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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라..너희의 정체는 대체..

monocrop 2006. 11. 29. 05:11

 

 

혹시 요런거 보신분 있으세요?

통일신라당시의 유물로 안압지에서 발굴된 검?도?인데...

일단 생긴걸보면 검이라 할수 있는데요...

문제는 시기상 도가 나와야하는데 뜬금없이 검이 나온다는거죠..

게다가 모양역시 너무나 난감한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유물은 그전에 발굴된 적도 없고 이후로도 없었습니다....

비파형동검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형식이 다르고..

최소한 그 전까지 전세계를 통틀어 이러한 양식의 검은 없습니다..

게다가 손잡이 위의 돌기는 대체 무었인지;;;

어쨋든 너무나 황당한 발굴물인지라..

학자들이 연구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누금감옥기법으로 만들어진 팔찌입니다..

이건 이구동성으로 로마양식이고 수입품이거나 수입품을 모방해 만들어졌다고들합니다..

하지만..좀 이상한점이 있습니다...

신라보다 교역이 더욱 활발했던 백제에서는 정작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거죠..

물론 당연히 고구려에서도 안나오구요..

거의라는 건 나오긴 나온다는 의미 아니냐고요

예 물론 나옵니다만..

신라와 사이가 좋은시대에만 출토된다는게 의문이라고나 할까요?

결국은 신라에서 흘러들어간 물건일 가능성이 높다는거죠..

이것도 뭔가 이상하죠?ㅎㅎ



 

 

 

이 녀석은 계림로 미추왕릉지구 에서 발굴된 금장보검인데...

철제칼집과 칼은 삭아서 없어지고 손잡이와 장식만 남았죠..

문제는 무었일까요?

바로 아틸라가 신의 징벌로 불리우며 유럽을 두들겨패고 있을무렵

유럽의 유목민들과 서남아시아일대에서 유행하던 놈이란게 문제입니다..

이 놈역시 발굴된게 이게 다입니다..
그럼 서남아시아에서 온 수입품일수도 있잖아?

라고 물으실수 있겠습니다만..

손잡이부분을 봐주세요..

떡!하니 태극무늬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놈도 시대에 안맞는 검이죠..

초난감이죠...

 

 

사라리 5호분출토 이형(異形)투구

 

이름을 봐도 알듯이 요상하게 생긴 투구;;라는겁니다..저기서는 떨어져 있지만

원래 볼가리게가 붙어 있던겁니다..

그리고 윗부분은 열려있는데 뭔가를 끼우게 되어 있던걸로 추정합니다..

문제는 아시아에 이런양식은 없습니다..

아시아에 없다면 다른곳에는 있다는 소리냐구요?

예 비슷한게 있습니다...그런데 문제가 되는건...

고대 그리스식투구라는겁니다..

이 투구의 윗부분에 복발.. 흔히말하는 투구윗부분에 털숭숭난 그것;;을 꼽으면

그리스식투구랑 똑같습니다...;;

난감하죠?ㅎㅎ

원래 무기란놈은 주위의 영향을 주고받으며 정형화되기때문에 이런놈은 나오기가 힘듭니다..

이것역시 워낙에 난감한 유물이라 학자들의 눈밖에 난놈입니다..

 


하기사 부산 복천동고분발굴시에는 청동기시대유물의 아래층에서

철기시대 유물이 나왔다는 황당한 시츄에이션도 있었죠...

 

 

..마지막으로는 좀 무서운거 추가....신라 ㄷㄷㄷ

 

 

돌을 깨어 원형으로 쌓아 만든 이 우물에서 우선 이상한 점은 그 깊이가 무려 1 0.27m나 된다는 사실이다.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으나 아마도 한반도 고대 우물터 중 에 이처럼 깊은 곳은 없을 것이다.

이 우물은 지름이 1m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입구쪽이 70㎝ 정도인데, 아래로 내려가면서 점점 넓어져 중간부분에서는 1m20㎝ 가량으로 벌어진다. 그러다가 다시 밑으로 내려가면서 좁아져 바닥 부분에서는 지름 1m 안팎이 된다.

따라서 이 우물은 공간이라고 해 봐야 사다리를 설치고 성인 한 사람이 겨우 오 르내릴 수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담당한 이한상 현 동양대 교수의 회상에 의하면 우물이 하도 깊은 데다 언제 무너져 내릴 지 몰라, 조사단원 중 누구도 선뜻 우물로 내려가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더욱 이상한 대목은 출토 유물. 특히 7-8세 가량 되는 어린이 인골이 그렇다.

발굴 당시 우물은 전체가 거의 메워져 있었다. 맨 아래층에서도 그렇고 맨 위층 에서도 통일신라시대 유물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우물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졌 다가 신라 멸망 이전 어느 시점인가 폐기되고 매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물 아래쪽에는 서커먼 뻘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었고 여기에서 인골을 포함 한 각종 유물이 출토된 것이다.

어린이 인골은 지상에서 8m50㎝ 가량 되는 지점에서 확인되었다. 인골 일부분이 아니라 신체 거의 전 부분이 확인됐다. 인골은 뻘층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보존상 태가 완벽에 가까웠다.

인골 상태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어떤 아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이곳 에 매몰, 혹은 그 시신이 폐기되었다는 결론은 부인할 수 없다.

한데 이 인골은 머리를 바닥으로 쳐박고 있었다. 두 다리는 그 위쪽 층위에서 확인되었으니 이 아이는 이 우물에 거꾸로 떨어져 그대로 파묻힌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아이는 어떻게 이곳에 묻히게 되었을까? 가능성은 두 가지 정도. 첫째, 우물 근처에서 놀다가 실족해서 추락사했을 수도 있고, 둘째, 누군가가 모종의 의식을 위해 고의로 집어넣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사망시점이 언제일까? 인골을 감정한 동아대 김재현 교수는 두개골이 함몰되어 있고 일부 신체 부위 뼈가 부러져 있음을 근거로 우물에 추락하 면서 그 충격으로 즉사했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여기서 더 궁금한 것은 추락사했다면 유가족 등이 그 시신을 꺼내어 다른 곳에 다가 장사지내 주는 것이 당연할 터인데 이런 "상식"을 깨뜨리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이 인골과 같은 층위에서 출토된 다른 유물들이 증명한다. 인골 주위에서는 토기 여러 점이 가지런히, 그것도 완형으로 출토되었다. 토기를 집어던 져 버린 결과라면 대부분이 부서져 있어야 하고 뒤죽박죽으로 인골과 섞여 있어야 하지만 출토상황은 전혀 딴판이다.

나아가 토기 뿐만 아니라 황소 갈비뼈와 닭뼈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이 우물에서 더욱 주목할 만한 대목은 아이 뼈가 출토된 바로 아래 뻘층에서는 나무 두레박 몇 점과 토기 10여 점이 가지런히 놓인 채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갖가지 정황으로 보아 아이는 실족사한 것이라기 보다는 모종의 의식에 동 반되어 희생으로 바쳐졌다고 보는 쪽이 더 타당할 것 같다.

"에밀레종"으로 알려진 저 신라 성덕대왕 신종. 신이한 소리를 내게 하기 위해 아이를 구릿물에 넣어 녹였다는 전설처럼, 혹은 해신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그 스 스로 몸을 던진 심청처럼 신(神)을 위한 희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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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다 올려야할지 몰라서 여기올립니다..역사게시판은 우수회우너만 쓸수 있군요;;ㅠㅠ





출처 : 한류열풍 사랑
글쓴이 : 꼬마니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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