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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설명
동북공정은 동북변강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임말이다.
우리말로는 동북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과제(공정)이다.
간단히 말해 중국의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이다.
□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실시 원인
실질적인 목적은 중국의 전략지역인 동북지역, 특히 고구려·발해 등 한반도와 관련된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어 한반도가 통일되었을 때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영토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있다.
동북 공정에 대한 중국의 의도
간단히 말해 중국의 동북쪽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동북지방의 학술연구라 주장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목적은
중국의 전략지역인 동북지역,
특히 고구려·발해 등 한반도와 관련된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어 한반도가
통일되었을 때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영토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그목적이 있는 것이다.
동북 공정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
동북공정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나라 고대역사가 중국의 역사로 편입 된다는것을 말하며 그렇게 되면 우리가
지금까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배운 고구려역사가 중국의 역사로 바뀌고 우리나라는 고대역사에서
항상 중국의 변방소국으로 전락하게 되는것이다.
또한 영토역시 한강이남이 중국의 고대영토가 되어 중국이 수복해야할 땅으로 바뀌게되고 이렇게 하다가 남한전체가
중국의 영향하에 놓이게 될지도 모르게 되는 일이다. 따라서 동북공정은 우리가 기필코 막아야할 이유가 되는것이다.
현재 정부의 ' 동북공정'의 경과내용
"중국 동북공정에 대한 우려가 사실은 있다. 그러나 바깥으로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사정도 있다."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8일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이 말은 우선 정부가'동북공정이 중국 정부의 전략에 따라 이루어지는 역사왜곡 프로젝트'라는 인식을 갖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문제의 논문을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볼 수 없다"던 전날 외교부 당국자의 비공식 발표와 상반된다.
결국 지난해 10월 외교부가 국회에 제출한 동북아역사재단 설명자료를 통해 밝힌 내용이 정부의 본심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 자료에서 외교부는 동북공정 연구논문을 주도하고 있는 '변강사지 연구중심'이 중국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 내 대표적 전략연구소로 중국 정부의 외교전략 틀 속에서 기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런 관점이라면 정부는 발해사 등 최근 동북공정 논문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따라 2004년 8월 한중간에 합의한 구두양해사항 위반이라며 중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당시 5개항의 구두양해 사항은 역사문제로 인한 한중 우호협력 관계의 손상 방지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외교부는 고구려사에서 발해사, 기자조선 등으로 넘어온 최근의 동북공정의 왜곡논문에 대해 "중국정부 입장이라는 것도 아니고 아니라는 것도 아니다(6일 이규형차관)", "중국의 공식입장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한중 구두양해 위반이 아니다"(7일 비공식 브리핑)는 식으로 뒷걸음을 치고 있다. 대응 방안 역시 '연구논문 검토 후 외교적 대응여부 검토'(6일)에서 '교과서 기술 등 공식입장이 될 때까지 문제제기 불가'(7일)로 밀렸다.
결국 시선은 정부가 왜 상황 인식과 다른 대응 태도를 보이는지에 쏠린다. 일본교과서 왜곡과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등 역사문제로 정상회담까지 중단한 정부다. 대미 외교 역시 밀리지 않겠다는 자세로 일관했다. 그런데도 유독 중국 동북공정에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저자세를 보이는지 궁금증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 외교의 일관성 및 신뢰성에 중대한 흠집이 될 수 있다.
일단은 정부가 "역사문제는 어떤 사안도 연계 시키지 않고 대응하겠다(6일 외교부 정례브리핑)"는 발표와는 달리 북핵 등 대북문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감안, 중국의 눈치를 살피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하다. 북핵 문제는 당면한 구체적 문제인 만큼 해결단계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역사문제로 중국과 부딪힐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발해사 등에 관한 학술적 대응 능력 부족 때문일 것이라는 지적이 학계 주변에서 제기되고 있다. "외교적 대응을 할 경우 학술 대결이 수반될 텐데 고대사에서 중국과 맞붙을 경우 승산이 크지 않다"는 얘기가 떠돈다. 실제로 외교부에도 "섣부른 대응으로 발해사를 놓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발해사 전공인 한규철 경성대 교수는 "'발해가 말갈사'라는 중국 논문의 내용은 역사적 논란거리"라며 "당분간 학계에 맡겨놓는 게 낫다"고 말했다.
