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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진시황릉을 발견하자, 수 많은 병마용갱이 발견되었습니다. 물론, 사후세계에도 현세와 같은 권세를 누리기를 기원하는 마음이겠지만, 어째 진시황릉을 요즘도 발굴한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물론, 발굴하다보니, 갖가지 도굴방지시스템을 갖추었다고 하는 풍문이 돌기는 하지만, 어떠한 것인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이 두려워서 발굴을 중지하고 만 것일까요? 더군다나, 중국당국이 예산 부족등을 이유로 발굴을 중지하였는데, 일본에서 발굴비용을 대주겠다고 하여도 발굴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상한 것은 진시황릉의 모든 병마(兵馬)들의 방향이 모두 동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은 모두 동쪽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래글은 정용석著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반도에 없었다"에서 -동신출판사- 인용하였습니다.
진(秦)나라 본기(本記)에도 나와 있듯이 그 유명한 진나라 진시황의 조상은 "소호(少昊)금천씨(金天氏)"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편에 김부식의 평론에 의하면
"신라 사람들은 스스로 "소호금천씨"의 후손이어서 성(姓)을 김씨로 하였다(新羅人自以少昊金天氏之後 故姓金氏)" 라고 기록하였다.
신라노인들이 말하기를 "진(秦)나라가 망하여 그 유민들이 마한의 동쪽에 와서 살았다"고 하니, 신라가 바로 "진한"이고 진한은 진나라가 망하여 흘러온 유민으로 만들어진 나라로 볼 때, 같은 민족이 되는 것이다. 진나라가 진한이고, 진한이 신라라고 본다면, 신라인의 구성원은 진나라의 후손으로 볼 수 있다.
김유신 열전을 보면 김유신의 12대조는 수로왕이다. 신라 사람이 자칭 "소호 금천씨의 후손"이라 하여 "김(金)"으로 성을 삼았고 유신의 비문에도 "황제 헌원(치우천황의 이야기에서 나온 사람)의 후예"요, 소호의 직계라고 하였으니 남가야 시조 수로는 신라와 동일한 성씨이다.
신라, 가야, 진(秦)이라는 나라는 결국 같은 성씨의 조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이고, 신라와 김유신의 선조는 "소호 금천씨"이고, "진나라의 조상도 소호금천씨"라고 하니 같은 성씨의 혈통인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우리가 통일신라의 백성 후예라고 한다면 진시황도 신라의 선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대륙의 서안(이전의 장안) 서쪽에 있는 진시황의 능도 그때 만들어졌다는 아방궁와 함양궁의 규모도 신라의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며, 땅 속에서 나온 병마용갱도, 군사용동마차도 신라의 선조들이 한 것이 분명해진다. 최소한 지금 대륙의 상고대(上古代) 역사적 요충지에서 발견되는 역사적 유물은 삼국의 유물이고, 삼한의 유물이며, 한국의 유물이다.
"진한의 노인들 스스로 말하기를 진나라가 망해서 도망해 온 사람으로 피난 가는 것이 고역이다라고 말했다. 한국(韓國)의 마한땅이 적당할 것 같아서 마한의 동쪽을 나누어 같이 살았으며 말은 진(秦)나라와 비슷하여 그런 이유로 나라 이름을 "진한(秦韓)"이라고 하였다. - 후한서 진한(後漢書 辰韓) - "
"진(秦)나라의 선조는 황제 전욱 고양씨이며, 묘족의 후예다. 진나라와 조(趙)나라는 모두가 모계혈통이나 그 모계이 아버지는 전욱이다. ~ 소호씨는 영씨 성을 가진 족(族)으로 곧 조(趙)나라, 진(秦)나라 조상의 할아버지가 소호(少昊)씨이다. - 사기 진본기(史記 秦本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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