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明仁) 일왕은 68회 생일을 맞은 지난해 12월 23일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몸에도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진솔하게 고백했다. 아키히토의 이같은 발언은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미국에 있는 교수들도 “그것이 사실이냐”며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약 2년 전 내가 ‘일본 천황은 한국인이다’(효형출판 펴냄)라는 책을 썼기 때문이다.
일본 천황들의 몸 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은 일본의 옛날 문헌들에 잘 나타나 있다. ‘역사’라는 것은 있는 ‘사실’(史實) 그대로를 밝히는 데 참뜻이 있다는 점에서 아키히토 일왕이 한국과의 혈연 관계에 대해 진솔하게 말한 것은 당당한 일이라고 본다. 또한 그러기에 6월의 한·일 월드컵 축구경기 때 아키히토 일왕이 한국을 방문한다면 우리 국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 천황이 한국인’임을 밝혀주는 일본 고대의 문헌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서기 815년 편찬)에 그 사실이 나와 있다. ‘신찬성씨록’은 9세기 초 일본 왕실에서 만든 일종의 ‘왕실 족보’로, 이 고대사 책을 보면 제30대 ‘비타쓰(敏達) 천황(572∼585년 재위)이 바로 백제 왕족’이란 기록이 나타난다. 그 왕실 족보를 만들기 시작한 사람은 다름 아닌 간무(桓武) 천황으로, 비타쓰 천황은 간무 천황의 6대조이기도 하다.
여기서 간무 천황의 친어머니인 백제여인 화신립(和新笠)에 대해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화신립이란 여인은 8세기 당시 일본 왕실의 조신이었던 백제 왕족 화을계(和乙繼)의 딸이다. 그 무렵 일본 왕실의 시라카베(白壁) 왕자와 화신립 낭자가 결혼했고, 그 둘 사이에 태어난 장남이 바로 야마베(山部) 왕자이며 그가 바로 훗날의 간무 천황이다. 화신립의 부군인 시라카베 왕자는 나이 61세에 비로소 왕위에 등극한 고닌(光仁)천황(770∼781년 재위)이다.
고닌 천황은 제49대 왕이고 그의 아들인 간무 천황은 제50대 왕이다. 고닌 천황의 황후 화신립의 姓은 고닌 천황에 의해 뒷날 백제식 복성을 사용해 ‘고야신립’(高野新笠·다카노노 니가사)으로 바뀌게 된다. 일본 왕족과 귀족들은 당시 대개 복성을 썼는데 이것은 본국 백제에서 상류 계층이 흔히 복성을 썼기 때문이다. 간무 천황의 아버지 고닌도 백제인이라는 내용이 담긴 고대 문헌이 있다. 서기 1157년께 일본 왕실의 조신이었던 후지와라노 기요스케(藤原淸輔·1104∼77년)가 쓴 책 ‘대초자’에 그런 내용이 들어 있다.
한편 ‘신찬성씨록’은 간무 천황이 쓰기 시작하다 세상을 뜨자 그의 제5왕자인 만다친왕(萬多親王·788∼830년)이 완성한 책이다. 이 왕실 족보를 보면 일본 왕실에 고대 한국인들의 발자취가 뚜렷하다. 특히 백제 왕족인 비타쓰 천황은 나라(奈良) 땅에서 ‘백제대정궁’(百濟大井宮)을 지었다는 내용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또 “비타쓰의 친손자인 제33대 조메이(舒明) 천황도 나라땅의 백제강(百濟川) 옆에 백제궁(百濟宮)을 짓고, 백제대사(百濟大寺)를 세웠으며, 백제궁에서 살다가 서거했을 때 ‘백제대빈’(백제왕실의 3년상)으로 장사를 지냈다”는 기록(‘일본서기’·720)이 나온다. 일본의 저명한 고대 사학자 사에키 아리키요(佐伯有淸)는 “조메이 천황은 ‘백제천황’(百濟天皇)으로 불렸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일본 천황들이 백제인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일본 왕실 문서가 있다. 서기 927년 모두 50권으로 편찬한 ‘연희식’이 바로 그것으로, 그 책엔 일본 천황궁에서만 제사를 지내는 신주(神主)인 제신(祭神) 세분이 등장한다. 한분은 신라신(園神)이고, 두분은 백제신(韓神)이다. 이 제사는 천황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왕궁 안의 신전에서 직접 제사를 지낸다. 무엇 때문에 일본 천황들이 신라신과 백제신 신전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는 것인가. 그들 천황의 조상이 고대 한국인임은 이 왕실 제사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제사 지낼 때 쓰이는 주축문의 제목도 바로 ‘한신’(韓神)이다.
