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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해 수로왕릉에 가서 꼭 보고 생각할 과제

monocrop 2011. 9. 29. 16:41

김해 수로왕릉에 가서 꼭 보고 생각할 과제(허황옥의 출자,신어상과 가야족(水神족)그리고 은하사,대성동고분의 파행동기와 신도비 파행동기문양),납릉문 신어와 코끼리문양)

김해 수로왕릉에 가서 꼭 보고 생각할 과제

 

허황옥의 출자,신어상과 가야족(水神족) 은하사,

대성동고분의 파행동기와 신도비 파행동기문양)

납릉문 신어와 코끼리문양

 

 

 

 

 

<1.가랏파(加羅輩)-거북등을 가진 족><2.은하사 삼두거북-가랏파의 형상>

 

 

◐허황옥의 출자,신어상과 가야족(水神족) 은하사◑

 

삼국유사에 나오는 6가야 중 금관가야에 속하는 김해, 그 초대왕이 '김수로'이다. 김해 김씨의 시조이다. 그 왕릉이 김해에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왕비인 허황옥은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공주이다. 과연 인도 여인일까. 또한 그가 가지고 왔다는 '파사탑'이 현재 허황후릉 앞에 보관되어있다.

허황옥이 타고 온 배의 무게 중심을 위해 가져왔다는 돌로 탑을 만들었다는 남해 금산 보리사 앞 삼층석탑의 유래-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기록의 안내판에는 허황옥의 출자국이 '월지국'으로 되어있다. 아유타국과 월지국은 동일 나라일까. 아유타국과 월지국은 역사속에 어딜까에 대한 의문. 그에관한 의문점 해소를 위한 '과연 허황옥은 인도에서 왔을까, 월지국의 비밀' (글돋선생/블로그 포스팅)에 관심 클릭요망

 

<허황옥이 가져왔다는 '월지국'관련 기록이 있는 남해 보리암 삼층석탑2000년 촬영/글돋선생>

◈신어상과 가야족(水神족) 은하사.◈

김수로왕릉 정문 '납릉문'에 그려진 '파사탑과 神魚(쌍어문) '과 '코끼리 문양'등

유난히 '고기 문양'이 많다. 가야족과 신어는 어떤 관계가 있을 까.

허황옥의 오빠 장유화상이 세웠다는 신어산 아래 '은하사'에 가면 신어상과 범종루에 새겨진 '삼용두 거북이' 김수로왕릉에 용두와 물고기꼬리를 가진 '용같은 물고기' 이 모두가

무슨 의미로 다가 올까.  그리고 일본 중부큐슈와 남부규슈 지방의 水神인 '가랏파(加羅輩)'의 모양이 두상이 부리는 조류모양의용두와 거북이 등을 가진 점. '가라 무리'란 뜻의 '가랏파(河童이라고도 불림)'와 가야족의 일본 도래설에 무게를 둔 글-"은하사와 가랏파(글돋 블로그 포스팅)"

 

▲신도비 태양문양과 대성동 고분 파행동기문양의 비밀, 일본 남규슈 水神 신사의 가야신▼

 

경내에 들어서면서 홍살문을 지나 가락루에 들어서 왼편에 서 있는 비들이 높다랗게 서 있다. 신도비이다. 신도비 비수에 새겨진 태양문양에 주목을 한 재야사학자 고 문정창 선생이 계셨다. 그가 저술한 '가야사'에 의하면 태양문양은 고대 수메르의 태양문양과 동일한 문양이란 점이다. 수메르인과 옛 가야족관계의 근친성을 보여주고 있다.

