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으로 찾은 위만의 왕험성과 고구려 요동성
한나라 고조의 유신인 연왕 노관의 장수로서 조선으로 도망하여 왕이 된 위만은 왕험성에 살았습니다. 위만의 왕험성은 요동군 험독성이라고 했는데, 창려의 동남이라 하였습니다. 창려는 본래 부신시 남쪽인데 전연황제 모용황이 342년에 서쪽인 조양시로 옮겼고 전연국 수도로 삼았습니다.
이 위만의 왕험성이 바로 금주시 지도에 있는데 왕만구(王滿溝)라는 곳으로서 고대 목엽산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험독성과 요동성 지도
험독성은 동서 길이가 1.5km입니다.
험독성 사진
목엽산(木葉山)은 단군 시대 수도에 붙이는 산 이름이었던 것이 <삼국유사>에 있습니다. <삼국유사>에서는 무엽산(無葉山)이라고 했는데 무궁화를 심은 산이라고 생각됩니다.
요동군 험독성은 모용황 시대에 황수(湟水) 위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황수는 현재 소릉하입니다. 소릉하의 한 가지가 홍루산에서 발원하는 여라하(汝羅河)인데, 그곳에는 전연국 시조 모용외의 수도인 대극성이 있었고, 그래서 황수라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위만은 한나라에서 망명하여 들어와 여기 요동군 험독현에서 처음으로 조선왕을 한 것입니다. 그 손자 우거가 한무제에게 망한 왕험성은 지역이 달라서 낙랑군 조선현인데 법고시(法庫市) 아래에 있습니다.
험독성 동북쪽에 수나라 양제가 설치한 요동군 성터와 고구려 무려라 성터가 보입니다.
고구려 무려라성과 수나라요동군성
살수대첩 때에 고구려가 빼앗긴 요수 서쪽 무려라(武厲邏)입니다. 양제의 연호를 따서 대업(大業) 향이라고 합니다. 676년 신라에 패퇴한 당나라 안동도호부가 쫓겨들어온 요동군고성 안동도호부 터이기도 합니다. 고구려 산성과 다르게 평지성입니다. 대업향은 성의 서문에 생겨난 마을이고 대업향 남쪽으로 성의 서벽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 바로 북쪽에 요나라 해북주(海北州) 개의현지(開義縣地)가 칠리하(七里河) 남안에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해북이라 하면 이곳으로서 발해 대인수왕이 차지한 땅이었습니다. 성의 동서 길이가 3km입니다. 해북주성의 서벽과 남벽이 보입니다. (지도 참조)
발해 해북주성
여기서 대릉하 건너 동북방에 발해 요주(遼州)의 두번째 현인 안정현(安定縣)이 있었는데 요나라 사람 안정양씨(安定梁氏)의 선영이라는 묘비가 나왔기 때문에 확정됩니다.
그러면 수나라가 설치한 통정진은 강의 서쪽 건너편이 되고 대릉하가 바로 당나라가 고구려 침략을 시작한 국경입니다. (지도 참조)
안정현성은 고구려에게 쫓겨난 낙랑군이 요동군에 들어와 기생하여 살던 곳으로 보입니다. 그 아래 작은 성은 대방신성이라고 하는데 낙랑군 대방현이 임시로 설치되었던 곳입니다.
발해 요주 안정현성
북위시대 만들어진 의현의 만불당 석굴 중 하나에서 “□방지우,옥려지서(□方之右,沃黎之西)”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방은 즉 대방이니 앞에 말한 대방성입니다. 고구려 수성왕에게 낙랑, 대방이 약탈당한 뒤에 강 서쪽을 넘어 의현 만불당 석굴 북쪽으로 옮겨간 것입니다.(지도 참조)
안정현 동남쪽에 보림사가 있는데 당태종이 우물을 뒤집어 버렸다는 발도정(拔倒井)의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지도 참조) 역시, 대릉하 동쪽은 고구려 땅이었다는 뜻입니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새로 세운 요동성주는 훨씬 북쪽인 부신시 청하문에 있습니다. 청하문시에 있는 요동성터는 677년에 요동신성 안동도호부를 두었었던 곳입니다.
마지막 안동도호부 도독은 고구려 보장왕의 손자 고덕무였습니다. 고덕무는 698년 발해가 건국되고서 안동도호부 도독으로 임명되어 요동 신성에 부임했는데, 바로 이 성입니다.
고덕무는 당나라로부터 독립하였고 대동강 평양으로 가서 후고구려(700~820)를 세웠습니다. 순천시의 고구려 벽화 고분에서 요동성 성곽도가 나왔는데, 이 청하문의 요동성과 유사합니다. 메꾸어진 해자를 다시 그려주면 확실해집니다. 성 남벽의 길이가 1.5km입니다.
요동성총 요동성 성곽도/ (고덕무왕릉)
공손탁 양평성, 요동신성 안동도호부
부신시 청하문 요동성은 전한시대 양평이 옮겨온 곳으로 왕망은 창평(昌平)이라고 불렀고, 후한시대 요동속국이 되었던 창려국(昌黎國)이 있던 곳입니다. 또한 요동국왕 공손탁의 도성인 것입니다. 238년 위나라에 포위당하여 3개월 동안 함락당하지 않고, 성의 기아로 인하여 손자인 공손연이 도망 나가다가 잡혀서 멸망했습니다.
청하문 요동성은 당나라 요동성주를 거쳐 발해 동평부 이주 관할이었고, 요나라 때는 이 양평성에 탕주를 두었다가 요동반도로 옮기고, 대신 성주 동창현(同昌縣)을 둡니다. 현재, 청하문시를 흐르는 강이름이 탕두하인데 탕주하(湯州河)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삼한비기(三韓秘記)에 당나라 요동성은 창료(昌遼)였다고 했습니다.
아! 고구려 요동성
612년 살수 대첩 때에도 함락당하지 않고, 수나라 백만대군을 물리친 고구려 요동성, 그러나 당태종에게 함락당한 마수산의 요동성은 청하문시에서 서남으로 동량하를 건너 있는 석주구(石柱溝) 성입니다. 한변이 3km에 달합니다. 서남쪽 마가구(馬家溝)는 당태종이 머물렀던 마수산(馬首山)이었고, 강물로 이루어진 남쪽 참호가 무척이나 넓은데, 당태종이 직접 흙을 날라다가 참호를 메운 흔적이 아직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성의 서남루 다락터가 보이고 내성 위에는 고주몽 사당터도 보입니다. 고구려 이름은 오열홀(烏列忽)이었습니다. 강물이 갈라진 곳에 있어서 오열홀일지 함락당하고 오열(嗚咽)해서 오열홀일지...그러나, 당태종에게는 함락당했지만, 고구려 망국 때에는 항복하지 않은 성으로 그 이름이 고구려 청사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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