중국 VS 한국 5대쟁점
1) 고구려는 중국 땅에 세워졌다.
고구려가 탄생한 지역은 기원전 3세기 모두 연(燕)의 영역이었고, 진(秦)이 6국을 통일한 뒤에는 진나라에 속했다.
기원전 108년 한(漢)나라가 위만조선(衛滿朝鮮)을 멸망시키고 현도군을 설치했는데 이 때 고구려는 현도군의 한 현이었다.
주몽이 고구려 5부를 통일하고 나라를 세운 곳도 현도군의 영토였다.
고구려의 건국은 이처럼 모두 중국의 영토에서 진행되었으므로 오늘의 한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한국의 반론> 영토 패권주의에 불과하다.
고조선, 부여, 예맥 등 고구려에 선행하는 역사는 명백한 우리 역사이다.
현재 자국 영토 안에 있다는 이유로 그 역사까지 모두 자기네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영토 패권주의에 불과하다.
한사군의 실체와 성격에 대한 중국측 주장은 일방적인 것이다.
실상은 고조선과 한(漢)나라의 변경에 있었던 국경 분쟁이며 현도군은 광역의 식민지 군현으로서 기능했다기보다는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한 창구의 역할을 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고구려는 부여에서 발원했다.
2)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 정권이었다.
주몽의 건국 이래 고구려현은 이미 한(漢)의 현도군에 속했다.
동한(東漢) 180년 동안 고구려는 모두 동한 왕조의 신하였다. 220년부터 426년까지 고구려는 중국 중앙 정권의 신하로 예속되어
고구려후 , 고구려왕 ,정동대장군 등의 관직을 받았다.
남북조 시기에는 북위, 북제 및 남조의 각 정권에 공물을 바쳤다.
이처럼 고구려 왕국은 시종 중국의 한 지방 민족 정권이었다.
<한국의 반론> 명백한 독자 국가였다.
고구려 건국 초기에는 조공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고구려가 강성했을 때 조공이 많았는데 이는 고구려가 조공과 책봉을 외교적 목적에서 활용했다는 의미이다.
조공과 책봉만으로 지방이라 규정한다면 마찬가지로 조공했던 일본 ,신라 , 베트남 등도 모두 중국의 지방 정권이란 말인가.
고구려가 영락 , 영가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것도 중원의 조공국이 아니라 중원 왕조에 대응하는 독자적 국가였음을 말해준다.
3) 고구려 민족은 중국 고대의 한 민족이다.
고구려가 망한뒤 고구려의 후예들 가운데 일부는 중원 , 돌궐 , 발해 등으로 들어가 모두 중국의 각 종족에 융화되었다.
대동강 이남의 일부 고구려인들만 신라로 넘어갔다.
오늘날 한(韓)민족의 선조는 주로 고대 삼한(三韓) 곧 신라인이고 조선 반도로 옮겨간 중국의 각 종족도 상당 수 섞여 있다. 고구려의 후예는 극소수이다.
<한국의 반론> 설득력 없는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고대 중국은 자기네 민족만 중화로 부르고 나머지는 동이 , 서융 , 남만 , 북적 등 오랑캐로 단정했다.
이는 각종 사료에도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와서 고구려가 중국 민족이었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고조선 , 부여 , 예맥을 중국 민족이라고 규정하는 주장은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국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주장이었다.
4) 왕씨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가 아니다.
왕건은 신라 장군이었고 신라를 멸한 다음 후고려를 건립했다. 왕건은 신라 김씨 계통으로 고구려 고씨의 위(位)를 계승한 것이 아니었다.
