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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伽倻의 철갑 제조기술은 扶餘의 전통이다. (Iron armour technology trddition of Gaya came from Buyeo)

monocrop 2015. 3. 13. 00:11
가야는 무엇이며 누구인가? 
일본고대사 연구 역사학자 존코벨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그녀는 미국인답지않게 일본고대사를 정확한 학문적 이해와 직관력으로 고대사를 꿰뚫고 있습니다. 그녀의 논리는 바로 가야가 부여의 일파라는 사실을 이야기 합니다.

 

고구려가 있을때 부여의 일파는 한반도 동부를 거점으로 철갑병장기술을 이어받아 개발하고 나아가 일본을 제일먼저 정복한 부여의 후예로 봅니다. 실제 가야에 대한 연구는 출토유물이 많으나 지역적으로 경남과 일본이 직접연결 되는 고대의 고도로 발전된 철갑기술의 이동루트에 가여가 잇었다고 단언합니다 (운영자 주)
 
5세기 이후의 판갑은 최종 형태가 나오는 동시에  부장품도 고구려 영향으로 기마전술용 찰갑으로 바뀌게 된다.

 

삼각판갑 (철판이 삼각형)

 

 

횡장판갑으로 가는 과도기 형태이다.  사진의 목제 틀은 4세기 유물이다.


 

삼각판정결판갑옷(三角板釘結板甲), 삼각판혁철판갑옷(三角板革板甲)은 복천동 4호분과 연산동 고분군 출토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낙동강을 중심으로 서안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으며, 가장 이른 예가 합천 옥전 68호이며 함양 상백리, 부산 가달, 창녕 교동 3호, 청주 신봉동 출토품 등이다.

장방판갑 | 長方板甲

 

 

김해 두곡리 출토 상하 7단으로 구성되고 철판의 결합이 가죽 끈이다.
장방판갑 | 長方板甲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갑옷은 금관가야(金官伽耶)라 할수 있는 김해, 부산 지역에서 출토되고  주로 일본 고분시대 후기(5세기 후반) 고분에 많이 출토된다.

 

횡장판갑 | 橫長板甲
판갑중에서 가장  발달된 형태이다.

 

옥전 28 고분 출토

철판의 결합 방식이  리벳식(못)으로 바뀐다. (대략 80개의 쇠못) 이러한 판갑을 횡장판갑 | 橫長板甲이라고 부른다 대가야(大伽耶)를 중심으로 합천,고령,충북,전남 지역에서 출토된다. 이 판갑은 일본에서 출토 예가 많다.

 

 

 


고령 지산동 고분 출토 / 가야 군사 복원 모형

위 투구는 첨각부주라 하여 일본에서 특히 많이 나오는 투구이다. 후기에느 판갑을 왜국에서 역수입해서 썼다는 말도 있다.

 

 

백제 지역,  음성 망이산성 출토 횡장판갑

 

일본의 판갑 문화 (기계 번역)

 

 

(사진)野中古墳의 판갑 출토 상태와 같이 출토된 가야계 토기.

 

 

日本列島に鉄器が現れるのは、よく知られるように弥生時代になってからです。それから古墳時代前期にかけて特徴的な鉄製品に「板状鉄斧」あるいは「短冊形鉄斧」と呼ばれる道具があります。朝鮮半島で鉄素材として作られたものを輸入してそのまま樹木の伐採などに使用していたのでしょう。
 일본 열도에 철기가 나타나는 것은, 잘 알려지도록 야요이 시대가 되고 나서입니다.그리고 고분 시대 전기에 걸쳐 특징적인 철제품에 「판 모양철 도끼」혹은 「단책형철 도끼」라고 불리는 도구가 있습니다.한반도에서 철소재로서 만들어진 것을 수입해 그대로 수목의 벌채 등에 사용하고 있었겠지요.


