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사 지리지 동녕로
新校本元史/志/卷五十九 志第十一 地理二/遼陽等處行中書省/東寧路 - 1398 -
신당서 동이전 고구려의 기사가 인용됩니다.
東寧路,本高句驪平壤城,亦曰長安城.漢滅朝鮮,置樂浪、玄菟郡,此樂浪地也.
晉義熙後,其王高璉始居平瓖城.
唐征高麗,拔平壤,其國東徙,在鴨綠水之東南千餘里,非平壤之舊.至王建,以平壤為西京.
元至元六年,李延齡、崔坦、玄元烈等以府州縣鎮六十城來歸.
八年,改西京為東寧府.十三年,升東寧路總管府,設錄事司,割靜州、義州、麟州、威遠鎮隸婆娑府.
本路領司一,餘城堙廢,不設司存,今姑存舊名.
錄事司.土山縣.中和縣.鐵化鎮.都護府,自唐之季,地入高麗,置府州縣鎮六十餘城,此為都護府,雖仍唐舊名,
而無都護府之實.
至元六年,李延齡等以其地來歸,後城治廢毀,僅存其名,屬東寧路.
定遠府.郭州.撫州.黃州.
領安岳、三和、龍岡、咸從、江西五縣,
長命一鎮.靈州.慈州.嘉州.順州.殷州.宿州.德州.
領江東、永清、通海、順化四縣,
寧遠、柔遠、安戎三鎮.昌州.鐵州.
領定戎一鎮.泰州.价州.朔州.
宣州.領寧朔、席島二鎮.成州.領樹德一鎮.熙州.孟州.領三登一縣,
椒島、椴島、寧德三鎮.延州.領陽巖一鎮.雲州.
동녕로(東寧路),본래 고구려 평양성이며 또한 장안성이라고 부른다.(本高句驪平壤城亦曰長安城.)
한나라가 조선을 멸하고 낙랑과 현도군을 두었는데 이 지역은 낙랑땅이다.
晉나라 의희(A.D.405=418)후에 그 왕인 고련(고구려 장수왕)이 평양성에 거하였고,
당나라가 고려를 정벌하여 평양을 함락시키자 그 나라는 동쪽으로 옮겨가서 압록수의 동남쪽
천여리에 있게 되었으나 옛 평양은 아니다.
王建에 이르러 平壤을 西京으로 하였다.
원나라 지원(A.D.1264-1294) 6년에 이연령, 최탄 현원열 등이 부주현진 60성을 가지고 항복해 와서
8년에 서경을 고쳐 동녕부라고 하였다. (고려의 매국노입니다)
13년에 동녕로 총관부로 승격하여 록사사를 설치하고 정주, 의주, 인주, 위원진을 나누어 파사부에 붙였다.
본로영사 하나를 두고 남은 성은 폐지하여 사(司)를 설치하지 않고 지금 옛이름이 있게 하였다.
번조선 고구려의 영역이던 산서성을 발해가 이어받고 고려가 후에 차지 합니다.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다시 차지한 산서성 패수변 평양 그리고 후 고려의 평양은 하남성에
위치했다는 근거가 됩니다.
원사지리지의 동녕로편에는 고구려의 평양과 고려의 평양이 다름을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평양은 산서성 요 일대이고 고려의 평양은 동남으로 천여리라 기술하는데 바로 하남지역의
개봉으로 비정합니다.
개봉에는 현재에도 <高麗街>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를 북송이 고려와의 유대관계를 위하여 북송의 거리에
고려가라는 기념될 거리를 만들었다는 억지도 부립니다. 즉 고려의 서경은 학자에 따라 다르게 비정하나
낙양 혹은 그 동쪽지역으로 되어야 하며 동경은 산동 靑州 혹은 멸한 古 신라의 수도 안휘성 合肥(巢)로
추정 합니다.
현대국사의 인식기반 위에서는 현 평안남도 평양이 고구려 평양이라면 고려 평양은 경주 정도나 바다에
있어야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이 벌어질것 입니다.
실제 <고려사> ,<金史> 혹은 <고려도경>의 고려의 봉경의 내용 기술에 합당하리라 여겨집니다.
거란과 발해 고려의 대치지역은 만주가 될수 없다는 다음 토픽을 올리겟습니다.
운영자 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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