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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문학- 미니멀리즘과 맥시밀리즘

monocrop 2015. 2. 21. 13:55

 

 

해외문예 / 영어권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




김욱동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문학사나 예술사에서 시대를 정확히 구분하기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극히 힘든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은 마치 무지개의 스펙트럼을 구분하는 것과 같아서 한 전통이나 사조가 과연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서 끝이 나는지 규정하는 일은 사실상 매우 힘든 일이다. 그리하여 많은 문학사가들이나 예술사가들은 어떤 획기적인 역사적 사건을 편리한 이정표로 삼아 시대 구분을 하기 일쑤이다.

다른 언어권의 경우도 매 한가지이겠지만 적어도 영미문화권의 경우 문학과 예술에 나타난 새로운 전통은 흔히 제2차 세계대전을 분수령으로 시작되었다. 인류 역사상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전대미문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문학과 예술에 있어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만큼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났듯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20세기 초엽과 비교해 볼 때 그렇게 급진적인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20세기 중엽 이전의 그것과는 여러 면에서 상당히 큰 차이를 보여 준다.

요즈음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문학과 예술에 새롭게 나타나기 시작한 사조나 전통을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 용어는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몇몇 문예 이론가들은 아예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일한 전통이나 이론이 아니며 여러 가지 다양한 현상을 지칭하는 편리한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만 염두에 둔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 문학과 예술의 지형학을 설명하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은 편리한 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여러 현상 가운데에서도 특히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미니멀리즘이란〈더 적은 것이 더 많다〉또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심미적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는 예술전통을 말한다. 그런데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문학의 영역에만 국한된 현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예술일반과 관련된 현상으로서 문학에 못지 않게 음악이나 미술 또는 조각이나 건축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은 역시 문학의 경우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미니멀리즘을 북미대륙, 그 가운데에도 특히 미국의〈현문단에 나타난 가장 인상적인 현상〉으로 파악한 존 바스는 라틴아메리카의 ‘엘 붐’에 해당되는 매우 획기적인 문학적 사건으로 간주한 바 있다.

역사적 퍼스펙티브에서 볼 때 미니멀리즘은 상당히 오래된 문학사적 전통을 지닌다. 가깝게는 알베르 카뮈나 사뮈엘 베케트, 멀게는 19세기 말엽의 스테판 말라르메를 비롯한 상징주의 시인들, 그리고 더 멀게는 까마득히 고대 희랍과 로마시대의 이솝이나 테오프라스투스에게서 그 역사적 배경을 찾을 수 있다. 특히 미니멀리즘은 미국문학 전통에 굳건한 뿌리를 박고 있다. 스티븐 크레인과 윌러 캐더 그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같은 작가들은 미니멀리즘 수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대표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에서 특히 헤밍웨이는 그의 이른바 ‘하드보일드’스타일이나‘언더스테이트먼트’또는‘빙산이론’을 통하여 이 문제를 강조한 바 있다. 그의 빙산이론에 따르면〈만약 한 산문 작가가 자기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하여 충분히 알고 있다면,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생략할 수 있으며, 작가가 충분히 진실되게 글을 쓰고 있다면 독자들은 마치 작가가 그것들을 진술한 것과 마찬가지로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빙산 이동의 위엄은 오직 팔 분의 일에 해당되는 부분만이 물위에 떠 있다는데 있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이 본격적인 문학 현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로서,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크게 유행하였다. 이 문학 전통에 속하는 작가들로는 도널드 바슬미와 리처드 브로티건을 비롯하여 존 디디온·저지 코진스키·로돌프 월리처·토머스 맥구웨인·프레드릭 튜튼·엘리저베드 하드위크·리내터 오들러·수전 손탁 등이 있다. 특히 이들 작가 가운데에서도 바슬미는 가장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작가로, 그리고 그의 「죽은 아버지」(1975)는 가장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작품으로 흔히 일컬어지고 있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다는 경제 원칙에 입각해 있는 미니멀리즘은 문자 그대로 절제와 응축 그리고 경제성을 가장 핵심적인 서술 전략으로 삼는다.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어휘나 문장 구조 또는 수사학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작중인물이나 플롯 행위 등에 있어서도 경제 원칙을 적용한다. 프레드릭 R. 칼의 지적대로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일견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함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효과를 얻고자 시도한다.


