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지도 등 변조한 임란 이후 몇 차례 필사로 베낀 것을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인가?
왜냐하면 그간 많은 사료들이 손을 타 변조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열도는 당시 글도 없었고 말馬도 없었으며 의복조차 없어 모두 백제가 가져다 주었고 가르쳤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 있다.
고사기, 일본서기의 적반하장의 잘못된 표기와 내용 및 시기 변조등도 이제는 알만큼 알려져 있다.
여러 사료와 유물에도 맞지않는 저런 내용을 분석없이 그대로 본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시 왜라고 표현된 세력들에는 여러 무리들이 포함되어 일괄로 대륙에서 불리워졌는데 이에 대한 정확한 규명이 전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저렇게 시점 자체에도 문제가 있는 사료들을 아무런 분석없이 믿는 것은 사마천의 [사기]에서의 곡필과 [삼국지연의]와 같은 과장된 거짓말에 이제껏 놀아난 것과 같은 우둔한 길을 또다시 걷는 길이라 생각된다.
........................................................................................................................................................Mimesis
‘양직공도’에서 발견된 신라ㆍ고구려 제기 |
양직공도(梁職貢圖) 6세기 중국 양(梁)나라 때 제작된 사신도로, 중국 난징박물관(南京博物院)에 소장되어 있다. 중국을 찾은 백제ㆍ왜 등 외국 사신들의 모습을 그리고, 그 나라의 풍습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그림은 6세기에 제작된 원본을 1077년 북송 시대에 모사한 것이다. 당초 원본에는 25개국 정도의 사신들이 그려져 있었으나, 현재는 이 가운데 12국 사신들 모습만 남아 있다. 특히 ‘백제국사(百濟國使)’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과 여기에 대한 서술은 6세기 초 웅진시대의 백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기록을 보면, 백제에 대해 “마한(馬韓)에서 시작된 나라이며, 중국의 요서(遼西) 지방을 차지해 다스렸다. 고구려와 말씨 및 옷차림이 비슷하며, 백제 무령왕(武寧王)은 고구려를 크게 격파했다는 사실을 알려온 적이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백제국사 초상은 현존하는 회화 자료 중 백제인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서는 유일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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