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History/01 동이문명관련·동북공정

[스크랩] 게르만족을 패퇴시킨 훈족은 한국인 - 독일 ZDF TV

monocrop 2007. 10. 5. 02:42

유럽을 진동시킨 훈족의 실체에 대해 서양의 역사가들은 많이 알고있지 않다. 그들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그런데 독일 ZDF 방송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스핑크스, 역사의 비밀」"잃어버린 고리 찾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다. 훈족의 서방 이동 경로에서 발견된 유물과 한국의 가야와 신라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을 비교 검토하여 훈족의 원류가 한국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아틸라의 최대 판도 (434-453)

 

참고로 동부유럽 트라키아 지역에서 제작된 황금보검과 같은 것이 경주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14호분에서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트라키아 지역은 세계 3대 제국을 건설하여 유업을 공포에 몰아넣은 훈족의 아틸라의 근거지이다. 우연 치고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실은 훈족과 한민족이 친연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뜻하는게 아닐까?

 

독일의 베렌트와 슈미트 박사는 한민족과 훈족이 연계되는 근거로 다음과 같은 유물을 제시하였다.

 

· 훈족의 이동 경로에서 발견되는 동복(청동 솥)이 가야 지방에 출토되었다

 

· 훈족은 동복을 말 등에 싣고 다녔는데 신라에서 말에 동복을 싣고 있는 기마인물상이 발견되었다

 

· 동복의 문양을 한국의 머리 장식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어느 특정 지역에 주로 출토되던 물건이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다고 해서 두 지역이 동일한 문화권에 있었다고 말하는 건 속단이다. 하지만 이 유물들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다. 이는 그 유물들을 만든 이들이 어느 정도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동복은 유목 부족장들에게 바쳐진 것으로 정화 의식을 행할 때 고기를 삶는데 쓰던 대형 화분 형태의 동제 용기로, 유목민들의 상징적인 유물로 간주된다. 동복이 한반도 동남부 김해, 경주 지역에 발굴되었다는 것은 이 지역에 북방계 유목문화가 상당히 흡수되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특히 브론즈 냄비는 가야시대 고분인 경남 김해의 대성동과 양동리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브론즈 냄비는 가야국 등의 원류가 북방의 기마민족이라는 증거로 자주 거론되어 왔다.

 

참고로 훈족은 동복을 말 엉덩이에 매달고 다녔는데, 경상북도 경주시 노동동 금령총에서 1924년에 출토된 기마인물형토기 같은 신라 시대 점토상을 보면 기마상 주인공이 동복을 말 엉덩이에 싣고 있다. 그런데 베렌트와 슈미트 박사는 이들 솥이 말이 탄 사람의 등에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기마상 주인공의 복장과 삼각모가 전형적인 유목민의 복장이고, 안장과 등자도 훈족이 사용하던 유물과 같다고 주장하였다.

 

                             

 

북방 유목민들은 우주개념을 이해하는데 순록과 우주수목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신라 금관의 장식이 바로 이 순록과 우주수목을 형상화하였다. 이는 신라가 북방지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시사해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베렌트와 슈미트 박사는 한민족과 훈족이 연관되는 특성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1. 훈족의 후예들에게는 몽골리안 반점이 있다

프랑스 등 서유럽에 살고 있는 훈족의 후예들에게서 몽골반점이 발견되고 있다. 몽골반점이 한민족에게만 나타나는 특징은 아니지만 훈족 후예들이 몽골반점을 갖고 태어난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한민족과 훈족은 친척의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다.

 

2. 훈족은 복합궁을 사용하였다

이 특이한 활은 만드는 데만 5년, 제대로 쏘기 위해 활을 익히는 데만 10년이 걸리지만, 1분 안에 15발 이상 쏠 수 있다고 알려진 활이다. 이탈리아 북부 지역인 아퀼레이아에 자리한 크리프다 아프레시 교회의 프레스코화가 훈족이 이 특이한 활을 사용했음을 말해준다. 이 그림에는 말을 탄 훈족이 추격해오는 로마 기병을 향해 활을 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나오는, 말을 탄 채 활로 동물을 사냥하는 고구려 무사들과 똑같다. 고분벽화에 나오는 화살촉은 도끼날 화살촉인데, 이 화살촉은 날아가면서 회전하기 때문에 목표물에 꽂히는 순간의 충격이 매우 크다. 훈족도 바로 이 도끼날 화살촉을 사용했다.