 ところが朝鮮半島では、釜山の福泉洞(ポクチョンドン)古墳群などで明らかになったように、4世紀の中ごろに「鉄てい」という両端が幅広になった長方形の鉄板が出現します。この鉄ていはいろいろな鉄製品を作る素材で、4世紀末には日本にも輸入されています。徳島大学の東潮さんは、日本にもたらされた鉄ていの多くは、朝鮮半島南部で作られたと推定されていま
す。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부산의 복천동 고분군등에서 밝혀진 것처럼, 4 세기의 중순에 「철정」이라고 하는 양단이 대폭이 된 장방형의 철판이 출현합니다.이 철이라고 있어는 여러가지 철제품을 만드는 소재로, 4 세기말에는 일본에도 수입되고 있습니다.토쿠시마 대학의 동조씨는, 일본에 가져와진 철이라고 있어의 상당수는, 한반도 남부에서 만들어졌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5世紀になると古墳の副葬品にも鍛冶の道具が現れ、以降、鉄鍛冶生産が発展することが知られています。ときを前後して、須恵器の生産が開始されます。これらのいわば産業革命の背後には、朝鮮半島からの技術者集団の渡来があったことは間違いないところでしょう。
5 세기가 되면 고분의 부장품에도 단야의 도구가 나타난 이후, 철 단야 생산이 발전하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때를 전후 하고, 스에 토기의 생산이 개시됩니다.이러한 말하자면 산업혁명의 배후에는, 한반도로부터의 기술자 집단의 도래가 있던은 틀림없는 곳이지요.

5世紀後半に築造された史跡野中古墳からは、加羅系の陶質土器、鉄てい、それから高度な鍛冶技術を要する甲冑などが出土しています。これらは、日本における鉄生産と流入経路の実態をうかがう重要な資料となっています。
5 세기 후반에 축조 된 사적 노나카 고분에서는, 가야계의 도질토기, 철이라고 있어, 그리고 고도의 단야기술을 필요로 하는 투구와 갑옷등이 출토하고 있습니다.이것들은, 일본에 있어서의 철생산과 유입 경로의 실태를  아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最近、韓国の池山洞(チサンドン)32号墳から日本製と考えられる鉄製よろい(横矧板鋲留式短甲)が出土して注目されています。5世紀後半には、日本の鉄製品を逆輸入するほどに鍛冶技術が向上したことを知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최근, 한국의 지산동  32호분으로부터 일본제라고 생각할 수 있는 철제 갑옷(횡신판 압정류식단갑)이 출토되 주목받고 있습니다.5 세기 후반에는, 일본의 철제품을 역수입할 정도로 단야 기술이 향상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朝鮮半島の忠清北道の石張里(ソクチャンニ)では、精錬炉、溶解炉、鍛冶炉を備えたいわば製鉄コンビナートのような遺跡が見つかっています。これらの炉は4世紀には稼働していたと推定されています。一方、日本ではどうでしょう。今のところ6世紀後半をさかのぼる製鉄一貫工場の遺跡は見つかっていません。
한반도의 충청북도의 석장리에서는, 정련노, 용해로, 단야노를 갖추어 말하자면 제철 콤비나트(combinat)와 같은 유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이러한 노는 4 세기에는 가동하고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한편, 일본에서는 어떻습니까.현재 6 세기 후반을 거슬러 올라가는 제철 일관 공장의 유적은 발견되고 있지 않습니다.

日本における製鉄の歴史は、弥生時代にまでさかのぼるという説もありますが、現在の具体的な資料からは、古墳時代も終わりに近づいたころにようやく本格化したとなるのですが、確定したとはまだまだいえないのです。
일본에 있어서의 제철의 역사는, 야요이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 설도 있습니다만, 현재의 구체적인 자료에서는, 고분 시대도 마지막에 가까워졌을 무렵에 간신히 본격화했다고 됩니다만, 확정했다고는 아직도 말할 수 없습니다.
 
한국 철 기술의 도입은 인정하면서도 ,횡장판갑의 기원은 니혼데스!를 외치고 있는 일본학계.
 

 

 
단갑 착용 상태의 하니와

당시 일본에서 단갑은 伽和羅(가와라 かわら)라 불렀으며 일본서기,고사기에 명칭이 나온다.
가와라」는  범어(산스크리트어)로 보호한다는 의미이며, 지붕의 기와( かわら)는 가옥을 보호하고, 무장의 伽和羅는 인체를 보호하는 뜻으로 풀이된다.일본서기를 찾아보니..숭신천황 근처에서伽和羅가 나오는데 정확히 인용하면 갑옷을 벗은곳을 뜻한다.
 
 
uho님의 글
출처 : 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 : 心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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