인이다.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인 중국은 통상 행정구역의 장보다 공산당 서기가 서열상 우위에 있다. 1944년생인 왕러취한 당 서기는 지난 1991년부터 신장에서 일하기 시작해 지난 2002년에는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은 후진타오 총서기 겸 국가주석을 필두로 중국을 이끌어 가는 핵심 정치집단이다. 현재 공산당 서열 11위에 올라있다. 때문에 이번 유혈사태 수습을 지휘하는 그의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대개 소수민족 자치구에서 훈련한 인재를 향후 중앙정치무대에서 중용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과거 후진타오 주석도 시짱 티베트자치구 공산당 서기로 재직 시 계엄령을 발동해 현지 폭동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것을 계기로 당시 최고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의 눈에 띄어 국가주석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종교
수니파 이슬람교도… 알 카에다 연계 의혹
중국 정부 “불교도보다 과격” 테러 경계령

유혈사태와 관련해 중국 정부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한족을 제외한 이 지역 주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는 점이다. 위구르족을 포함해 카자흐족, 회족 등 자치구 10개 종족이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수니파 이슬람교도들은 2001년 미국 9·11 테러 사건의 주범인 수니파 근본주의 집단 알 카에다와의 연계성 때문에 주목받을 수밖에 없고 중국 정부도 이 때문에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작년 8월 베이징올림픽 때도 중국 정부는 테러 가능성 때문에 신장 지역 주민들의 동태를 예의주시했었다. 신장 지역의 독립을 주장하는 과격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알 카에다와 연합해 테러를 자행할 염려를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베이징올림픽 개막 직후 이 지역에서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한 폭탄 테러가 잇달아 벌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이 지역은 러시아나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어 무기 반입도 비교적 자유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의 종교 성향은 라마교를 믿는 시짱 티베트자치구나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주민들과도 대비된다. 티베트와 몽골 역시 과거 지속적으로 중국 변경을 침범하며 한족을 괴롭혔지만 불교의 일종인 라마교를 국교로 도입한 이후부터 ‘온순한 양’이 됐다. 몽골족의 경우 원나라 이후 한 번도 중국 변경을 침범한 역사가 없다. 불교는 중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어  문화적 거부감도 덜하다. 때문에 중국 정부는 불교의 일종인 라마교를 믿는 티베트보다 이슬람교를 믿는 신장 위구르를 훨씬 더 까다롭게 생각하고 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이슬람교는 한번도 자신의 종교를 바꾼 적이 없다”며 “불교의 일종인 라마교를 믿는 티베트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온순한 반면 이슬람을 믿는 신장 주민들은 과격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1 위구르족이 자주 가는 재래시장에서 상인들이 양고기를 잘라서 팔고 있다. 2 우루무치시에서 위구르족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길거리에 앉아 있다. 3 신장 위구르자치구 수도인 우루무치의 시장. photo 조선일보 DB

그들은 왜 분노하나
상권 등 경제권 한족이 장악해 불만 누적
천연자원도 상하이로 계속 유출

이번 소요사태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이 지역의 경제적 취약성 때문이란 데는 이견이 없다. 이 지역의 경제권은 다수인 위구르족이 아닌 소수인 한족이 장악하고 있다. 이 지역은 사막이라 기본적으로 생필품이 부족하고 교통과 물류도 불편해 물가도 상당히 비싼 편으로 알려졌다. 과거부터 한족은 이 같은 점에 주목해 보따리 무역, 국경 중개무역 등으로 부를 쌓아왔다. 특히 1949년 이후 이 지역으로 몰려든 한족은 특유의 장사 수완을 발휘해 가며 상권을 장악하다시피 했다. 최근 실크로드를 자원으로 삼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관광산업의 열매도 한족이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소요사태 때 한족들이 운영하는 상점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서도 한족 상인들에 대한 위구르인의 반감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이번에 이례적으로 외국 언론의 취재를 허용한 것도 한족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 풍부한 천연가스와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자원과 광물자원도 한족이 주로 거주하는 동부 연해 지역으로 계속 유출되고 있다. 현재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서부대개발계획의 일부분인 서기동수(西氣東輸·서쪽의 천연가스를 동쪽으로 수송함)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다. 중국 정부는 10차 5개년 계획(2001~2005년)의 일환으로 서기동수 프로젝트를 추진해 신장에서 상하이까지 이르는 총 길이 4000㎞의 가스 파이프라인을 지난 2004년 개통시켰다.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무려 10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중국 천연가스 매장량의 34%에 해당한다. 또 신장 위구르자치구에는 △타림유전 △준가르유전 △투하유전 등 3대 유전이 있고 우루무치, 쿠차, 타림 등에는 정유공장도 널리 분포해 있다.

핵 후유증? 외세 개입?
32년간 46차례 핵실험으로 감정 악화
중국 정부는 美 망명 지도자 카디르 의심

최근 일각에서 거론되는 ‘핵실험’ 문제도 이 지역 감정을 악화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간 신장 동부인 뤄부보 사막에서 40여차례가 넘는 핵폭탄 실험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핵실험의 후유증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 삿포로 의과대학의 다카다 준(高田純) 교수는 ‘중국 공산당이 방치하는 실크로드 핵 위험의 공포’라는 논문을 통해 “지난 1996년까지 32년간 중국 정부가 신장 위구르자치구에서 실시한 46차례의 핵실험으로 인해 19만명이 급사하고 129만명이 방사능에 노출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논문은 일본의 보수 우익지 산케이신문에 게재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이 교수는 “상당량의 핵실험 분진이 강물에 섞여 들어갔을 것”이란 주장을 내놓아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이 방사능 분진은 우리나라에도 서해를 건너 황사의 형태로 날아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중국 정부는 이 지역의 소요사태가 외세의 개입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사실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 지역은 늘 외세의 개입이 있어왔다.

과거에도 구소련이 이 지역을 넘어서 아프가니스탄까지 진출하려고 했고 일본도 군국주의 시절 중국의 분열을 노리면서 신장 지역을 포함한 만주와 몽골의 독립을 주창한 바 있다. 동투르키스탄 독립운동도 소련과 영국의 지지를 받았다. 이 지역 주민들 역시 민족적·역사적 배경이 유사한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들이 러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를 세우자 이를 모델로 독립운동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재 중국 정부가 의심을 두는 것은 미국이다. 이 지역의 독립운동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위구르 독립운동의 대모(代母) 레비야 카디르(62)가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도 “이번 시위의 배후에는 레비야 카디르가 있다”고 그에게 화살을 돌렸다. 물론 레비야 카디르는 이번 사태에 자신이 개입돼 있다는 중국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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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akyoung Jung 정택영
글쓴이 : 정택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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