 

 

3. 훈족은 편두를 갖고 있다

편두라는 것은, 갓 태어난 어린아이를 반듯이 눕혀 놓은 상태에서 이마를 돌 같은 것으로 눌러 이마와 뒷머리를 평평하게 하는 대신 정수리를 봉긋 솟아오르게 만든 머리 형태이다. 일종의 성형수술이라고 볼 수 있다. 학자들은 몽골지역부터 독일 튀링겐과 오덴발트, 프랑스 칼바도스 지방에 이르는 훈족의 이동경로에서 발견된 분묘에서 나온 훈족의 뼈를 보면 이마와 뒷머리는 눌려있고 정수리는 툭 튀어 올라와 있다. 그런데 가야국이 있었던 경남 김해에서도 편두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법흥왕 등 신라의 왕들도 편두였다고 한다. 최치원은 신라의 국사 지증대사의 공덕비에 법흥왕이 편두라고 기록했다.

 


고대 인도에서 행해졌던 관습, 혹은 코카서스 북부지역에 사는 유목민들의 풍습으로도 알려진 편두는 한민족과 연관성이 크다.‘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서도 ‘진한 사람은 모두 편두’라는 기록이 있다. 또 고조선에는 일찍부터 편두를 만드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편두는 중국과는 구별되는, 꽤 오랫동안 한민족 사이에서 내려온 풍습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 한 가지는, 훈족에게는 편두 풍습이 있었지만 흉노에게는 그 풍습을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훈족은 편두 습속을 가지고 있는 특수 민족으로, 한반도 남부의 가야와 신라 지역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 가지 특성은 훈족과 가야, 신라의 친연 관계를 설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훈족이 한민족과 연관된다는 증거가 여럿 있다.

 

북방 유목민족의 전형적인 습속인 순장(殉葬) 또한 가야 지역의 고분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특히 금관가야 유적인 대성동 고분군 1호분에선 우마(牛馬)의 머리를 베어 곽 위에 얹어놓은 목곽(木槨)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훈족을 포함한 북방 유목민족의 동물 희생 행위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훈족이 나무에 빨간 헝겊을 달아 악귀가 접근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원했다는 기록과 곰을 평화의 토템으로 숭배했다는 점은 우리 민족이 마을 어구에 장승이나 솟대를 세워 염원을 빌고 곰을 토템으로 삼은 점과 매우 유사하다. 대다수 유목민족들은 곰이 아닌 다른 동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다. 토템 대상으로 가장 일반적인 순록과 수달 등은 지금까지도 몽골 지역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훈족의 영웅 아틸라의 장례의 절차는 우리의 장례 절차와 비슷하다.

아틸라가 죽자 훈족은 그가 사망한 지 3일, 7일, 49일째 되는 날 고인의 말을 도살하여 일가친척과 지인들이 함께 나눠먹고, 문상객들을 잘 대접하며 남은 음식은 말의 재갈이나 안자, 무기와 함께 장작더미 위에 놓고 태웠다. 이 때 남은 재와 문상객을 대접할 때 사용한 청동솥(동복)을 깨뜨려 부장품으로 무덤 속에 묻었다.

 

그런데 우리의 장례절차는 사망한지 3일째 되는 날(3일장) 시신을 무덤에 매장한다. 사망한 후 5일되는 날에는 삼오제를 치르며 사망한 후 49일째 되는 날에는 49제를 치른다. 그리고 3년상이라 하여 3주년 되는 기일에 탈상한다. 죽은 사람을 장례치르는 의식은 오랜기간 변하지 않는 민족 고유의 전통이다.그런데 훈족의 장례의식과 우리의 장례의식이 거의 같다는 것은 무얼 말할까? 이는 훈족과 우리민족이 연관성이 있다고 해석되어도 좋지 않을까?

 


 

유럽을 호령하고 중세시대의 서막을 연 훈족...

훈족의 실체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게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훈족은 아시아에서 건너온 민족이며, 더욱이 우리민족과 연관된 풍습이 많다는 것이다.

 

훈족의 이동경로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 및 사료들을 한민족의 그것과 연결시켜볼 때 훈족의 지배집단을 한민족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 이는 한민족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한민족이 세계 문명사에 기여한 점은 거의 없고, 중국 등으로부터 수혜만 받아왔다는 ‘스몰 콤플렉스(Small Complex)’를 가지고 있다. 훈족과 아틸라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는 이러한 콤플렉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훈족이 유럽에 끼친 영향은 대단히 크다. 그런데 그런 훈족이 우리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것은 세계 역사를 다시 써야할 정도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훈족의 지도자이자 세계 3대제국을 건설하고 유럽의 중세시대 서막을 연 아틸라는 우리가 광개토태왕과 더불어 기억해야 할 인물이 아닐까?

 

참고 :   이종호, 『로마제국의 정복자 아틸라는 한민족』

                    『한국 7대 불가사의』

                    『과학으로 여는 세계 불가사의 2』

         

         한스 크리스티안 후프, 『역사의 비밀』

         패트릭 하워스, 『훈족의 왕 아틸라』

         웨스 로버츠, 『아틸라의 리더쉽』

         차용구, 『로마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
         김종래, 『유목민 이야기 - 바람에 새겨진 역사』

 

출처 : 아이저아라
글쓴이 : 아이저아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