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중국사와 한국사가 바른 정사라면 기록에 나타난 상황도 맞아야 한다.
현재의 중국사에서 明시기의 기록은 한국사의 조선 초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다.
명사에서 1449년의 전후의 기록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조선왕조실록과 대비하여 보고자 한다.
명의 영종은 1435년 만 아홉 살이 채 안된 나이에 즉위하였다. 영종은 환관 왕전을 신임하여 그에게 많은 권력을 주게 된다.
영종 이후부터는 명의 중기로서 환관 정치가 성행하여 내부적으로는 항상 정국이 불안 하였고 밖으로는 북방의 몽골족의 침입과 연해로는 왜구의 침입이 창궐하여 항상 어지럽고 재정의 위기 등, 불안한 요인들이 항상 많았다.
이 시기에 북방의 유목민들의 침입에 항상 시달림을 받았기 때문에 기존의 만리장성을 보수 증축하여 방어하였기에 이시기에 구축된 산성이 지금의 만리장성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조선의 기록에도 하필이면 이시기에 장성의 축성이 이루어진다.
평안도에서 시작하여 함길도까지 옛 장성[古長城]이 있다. “【세속에서 전하기를, ‘만리장성(萬里長城)’이라 하는데, 평안도 인산군(麟山郡) 서쪽 진병곶강(鎭兵串江)으로부터 쌓기 시작하여 의주(義州) 남쪽을 지나서 삭주(朔州)·창성(昌城)·운산(雲山)·영변(寧邊)에 연하여 뻗치고, 희천(熙川) 동쪽의 옛 맹주(孟州) 지경에 이르며, 함길도 정평(定平) 지경에 닿았다.】(실록에서)”
성화 연간(1464-1487)에는 오르도스[鄂爾多斯, Ordos]지역의 남쪽에 새로운 방어선의 구축되는데 이 또한 실록의 성종때 많은 축성의 役事가 있는 것은 우연일까.
제국의 소수민족의 통제는 조공형식을 통한 무역이었는데 이것은 공납을 하고 그에 적당한 금액을 받아가는 것이었다.
1449년 오이라트 집단은 명에 사신을 보내 말을 공물로 보냈다. 이때 오이라트의 족장은 에센[也先]이었는데 그는 세력이 강대하여 여러 집단을 거느리게 되었다.
이때 명에 공납한 말의 대금이 삭감을 당하게 되자 상당한 치욕을 느끼고 여러 집단을 동원 하여 네 갈래로 쳐내려 온다. 이때 영종은 왕전에게 기만당하여 다른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출정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영종의 군대는 수십만의 사상자를 내며 대패하게 됨과 동시에 토목보에서 영종은 포로가 된다.
이것이 명사의 “토목보의 변”인 것이다.
이들은 1450년 영종을 석방하게 되고 정상적인 교역관계를 회복하게 되었으며 1455년 야선이 부하에게 살해됨으로서 내분에 휩싸인다. 이후 오이라트가 쇠퇴하게 되고 타타르가 흥하게 되며 17세기에는 중가르왕국이 성립되기도 한다.
이때 오이라트 집단은 누구인가. 이들은 지금의 천산산맥 북쪽의 중가르분지[準噶爾盆地], 더욱 위쪽의 이르띠쉬하[額爾齊斯河] 유역에 거주하던 유목민족이다.
이 오이라트 집단이 지금의 신강위구르자치구의 북쪽인 중가르분지와 그 북쪽 지역에서 문제를 일으킨 집단이라면 황제가 직접 그 먼 지역까지 친정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오이라트와 조선의 관계는 어떤가? 조선이 한반도라면 거리상으로 그들과의 접촉이 가능하기는 할까?
실록으로 들어가 보자
** 세종 29년(1447) 11월 6일 (을미) 야선이 경도에 이를 경우에 대한 대책을 유시하다
도승지 이사철(李思哲)·좌부승지 안완경(安完慶)을 명하여 정부에 가서 의논하기를,
“야선(也先)이 군사를 거느리고 친히 이르거나, 또는 장수를 보내어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강제로 곧장 경도(京都)에 이르고자 하면 변장(邊將)이 권도 말로 대답하고, 만일 들어서 좇으려 하지 않으면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니,...................
드디어 이 뜻으로 평안도·함길도 감사와 도절제사에게 유시하였다.