 

〈미니멀리즘 작가는 그가 포함하고 있는 것보다 주제에 대하여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 그를 초월하여 어떤 공간적인 영역에 어쩌면 아직 정의되어 있지 않지만 분명히 그 나머지 부분이 존재해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확인시켜 주지 않으면 안 된다. 흔히 작가는 그가 전개하는 노선이 아니라 그 노선을 초월하여 존재해 있는 것, 즉 현재 상태처럼 그렇게 지배적이지 않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의미있는 것을 창조점으로 삼는다… 플롯은 물론이고 연속적인 내러티브 전개와 틀에 박힌 일상적인 성격형성이 약화되거나 또는 전적으로 파괴된다〉

이렇게 미니멀리즘에서 사용되는 플롯은 전통적인 소설의 그것과는 본질적인 면에서 큰 차이를 보여준다. 미니멀리즘의 작품에서 대개의 경우 이렇다 할 만한 플롯이 없거나, 설령 플롯이 있다고 하더라도 매우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다시 말해서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이야기를 즐겨 구성한다. 따라서 미니멀리즘 작품에서는 인과관계에 따른 논리적이고 짜임새 있는 플롯보다는 오히려 에피소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만하고 느슷한 플롯이 많이 사용된다. 그런가 하면 중심적인 내러티브에서 일탈하는 곁플롯이 중심적 플롯보다도 오히려 더 중요하게 취급된다. 플롯과 관련되어 신화가 사용되는 경우 단일한 신화가 일관되게 사용된다. 그리고 이러한 플롯이 전개되는 시간과 공간 역시 최소한으로 축소되어 나타난다, 플롯과 관련된 이러한 현상은「죽은 아버지」나「백설공주」(1967)와 같은 바슬미의 작품, 그리고「미국의 송어낚시」(1967)와 같은 브로티건의 작품 등에서 그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니멀리즘이 추구하는 축소지향적 성격은 작중인물이나 성격형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전통적인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작중인물들이 등장하며 성격형성 또한 전통적인 소설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기 일쑤이다. 이러한 특성은 미니멀리즘 작품에는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여 작중인물들의 수가 한결 적다는 데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죽은 아버지」의 경우 제목으로 사용되는 주인공을 제외한다면 그의 아들 토머스와 그의 여자친구 줄리, 토머스의 형 에드먼드, 그리고 에드먼드의 친구 에마 등 오직 다섯 명의 작중인물만이 등장할 뿐이다. 「백설공주」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비록「죽은 아버지」보다는 많지만 작중인물들의 숫자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바슬미의 작중인물들은 대개의 경우 성이 언급되지 않고 오직 개인 이름만이 사용되거나, 또는 「죽은 아버지」나「백설공주」의 경우처럼 아예 이름도 없이 우화적인 별명만이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 또한 미니멀리즘이 추구하는 경제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미니멀리즘의 이러한 특성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역시 언어의 사용에서이다. 미니멀리즘 작가로 흔히 범주화되는 작가들은 거의 예외없이 언어를 최대한 경제적으로 절제하여 사용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언어보다는 오히려 침묵을 지향한다. 그들은 어휘 선택에 있어서도 주로 라틴어나 희랍어에서 파생된 추상적인 단어보다는 앵글로-색슨어 계통의 짧고 친근한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그들은 또한 일본의 하이쿠(排句)나 전보문을 연상시킬 만큼 형용사구나 부사구와 같은 수식어, 또는 의미를 한정하는 표현을 가능한 한 억제하여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통사론적 측면에서 볼 때도 생략 구문이나 파편적인 문장을 흔히 사용하는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복문보다는 중문, 그리고 중문보다는 단문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단순하고 소박한 비유나 수사를 사용하며, 작중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 역시 스타카토와 같은 반복적이고 단속적인 표현이나 상투적인 표현을 흔히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니멀리즘 작품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와 관련하여 도널드 바슬미는「백설공주」에서 작중인물 댄을 통하여 이른바〈일상어의‘포괄적’효과〉에 대하여 언급한다. 