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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朝貢)과 책봉(冊封).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다시 한국의 여론을 들끓게 하는 요즘 새삼 떠올려 보는 단어다. 중국은 이 두 어휘를 근거로 한반도 역사 일부를 떼어가려는 심산이다.
각종 학술 연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공과 책봉은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국제관계를 유지하던 틀이다. 조공은 '국제
교역(交易)'의 성격이 강했고, 책봉은 중국을 중심으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가 승인' 형식이었다. 중국의 주장처럼 국가적 예속으로 보는 것은
구태의연한 패권(覇權)적 사고다.
하지만 베이징(北京)을 찾는 한국의 고위층 인사, 특히 정치인과 고급 관료들은 중국의 패권적
논리가 던지는 덫에 곧잘 걸려든다. "과거 조상들이 조공을 바치던 나라에 와서 중국 고위 관료들로부터 대접을 받으니 뿌듯하다" "상전처럼 모시던
나라 관리들이 한국을 알아주니 기분이 좋더라" 등이다.
장관급 이상의 한국 관료들이 중국식의 융숭한 의전(儀典)을 대접받은 다음에
기자들을 만나 기분 좋게 흘리는 말이다. 더 격이 높은 중국 공산당 총서기나 총리를 만나고 나온 경우라면 과거 자금성(紫禁城)에서 황제를
알현했던 선조의 행적을 떠올리며 목소리를 높이는 한국 정치인도 많다.
이 정도면 애교다. 중국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한국인도 있다.
중국 언론에 중국인이 보기에 아주 흐뭇한 한국 관련 기사가 올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의 모 종친회 회원 수십여 명이 뿌리를 찾아 중국에
왔다"는 기사다.
이들은 자신의 성씨(姓氏)가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설을 믿는 한국인이다. 각 지역의 중국인 종친회에 모여드는
한국인은 의외로 많다. 10년 이상 공을 들여 '뿌리' 찾기에 성공한 종친회 회원 수십여 명이 단체 관광으로 중국에 와 중국 혈육을 상봉하는
장면을 중국 언론은 적잖은 관심을 두고 보도하곤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퇴임 뒤인 2002년 9월 부부 동반으로 중국을 찾아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일화를 남겼다. 산둥(山東)성을 찾은 그는 쯔보(淄博)시를 방문해 "나는 산둥 사람"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수석을 지낸 한 인사는 허베이(河北)성에서 열린 종친회에 참석해 치사를 하고 자신의 뿌리가 역시 중국에 있음을 알렸다. 이런 한국인을 두고 중국
언론들은 "나무의 키가 1000척을 넘어도 잎사귀는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樹高千尺落葉歸根)" 등의 표현을 써가며 흥미를 보탠다.
조공과 책봉을 패권적으로 해석하는 중국인의 의식도 문제지만 스스로 중국을 찾아가 자신의 뿌리가 중국에 있다고 주장하는 한국인의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국인의 족보에 기재된 성씨의 기원은 중국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그대로 믿는다면 한국 고유의
김(金).이(李).박(朴)씨 등을 제외하고는 중국계가 주류다. 한국인의 절반 이상이 중국계라는 가설도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성씨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한자(漢字)를 차용하면서 성을 함께 빌려 온 차성(借姓)의 역사가 존재한다.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도 일부 있을 수
있지만 많지는 않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얘기다. 고려 초에 행정체제가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차성은 구한말 무렵까지 한국의 성씨가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울러 왕조에 의해 성이 내려지는 사성(賜姓)도 흔했다. 소중화(小中華) 의식에 가려 간과하기 쉬운 사실(史實)이다.
동북공정을 만들어 가는 중국도 문제지만 그에 앞서 중국을 과거의 상전처럼 여기고, 자신의
뿌리를 중국에서 찾으려 하는 한국인의 태도도 큰 문제다. 우리 마음속의 '동북공정'을 차분하게 돌아보는 것도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는 또 다른 자세일 듯 싶다.
유광종 베이징 특파원
[중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