왕씨 고려는 대동강 이남만 차지했고 수도 개성은 신라의 옛 땅이지 고구려의 땅이 아니었다.
따라서 왕씨 고려는 오늘날 한(韓)민족의 선조가 건국한 것이지만 고씨 고려는 중국 역사로써 오늘날 중국 각 민족의 선조가 세운 것이다.
<한국의 반론> 명백한 고구려 계승 국가였다.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하는 의미에서 국호를 고려라고 지었다.
이것은 고려가 고구려가 이어받았다는 명백한 역사 의식의 산물이었다.
고려는 또한 고구려의 옛 땅인 압록강까지 진격해 갔다. 고려가 고구려를 이어받았다는 것은 송나라 때의 『송사(宋史)』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측의 주장은 자신들의 정사(正史)까지 부인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5) 한반도 북부(북한) 지역도 중국의 역사다.
한반도가 오늘날 한(韓)민족의 거주지가 된 것은 15세기 이후의 일이다.
따라서 5세기에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것을 놓고 조선이라는 국가가 생겼다고 봐서는 안 된다.
15세기 이후의 이씨 조선과 기씨 조선(기원전 11세기), 위씨 조선(기원전 2세기) 등은 모두 조선이라 불렀으나 민족 구성과 국가 귀속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씨 조선은 오늘날 한민족이 세운 조선으로 한국의 역사에 속하고 기씨 조선과 위씨 조선은 한족(漢族)을 선조로 한 옛 조선으로 중국 역사에 속한다.
<한국의 반론> 결코 중국의 역사가 될 수 없다.
한반도와 만주 대륙을 하나의 구획으로 했던 한(韓)민족의 역사 무대가 한반도로 좁혀진 것은 고려 이후의 고려 이후이며 한반도 유사 이래 변함없이 한민족의 터전이었다. 북한 지역이 중국 역사에 귀속된다는 중국측의 주장은 정도를 넘어서는 억지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역사 ? 신라지리적 의미에서 중국의 범위는 만리장성 이남일 뿐이다. 현재의 중국 국경선 자체가 만주족의 정복 왕조인 청(淸)나라가 개척한 것으로 만주족의 역사 또한 한독 중심의 중국사에 편입될 수 없다.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한 국제적인 대응방안
'동북공정'의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하기 위한 역사 왜곡은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 사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의 역사 왜곡 사건은 검인정 교과서 중에 하나인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 왜곡은 중국의 정부 기관이 나서서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훨씬 크다.
더구나 고구려 역사뿐만 아니라 발해사와 고조선사까지 왜곡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2,000년밖에 되지 않으며,
공간적으로 한강 이남으로 국한되게 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먼저 고구려 연구 재단을 중심으로 고구려 역사에 대한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먼저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와 근거를 확실히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 대한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사실을 왜곡한 부분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또한 중국의 역사 왜곡 문제에 대해 장기적으로 대비하기 위하여 중국의 동북 지방(만주)에 대한 역사와 지리 및 민족 문제에 대한 관련 자료 수집,
중장기적 기초 연구, 학문 후속 세대 양성, 민간 전문 기관 육성, 중국의 역사 왜곡 실태 홍보 등의 제반 임무를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여태까지 우리는 만주 지역에 대한 관심이 저조하였으며, 이에 대한 연구는 일천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한편 '동북공정'이 시작된 직접적 계기이자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북한이 UNESCO에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약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단독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다면 고구려의 역사가 마치 중국의 역사인 것처럼 오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역사는 남과 북 어느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이므로 남북공조로서 고구려의 역사를 지켜낸다면 남북공조의 모범적 사례가 될 것이다.
고구려 연구회 http://www.koguryo.org/ - 중국의 망언
참고자료
-Daum 오픈사전
-www.google.com
-위대한 유산 74434 공식 카페
http://cafe.daum.net/great74434
-www.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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