여기서 클립스콘이라는 사람이 말한 것으로 일컬어지는 이〈일상어의 ‘포괄적’효과〉란 ‘이를테면’이나‘말하자면’이라는 표현처럼 말과 말 사이에 적당히 끼워 사용하는 부분을 말한다. 이 작품을 통하여〈잡동사니〉나〈속임수〉라는 표현으로도 불리는 이러한〈끼워넣기〉나〈채워넣기〉는〈무한정적인〉특성과〈진흙과 같은〉특성을 지닌다. 전자는 언어가 끊임없이 무한정적으로 계속되는 성질로서 인간의 모든 의사소통 행위를 지배하는 속성을 가리키며, 후자는 마치 자동차의 엔진 오일처럼 침적물을 남기는 언어적 속성을 가리킨다. 그런데 바슬미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를〈쓰레기현상〉의 한 모델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바슬미의 관점에서 보면 미니멀리스트들은 적어도 이러한 쓰레기적 현상을 거부한 채 오직 필요불가한 최소한의 언어만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경제적이고 축소지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미니멀리즘은 어떤 장르보다도 단편소설이나 중편소설을 통하여 가장 잘 구현된다. 그리하여 몇몇 이론가들은 아예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유행한 단편과 중편소설의 경향에서 미니멀리즘 현상을 찾고자 한다. 흔히 미니멀리즘 전통에 속하는 작가로 일컬어지는 레이먼드 카버는 이제까지 장편소설을 한 편도 집필하지 않고 오직 단편 작품만을 집필해 왔다. 왜냐하면 장편소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의미가 통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일 때에만 비로소 존재이유를 담보 받는다고 그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의 관점에서 보면 이 세계는 결코 의미가 통하지 않으며, 따라서 장편소설이라는 장르는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현대 세계에 전혀 걸맞지 않는 장르이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장르적인 측면보다는 오히려 기법이나 주제적 측면보다는 오히려 기법이나 주제적 측면에서 정의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더 많은 것이 더 많다〉또는 〈큰 것이 아름답다〉는 심미적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는 맥시멀리즘은, 미니멀리즘과는 모든 면에서 서로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미니멀리즘에 못지 않게 긴 역사적 퍼스펙티브를 지니고 있는 맥시멀리즘의 기원은 가깝게는 찰스 디킨스·오노레 드 발자크·레오 톨스토이·제임스 조이스, 멀게는 단테·미구엘 데 세르반테스·몽테뉴·프랑수아·라블레·괴테·로버트 버튼·로런스 스턴, 그리고 더 멀게는 헤로도토스·투시디에스·페트로니우스와 같은 고대 희랍과 로마시대의 작가들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문학 전통의 경우 휴 헨리 브랙큰브리지의「현대적 기사도」(1792-1815)와 워싱턴 어빙의「뉴욕의 역사」(1809), 그리고 하먼 멜빌의「모비딕」(1851)과 같은 작품에서 그 구체적인 실례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맥시멀리즘이 하나의 독자적인 소설 유형으로 발전한 것은 비로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로서 특히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크게 유행하였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이르러서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존 바스·블라디미르 나보코프·E. L. 닥터로우·토머스 핀천·윌리엄 개디스·앨릭샌더 시루 등이 가장 대표적인 맥시멀리즘 작가들로 흔히 일컬어진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개디스와 시루 그리고 핀천은 많은 이론가들의 지적대로 가장 대표적인 맥시멀리스트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개디스의「인식」(1955)과「JR」(1975), 그리고 시루의「다콘빌의 고양이」(1981), 그리고 핀천의「V」(1963)와 「중력의 무지개」(1973)는 가장 대표적인 맥시멀리즘 작품에 해당된다. 위의 작가들과 작품들에서도 보여지듯이 맥시멀리즘은 비록 미니멀리즘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유행하기 시작되었지만 미니멀리즘과는 달리 1980년대까지도 아직 그 힘을 떨치고 있다.