** 세종 30년(1448) 2월 26일 (임오) 야선의 동향 보고와 군역으로 백성을 피로하게 하지 말 것을 유시하다
의정부 좌의정 하연(河演) 등을 불러 비변책(備邊策)을 의논하고 함길도 도절제사(都節制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야선(也先)의 병마(兵馬)가 지난 겨울에 해서(海西)에 이르렀은즉, 본도(本道)는 경계가 저들의 땅과 연접되었으므로 성식(聲息)을 듣는 데에 어렵지 아니하기 때문에, 전에 이미 유서(諭書)를 내려 이를 물었는데, 어찌하여 지금까지 아뢰지 않는가. 다시 친신(親信)하는 야인(野人)에게 자세히 성식(聲息)을 들어 아뢰라. 대개 성식을 알지 못하고 미리 군졸을 모으는 것은 진실로 옳지 못한 것이니, 아직 연대(煙臺)에서 망을 보고 봉화(烽火)·방수(防守) 등의 일을 더욱 더 조심하고 삼갈 것이며, 연변(沿邊)에 사는 백성들의 농사짓는 일은 또한 전과 같이 권과(勸課)하라.”
하고, 또 평안도 도절제사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적변(賊變)이 나타나지 않는데 먼저 우리 백성들을 피로하게 하는 것은 진실로 좋은 계책이 아니니, 병마(兵馬)를 별도로 징발하지 말고 예전대로 척후(斥候)를 멀리 보내고 봉화(烽火)를 삼갈 것이며, 변방 백성들의 농사[耕種]는 또한 때를 잃지 말게 하라.”
하였다. 또 양도(兩道)의 비어 사건(備禦事件)을 유시하기를,
“1. 삼위 달단(三衛韃靼)과 해서 야인(海西野人), 이만주(李滿住) 등 여러 종류의 야인(野人)들이 혹 야선(也先)에게 몰리게 되면, 일이 궁(窮)하고 형편이 군색하므로, 와서 혹 귀순하여 머무르겠다고 사칭(詐稱)하더라도, 그들로 하여금 강을 건너게 하지 말 것이며, 저들이 만일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내고 오랫동안 견디면서 먼저 침범할 마음이 있으면, 기회를 봐서 날쌔게 칠 것이며, 또 만일 식량을 청하면 마땅히 대답하기를, ‘군수(軍需)는 함부로 줄 수 없으며, 또 남은 것도 없으니 청(請)을 들어주기 어렵다.’ 하고, 비록 범찰(凡察)과 동창(童倉)이라 하더라도 역시 강을 건너게 하지 말고, 그 무리의 많고 적은 것과 성심(誠心)의 여부(與否)를 관찰해서 비보(飛報)하여, 상지(上旨)를 받아 시행하라. 이 조항은 절제사(節制使)와 변장(邊將)이 깊이 생각하여 처리해서 삼가고, 시끄럽게 떠들지 말라.
** 세종 30년 4월 25일 (경진) 001 / 함길도 도절제사에게 야선의 동태를 보고하고 방수에 힘쓰라고 유시하다
함길도 도절제사에게 유시하기를,
“지금 사은사(謝恩使)의 통사(通事) 김신(金辛)이 와서 말하기를, ‘야선(也先)의 군사가 삼위 달달(三衛韃韃)을 치고, 또 노온강(老溫江) 기리미(其里未) 등처의 야인을 치매, 야인들이 힘을 합하여 막아 싸움으로 불리하여 물러 돌아갔다 합니다.’ 하였으니, 본도(本道)는 저들의 지경과 연하고 또 친하게 믿는 야인도 있는데, 이러한 성식(聲息)을 어째서 보고 들어서 아뢰지 않는가. 경이 자세히 들어서 계달하고, 방수(防守)하는 일을 잠시라도 해이하게 하지 말아서 불우에 대비하라.”
** 세종 31년 8월 1일 (무신) 요동 변란에 대한 통사 이유덕의 보고로 양계의 방비에 대한 일을 의논케 하다. ........................
** 단종 1년 2월 15일 (임인) 달달 야선의 군사가 조선을 향해 떠났다는 보고를 듣고 대신들의 의논에 따라 방어케 하다
정조사(正朝使) 유익명(兪益明)이 통사(通事)를 먼저 보내어 아뢰기를,
“달달(達達) 야선(也先)이 군사를 3로(三路)로 나누어, 1로는 조선을 향하여 떠났다.”
......................................... “평안도에는 대장(大將)을 보내고, 함길도에는 병조 낭관(兵曹郞官)을 보내어 절제사(節制使)와 관찰사에게 일러서 방어를 엄하게 하도록 함이 마땅합니다.”
...................
실록의 내용과 명사와 시기가 같다는 것과 명사에서 지금의 내용이 “토목보의 변”으로 등장하지만 실록에 버젓이 기록된 이 사실은 한국사에서는 오리무중인 것이다. 한반도로서는 감히 연결할 수가 없는 지리적 강역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실록의 내용으로 보아 오이라트가 있는 지역이 조선의 평안도와 함경도에 걸치는 지역인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곳이 지금의 천산산맥 북쪽 중가얼분지와 그 서북쪽인 자이산호 주위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실록을 통해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대륙 조선사 연구회
글쓴이 : 서우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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