문정창 가야사에 의하면 허황옥은 결코 인도 여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신라 통일의 왕 문무왕의 비문석의 발견으로 '가야 김씨와 신라 김알지 김씨들의 선조는 흉노족(훈족)이라는 점이 사학계에 정설로 정착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1976년경 '가야사"가 발간되었을 적에 이미 문정창 선생이 그런 점을 지적하였지만 기존 사학계에선 일고의 가치도 없는 사료라고 일축한 점들이 부끄러울 지경일 것이다. 새삼 문선생의 사료의 진정성이 새삼스럽다.  1988년 부산 항도일보(부산매일신문) 임나신론(고대로흐르는 수로)을 연재한 소설가 사학자 김인배씨에 의해 신도비 태양문양과 일본 전역에서 발견된 파행동기(태양문양과 같이 소용돌이 문양)가 가야족의 이동 유물이란 점을 지적하였다. 연재하고 있던 중에 마침 김수로왕릉 바로 옆 대성동 고분(경성대학 박물관팀이 발굴 중1988년)에서 한 무덤에서 10개의 파행동기가 쏟아져 고고학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 파행동기가 김인배씨가 지적한 가야무덤에서 쏟아졌다.  임나신론을 쓴 김인배씨와 김문배씨가 1994년 12월경 일본 남규슈 마토노 신사에서 '가림토문자'비에 새겨진 신대문자를 해석하여 1995년 문화일보사에 그 기사 실린 적이 있다. 고조선 유민들의 왜 도래설을 주장하였고, 가야의 신어상과 은하사의 삼두 거북이과, 용두머리를 가진 물고기 문양은 김수로왕릉 신도비각을 비롯해서 은하사 종루에서 여럿 볼 수 있다. 그 형태와 비슷한 일본 규슈 '가랏파(加羅輩/가라족의 무리)'의 전설과 그 모습들이 용두머리를 가진 거북이 모습이 바로 가야족의 한반도 이동과 일본 이동이라 규명하였다.(글돋선생 블로그 포스팅), 마토노 신사 앞 경내 연못에 모신 河童(가랏파)신사,그 신사에 모셔진 水神의 정체가 가야신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도착한 규슈 중부 서해안 항구에 남아있는 노래비의 노랫말을 해석한 글도 책(일본어 시원/글돋선생 저)으로 출간되어졌다.

벌써 20여년 전에 가야사에 수수께기 문제에 접근하여 한.일관계와 그들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점과 의문점에 대한 해답을 얻기를 노력하였고, 지금도 진행중이지만 한가지 말하고 싶은 점은 깜깜한 안개가 걷히고 희미하지만 윤곽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수로왕과 허황후의 영정

 

 

 

 

 

 

 

 

신도비

납릉문-그려진 파사탑과 쌍어문

 

 

 

 

 

 

 

파사탑과 쌍어문과 코끼리 문양

 

 

 

 

 

 

신도비의 태양문양-수메르 문양과 꼭 같다.

 

 

 

 

 

 

일본 전역에서 발견된 파형동기가 대성동고분 한기에서 무려 10개가 발견되어 한.일 고고학계를 놀라게 했었다. 심지어 일본천황 숭신천왕의 무덤이 대성도 고분에 있었다고 하는 유명한 동경대학 에가미 사학교수가 있다. 가야왜의 수장이 김수로가 되는 셈이다. 그 만큼 고대사의 고고학적 유물이 동일하는 방증이기도 하다. 초기 한.일 고대사는 가야족의 유물이 일본 규슈를 비롯하여 여러 무덤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 유물을 가져간 사람들은 말과 문화적인 것도 가져간다. 일본어와 한국어와 어순이 같다는 것이 인간의 이동을 의미한다. 향가는 물론,일본 만엽가가 고대 한국어란 가설이 생겨나는 의미이다.(글돋)

 

 

 

 

 

삼국유사에 나오는 육가야의 알이다. 원래 김해시에서 구지봉에 만들어 놓았던 것을 지금 김수왕릉 옆 공원으로 옮겨놓았다. 그 옮겨놓은 이유는 소위 가야사를 전공하는 교수들의 학설에 의하면 일본서기 속의 임나10국과 가야국 3국을 합하여 13국이라고 규정하고 6가야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오류는 일본식민사관이 이룩해놓은 임나를 가야연맹체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임나'를 한지에 비정하고 있는 일본사학계의 학설을 그대로 답습한 어용사학자가 있는 한 가야사는 '임나일본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본의 노예국으로 고대사는 전락하고 말 것이다. 현재 그들의 학설이 금관가야(김해)를 임나10국 중에서 '남가라'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난 일본서기를 잘 읽어보면 '南可羅'는 너무 '작은 나라(소국)'라서 주변의 나라에게 잘 침탈될 것이라는  기록들이 나온다. 6가야 중에서 제일 으뜸인 금관가야가 가야 연맹체의 맹주로 자리한 점으로 결코 일본서기 속의 '남가라'가 '금관가야'가 아님을 척 보면 알 수 있는데 말이다.

출처 : 전혀 다른 향가 및 만엽가
글쓴이 : 庭光散人글돋先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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