그동안‘빅 북’이나 ‘토탈 소설’또는 ‘메가-소설’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리워 온 맥시멀리즘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는 폭넓은 지식을 지향한다. 일종의 백과사전적 성격을 지니는 이 유형의 소설은 문학과 예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과학과 기술·심리학·인류학·철학·역사·종교·문화 등 사실상 거의 모든 지식이나 학문 분야를 취급하기 일쑤이다. 최근 개디스의「인식」과 핀천의「중력의 무지개」 의 이해를 돕기 위한 독자 지침서가 출간된 것을 보아도 이러한 작품들이 인접 학문 분야와 얼마나 밀접한 상호 텍스트적 관련성을 맺고 있는가 하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지침서가 없이 맥시멀리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지극히 힘든 일임에는 틀림없다.

이렇게 백과사전적인 지식과 정보가 총망라되어 있는 맥시멀리즘 소설은 물리적인 면에서 상당히 길이가 길고 규모가 크다.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은 거의 예외 없이 몇백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되어 있다. 미니멀리즘이 축소지향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맥시멀리즘은 확대지향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점과 관련하여 바스는 음식물의 메타포를 사용하여 미니멀리즘을 저칼로리의 규정식에, 맥시멀리즘을 칼로리가 풍부한 영양식에 각각 비유한 바 있다. 따라서 플롯면에서 볼 때 맥시멀리즘 소설은 마치 미로와도 같이 복잡다단한 것이 특징이다. 단일한 플롯을 지니는 미니멀리즘과는 달리 맥시멀리즘에서는 하나 이상의 여러 플롯이 사용되며, 이러한 플롯은 대개의 경우 상당히 복잡하게 전개된다. 신화의 사용에 있어서도 단일한 신화 대신에 하나 이상의 신화가 서로 복합적으로 뒤얽혀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맥시멀리즘 소설은 작중인물에 있어서도 미니멀리즘과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이 경우 등장인물의 수효는 미니멀리즘 소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예를 들어「중력의 무지개」의 경우 무려 3백명에 달하는 작중인물들이 등장하며,「인식」의 경우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작중인물의 성격형성 또한 대단히 복잡하고 미묘하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맥시멀리즘 소설은 사건이 전개되는 시간적·공간적 배경에 있어서도 미니멀리즘보다는 한결 더 구체적이다.

