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NEWS/구리·고조선·부여·고구려

[스크랩] 황하문명의 주역은 단군조선이다.

monocrop 2007. 2. 3. 02:12

황하문명의 주역은 고조선이다.

 

황하 문명은 중국 민족이 이룩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최근들어 황하지방은 우리 한민족의 주요 활동 무대였음을 제기하는 학설이 급격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황하문명의 대표적인 것으로 '한자'를 꼽습니다. 그리고 한자가 갑골문자에서 유래하였다는 사실은 누구나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갑골문자로서의 가장오래된 것이 황하 지방이 아닌 발해만에서 발견되었지요.황하지방은 물론 발해만 지방은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우리 민족이 지배했던 곳이지요.

 

한자는 원래 중국 민족이 갑골문자에서 스스로 발전시켜 온 것이 아니라, 고조선의 갑골문자에서 영향을 받아 이와 유사한 문자를 쓰던 중 한자를 이끌어냈다는 것입니다. 위와같은 최근의 학설을 따른다면 한자는 중국민족의 독창적인 문자가 아니라 우리 한민족의 문자가 한자의 생성기원이 된다는 것이지요.이것은 최근 발해만 지방에서 발견된 갑골문자를 중국 당국 및 학계에서 발표를 꺼리고 있다는 사실을 봐도 알 수가 있죠.

 

흔히 갑골문자는 은나라가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헌데 은나라및 그이전의 나라는 중국민족이 아닌 동이족이 세웠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하지만 현재 역사의 왜곡으로 정립되지는 못했지만 동이족이 고조선인이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의 동부 해안지방인 산동성 가성현에 '무씨사석실'이 있는데, 그곳의 화상석 그림에는 동이족의 신화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내용이 단군 신화와 거의 일치 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황하강 유역의 유적들이 중국의 다른 유적들과는 성질이 다르고 오히려 한반도 및 만주지방의 유적과 같은 성질의 것이라는 것입니다.그런데도 이렇게 역사가 왜곡된 것은 중국이 고구려 및 그이전의 역사를 말살하고 우리 민족의 활동사를 마치 자신들의 역사처럼 꾸몄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삼국통일 이후 철저하게 사대사상에 젖은 사람들이 중국의 역사가들이 지은 역사서를 동양 역사서의 최고로 여기고 우리의 역사마저 그들의 기록에만 의존하였다는 사실이 원망스럽지요. 그들은 우리의 찬란한 역사는 말살하고 오히려 중국의 문명만을 숭배하는 우를 범했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중국 요나라의 우문명이 대치수 사업으로 치수법을 완성시켰다고 그를 추켜 세웁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규원사화"에서 이르길 "단군조선이 개국한지 30년만에 대홍수가 일어났다."라고 되어있는바, 단군조선 30년은 BC 2303년으로 요나라 70년 BC 2301년 보다 앞서지요. 요의 순제로부터 치수명령을 받은 우문명은 단군조선의 후국인 도산국에 장가를 들어 단군의 아들인 부루에게서 치수를 배웠다고 합니다.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사실들을 인정하지않고 "서경"등에 교묘하게 신화처럼 해서 서술하였습니다.

 

 또한 청동기 시대 이후부터 국가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제시대 이전까지는 한반도에는 구석기,청동기 시대가 없이 단지 중국으로부터 문명을 답습하기만 했다는 식민지 사관이 팽배했지요.하지만 한반도에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 문화가 발굴되면서 그러한 역사관이 뒤집어지자 아직도 겨우 기원전 7세기 정도만 인정하고 그것도 시베리아 계통에서 유입된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더 오래된 문화가 발굴되면서 이러한 학설은 이제 다시 정립되어야 합니다.

 

또한 전남 영암군 장천리 주거지 유적의 청동기 추정연대는 BC 2,600년 경으로 황하문명보다 앞서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따라서 황하문명이 성립된후 영향을 받아 고조선이 성립되었다는 것은 더이상 정설로 받아들여질 수 없고 앞으로 우리는 제대로 된 사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이상으로 우리는 오히려 황하문명을 만든 주역이지 거기에 영향을 받은 민족이 아닙니다.

 

출처 : 사슴농장
글쓴이 : 가우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