특히 백제인인 간무 천황은 서기 794년에 오늘의 교토(京都)땅으로 천도해 ‘헤이안궁’을 세웠다. 그리곤 궁전의 북쪽 땅에 ‘백제왕 사당’인 ‘평야신사’(平野神社)를 짓고 제사를 올렸다. 이 사당에선 백제 제26대 성왕을 비롯해 구도왕·비류왕·근초고왕 등 네명의 왕과 간무 천황의 어머니인 화신립 황후(히매신)까지 모두 다섯분의 백제 왕족들을 제사지냈다. 그 제삿날은 해마다 4월 2일이며 이를 ‘평야제’(平野祭)라고 부른다는 것도 일본 왕실 법도로 전해 내려온다.
아키히토는 기자회견에서 일본 문화가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옛날부터 깊은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 ‘일본서기’ 등에 상세하게 쓰여 있습니다. 한국으로부터 이주해온 사람들이나 초대받아온 사람들에 의해서 여러가지 문화며 기술이 전수됐습니다.”
아키히토의 이같은 발언은 자못 진지하기까지 하다.
한편 도쿄大의 이노우에 미쓰사다(井上光貞) 교수가 “천황씨 자신이 조선에서 온 이주자였기 때문에 조선에서 건너온 많은 사람들을 조정에 등용한 것”이라고 밝힌 것도 진솔한 연구 결과로 판단된다.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가 아직 완전히 시정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아키히토 일왕의 그같은 언명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한국외국어대 일본문화사 교수·for NWK)
일본 천황들의 몸 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은 일본의 옛날 문헌들에 잘 나타나 있다. ‘역사’라는 것은 있는 ‘사실’(史實) 그대로를 밝히는 데 참뜻이 있다는 점에서 아키히토 일왕이 한국과의 혈연 관계에 대해 진솔하게 말한 것은 당당한 일이라고 본다. 또한 그러기에 6월의 한·일 월드컵 축구경기 때 아키히토 일왕이 한국을 방문한다면 우리 국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 천황이 한국인’임을 밝혀주는 일본 고대의 문헌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서기 815년 편찬)에 그 사실이 나와 있다. ‘신찬성씨록’은 9세기 초 일본 왕실에서 만든 일종의 ‘왕실 족보’로, 이 고대사 책을 보면 제30대 ‘비타쓰(敏達) 천황(572∼585년 재위)이 바로 백제 왕족’이란 기록이 나타난다. 그 왕실 족보를 만들기 시작한 사람은 다름 아닌 간무(桓武) 천황으로, 비타쓰 천황은 간무 천황의 6대조이기도 하다.
여기서 간무 천황의 친어머니인 백제여인 화신립(和新笠)에 대해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화신립이란 여인은 8세기 당시 일본 왕실의 조신이었던 백제 왕족 화을계(和乙繼)의 딸이다. 그 무렵 일본 왕실의 시라카베(白壁) 왕자와 화신립 낭자가 결혼했고, 그 둘 사이에 태어난 장남이 바로 야마베(山部) 왕자이며 그가 바로 훗날의 간무 천황이다. 화신립의 부군인 시라카베 왕자는 나이 61세에 비로소 왕위에 등극한 고닌(光仁)천황(770∼781년 재위)이다.