언어적 측면에서 볼 때도 맥시멀리즘은 바로크 시대의 건축 양식을 연상하게 할만큼 장식적이고 수식적인 스타일을 즐겨 사용한다. 18세기와 르네상스 시대 그리고 고대 희랍시대의 풍자가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른바 ‘해박한 재사’전통에 기초하고 있는 맥시멀리즘 작가들은 어휘에 있어서는 라틴어나 희랍어에서 파생된 말, 통사론에 있어서는 복잡한 복문이나 중문의 구문을 자주 사용한다. 주로 구어적인 단순한 언어에 의존하는 미니멀리즘과는 달리 맥시멀리즘에서는 고양된 표현이나 길이가 길고 난해한 문장이 강조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맥시멀리즘 작가들은 바로 바슬미가 일상어의 특성으로 파악하는〈무한정적인〉특성과〈진흙과 같은〉특성, 즉 언어의〈쓰레기 현상〉을 핵심적 언어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은 한편으로는 서로 상이한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몇몇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 두 유형의 소설은 한결같이 그것이 창조된 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존 바스의 지적대로 문학사를 통해서 미니멀리즘은 사실상 함께 공존해 왔다. 미니멀리즘은 바슬미의 지적대로 후기 산업사회의 한 특징인 〈쓰레기 문화〉를 잘 반영해 준다. 이밖에도 바스는 제2차 대전 이후 정치적·사회적 문화적 현실에서 미니멀리즘이 미국에서 유행한 원인을 찾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①베트남 전쟁, ②에너지 위기, ③글을 쓰고 읽는 기술의 저하, ④독서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의 감소, ⑤문학적 소재의 고갈이나 쇠진, 그리고 ⑥미국의 광고 산업 등은 이 당시 미니멀리즘이 크게 유행하는데 큰 역할을 한 주된 요인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맥시멀리즘의 경우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단테의「신곡」이나 하블레의「팡타그뤼엘」(1532)과「가르강튀아」(1534) 그리고 세르반테스의「동키호테」(1605-15)와 같은 작품들은 각각 그것들이 씌어진 이 당시의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의 문화적 현실을 잘 반영해 주는 일종의 ‘민족적’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괴테의「파우스트」(1808)는 독일, 멜빌의「모비딕」은 미국, 그리고 조이스의「율리시즈」(1922)는 아일랜드의 민족사나 문학사와 각각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더욱이 미니멀리즘은 전통적인 소설에서 볼 수 없는 연대기적 서술이 무시되거나 소홀히 취급된다는 점에서 맥시멀리즘과 매우 유사하다. 이 두 유형의 소설은 모두 다함께 미메시스 이론이나 그것에 기초를 둔 재현성을 거부한다. 미니멀리스트들과 맥시멀리스트들은 다함께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말하는 ‘낯설게 하기’기법을 핵심적 장치로 사용함으로써 재현성에 도전하고자 한다. 물론 리얼리즘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반재현성은 모더니즘에 이르러 심각한 도전을 받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더니즘은 재현에 대한 갈망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서 모더니즘은 외적 실재의 재현이나 표상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작가의 주관성이나 내적 실재에 관심을 보임으로써 비록 그 정도가 미약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재현에 대한 미련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 두 유형의 소설은 서사시적 나열법이나 패러디 또는 독백과 같은 다양한 문학적 장치를 통하여 자기반영성을 강조함으로써 반재현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은 성격형성에 있어서도 리얼리즘이나 모더니즘 전통과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특히 두 유형의 소설은 언어에 대하여 큰 차이를 보여주면서도 언어적 유희에 탐닉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공통점을 지닌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반리얼리즘적 입장은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의 두 가지 형태를 통하여 나타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미니멀리즘은 엔트로피적 비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맥시멀리즘과 공통점을 지닌다. 이미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도널드 바슬미는「백설공주」에서〈쓰레기 현상〉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보여준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일인당 쓰레기 총국민 생산량은 1920년 하루 2.75파운드에서 1965년에는 무려 4.5파운드로 연간 약 4퍼센트의 증가율을 보였다. 만약 이러한 증가 추세로 계속 나간다면 지구는 머지 않은 장래에 쓰레기장으로 변해 버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구상에 존재해 있는 모든 에너지는 소멸되고, 정보 체계 또한 쇠퇴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열역학 제2법칙과 정보 이론에 기초를 두고 있는 이러한 엔트로피적 비전은 윌리엄 개디스와 토머스 핀천과 같은 맥시멀리스트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개디스의 「JR」과 「인식」그리고「목수의 고딕」(1985), 또는 핀천의「49호 품목의 경매」와「V」그리고「중력의 무지개」등은 이러한 현상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에 해당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은 모두 후기 모더니즘이나 네오-리얼리즘 보다는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범주화하는 편이 한결 더 정확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두 유형은 어떤 면에서는 모더니즘의 속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리얼리즘의 속성 또한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엄격한 의미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범주에 속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을 파악하는 이론가들 가운데에서도 아마 크리스토퍼 내쉬와 존 쿠얼은 가장 대표적인 사람들일 것이다. 내쉬는 그의 저서 「월드-게임」에서, 그리고 쿠얼은 그의 저서「대안적 세계」(1989)에서 반리얼리즘 전통을 분석하면서 이 문제를 취급한 바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단일한 문학 전통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포괄적 개념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넓은 의미에서 포스트모던 소설에는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은 물론‘자의식적 메타픽션’이나‘우화화’, 그리고 심지어는‘누보로망’과 ‘마술적 리얼리즘’까지도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