고닌 천황은 제49대 왕이고 그의 아들인 간무 천황은 제50대 왕이다. 고닌 천황의 황후 화신립의 姓은 고닌 천황에 의해 뒷날 백제식 복성을 사용해 ‘고야신립’(高野新笠·다카노노 니가사)으로 바뀌게 된다. 일본 왕족과 귀족들은 당시 대개 복성을 썼는데 이것은 본국 백제에서 상류 계층이 흔히 복성을 썼기 때문이다. 간무 천황의 아버지 고닌도 백제인이라는 내용이 담긴 고대 문헌이 있다. 서기 1157년께 일본 왕실의 조신이었던 후지와라노 기요스케(藤原淸輔·1104∼77년)가 쓴 책 ‘대초자’에 그런 내용이 들어 있다.
한편 ‘신찬성씨록’은 간무 천황이 쓰기 시작하다 세상을 뜨자 그의 제5왕자인 만다친왕(萬多親王·788∼830년)이 완성한 책이다. 이 왕실 족보를 보면 일본 왕실에 고대 한국인들의 발자취가 뚜렷하다. 특히 백제 왕족인 비타쓰 천황은 나라(奈良) 땅에서 ‘백제대정궁’(百濟大井宮)을 지었다는 내용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또 “비타쓰의 친손자인 제33대 조메이(舒明) 천황도 나라땅의 백제강(百濟川) 옆에 백제궁(百濟宮)을 짓고, 백제대사(百濟大寺)를 세웠으며, 백제궁에서 살다가 서거했을 때 ‘백제대빈’(백제왕실의 3년상)으로 장사를 지냈다”는 기록(‘일본서기’·720)이 나온다. 일본의 저명한 고대 사학자 사에키 아리키요(佐伯有淸)는 “조메이 천황은 ‘백제천황’(百濟天皇)으로 불렸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일본 천황들이 백제인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일본 왕실 문서가 있다. 서기 927년 모두 50권으로 편찬한 ‘연희식’이 바로 그것으로, 그 책엔 일본 천황궁에서만 제사를 지내는 신주(神主)인 제신(祭神) 세분이 등장한다. 한분은 신라신(園神)이고, 두분은 백제신(韓神)이다. 이 제사는 천황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왕궁 안의 신전에서 직접 제사를 지낸다. 무엇 때문에 일본 천황들이 신라신과 백제신 신전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는 것인가. 그들 천황의 조상이 고대 한국인임은 이 왕실 제사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제사 지낼 때 쓰이는 주축문의 제목도 바로 ‘한신’(韓神)이다.
특히 백제인인 간무 천황은 서기 794년에 오늘의 교토(京都)땅으로 천도해 ‘헤이안궁’을 세웠다. 그리곤 궁전의 북쪽 땅에 ‘백제왕 사당’인 ‘평야신사’(平野神社)를 짓고 제사를 올렸다. 이 사당에선 백제 제26대 성왕을 비롯해 구도왕·비류왕·근초고왕 등 네명의 왕과 간무 천황의 어머니인 화신립 황후(히매신)까지 모두 다섯분의 백제 왕족들을 제사지냈다. 그 제삿날은 해마다 4월 2일이며 이를 ‘평야제’(平野祭)라고 부른다는 것도 일본 왕실 법도로 전해 내려온다.
아키히토는 기자회견에서 일본 문화가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옛날부터 깊은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 ‘일본서기’ 등에 상세하게 쓰여 있습니다. 한국으로부터 이주해온 사람들이나 초대받아온 사람들에 의해서 여러가지 문화며 기술이 전수됐습니다.”
아키히토의 이같은 발언은 자못 진지하기까지 하다.
한편 도쿄大의 이노우에 미쓰사다(井上光貞) 교수가 “천황씨 자신이 조선에서 온 이주자였기 때문에 조선에서 건너온 많은 사람들을 조정에 등용한 것”이라고 밝힌 것도 진솔한 연구 결과로 판단된다.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가 아직 완전히 시정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아키히토 일왕의 그같은 언명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한국외국어대 일본문화사 교수·for NWK)
출처 : 韓民族! 옛 제국을 찾아서...
글쓴이 : ŊΕΜΘ樂蓮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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